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손으로 살아가기-41화 (41/156)

제로백 컴퍼니 (2)

* * *

1시간 정도가 지났다.

다들 뭔가 열심히 고심하기는 하는데, 아무런 말이 없었다.

홍지아는 노트에 뭔가 끄적이고 있었고, 변 사장도 눈을 굴리며 궁리했다.

최경리는 멀뚱히 계산기 가지고 놀고 있었다.

나는…… 날 활용한다는데, 이런 고민까지 함께하는 건 불공평한 거 같아서.

핸드폰 게임 하며 놀고 있었다.

그래도 아무도 내게 뭐라 하지 못했다.

“아~, 이거 은근히 어렵네.”

결국 변 사장이 입을 열었다.

“이게 능력 있다고 그냥 활용하면 되는 게 아니구나. 적어도 지금 하는 사진 촬영보다는 더 경쟁력이 있어야 할 거 아니야?”

“맞아요. 요즘 촬영만 바짝 당겨도 월 매출 1억은 가능한데…….”

“…….”

난 최경리 옆에 있었는데.

그녀는 노트북에 타이핑 했다.

‘사진 촬영― 월 1억 쌉가능.’

쌉가능?

어울리지 않게 이런 단어를 쓰네?

근데 이런 표현을 보니 내가 더 물건처럼 느껴진다. 개인 필기하는 걸 뭐라 할 수도 없고.

“아~, 안 되겠어.”

변 사장은 일어나 화이트보드 앞으로 갔다.

“지금부터 막 던져봐. 말이 되든 안 되든. 일단 다 끄집어 내보자.”

“정말 막 던져도 돼요?”

“그래~, 완벽하게 할 생각하지 말고, 일단 덤벼 봐.”

홍지아는 손을 번쩍 들었다.

“강 대리님이 시티백 몰 때, 제가 뒤에 탔거든요?”

“어, 계속해.”

홍지아는 그날 일을 회상하는 듯 허공을 보며 말을 이어갔다.

“그때는 너무 무서웠는데. 돌이켜 보면 진짜…… 상남자 스타일이었거든요.”

“…….”

“시티백 앞바퀴 드는 거 본 적 있으세요?”

“아니, 그걸 왜 들어?”

변 사장은 관심 없다는 듯 대꾸했다.

“시티백 앞바퀴를 들고, 차 사이를 곡예 운전하는 거예요!”

“그래서 결론이 뭐야?”

“F1이요.”

“F1?!”

이게 뭔 개소리야.

편하게 의견 내랬더니, 진짜 막 던지네.

변 사장도 황당했는지, 되물었다.

“자동차 경주 F1 말하는 거 맞아?”

“네.”

“홍지아 씨. 그거 하려면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 아나? 세계 유수의 기업들도 겨우 참가한다고. 차 한 대만 해도 100억이 넘을걸?!”

“…….”

“우리가 자본금 얼마나 있지?”

“2억2천1백만 원 있습니다.”

최경리는 기다렸다는 듯 대꾸했다.

하지만 홍지아는 쉽게 포기하지 않아다.

“F1 말고 다른 자동차 경주는요?”

“무리라고 봐. 엄청난 물주가 나타나지 않는 한.”

“물주는 찾으면 되죠!”

“뭘로? 우리 강 대리가 손재주가 좋으니, 운전 한번 맡겨보십시오~, 이렇게?!”

“지금부터 천천히, 자전거부터.”

“자전거는 다리도 사용해야 하는데?”

홍지아가 꽤 집요하구나.

이 정도면 민망해서라도 입 다물 만한데…….

“그러면 승마는 어떻습니까?”

“승마?! 승마……. 승마라.”

변 사장은 내 몸을 천천히 흝었다.

“키도 아주 크지는 않고, 몸도 날씬하고……. 태평 씨.”

“네?”

“자기 운동 좋아해?”

“겁나 싫어합니다.”

“아, 그래.”

변 사장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대답했다.

“승마도 안 되겠네. 그게 손기술도 중요하지만 신체 밸런스와 지구력도 매우 중요하거든. 무엇보다도 체력을 기를 수 있는 의지가 있어야 하는데.”

변 사장이 날 바라봤고, 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운동 싫어한다잖아.”

“그럼 농구선수도 안 되겠네요?”

“안 되지. 슛만 쏘는 게 아니잖아. 쉴새 없이 뛰어다녀야 하는데.”

홍지아는 왜 자꾸 몸 쓰는 쪽으로 유도를 하지?

이러다가 손 쓰는 운동 다 나오겠는데?

“아쉽네요. 경마장에서 강 대리님 말에 몰빵 하면 끝나는 건데.”

“…….”

이 말엔 아무도 대꾸하지 않았다.

대꾸할 가치가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있다가 이번에도 홍지아가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나와 함께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서인지, 본 게 많은가보다.

“강 대리님이 포토샵 잘하거든요? 엑셀도 잘 다루시고.”

“오~, 그렇지!”

변 사장은 뭔가 나올 것 같은 분위기에 크게 맞장구를 쳐주었다.

“학원을 열면 어떨까요?”

“학원?!”

“네, 잘하시니까요.”

“오…….”

이번엔 왠지 그럴듯하게 들렸다.

포토샵 학원이라…….

내가 선생을?

그때 가만히 있던 최경리가 날 향해 입을 열었다.

“강 대리님이 포토샵 잘하세요?”

“음……. 좀 하지.”

“그럼 저 이것 좀 봐 주실래요? 얼마 전에 찍은 사진인데, 얼굴을 화사하게 하고, 주변 배경 채도를 올리고 싶거든요.”

“그 정도는 2분도 안 걸리지.”

최경리는 노트북을 열어 놓고 있었기에 난 바로 마우스에 손을 대었다.

“다음엔 제가 직접 할 수 있게 천천히 해주세요.”

“알았어. 잘 봐봐. 이걸 요렇게. 요렇게 해서. 이렇게 넘기고, 클릭하고. 원하는 색도를 이렇게 문지르듯 클릭질 해주면…….”

“오~.”

포토샵에 올려진 최경리의 얼굴이 순식간에 연예인급으로 바뀌었다.

“어때, 참 쉽지?”

“수정해 주셔서 고맙긴 한데.”

그리고 최경리는 변 사장을 바라봤다.

“뭔 소리인지 하나도 모르겠습니다.”

변 사장은 화이트보드에 적은 ‘강좌, 강연’을 지우며 소리쳤다.

“패스!”

* * *

스터디 카페 예약 시간이 이제 1시간도 채 남지 않았다.

“아씨, 종이접기 아쉽네.”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자, 변 사장이 혼잣말로 말했는데.

다 들린다.

“재료비도 싸고~, 손만 쓰면 되고~.”

“흠!”

그만하라는 의미로 난 헛기침을 크게 했고.

변 사장은 내 눈치를 보더니 입을 다물었다.

종이접기를 내 업으로 삼고 싶지는 않다.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취향도 중요하다.

신의 학, 울부짖는 용, 회오리 장미, 집토끼, 산토끼…….

내 취향은 아니다.

그리고 네모튜브에 할 도리도 아닌 것 같다.

“아! 맞다. 강 대리~, 자네 컴퓨터나 선풍기 이상 있을 때 잘 고치던데.”

“맞아요! 제이엠인터내셔날 첫 미팅 갔을 때, 강 대리님이 빔프로젝터도 손 봤었잖아요. 뭘 어떻게 하신 건지 모르겠지만…… 난 그때 마술 부리는 줄~.”

이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면서 다 기억하고 있었구먼.

“그래서 고물상을 하자고요?”

내 말에 두 사람은 입을 다물었다.

“그거 고쳐서 돈을 얼마나 벌까요? 지금 하는 촬영일의 반만큼이라도 벌 수 있을까요?”

변 사장은 머리를 긁적였다.

“그렇네……. 수리비 비싸게 받을 수도 없잖아. 그럴 바엔 차라리 새 거 사고 말지.”

“가치 집약적인 걸 생각해 보세요.”

내 말에 변 사장은 눈을 번뜩였다.

“엇?! 자기 뭐 생각한 거 있지?”

“말 안 하렵니다.”

“반도체 조립?”

“…….”

이제 진짜 막 던지네.

그때, 홍지아가 손뼉을 치며 소리쳤다.

“맞다! 맞다!”

“뭐, 뭐야?! 왔어?! 온 거야?!”

변 사장의 호응에 홍지아는 더 신나는지 주먹을 불끈 쥐고 소리쳤다.

“됐으! 돼엤으!”

닭살 돋아서 더 같이 못 놀아주겠다.

여기까지만 듣고 그냥 회의실 나가야지.

“하하하!”

홍지아는 자신감이 가득 차 있었다.

진짜 뭐 좋은 생각이 떠올랐나?

“뭔데~, 뭔데~. 어서 말해봐~.”

변 사장은 애가 타는지, 채근했다.

홍지아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는 묵직한 소리로 말했다.

“정수기 물 팔죠.”

“정수기?!”

“네, 강 대리님이 정수기 물 내린 거 파는 거예요.”

“아…….”

변 사장은 뭔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세요. 강 대리님이 정수기 물 따라줄 때. 어떤 기분이셨어요? 상쾌하고, 건강해지고, 머리가 맑아지는…… 그런 느낌?!”

“맞아……. 그랬었어.”

“그쵸? 그쵸?! 나만 그렇게 느낀 거 아니죠?!”

홍지아는 그림이 그려진다는 듯 신나서 떠들었다.

“시스템을 만드는 거예요. 제가 빈 통을 건네주면, 정수기 옆에 강 대리님 앉아서 물을 통에 담고. 그걸 최경리 씨가 받아서 포장하고.”

“…….”

“이 과정이 얼마나 걸릴까요? 넉넉잡고 2분이면 되지 않을까요? 최경리 씨, 계산 좀 해줄래요? 하루 8시간 돌린다고 가정하고, 희망소비자가는 1,000원. 원가는 한 통당 약 300원이라고 했을 때.”

최경리는 계산기를 두들기고는 말했다.

“하루에 168,000원이네요. 한 달 25일 근무한다고 가정했을 때 420만 원이네요. 2,000원에 판매한다고 해도 840만 원.”

“젠장…… 인건비도 안 나오겠네.”

변 사장 입에서 결국 욕이 나왔다.

“아, 미안. 혼잣말한 거야. 홍지아 씨한테 한 말 아니야.”

“치. 저 이제 말 안 할래요.”

아이디어 회의를 하면서 새삼 느꼈다.

내가 사진 촬영과 종이접기를 접한 게 얼마나 행운이었는지.

말 그대로 얻어걸린 거였다.

금손 가졌다고 해서 무조건 돈 벌기가 쉬운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 다 됐습니다.”

최경리의 딱딱한 목소리로 들렸다.

“사장님, 시간 연장할까요?”

변 사장은 잠깐 고민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이 정도면 됐어. 아이디어가 머리 짜낸다고 나오는 것도 아니고.”

“…….”

“어쨌든 갈피는 잡았잖아.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지.”

# 신사업 방향

1) 강태평 대리의 손 능력을 활용한다.

2) 자본금을 고려한다.

3) 레저와 관련된 산업은 지양한다. (자동차 경주, 승마 등)

4) 고가치 산업이어야 한다. (최소 사진 촬영 수익 이상)

5) 회의 내용과 강 대리의 손 능력은 절대 보안. 진일상사도 모르게 한다.

화이트보드에 위 내용을 적었고.

홍지아와 최경리는 사진으로 찍었다.

“틈틈이 이거 보면서 아이디어 구상해봐.”

“알겠습니다.”

“그래. 당분간은 사진 촬영에 집중하자.”

그리고 내 옆으로 와서 어깨를 두드리며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열심히 뛰자, 강 대리.”

* * *

일주일 지났다.

정말 열심히 뛰었다.

변 사장이 부탁한 것도 있지만.

제로백 컴퍼니 설립 자체가 내가 저지른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다.

진일상사 소속일 때보다 1.5배 정도 촬영 일정을 더 많이 잡았고.

난 묵묵히 소화했다.

제이엠과의 1년 계약만 없었다면, 아마 더 뛰었을 것이다.

계약 만료가 다가올수록 제이엠은 더 열심히 나를 찾았다.

어쨌든 계약된 일이기에 그 부름에도 최선을 다했다.

반면에 신사업 방향의 진도는 나가지 않았다. 모두 정신없어 보여서, 고민이나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벌컥.

갑자기 민경원 사장이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민 사장은 자회사도 내 회사라며 노크 따위는 하지 않는다.

“변 사장.”

“아, 네. 사장님 오셨습니까.”

변 사장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민 사장을 대하는 태도는 팀장 시절과 똑같았다.

“자네 회사도 함께 가지? 내일 야유회에.”

“네?”

“메일 못 받았나?”

“네, 받은 거 없습니다.”

민 사장은 짜증 난다는 듯 중얼거렸다.

“으휴. 하여간 김민석이. 샘만 많아서는……. 이젠 시킨 것도 안 한다 이거지?”

김민석이면 영업 1팀장이다.

예전엔 변 사장보다 잘 나가는 팀장이었지만, 이젠 직급이 다르다.

마주치면 호칭도 다르게 해야 할 것이다.

“와보길 잘했네. 내일 금요일 야유회니까. 참석해.”

“아, 네, 알겠습니다.”

“이번 야유회는 그냥 먹고 즐기는 거야. 팀별로 요리 준비하기로 했고, 1등 팀에 백화점 상품권 쏠 거니까. 잘 준비해 보라고.”

“아, 네. 알겠습니다. 준비하겠습니다.”

덜컹!

민 사장이 나간 뒤.

“요리……. 요리라.”

“어머……. 요리.”

“요리란 말입니까.”

세 사람은 ‘요리’라는 단어를 중얼거리며.

일제히 날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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