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백 컴퍼니 (1)
* * *
나는 그의 설명을 들으며, 세공 장비들을 유심히 바라봤다.
손이 많이 가고 복잡해 보였다.
지금까지 금손의 능력으로 돈벌이를 해왔던 카메라, 종이접기와는 비견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약 10여 개의 공정을 거쳐서, 투박한 원석을 탈바꿈시키는 세공 과정.
그 과정이 분업화되어 있지는 않은 것 같았다.
“이 모든 과정을 한 사람이 다 하는 겁니까?”
“간혹 분업해서 하기도 해요. 예를 들어 ‘땜질’의 경우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특화된 사람이 하기도 하죠.”
“아…….”
“일반적으로는 장인 한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배병규는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보석 세공은 예술의 과정이니까요. 그림을 분업해서 그리지는 않잖아요.”
“요즘엔 분업하기도 하던데요? 보조가 붙기도 하고요.”
신문에서 본 적이 있다. 이 때문에 유명인이 논란이 된 적도 있었던 것 같고.
“하하. 그래요? 요즘엔 그렇구나~. 전 보석 말고는 잘 모릅니다.”
그리고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중얼거렸다.
“보조 정도는 이해가 되지만, 그림을 같이 그린다고? 그게 감성이 이어지나…….”
일련의 과정을 따라갈수록, 원석 모양이 점점 잡혀가는 게 보였다.
어느덧 마지막 과정.
위이잉~.
세로로 돌아가는 원판에 보석 면을 다듬고 있었다.
“이게 거의 마지막 과정이라고 보시면 돼요. 여기서 진짜 보석 느낌이 나는 거죠. 텀블링(광내기) 작업입니다.”
보석을 떠올릴 때의 영롱한 빛과 투명함.
그게 여기서 이루어지는 것 같았다.
“와……. 지금까지는 돌 같았는데, 이제 진짜 보석 같아 보이네요. 하하.”
“그렇죠?”
신기했다. 난 귀금속을 연마하는 과정을 다시 한번 찬찬히 살펴봤다.
아마 원석이 꽤 딱딱할 텐데.
저걸 일정한 힘을 줘가면서 좋은 광택이 나게 하려면…… 얼마나 손기술이 좋아야 할까.
작업하고 있는 세공 장인의 손을 보았다.
상처 나고 투박한 손.
이 과정이 꽤 싶지 않음이 느껴졌다.
근데도 난 세공 과정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나도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 때문일까?
매가 먹잇감을 포착한 것처럼.
자꾸 시선이 가는 건 본능이었다.
“더 보실 거예요? 시간이 꽤 지났는데.”
옆에서 잠자코 기다리던 배병규가 말했다.
“아……. 네, 아닙니다. 가시죠.”
더 보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 * *
배병규와 함께 복도를 걸어가며 물었다.
“세공 장인들은 보수를 얼마나 받습니까?”
“뭐……. 천차만별이죠.”
“그래요?”
“네, 아무래도 보석도 여러 종류가 있잖아요. 우리처럼 값을 매기기 어려운 수준의 보석도 있고, 길거리에서 파는 1~2만 원짜리 싸구려 보석도 있죠. 그건 보석이라기는 좀 뭐하고 장신구라는 표현이 낫겠네요. 어쨌든 싸구려라도 세공이 필요한 거니까요. 보석 가치에 따라 장인의 보수도 달라지겠죠.”
“흠……. 그렇군요. 그렇다면 이곳 기준으로는 대략…….”
“하하. 뭐가 그렇게 궁금하세요? 세공 배우시려고요?”
그의 물음에 난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냥요~. 궁금하고 관심이 좀 가네요.”
배병규는 날 바라보며 피식 웃고는 말했다.
“우리 회사의 장인들은 20년 이상 종사하신 분들이거든요. 이 업계에서는 모시기도 힘들고, 찾기도 힘든 분들이죠.”
“아…….”
“웬만한 대기업 임원 연봉 수준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대기업 임원 연봉?
그게 어느 정도지. 난 중소기업밖에 안 다녀봐서.
내가 고개를 갸우뚱하자, 배병규는 웃으며 말했다.
“신문 보니까, 대략 2~3억 정도 하는 거 같던데요?”
“…….”
꿀꺽.
그렇게 많이 번다고?
“진짜 특별한 장인은 그 이상도 벌어요. 수십억 가치의 보석을 세공하는 장인이라면…… 그 정도 보수는 받을 자격이 있죠.”
배워볼까?
“장인으로 채용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아니, 왜 갑자기 다나까를.”
“…….”
나도 모르게 극존칭이 나왔다.
배병규는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글쎄요. 장인을 채용해 본 기억이 너무 오래전이라……. 보통 채용이라기보다는 유명한 작품을 본 후에, 수소문해서 모셔왔죠.”
“업무 강도는요?”
“따로 없습니다. 의뢰하는 형식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자유롭죠. 정해진 기한에 결과물만 만들어 내면 됩니다.”
너무 좋은데?
자유롭고 보수도 많이 준다는 거잖아?
“하하. 너무 디테일하게 물어보시는데요? 오늘 목적이 촬영하러 온 거 맞죠?”
“하하.”
난 멋쩍어서 그저 웃었다.
이젠 출입구까지 입 다물고 갔다.
더 물어보면 이상해 보일 것 같았다.
귀금속 세공…….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처음에 작성한 ‘비밀서약서’가 거슬렸다.
“배병규 씨.”
“네.”
“만약에 제가 보석과 관련된 비즈니스를 하게 된다면…… 그것도 ‘비밀서약서’에 위배 되는 건가요?”
“네?!”
배병규는 이 질문에 황당해했다.
난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었다. 진지하게 물어보면 더 이상해 보일 것 같았다.
“글쎄요. 여기서 본 보석과 동일한 모양과 콘셉트로 제작해서 비즈니스를 한다면…… 문제가 되겠죠?”
“그거야 당연하죠. 제가 말한 건 보석과 세공. 그 자체입니다.”
“흠…….”
배병규는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대답했다.
“그건 상관없지 않을까요? 설렁탕집에서 맛있게 먹고, 설렁탕집 개업한다고 해서 문제 되는 건 아니잖아요?”
“그렇죠?”
“네, 그럴 것 같습니다. 하지만, 기존 설렁탕집 주인 입장에서는…… 그 소식 들으면 기분이 좀 별로긴 하겠죠.”
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배병규는 출입구를 열어주었고, 난 가볍게 목례로 인사했다.
“오늘 불러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별말씀을요. 또 연락 드리겠습니다.”
그날 저녁.
여느 주말 저녁처럼, 혼자서 쉬고 있는데.
띠링!
‘14,505,000원 입금 배병규’
오! 입금됐다.
응? 근데, 왜 1,500만 원이 아니지?
약 50만 원 가까이 빠지는데……. 실수한 건가?
약간 고민이 되었다. 50만 원이면 적은 돈은 아닌데.
이걸 그냥 넘어가야 하나. 물어봐야 하나.
뭔가 이유가 있을 것 같긴 한데.
띠링!
잠시 고민하던 사이 문자메시지가 왔다.
‘1,500만 원 입금했습니다. 원천징수 3.3% 제하고 넣었으니까. 참고하세요.’
아……. 프리랜서라 그런 건가?
그럼 네모튜브는 뭐였지? 거긴 원천징수 감안하여 금액을 맞춰준 거였나?
새삼 네모 씨에게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배병규 씨의 의뢰 덕분에, 토지담보대출 상환일이 앞당겨질 것 같다.
중도상환수수료가 있기에 굳이 서두를 생각은 없었지만, 어쨌든 돈 모이면 바로 갚을 것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절로 든다.
‘돈 벌기가 이렇게 쉬운 거였나.’
* * *
월요일 아침.
제로백 컴퍼니가 첫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 아침을 맞이했다.
오늘은 변 사장의 특별 지시로 촬영 일정을 비웠다.
“좋은 아침~.”
9시 정각.
변 사장은 환하게 웃으며 출근했다.
“엇~, 사장님! 오늘 시장 조사 안 가셨네요?”
“어머~, 그러게요. 특히 월요일은 무조건 시장 조사 갔다 오시는 날인데.”
내 말에 홍지아도 맞장구를 쳤다.
놀리듯이 말했지만, 변 사장은 개의치 않았다.
우리 사이에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 사람들이? 사장이 무슨 시장 조사를 다녀?! 그건 직원들이 다니는 거지.”
“오~.”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사장되어서 거들먹거린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변 사장식 시장 조사의 진정한 의미를 알고 있는 우리로서는…… 그의 대답이 놀라웠다.
변성준에게 시장 조사는 공공연한 농땡이였다.
“정말요? 사장 되셨다고 시장 조사 안 하신다고요?”
내 말에 변 사장은 빙그레 웃었다.
“격에 안 맞잖아~, 격에~. 명색이 사장인데. 시장 조사는 자기들이 다녀. 업무에 지장 가지 않을 정도로만. 알겠지?”
“하하. 네!”
이렇게 편한 상사가 있을까?
시간을 함께 보낼수록 변 사장을 내 직장 상사로 만난 건 큰 복이라고 느낀다.
“최경리 씨?”
“네.”
“자리 예약했어?”
“네, ABC 스터디 카페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 예약했습니다. 사무실에서 걸어서 8분 거리니까. 9시 50분에 출발하시면 되겠습니다.”
“…….”
“드시고 싶은 음료 주문받겠습니다.”
나부터 얘기했다.
“나는 아아.”
“주문은 톡으로 보내주시고, 약어는 무효입니다. 제대로 된 명칭을 써주시기 바랍니다.”
“아, 알았어.”
표정 변화 없이 로봇처럼 말하는 최경리.
간혹 보면 AI인가 싶기도 하고.
난 톡으로 보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지금 한 분 받았습니다. 마감 시간 5분 전입니다.”
최경리의 말에 딴짓하고 있던 변 사장과 홍지아도 재빨리 톡을 보냈다.
ABC 스터디 카페.
4인실.
어차피 우리 회사는 전 직원이 4명이기에 큰 방이 필요 없었다.
테이블을 중심으로 모여 앉았고, 가운데에는 변 사장이 있었다.
“이유야 어쨌든 회사는 설립되었단 말이야.”
변 사장이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평안하게 살기는 글렀고, 얼마 남지 않은 회사 생활. 진짜 내 맘대로 하고 떠나련다. 젠장…… 정년이 코 앞이었는데.”
변 사장은 분한 기분이 다시 느껴졌는지, 날 쏘아보았고.
난 그 눈빛을 못 본 체했다.
“현실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
변 사장은 그의 계획을 말하기 시작했다.
“우리 회사 매출 비중의 90%를 강 대리가 책임지고 있단 말이야?”
“…….”
그건 사실이기에 우리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홍지아 씨도 옆에서 봐서 알지? 강 대리가 재능이 많다는 걸 느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홍지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맞아요. 역시 사장님도 느끼셨군요.”
“당연하지. 나 20년간 꼴등 팀에서 버텨온 사람이야.”
“…….”
저걸 자랑이라고.
변 사장은 날 뚫어지게 보면서 말했다.
“속초에서 살아온 뒤로 사람이 달라졌어. 그동안 능력을 일부러 숨기고 살았던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뜨끔.
변화의 시점까지 캐치 하고 있구나.
하여간 변성준 사장……. 곰 같은 여우라는 말이 이런 사람을 뜻하는 게 아닐까.
“어쨌든 강태평 대리는 우리 회사의 마이콜 조단이야.”
“…….”
“압도적인 플레이어. 하지만 시카고 불스가 조단의 힘만으로는 우승할 수는 없었지.”
“…….”
갑자기 왜 농구 얘기를…….
홍지아는 고개를 끄덕였고, 최경리는 농구를 잘 모르는 눈치였다.
“조단이 조단 다울 수 있도록. 그래서 우리 회사가 압도적인 회사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게 홍지아 씨와 최경리 씨. 그리고 내가 해야 할 일이야.”
나를 왜 조단에 비유하지.
확 부담되네.
뭔가 할 말이 있는 거 같은데…… 서론이 긴 걸 보니 불안해진다.
“홍지아 씨, 자네가 관찰한 바로는 어때? 강 대리가 특히 뭘 잘하는 거 같아?”
“글쎄요……. 뭔가를 만들고, 고치고, 익히고……. 하여간 손으로 하는 건 다 잘하시는 거 같습니다. 아, 오토바이도 잘 모시더라고요. 그런 거 보면 운전도 잘하실 거 같아요.”
변 사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 생각도 홍지아 씨와 같아. 최경리 씨는 잘 모를 테니, 참고만 해.”
“…….”
“내가 사실 사명도 ‘제로백 스튜디오’로 할까 하다가, 강 대리 능력의 확장성을 고려해서 ‘제로백 컴퍼니’로 했거든.”
변 사장은 날 한번 보고 씽긋 웃었다.
“우리 강 대리가 능력은 출중한데, 아이디어가 좋아 보이진 않는단 말이야. 그래서 지금 스터디 카페에 있는 동안 이 주제에 대해서 고민한다.”
그리고 변 사장은 일어나서 화이트보드에 적었다.
‘강 대리를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
“뭐, 뭡니까?! 제가 물건이에요?”
난 황당해서 소리쳤다.
“아니야……. 팀플레이 하는 거야.”
“사, 사장님!”
그는 내게 윙크를 하고는 가까이 다가와 조용히 말했다.
“염려 마. 종이접기는 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