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손으로 살아가기-36화 (36/156)

호구가 아니었다 (1)

* * *

“올 것이 왔네.”

뒤에서 홍지아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나와 변 팀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대화를 이어갔다.

“개, 개인 촬영?”

“네.”

“흠……. 갑자기 왜? 돈 욕심이 생겼어?”

“하하. 아니요.”

평소 변 팀장답지 않게 너무 심각하다.

목소리도 무겁고, 표정도 굳어 있다.

“뭐, 돈이야 많으면 좋기는 하겠죠. 이번에 보육원 일 겪으면서 느낀 것도 있고요……. 근데 가장 큰 이유는 의뢰인이 개인 촬영을 원하더라고요.”

“왜?”

“그건 말씀 못 드립니다. 의뢰인께서 비밀 유지를 요청하셔서.”

“아…….”

변 팀장은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숙인 채 중얼거렸다.

“의뢰인이 개인 촬영을 요청했다라…….”

변 팀장은 날 바라봤다.

“그 의뢰 그냥 안 하면 안 돼?”

“네?”

“꼭 해야 하는 거야?”

“아니, 뭐……. 안 한다고 해서 큰일 나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이 정도도 양해를 못 해주나?”

“수수료도 괜찮기도 하고……. 그냥 제가 하고 싶어서요.”

“…….”

변 팀장은 불편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한숨을 몇 번 쉬었고.

홍지아 또한 여전히 타자를 안 치고 있다. 우리 얘기에 집중하고 있는 듯했다.

“우리는 촬영 팀이야. 근데 개인 촬영을 한다는 건……. 과연 강 대리가 돌아올 수 있을까?”

“뭘 돌아와요?”

“언젠가 벌어질 일이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빨리 왔네.”

“…….”

변 팀장은 이해 못 할 말을 하고 있었다.

“차이를 느꼈는데, 더 안 좋은 쪽으로 돌아오는 경우는 잘 없거든.”

“…….”

변 팀장은 계속 뭔가를 심각하게 궁리하더니, 결심한 듯 천천히 말했다.

“미안하지만, 이건 내 선에서 뭐라고 답을 못 주겠네. 사장님께 내가 보고드리는 건 도리어 역효과 날 수도 있고.”

그 사람 좋던 변 팀장이 약간 발을 빼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이 일을 훨씬 더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자네가 정말 의뢰받은 일을 하길 원한다면, 사장님께 직접 보고하는 게 좋을 것 같아.”

“……. 알겠습니다.”

턱.

그는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 쓸쓸히 웃었다.

“약간 서운한 기분이 들기는 하지만.”

“…….”

“내가 자네라도 이렇게 했을 거 같긴 해.”

휴우―.

뒤에서 홍지아의 깊은 한숨 소리가 들렸다.

* * *

똑똑.

[들어와~.]

덜컹.

“사장님, 안녕하십니까.”

책상 앞에 앉아 있던 민경원 사장.

날 보자마자 벌떡 일어났다.

“어이쿠~, 우리 강 대리 왔어? 어서 앉게~. 하하.”

요즘 민 사장은 날 신주 단지 모시듯 한다.

태도 자체가 달라졌다.

내 책상 위에 커피 음료를 직접 올려놓기도 하고, 오다가다 눈이 마주치면 윙크를 날리며 미소를 짓는다.

“얼마 전에도 크게 한 건 했던데?”

“아, 네.”

“강 대리~, 대단해~. 강 대리 덕분에 내가 요즘 회사 다닐 맛 난다니까?”

“하하.”

“직원이 이렇게 주인의식을 갖고, 내 사업처럼 일을 해주니…… 잘될 수밖에 없지. 안 그래?”

민 사장에게 볼일이 있어서 찾아온 건데, 어째 민 사장 혼자 말하고 있다.

“그에 대한 보상은 고민 중이니까, 기대하라고. 내가 두고 보지만은 않을 테니까. 돈쭐을 내줄 테니까! 하! 하!”

돈쭐?

고작 또 몇십만 원 주고 생색내려고.

민 사장 스타일을 알기에 이런 말에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

“저…… 이제 제가 말씀 좀 드려도 되겠습니까?”

“어~, 얘기해.”

아까 변 팀장과 대화할 때는 결론부터 말했었다.

그거 때문에 변 팀장이 당황했던 게 아닐까 싶어서, 이번엔 자초지종부터 얘기를 시작했다.

한 의뢰인이 찾아왔고, 사업 특성상 개인 의뢰를 원하며, 이번 일만 개인적으로 한번 해보고 싶다고…….

“촬영과 관련된 일을 개인 의뢰로 받으려 하는 거라서, 사전에 양해를 구하려 합니다.”

“…….”

“앞으로 이런 일은 잘 없을 테니까, 이번 일만…….”

민 사장의 표정이 확 굳었다.

“머리가 굵었네.”

“네?”

“회사 일을 개인적으로 하겠다고? 그걸 양해해 달라고?”

좀 전에 날 바라보던 사랑 가득 눈길은 사라졌다.

대신 눈빛에 경계심이 가득해졌다.

“얼마나 준다는데?”

“그건 말씀 못 드립니다. 의뢰인 요청 사항이라서.”

“뭐, 한 700 준대?”

“…….”

난 대꾸하지 않았다. 약속은 약속이니까.

“칫.”

민 사장은 콧방귀를 뀌고는 단호하게 말했다.

“분명하게 얘기해주지. 허락 못 한다.”

“…….”

“그 사람에게 진일상사로 의뢰하라고 해. 보안 유지 확실히 해줄 거고, 촬영도 강 대리가 전담으로 할 거라고 얘기하면서.”

수수료 결제 때문에, 보안 유지도 한계가 있다.

그리고 어차피 우리 회사에서 촬영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데.

뻔한 소리를…….

“의뢰인이 보안을 굉장히 중시하는 눈치였습니다. 그래서…….”

“연락처 알려줘 봐. 내가 설득할 테니까.”

“의뢰인이 보안 유지 때문에 저에게 연락했다니까요? 그런데 연락처를 어떻게…….”

“무슨 수작이야!”

민 사장은 갑자기 소리를 버럭 질렀다.

“밀거래해? 아니면 범죄를 저지를 생각인가? 무슨 보안 유지를 그렇게까지 해?!”

“그거야 저도 모르죠. 의뢰인 요청 사항이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일 시작하기도 전에 뭘 할건지도 알려달라고 해야 합니까? 보안 유지라는데?”

내 목소리도 약간 격양되고 있었다.

“어쭈. 강 대리, 말 잘하네? 많이 컸어?”

민 사장은 이제 고성을 지르며 말했고, 사무실 밖에서 사람들이 술렁이는 게 느껴졌다.

그는 한참 말을 쏟아 내다가, 내가 별다른 대응을 안 하자 잠잠해졌다.

그리고 눈알을 굴리며 이리저리 궁리하더니, 책상을 탁 치며 말했다.

“그래! 이러면 되겠네. 강 대리가 개인으로 의뢰를 받아서 처리하고, 금액 신고를 회사로 하면 되겠네. 강 대리가 직접.”

“…….”

“그러면 의뢰인 정보는 보호되는 거 아니야?”

참나, 어이가 없었다.

내가 알면서도 팀원들 때문에 참고 살았다. 돈이 다가 아니니까.

알면서도 호구 짓을 했더니.

내가 진짜 호구로 보이나?

“제가 회사와 노예 계약 했습니까?”

“뭐?!”

“회사와 전혀 관계없이, 제 개인 시간 들여서 주말 촬영하겠다는데. 그 수수료를 왜 회사에 상납해야 합니까?”

“…….”

“제가 나쁜 맘 먹었으면 회사에 얘기도 안 하고 바로 했겠죠. 회사가 알았겠습니까? 제가 주말에 프리랜서를 뛰든 어쩌든.”

민 사장은 여전히 날 쏘아보고 있었다.

“제 입으로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제가 최근에 회사에 기여한 부분이 많다고 생각하는데. 이 정도 양해는 해줄 줄 알았거든요?”

진심으로 좀 서운함이 느껴졌다.

내게 말하는 게 완전…….

“좀 너무하시는 거 아닙니까?”

잠자코 듣던 민 사장은 이 말에 파안대소했다.

“하하. 너무해?!”

그는 뭐가 그리 웃긴지 계속 웃었다.

“하하. 너무하다고? 와~, 강 대리 진짜 뭔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네.”

그는 눈물까지 흘리며 웃었고, 손으로 눈가를 훔치며 말했다.

“요즘 잘 나간다고 좀 헷갈리는 거 같은데. 당신 회사원이야.”

“…….”

“진일상사의 강태평 대리라고. 회사원! 개인 사업자가 아니라고!”

그는 다시 격양된 목소리로 말했다.

“혼자 다 했나? 회사에서 지원해 준 게 없다고 생각해? 자기에게 자리 내줘, 책상 줘, 컴퓨터 줘, 월급도 주고, 세금 신고도 대신 해주잖아?”

“…….”

그와 얘기를 나눌수록 점점 실망감이 커져 갔다.

“회사에 소속된 직원이면, 회사 방침에 따라! 무슨 말이 더 필요해?!”

내가 단순히 배병규의 의뢰를 받고 싶어서 이러는 게 아니다.

얘기해 나갈수록 내가 뭔가 수렁에 빠져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겠습니다. 답은 정해져 있었네요.”

내 표정과 목소리는 차분하게 돌아와 있었고, 내가 수긍했다고 생각했는지 민 사장의 목소리도 침착해졌다.

“그래~. 강 대리, 좀 아쉽긴 하겠지만…….”

“퇴사하겠습니다.”

.

.

.

.

“어?!”

민 사장의 눈이 눈알이 빠져나올 만큼 커졌다.

“그러면 다 해결되는 거잖아요. 왈가불가할 것도 없고.”

“…….”

“가…… 강…… 대리…….”

민 사장은 뭐라 말은 못 하고 입만 벙긋거렸다.

“그동안 이 부족한 직원에게 자리 내주시고, 세금 신고도 대신 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하…… 하지……마.”

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오늘 중으로 사직서 제출하겠습니다.”

“왜…… 왜…… 그래.”

민 사장은 계속 어버버하기만 할 뿐, 뭐라 말을 못 했다.

“그럼…….”

난 등 돌리고, 바로 사장실을 나가버렸다.

덜컹.

문을 열자, 직원들이 앞에 모여 있었다.

“흠!”

난 헛기침을 하고는 사무실 밖으로 향했다.

바람을 좀 쐬어야 할 것 같았다.

[강 대리!]

닫힌 사장실에서 민 사장의 외침이 들렸다.

[야! 강 대리이~!]

* * *

사장실.

똑. 똑. 똑.

민 사장은 불안함에 계속 검지로 책상을 두들겼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퇴사하겠다는 강태평의 말에 화는 나지만,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진일상사 매출의 60%를 촬영 1팀이 차지하고 있고, 촬영 1팀은 사실상 강태평 팀이나 마찬가지다.

촬영 1팀이 한 달에 벌어들이는 매출액이 억 단위가 넘는다.

‘감정적으로 대응할 일이 아니야. 침착하게. 경원아, 생각하자. 침착하게.’

한편으로는 후회도 됐다.

‘강태평을 몰아세우면 안 되는 거였는데.’

강태평이 이렇게까지 나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었다.

‘젠장. 무슨 일이 있어도 잡아야지. 강 대리도 지금 좀 흥분해서 얘기했던 걸 거야. 잘 구슬리면.’

민 사장은 이리저리 궁리하다가, 생각에 이른 듯 바로 전화기를 들었다.

“어, 변 팀장. 지금 바로 사장실로 와.”

똑똑.

노크 소리에 민 사장이 소리쳤다.

“뭔 노크야! 빨리 들어와!”

벌컥.

“사장님, 안녕하세요.”

“어서 이리 앉아.”

민 사장은 변 팀장을 소파에 앉힌 뒤, 바로 맞은편에 앉았다.

“강 대리, 무슨 일이야?”

“무슨 일 있습니까?”

“뭐?”

민 사장은 황당해서 변 팀장을 바라봤다.

“몰라?”

“좀 전에 사장실에서 소란이 있었다는 건 알겠습니다. 무슨 얘기를 나눴길래.”

“강 대리가 개인 촬영 의뢰받았다는 얘기 안 해?”

“금시초문입니다?”

변 팀장은 처음 듣는다는 듯 금붕어처럼 눈만 끔뻑거렸다.

“허허. 참나.”

민 사장은 혼란스러웠다.

‘속사정을 들어보고 전략을 짜려 했는데.’

“강 대리가 변 팀장이랑 상의도 안 하고 찾아왔단 말이야?”

“네, 무슨 얘기를 하는데요?”

변 팀장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계속 모르는 척하며, 민 사장에게 도리어 물어봤다.

결국 민 사장은 강태평과 나눈 얘기를 변 팀장에게 말해 주었다.

“아……. 좀 심하셨네요.”

“…….”

“왜 그러셨어요. 그냥 하게 해주시지.”

“내가 많이 심했나?”

“강 대리가 바보예요? 요즘 회사가 누구 때문에 돌아가는지 뻔히 알 텐데?”

“…….”

“입장 바꿔서 생각해 보세요. 사장님이 강 대리라면 어떤 생각 드실 것 같아요?”

“……. 그래. 내가 생각이 짧았네.”

민 사장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 회사는 내 거라는 생각이 강했고, 그 때문에 엄청난 인재를 놓치게 생긴 것이다.

“변 팀장…… 강 대리 놓치면 안 되잖아.”

“안 되죠. 그건 말도 안 되는 거죠.”

“어떻게 해? 뭐 좋은 방법 없을까?”

“…….”

변 팀장은 고개를 돌리고 살며시 웃었다.

그리고 다시 심각한 얼굴로 표정으로 돌아와 말했다.

“아까 보니 고성이 밖에까지 들리던데……. 마음에 스크래치 좀 가지 않았을까요?”

“어휴, 젠장. 이놈의 성질머리.”

민 사장은 스스로를 자책했고, 변 팀장은 계속해서 말했다.

“뭐, 별수 있습니까.”

“…….”

“바짓가랑이 붙잡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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