소설리스트

금손으로 살아가기-47화 (47/156)

사랑산성 (1)

* * *

“헛…….”

갑작스럽게 굉장한 미인을 만나니, 말문이 막힌다.

“아. 네. 아, 저. 그게…….”

나도 모르게 그녀의 눈을 피하며 말을 더듬거렸다.

수준 높은 단란주점에는 미인들이 많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이건 좀 당황스러울 정도인데.

“뭐예요? 말을 하세요.”

“허허. 안녕하세요~ 흡!”

뒤에서 기다리고 있던 변 사장.

답답했는지 나서서 인사하려다가, 그녀를 본 후 나와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변 사장도 얼어버렸다.

“벨은 눌러놓고 왜 말이 없어요? 이상한 사람들이야.”

여자는 짜증 난다는 듯, 문을 닫으려고 했고.

난 무의식적으로 닫히려는 문을 막았다.

“잠깐만요!”

“…….”

여자는 뭐냐는 듯 날 바라봤다.

“죄송합니다. 용건이 있어서 찾아왔는데, 너무…….”

어떻게 할까 하다가, 그냥 솔직하게 얘기했다.

“굉장한 미인이 나오셔서 당황했습니다. 아마 이분도 그러신 거 같고요.”

“날 거기 왜 껴?!”

하지만 변 사장도 함께 팔았다.

“네? 어머.”

난 한껏 진지한 얼굴이었고.

빈말이 아니라고 느낀 것인지, 여자는 불쾌한 얼굴은 아니었다.

“용건만 빨리 말씀하세요. 우리는 한밤중이라고요. 지금 잠 못 자면, 이따가 일 제대로 못 해요.”

지금 시간은 오후 2시 30분.

이들에게는 지금 시간이 기상 전 마지막 스퍼트로 잠자는 시간일 것이다.

일반적인 사람으로 치면, 새벽 4~5시 정도겠지.

급하게 꺼낼 얘기는 아니지만.

그녀가 너무 피곤해 보였고, 상황이 이해되기에 난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비즈니스 얘기를 하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뭐요? 비즈니스?”

“네, 영업 안 하는 시간에 저희가 임대를…….”

그녀는 손을 들어 제지했다.

“잠깐만요. 비즈니스라면 가볍게 들을 얘기가 아닌데요. 전 또 어젯밤 놀다가 뭐 빠뜨려서 찾으러 온 줄 알았잖아요.”

“…….”

그녀는 이제 잠이 좀 깨는지, 눈빛이 또렷해 보였다.

하지만 표정은 아까보다 더 안 좋다.

“그리고…… 진짜 비즈니스 하시려는 분들 맞아요?”

“네?”

“입장 바꿔서 생각해 봐요. 잠자는 시간에 누군가 찾아와서 비즈니스 하자면…… 좋겠어요?”

“…….”

“함께 비즈니스를 할 생각이시면 기본적인 매너는 갖춰야 하는 거 아닌가요? 설마 여기가 뭐 하는 곳인지 몰랐다고 얘기하실 건 아니죠?”

할 말이 없었다.

“전 별로 비즈니스 얘기 들어볼 마음이 안 드는데요?”

연예인 같은 외모.

아무리 높게 봐도 나이는 이십 대 후반 정도.

하지만 표정과 말하는 것을 봤을 때, 뭔가 달랐다.

깔끔하고 지혜로운 사람 같다는 인상이 들었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실례했네요.”

변 사장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저는 변성준 사장이라고 합니다. 이 사람들 리더예요. 저희가 마음이 급해서…… 지금 주무실 시간이라는 걸 미처 생각 못 했네요. 죄송합니다.”

변 사장의 정중한 사과에 여자는 표정이 좀 수그러들었다.

“언제가 편하십니까? 편하신 시간에 다시 찾아올게요.”

“네? 아, 뭐……. 이미 오셨는데, 긴 얘기 아니시면.”

변 사장은 한 걸음 물러나며 말했다.

“긴 얘기든, 짧은 얘기든 예의가 아니죠. 언제든 좋으니 시간 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

여자는 살짝 난감한 표정을 짓다가 말했다.

“그럼…… 저녁 5시 괜찮으세요? 그때가 좀 한가하거든요.”

“네! 그때 뵙겠습니다.”

변 사장은 고개를 깊숙이 숙였고, 나 또한 그를 따라 인사했다.

* * *

약 3시간 뒤.

근처 카페에서 시간을 때우다가, 5시가 다 되어 사랑산성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강 대리님.”

“응?”

“아까 그 여자 조심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홍지아의 뜬금없는 소리에 난 대꾸도 하지 않았다.

“여자의 촉이거든요? 뒤통수 후드려 맞을 것 같은 촉.”

“여자의 촉은 믿을 만하지만, 홍지아 씨 촉은 안 믿어.”

“뭐에요? 전 여자 아니에요?”

“자자. 조용.”

사랑산성에 가까워 오자, 변 사장은 주의를 주었다.

“중요한 비즈니스잖아. 조용히 하고 집중하자.”

곧바로 안으로 들어가 벨을 눌렀다.

딩동!

[네~.]

덜컹!

문이 열렸고.

“헉스!”

“웁!”

나와 변 사장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허리까지 오는 갈색 머리.

새하얀 얼굴에 귀엽고 수려한 이목구비.

가느다란 목선.

에나멜 느낌의 광빨 나는 검은색 투피스를 입고 있었는데.

치마가 긴 옷인데도, 왜 이렇게 시선 두기가 어려운 지 모르겠다.

“아까 낮에 찾아오셨던 분들 맞죠?”

그녀의 질문에 우리는 도리어 물었다.

“아까 낮에 뵈었던 분 맞죠?”

맞는 것 같은데, 완전히 달라졌다.

낮에 연예인 같아 보였다면, 지금은 연예인보다 더 이뻐 보였다.

사람을 긴장시키는 외모.

꿀꺽.

변 사장의 침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호호. 들어오세요.”

“네…….”

우리는 그녀를 따라 들어갔다.

정말로…… 비현실적인 외모를 가지신 분들이 있구나.

이런 사람은 태어나서 처음 봤다.

키는 크지 않은데, 커 보이고.

같은 인간인가 싶을 정도로, 얼굴은 너무 작다.

살면서 지금까지 내 주변에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이다.

― 어머……. 실내도 괜찮네.

― 영화에서 본 단란주점 같지 않습니다. 고급 한정식집 같은데요.

홍지아와 최경리가 실내 인테리어를 살피는 소리가 들렸다.

“이쪽으로 앉으시죠.”

여자는 홍지아와 최경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여성분들은 이곳에 계시는 게 좀 불편하다고 느낄 수 있을 것 같은데.”

“…….”

“정 불편하시면 저희 숙소 가서 계실래요? 2층인데.”

“그게 더 불편할 거 같아요.”

“호호. 네.”

여자가 자리에 앉자, 변 사장은 정식으로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전 제로백 컴퍼니의 대표 변성준이라고 합니다.”

변 사장은 자신을 소개한 뒤 내 어깨를 잡았다.

“이쪽은 강태평 대리입니다. 전 얼굴 마담이고요. 강 대리가 저희 회사 실질적인 주인입니다.”

“엇, 왜 그러세요?”

난 순간 당황하여 변 사장을 옆으로 살짝 밀쳤고.

그는 웃으며 말했다.

“왜? 사실인데.”

“하아~, 참나.”

어이없게도 홍지아와 최경리도 별다른 말 없이 변 사장의 말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호호. 이분이 회사 오너이신가 보네요. 로열 패밀리?”

여자는 흥미롭다는 듯 날 바라봤고.

난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 오해에요. 그런 거 아닙니다.”

여자는 명함을 건네며 말했다.

“전 사랑산성의 사장, 설수민이라고 해요.”

“사…… 장이요?”

나이를 물어볼 수는 없지만, 이렇게 젊은 사람이 사장이라고?

‘설수민 실장’.

근데 명함에는 실장이라고 적혀 있었다.

고개를 갸우뚱하자, 설수민은 웃으며 말했다.

“보다시피 제가 좀 어린 편이잖아요. 사장이라는 직함 달기가 좀 그래서요. 손님 중에 사장님들이나 나이 드신 분들이 많거든요. 그분들 배려해서 실장이라는 직함을 쓰고 있습니다.”

“아……. 네. 그럼 저희는.”

“편하신 대로 불러주세요.”

“알겠습니다.”

설수민은 자세를 고쳐잡으며, 다리를 꼬았다.

“저희가 6시부터는 좀 바빠지거든요. 빠르게 한번 들어볼까요?”

설수민은 지그시 우리를 바라보았다.

나와 변 사장은 누가 얘기할지 서로 눈짓을 보내다가.

결국 변 사장이 입을 열었다.

“저희는 촬영 전문 회사인데요. 이번에 외식업에 진출하려고 합니다.”

“촬영 전문회사면 스튜디오라는 건가요?”

“네.”

설수민은 뭔가 연결이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고.

변 사장은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공유 주방이라는 방식을 통해, 사업 시도할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공유 주방?”

설수민은 생소하다는 듯 중얼거렸고.

변 사장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간단하게 말씀드리자면, 사랑산성의 경우 업종 특성상 점심시간에는 영업을 안 하시잖아요?”

“그렇죠. 대낮에 누가 술 마시고 노래 부르러 오겠어요. 그리고 우리는 밤샘 장사인데, 낮엔 좀 쉬어야죠.”

“하하, 네. 이 좋은 영업장을 그대로 두지 않고, 임대를 돌리시는 겁니다.”

“저희가 영업하고 있는 곳인데, 임대를 해준다고요?”

“네, 딱 낮 시간 동안만요. 밤에는 하시던 대로 영업하시면 되고요.”

“임대라면……. 임대료도 받고요?”

“물론이죠.”

“호오…….”

설수민은 이해한 듯했다. 표정이 살짝 변했다.

“흥미로운데요? 좀 더 자세히 얘기해 보실래요?”

설수민은 앞으로 좀 더 다가와 앉았고, 변 사장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네, 그러니까 저희가 생각하는 비즈니스는요.”

우리가 하려는 비즈니스와 그 비즈니스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공유 주방을 고민했다는 점.

공유 주방을 통해 서로 윈윈할 수 있다는 걸 특히 강조했다.

“이렇게 제가 설명드린 관점에서 고려해 보실 때, 사랑산성 측에서는 전혀 손해 보실 부분이 없습니다.”

“전혀 없는 건 아니죠.”

“네?”

“우리가 제대로 못 쉬잖아요. 우리는 영업장이 곧 집이기도 하거든요.”

“숙소는 독립된 공간 아닙니까?”

“그렇긴 하지만, 시끄럽긴 하겠죠.”

“네……. 뭐, 그거야.”

설수민은 잠시 고민했다.

“전 일하는 것만큼 쉼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제대로 못 쉬면 피부 안 좋아지고, 피부 안 좋으면 매출 떨어지고…….”

전혀 생각 못 했던 이유를 들었다.

예상치 못한 난관에 변 사장은 살짝 당황했다.

그만큼 우리는 이 장소가 꼭 필요했다.

영업장을 서핑하는 건 오늘이 첫날이지만.

오전부터 열심히 다녔고, 우리 비즈니스 취지에 맞는 곳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걸 확실히 느꼈다.

급해서는 안 되지만, 중요한 순간에 결단하지 못 하는 건 더 안 된다.

변 사장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서도, 우리 중 누구도 말리지 않는 것은 ‘사랑산성’만 한 곳은 없을 거라는 무언의 동의이다.

“어차피 저희는 고급 요리로 사업할 계획이기 때문에 손님이 아주 많지 않을 것이며, 타깃 고객층을 고려했을 때 소란스럽지도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네, 그건 말 그대로 예상이에요. 앞일은 모르는 거고, 계약하면 끝이죠. 임대료는 얼마나 주실 건데요? 삶의 질을 상쇄시킬 만큼 수익이 압도적이라면 고려해 볼 만하겠죠?”

“네? 아, 네.”

설수민은 군더더기가 없었다.

명확하고 깔끔했다.

“보통 강남역 근방이 보증금 1000에 월 150 정도 하더라고요.”

“네, 말씀하세요.”

설수민은 표정 변화 없이 잠자코 들었다.

우리는 보증금 1000에 월 150으로 제안하려 했다.

이곳은 강남 노른자 땅이 아니다.

하지만.

“…….”

여기서 자칫 잘못 얘기하면 그대로 끝나버릴 것 같은…….

“보증금 1000에 임대료 200 제안 드립니다. 저희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가장 높은 수준으로 제안을…….”

“네, 됐습니다.”

설수민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불쾌해서 그런 건 아니고요. 어차피 서로의 니즈가 다르니, 더 시간 낭비하지 않는 게 좋겠네요. 월 200에 직원 10명의 달콤한 휴식을 포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네?”

우리는 당황하여 그녀를 바라봤다.

“높은 임대료 제시하셨다는 거 믿을게요. 그냥 저희 상황과 맞지 않아서 거절하는 거라고 생각해 주시면 될 것 같아요. 이만 일어나시죠.”

그녀는 상냥하게 미소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변 사장의 이마에서 한 줄기 땀이 흘렀고.

나 또한 당황스럽긴 마찬가지였다.

쿡쿡.

변 사장이 옆에서 내 허벅지를 찔렀다.

‘뭐라도 좀 해봐. 이거 꼭 해야 돼.’

나에게만 들리도록 소곤거렸다.

“나가시는 문은 이쪽입니다.”

설수민은 재촉했고.

“…….”

콕콕.

‘강 대리~.’

벌떡.

난 자리에서 일어났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서 있는 나와 설수민.

“제가 조금 더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흠…….”

그녀는 살짝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짧게 해주세요.”

난 대뜸 그녀에게 손을 내밀고 말했다.

“정식으로 소개하고 시작하겠습니다. 강태평 대리입니다.”

모두 황당하다는 듯 날 바라봤다.

아까 소개했는데, 갑자기 왜 정식으로 소개냐고?

내 목적은 손에 있다.

그녀를 향해 뻗은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제발 잡아라.’

설수민은 그런 내 손을 잠시 바라보더니.

피식. 미소를 짓고.

덥석.

내 손을 잡았다!

“재밌는 분이시네요. 호호. 저도 다시 소개해야 하나요? 설수민 실……. 어머.”

난 재빨리 왼손으로 그녀의 손을 덮었다. 그리고 살며시 흔들었다.

“하하.”

나의 두 금손에 꼭 잡힌 설수민의 손.

그녀의 얼굴이 붉어지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