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손으로 살아가기-38화 (38/156)

배씨 일가 (1)

* * *

“에잇 드러워! 뭐 하는 거야?”

변 사장의 핀잔에도 난 넋을 잃고 있었다.

“아니…….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내가 중얼거리자, 변 사장과 팀원들은 나와 TV를 번갈아 봤다.

“뭐야? 강 대리, 저기 땅 있어?”

“…….”

그들의 말이 들리지가 않는다.

설마 보육원 땅에 신도시가 들어선다는 건가?

개발 지구 안에 들어가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그 인근인 건 확실하다.

어떻게…… 내게 이런 일이 생길 수가 있지?

이거 로또보다도 확률이 더 적은 거 아닌가?

신도시를 개발하는데, 왜 하필 보육원 땅이야? 게다가 그 땅 산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혹시…… 이것도 금손 탓인가?

내가 이 손으로 땅을 만졌었나?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그럼 내가 있는 곳은 다 땅값이 올라야지. 그리고 내 기억엔 보육원 땅을 일부러 만지거나 한 적은 없었다.

진짜 그냥 운인가?

허…… 참나.

“강 대리, 강 대리!”

난 화들짝 놀라서 대답했다.

“아! 네네.”

“뭐야? 무슨 생각을 하길래 몇 번을 불러도 못 알아들어?”

“…….”

“무슨 일 있어? 왜 신도시 개발 뉴스를 보고는 넋을 놔?”

난 돌려서 얘기했다.

“사장님. 만약에요……. 사장님 집이 저 개발 발표된 땅 위에 있다면 어쩌시겠어요? 아주 소중한 집이고, 돈이 중요한 집이 아니라면요.”

“하하. 글쎄다.”

변 사장은 잠시 생각하고는 말했다.

“가족이란 구성원이 중요한 거지, 어디에 사느냐는 두 번째라고 봐. 가족이 헤어지지 않고, 그대로 옮길 수 있다면……. 거기다가 더 좋은 곳으로 옮길 수 있다면 감사하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아…….”

“한 방에 여러 명이 쓰는 1층 집에 살다가, 각방 쓸 수 있는 3층 집에 살게 된다면…… 강태평 씨라면 어떻겠어?”

“더 좋겠죠.”

“그래. 그냥 그뿐이야. 지역이라는 건 이차적인 문제라고. 함께이냐가 중요한 거지.”

난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정부 사업이라 선택 사항이 없잖아. 그저 시기를 잘 보라고. 가장 좋은 값에 팔 수 있는 시기와 가장 적절한 이사 타이밍을. 이 두 가지를 잘 고려하다가 팔면 돼.”

“알겠습니다.”

“그래, 이제 막 계획 발표 난 거니까. 당분간은 신경 꺼. 절대 서두르지 마.”

“네.”

“나중에 팔고 나서, 맛있는 거 쏘는 거 잊지 말고.”

“하하. 물론이죠.”

변 사장은 피식 웃으며 잔을 들었고, 우린 잔을 부딪쳤다.

이상하네?

보육원이 신도시 발표난 곳에 있다는 얘기는 안 했던 거 같은데.

변 사장의 유도 심문에 넘어간 건가.

피식.

난 웃으며 술을 마셨다.

어쨌든 신도시 개발 건은 두고 봐야겠다.

회식이 끝나갈 무렵.

난 변 사장을 넌지시 불렀다.

“사장님.”

“응?”

“이번 주말에 개인 촬영 좀 하겠습니다.”

“어, 해.”

“네?”

허락해줄 줄은 알았지만, 너무 쿨한데?

“그런 거 나한테 얘기하지 말고, 그냥 알아서 해. 개인 촬영을 하든, 단체 촬영을 하든.”

“…….”

“회사 업무만 문제없게 해줘.”

난 입을 다물고 변 사장을 바라봤다.

“에이~, 또 업무에 문제 좀 있으면 어떠냐. 회사 일에만 집중해도 항상 완벽하게 할 수는 없는 건데.”

그는 내 어깨를 두드리며 웃었다.

“그냥 강 대리 하고 싶은 거 다 해~.”

난 변 사장의 신뢰가 진심으로 고마웠다.

그의 눈을 보고 힘주어 말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 * *

토요일 정오.

배병규가 알려준 청담동의 한 빌라를 찾아왔다.

빽빽한 빌라촌 안에 있는 베이지색 건물이었는데.

2층은 통유리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밖에서 안은 보이지 않았다.

“이 건물이 맞는 것 같은데.”

난 배병규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강태평입니다. 말씀하신 곳에 왔는데, 여기 비슷하게 생긴 빌라들이 많아서……. 혹시 베이지색 건물에 2층 통유리 건물 맞습니까?]

[네~, 맞아요. 지금 앞이시라고요?]

[네.]

[그럼 건물 뒤쪽으로 돌아오시면, 지하로 연결된 통로가 있거든요?]

[지하요?]

[네, 그쪽으로 내려오셔서 문 두들기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뚝.

뭐야. 건물만 좋지, 지하 임대해서 쓰는 건가?

건물 뒤편으로 돌아가니, 외부에서 바로 지하로 연결된 통로가 있었다.

알려주지 않으면, 안 쓰는 통로처럼 보일 정도로 낡고 오래되어 보였다.

계단 간격도 내려가기 어려울 정도로 높았다.

“진짜 제대로 찾아온 거 맞나.”

이렇게 지하로 연결된 장소는 스릴러 영화에서 많이 봤던 거 같은데.

어쨌든 이곳이 맞다고 하니, 일단 내려가서 문은 두들겨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쾅. 쾅.

난 빨리 열어주길 바라는 마음에 문을 세게 두들겼다.

구석에서 쥐라도 튀어나올 것 같아서, 이 공간에 오래 있고 싶지 않았다.

쾅. 쾅.

두 번째 문을 두들기자.

찰칵.

드르르륵.

삐빅.

띠리리리~.

문에 잠금장치를 몇 개를 한 건지.

별의별 소리가 다 났다.

철컥.

드디어 문이 열리고, 배병규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셨군요.”

“아…… 여기가 진짜 맞군요.”

“들어오세요.”

난 피식 웃으며 물었다.

“잠금장치에 비해서, 얼굴 확인도 안 하시고 너무 쉽게 여시는 거 아니에요?”

“하하. 얼굴 확인은 이미 했습니다.”

“네?”

“현관에 CCTV 4개 작동 중이거든요.”

“아…….”

터벅.

한 발짝 안으로 들여놓았고.

문 앞에는 보안검색대가 있었다.

“와……. 도대체 뭐 하는 곳이길래.”

“소지품 중에 금속 있나요?”

“핸드폰 말고는 없습니다.”

“핸드폰은 옆 바구니에 놓으시고, 검색대 통과해 주세요.”

“아……. 네.”

무사히 검색대를 통과 후 앞으로 조금 걸어가자, 불투명 유리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드르륵―.

“우와~.”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본 후, 절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출입구까지만 해도 지하에 어울리는 어두컴컴한 공간이었는데.

유리문 안은…… 전혀 지하실처럼 보이지 않았다.

태양처럼 밝고 하얀 조명 아래.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하얀색 가운을 입고 있었다.

모든 인테리어도 하얀색이었다.

거의 텅 빈 공간에 가까웠으며, 말 그대로 최소한의 인테리어였다.

모나고 홈이 있는 기구는 하나도 없었다.

타원형의 조각품. 둥근 모서리의 가구.

바닥도 대리석인데, 대리석 사이에 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주 촘촘했다.

“혹시 제약회사인가요?”

“제약이요? 하하. 아닙니다. 따라오세요.”

하긴 제약회사에서 사진 찍을 일은 없겠지.

그가 안내한 곳은 조그만 회의실이었다.

회의실 안도 마찬가지로 하얀 조명, 하얀 가구였으며.

텅 빈 회의실 안에 책상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앉으시죠.”

내가 자리에 앉자, 그는 파일첩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었다.

‘비밀서약서’.

“제가 앞서 말씀드렸었죠? 저희 일 하는데, 비밀서약서 필요하다고요.”

“아, 네. 작성하면 되죠. 비밀이야 뭐, 지키면 되는 거니까요.”

그가 건넨 비밀서약서를 대충 훑어봤다. 생각보다 내용이 많아서 자세히 읽어볼 여력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어 보였다.

다만, 서명란 위의 마지막 문구.

‘위 사항을 준수한다고 서약하며, 미이행 시에는 민·형사상의 법적 책임 및 재산상 손해에 따른 책임도 모두 감수한다.’

“흠…….”

아무리 서약서이긴 하지만, 이건 비밀 안 지키면 X될 것이라는 뜻인데.

뭐 이렇게까지, 겁을 주지?

“문구가 좀 과격한데요.”

“약속을 지키지 않은 대가니까요.”

“…….”

“태평 씨 말대로 그냥 비밀을 지키면 아무런 쓸모없는 내용일 뿐입니다.”

난 잠시 생각하고는, 망설임 없이 서명했다.

“됐죠?”

“네, 됐습니다. 일어나시죠.”

배병규를 따라서 한참을 더 걸어갔다. 굳게 닫힌 철문 앞에 멈췄고.

배병규는 문 옆에 있는 버튼에서 비밀번호를 누른 후, 홍채 인식을 했다.

“…….”

가면 갈수록 가관이다.

너무 보안에 철저하니까, 약간 꺼려진다.

오지 말아야 할 곳을 온 건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고.

내 품에는 초소형 디지털카메라 하나 있을 뿐인데.

“저…… 촬영 일 때문에 부르신 거 맞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지만.

그는 피식 웃고는 대꾸하지 않았다.

사람 불안하게.

드르륵.

문이 열렸다.

꿀꺽.

“가시죠. 준비는 끝났습니다.”

“네.”

저벅.

배병규를 따라서, 철문 안으로 첫걸음을 내디뎠다.

* * *

철문 안의 새로운 공간.

밖의 모습과는 정반대되는 어두운 조명이었다.

어둠 속에서 노란 불빛이 여러 곳을 비추고 있는데.

그곳에는…….

TV에서도 보기 어려울 정도의 초호화의 귀금속들이 있었다!

난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어안이 벙벙하여 입을 다물지 못했다.

보석은 잘 모르지만, 한눈에 봐도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한 찬란한 귀금속들.

“왜…… 보안을 철저히 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네요.”

“하하. 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공간에 들어오자, 배병규는 찬찬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리 가족은 해외에서 완성된 보석을 수집하여 고객들에게 판매하거나, 혹은 좋은 원석을 수입하여 세공 후 판매하는 비즈니스를 하고 있습니다.”

“회사명이 어떻게 되나요?”

“딱히 없어요. 그냥 고객들 사이에서는 ‘배씨일가’라고 불리고 있어요.”

“아…….”

“증조할아버지 때부터 가업으로 이어져 오고 있거든요. 약 100년 정도 됐을 겁니다.”

“…….”

“고객도 거의 정해져 있어서요. 비즈니스 규모가 작지는 않지만, 대중들에게 알려질 일이 없죠.”

그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런 보석을 아무나 살 수 없잖아요. 사지도 못할 사람들에게 알릴 필요가 없죠.”

난 궁금하여 물었다.

“고객들이 누군데요?”

“그건 비밀입니다. 우리도 고객들과 거래할 때 비밀서약서를 작성하거든요. 태평 씨와 한 것처럼요.”

“아…….”

“하지만, 태평 씨가 알 만한 사람들이라는 것? 이 정도까지만 말씀드리죠. 하하.”

굉장한 부자거나, 실력자들이겠지.

회사명도 따로 없고, 고객도 비밀. 이곳에서 일하는 것도 비밀.

눈으로 직접 보고 얘기를 들으니 납득이 안 가는 건 아니지만, 하도 비밀이 많다니까 괜히 불편하다.

배병규는 내 눈치를 살피고는 말했다.

“그렇다고 저희가 탈세하거나 불법적인 일을 저지르는 건 아니니까요. 불필요한 염려는 안 하셔도 됩니다.”

“아, 네.”

그는 여러 조명이 비치는 곳 중의 한 곳으로 날 안내했고.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오늘 촬영 의뢰 드릴 작품입니다.”

난 그가 가리키는 보석을 유심히 보았다.

크기는 손바닥의 반 정도.

금으로 만들어진 새였는데.

부리는 붉은색 크리스털.

눈은 투명한 크리스털.

날개 끝은 파란색 크리스털로 이루어진……. 그냥 대충 봐도 어마어마한 보석이었다.

손바닥 반 정도 되는 크기였는데…… 금량만 해도 엄청날 것 같다.

“촬영하는 데 이해를 돕기 위해서 간단히 작품 설명을 드리자면요.”

배병규는 살며시 미소지으며 말했다.

“금 1kg으로 몸체를 만들었습니다. 부리는 태국산 블러드 루비. 눈은 시에라리온산 블러드 다이아몬드. 날개 끝은 스리랑카산 블루 사파이어.”

“…….”

“금빛 찬란한 날개로 푸른 빛을 내뿜으며 하늘로 올라가는 학을 형상화한 보석으로. 보석 명은 블루스카이 크레인. 즉 ‘푸른 하늘의 학’입니다.’”

진기하다는 생각도 잠시.

한 단어가 머릿속에 꽂혔다.

학…….

젠장. 또 학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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