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업 (1)
* * *
“왜 날 봐요?”
“하하하.”
내 물음에 변 사장은 별다른 대답은 하지 않고, 그저 웃었고.
홍지아도 빙그레 미소 지었다.
최경리 살며시 웃는 것 같았는데……. 잘못 봤나?
“강 대리, 드디어 답을 찾은 거 같아.”
변 사장은 내 어깨를 짚으며 말했다.
“다들 나랑 비슷한 생각이지?”
“네~, 자본금도 많이 안 들고요~. 손만 쓰면 되고, 고가치가 될 수 있는 종목이죠.”
홍지아는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요리라는 게 가격이 천차만별이라서, 고급 요리를 만들면 되는 거니까요. 특별한 손님을 위한 특별한 요리.”
“맞아~. 내 생각도 그래. 홍지아 씨, 오늘 좀 통하는데? 하하.”
“호호.”
야유회 준비하라는 말에…… 갑자기 왜 신사업 얘기를.
날 보고 요리를 준비하라고?
변 사장과 홍지아는 그동안 고민되었던 게 해결됐다는 듯 후련한 표정이었다.
“민 사장님 덕분에 이 고민이 해결될 줄은 몰랐네.”
“그러게요. 왜 이 생각을 못 했을까요.”
홍지아와 변 사장은 아주 신이 났다.
야유회 간다고 신나 하는 건 아닐 것이다.
진일상사에서 야유회 좋아하는 사람은 민 사장밖에 없으니까.
“저 요리를 해본 적이 없는데요.”
똥손일 때는 위험해서 안 했었고.
금손일 때는 귀찮아서 안 했다.
요리 자체를 안 해 먹는 게 습관이 되어서.
그냥 배만 채우면 된다는 주의.
배속에 들어가면 다 똑같고, 생명을 연장시키는 데 필요한 게 음식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누군가 맛있는 거 사주거나, 음식을 해주면 감사히 먹지만.
내 손으로…… 굳이.
“강 대리님 시티백은 타봐서 잘 몰았던 거예요?”
“어? 그건…… 아니지.”
“포토샵이랑 종이접기는요?”
“…….”
왜 물어보는지 알 것 같다.
요리 안 해 봐도 잘할 것이라는 뜻이지?
할 말 없게 만드네.
변 사장은 날 유심히 보다가 물었다.
“혹시 최근에 음식 만들어 본 적 있어?”
“최근이요?”
“음……. 그러니까, 속초에서 돌아온 이후에.”
시점까지 콕 집어서 얘기한다.
금손의 능력에 더해 이제는 변화 시점까지도 확신하고 있는 듯하다.
“라면도 음식이라고 봐야 하나요?”
“뭐…… 그것도 잘 끓이는 사람, 못 끓이는 사람이 있으니까.”
“라면도 음식이라고 친다면…… 해본 거네요.”
“맛이 어땠어?”
“당연히 맛있죠.”
난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근데 라면 끓여서 맛없는 경우가 있나요? 아마 대부분은 맛있다고 느낄 텐데?”
“그렇기는 합니다.”
가만히 있던 최경리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변 사장은 살짝 당황한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속초 갔다 오기 전에는 어땠어? 그때도 라면 맛있었어?”
예리한 질문이다.
라면 정도는 괜찮게 먹었었다.
손에 장갑 끼고서 끓이면 되니까.
아무리 똥손을 갖고 있어도, 살아가는 방법이 있다.
“네, 그때도 맛있었습니다.”
손에 장갑 끼고 끓였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홍지아의 표정은 어두워졌고.
변 사장은 잠시 고민하다가 머리를 흔들고는 말했다.
“라면은 객관성이 없어. 그걸로 판단할 순 없지.”
“…….”
“어쨌든 야유회 가야 하는 거고, 음식도 만들어야 하니까. 일단 시도해 보자.”
변 사장은 확신에 찬 얼굴로 우리를 바라봤다.
“야유회를 우리 신사업을 위한 시식회라고 생각하는 거야. 물론 이 계획은 우리만 알아야겠지.”
그의 얼굴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실마리를 찾은 것 같다는 표정.
하지만 난 왜 그럴수록 부담이 느껴지는 걸까.
과연…… 요리도 잘될까?
“요리사는 강태평 대리. 홍지아와 최경리는 보조를 맡는다. 알겠지?”
“네!”
홍지아는 큰 소리로 대답했고, 최경리는 대꾸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난 기획을 맡는다. 요리 주제를 생각해 올 테니까. 쉬고들 있어.”
변 사장은 담배와 외투를 들고 밖으로 나가며 내게 말했다.
“나머진 우리가 다 할 테니까, 자기는 요리만 해.”
* * *
‘제로백 컴퍼니’.
그냥 회사를 나갈 걸 그랬나.
변 사장의 큰 그림에 발목 잡힌 건 아닐까.
어째 시간이 지날수록 잘못된 선택이 아니었을까 하는…….
덜컹!
약 1시간 뒤. 변 사장이 환한 표정으로 들어왔다.
홍지아가 기대 가득한 얼굴로 벌떡 일어났다.
“됐습니까?! 저희 뭐 만들면 돼요?”
이렇게 열심히 하던 친구가 아니었는데.
회사 바뀌고서 정말 자기 일처럼 열심히 한다.
자기가 할 거 아니라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
“팔보채!”
변 사장은 주먹을 불끈 쥐고 소리쳤다.
“우리는 팔보채로 간다. 강 대리, 할 수 있지?”
“파알보오채요?”
황당해서 말도 제대로 안 나온다.
웬 팔보채?!
“하하! 어!”
“야유회 가서, 팔보채를요?”
“에이~, 이건 우리에겐 단순히 야유회가 아니라니깐. 시식회라고.”
하아……. 또라이 집단 소리 들을 거 같은데.
“마음 같아선 샥스핀을 해보고 싶은데, 그건 재료가 너무 비싸니깐…… 이번엔 테스트 개념으로.”
“…….”
“팔보채가 적당할 거 같아. 어쨌든 야유회고 여러 사람 먹을 거니까, 양은 넉넉하게 준비하자고.”
“네~!”
홍지아는 밝게 대답하고, 바로 초록창 검색에 들어갔다.
“강 셰프님~, 레시피랑 재료 준비는 저랑 경리 씨가 다 할게요.”
“셰프라고 하지 마.”
“준비된 거 점검만 해주세요~. 뭐, 대리님께는 그딴 자잘한 거 필요 없기야 하겠지만. 그냥 만들면 되시잖아요. 상한 재료라도 맛있게 만드실 것 같은데~. 호호.”
팔보채…… 팔보채라…….
이름은 많이 들어봤는데, 생소하다.
먹어본 기억이 없다.
머릿속에 그림이 안 그려진다.
내가 과연 잘할 수 있을까.
내 불안한 눈빛을 느낀 것인지, 변 사장이 다가왔다.
“강 대리, 자긴 할 수 있어.”
“…….”
변 사장의 목소리가 아주 진지했다.
“자기라면 팔보채 해낼 수 있어.”
팔보채를 해낸다…….
어쨌든 회사 방향이고, 도전에 망설이지 않기로 했으니까.
일단 딴생각 말고 감당해 보자.
난 주먹을 꽉 쥐었다.
“홍지아 씨, 검색해 봤어?”
“네, 해삼, 새우, 오징어, 전복 등의 해물에다가 죽순, 청경채, 양송이, 닭고기. 8가지 진귀한 재료로 만든다고 해서 팔보채라네요.”
“팔이 숫자 팔이구나. 레시피는?”
“엄청 많아요. 어떤 걸 따라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냥 아무거나 레시피 하나 뽑고. 오늘 재료 산 다음에, 각 재료는 조금씩 맛볼 수 있게 준비 좀 해줘. 특히 해삼, 전복, 죽순, 청경채.”
변 사장이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그건 왜?”
“각 재료 맛을 알아야 음식 맛을 낼 것 같아서요. 특히 해삼, 전복, 죽순, 청경채는 제가 못 먹어봐서 맛을 아예 모르거든요.”
“아…….”
“각 재료의 맛도 모르면서, 음식 맛을 낸다는 건 어불성설이죠.”
말은 그럴듯하게 했지만, 이렇게 해야 내 손이 기억할 것 같아서 그렇다.
“오~, 전문적인데?!”
“강 대리님, 멋있다.”
홍지아도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고, 난 경계하는 눈초리로 바라봤다.
“홍지아 씨, 우린 그냥 직장 동료야.”
“누가 뭐래요?”
“오해 살 만한 행동 하지 말라고.”
“하, 참나. 어이없어.”
홍지아는 분하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휴~, 젠장. 입조심 해야지. 장 보고 오겠습니다!”
변 사장은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래. 제발 좀 조심해라.”
* * *
맑은 가을 하늘 아래.
진일 그룹의 전 직원이 야유회장에 모였다.
[진일 그룹~, 모두 모였습니까.]
영업 1팀장, 김민석이 확성기에 대고 말했다.
오늘 자회사인 제로백 컴퍼니도 모였고, 민경원 사장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김민석은 ‘진일 그룹’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네~!”
자회사를 합쳐도 고작 10명뿐인 직원.
확성기까지 사용할 필요는 없는데, 김민석은 계속 쇼맨십을 발휘했다.
[오늘 야유회 총 진행을 맡은 김민석입니다~. 인사드립니다~.]
“와아~.”
그래도 분위기는 좋았다.
[날씨가 참 좋죠? 오늘 같은 날 직원들에게 좋은 추억을 선물하고 싶다며, 민경원 사장님께서 야유회 자리를 마련해 주셨습니다. 모두 감사의 뜻으로 박수 부탁드립니다!]
짝짝짝.
[민경원! 민경원!]
김민석은 민경원 사장의 이름을 연호했다.
직원들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마지못해 따라 외쳤고.
민경원 사장의 표정도 살짝 굳었다.
너무 과한 액션은 도리어 독이 될 수 있다.
역시 김민석은 팀장답게 눈치가 빨랐다. 민 사장의 표정을 살피고는 재빨리 끊고 다음 멘트를 시작했다.
[자아~, 오늘은 그냥 먹고 즐기는 날입니다~. 얼마나 맛있게 잘 드실지! 그게 오늘 경연인데요. 각 팀의 대표 메뉴 소개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김민석은 웃으며 말했다.
[영업 2팀―제로백 컴퍼니―영업 1팀 순서로 나와서 소개해 주세요~.]
― 순서가 왜 이래?
― 자기 팀인 영업 1팀을 마지막으로 해서 돋보이고 싶은 거겠지.
― 하여간…… 이런 사소한 거에도…….
영업 2팀장, 민경원 사장의 동생 민경수가 확성기를 잡았다.
[안녕하세요. 2팀장 민경수입니다. 저희는 굴보쌈을 준비했습니다~.]
“와아~.”
영업 2팀장의 소개에 팀원 두 명이 열심히 박수를 쳤다.
[월계수 잎 가득 먹은 야들야들한 수육~ 기대해주세요~. 굴은 남도에서 올라왔습니다~.]
“2팀! 2팀!”
피식.
이 모습을 보며 변성준 사장은 살며시 웃었고.
강태평의 표정은 불안했다.
‘이거 콘셉트 잘못 잡은 거 아니야? 야유회는 저런 음식이 어울리지. 자칫하다간 진짜 웃음거리 되겠는데.’
소개를 마친 후 민경수는 바로 들어갔고, 다시 김민석이 확성기를 잡았다.
[이번엔 제로백 컴퍼니입니다. 변성준 사…… 장님? 흠!]
어쩔 수 없이 직급 호칭을 하지만, 영 내켜 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나와서 소개해 주시죠.]
“넵! 김 팀장님!”
변 사장은 확성기를 잡은 후, 아랫사람 대하듯 김민석의 어깨를 두들겼다.
김민석이 변 사장보다 나이도 어리고, 후배이며, 이제 직급도 낮다.
뭐가 그렇게 억울한지, 김민석은 내내 불만스러운 표정이었다.
‘월급 루팡이 어쩌다가……. 어우, 짜증 나.’
변 사장은 확성기를 잡고 자신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아. 잘 들리시죠? 제로백 컴퍼니 변성준이올시다~. 직원 여러분께 정식으로 인사 올립니다~.]
와아~.
짝짝짝.
― 샐러리맨의 신화!
― 하하하.
누군가의 장난스러운 외침에 직원들은 일제히 웃었다.
두 팀장 외에는 모두 환영하고 축하하는 분위기였다.
[우리 회사는요~, 평소에 쉽게 드실 수 없는 음식을 준비했습니다~. 제로백의 셰프. 강태평 대리가 맛있게 요리할 거거든요? 저희가 준비한 요리는…….]
― 오~.
― 강대평 대리~.
― 강 대리라면 왠지 음식도 잘할 듯.
‘강태평’ 이름이 나오자마자, 직원들은 술렁였다.
[광동식 팔보채입니다.]
“…….”
일순간 직원들은 조용해졌다.
― 뭐?
― 여기서 팔보채를?
― 광동식은 뭐야? 너 먹어본 적 있냐?
[맛있게 즐겨주세요~.]
변 사장이 내려간 뒤에도 직원들의 술렁거림은 끊이지 않았다.
“사장님, 광동식은 뭐에요?”
강태평의 물음에 변 사장은 웃으며 대꾸했다.
“나도 몰라~. 그냥 팔보채라고 소개하기 심심해서.”
“…….”
김민석은 확성기를 잡고,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 다음. 오래 기다리셨죠?! 영업 1팀! 요리 소개하겠습니다!]
― 팔보채 어렵지 않아?
― 그게 해산물 요리일걸?
― 해산물만 들어가는 게 아닌 거 같던데?
[영업 1팀 소개요!]
― 그거 맛있어?
― 난 먹어봤는데, 괜찮던데?
― 대중적인 맛은 아니긴 해.
[우리 팀은요!]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직원들은 들을 생각을 안 했다.
계속 팔보채 얘기뿐이었다.
[아메리칸 포크립입니다! 질 좋은 고기로 준비했습니다. 오늘 맛보는 모든 분~ 아메리카로 보내드리겠습니다~! 하하!]
― 광동은 어디야?
― 광동식이면 좀 맵다는 뜻인가?
― 그건 사천요리일걸.
김민석은 이를 갈았다. 아무도 그의 얘기에 관심 갖지 않았다.
‘젠장. 먼저 할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