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손으로 살아가기-35화 (35/156)

노가다 (3)

* * *

[학 접으러 가려는 거죠?]

엇. 네모 씨는 단번에 알아차렸다.

[…….]

내 개인적인 돈벌이를 위해, 약속된 일정을 펑크내고 간다는 말……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더 묻지 말아 주세요. 죄송해서…….]

[하하. 괜찮아요. 우리가 남인가요? 한 팀인데.]

무슨 꿍꿍이가 있나? 왜 갑자기 훅 들어오지.

[어떤 사정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강태평 씨가 돈이 급하게 필요하다는 건 알고 있어요. 저희가 지금 해결해 드릴 수 없다는 것도요.]

네모 씨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한 가지만 부탁드릴게요. 간단해요.]

[말씀하세요.]

난 잠자코 네모 씨의 말을 들었고, 별로 어려울 만한 건 아니기에 수락했다.

[알겠습니다. 그 정도야, 뭐. 일정 펑크내는데, 당연히 해야죠.]

[고맙습니다. 그럼 내일 아침에 물건 전해드리러 잠깐 들릴 게요.]

[네.]

전화를 끊고, 난 재빨리 짐을 챙겼다.

3박 4일간 산속에 머물면서…….

내 인생을 걸고, 내 생명력과 모든 시간을 투자하여…….

종이학을 접을 것이다.

만반의 준비가 필요하다.

아주 기본적인 생활용품과 꼭 필요할 만한 장비들을 꼼꼼히 챙겼다.

얇은 고무장갑, 푸시딘, 일회용 밴드, 용각산, 근육 이완제, 인공눈물, 손톱깎이, 끈끈이, 묵주…….

그리고 색종이 100묶음.

색종이만큼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많이 챙겼다.

전쟁터에 나가는데 총알이 부족해서는 안 되니까.

내일이면 죽을 각오로 종이학을 접어야 하기에, 일찍 잘까 하다가…….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50마리만 접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안녕하세요~.”

네모 씨가 일찍 찾아왔다. 현관문 앞에 서 있는 그에게 말했다.

“들어오세요. 누추하지만.”

“하하, 아니에요. 됐어요. 물건만 전해드리고 갈 거예요.”

“아, 네.”

“태평 씨도 바쁘시잖아요. 한시가 아까울 텐데.”

그가 건넨 것은 ‘캠코더’였다.

영상 촬영할 때 쓰는 것인데, 초소형이었다.

“일부러 크기가 작은 거로 가져왔거든요. 많이 거슬리진 않을 거예요.”

“아, 네.”

“그냥 적당한 위치에 놓으시고, 편하게 종이학 접으시면 돼요. 의식 안 되도록요.”

“알겠어요.”

난 캠코더를 손 위에 올려놓고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캠코더 만져보는 건 처음이다.

“캠코더 설치할 때 각도만 잘 보세요. 태평 씨 얼굴 나오지 않도록요. 그거만 주의해 주시면 될 것 같아요.”

“네.”

네모 씨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쩌면 더 잘된 건지도 몰라요. 계속 콘텐츠가 똑같아서 식상해하는 구독자분들이 있었는데……. 기대가 되네요.”

“제가 실수로 플레이 버튼을 안 누르거나 잘못 누르면요?”

네모 씨는 생각하기도 싫다는 듯, 정색하는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농담으로 한 얘기였는데.

난 머쓱해져서 캠코더를 가방에 넣었다.

“그럼 저 갑니다. 조심히 다녀오세요.”

“네~, 갔다 와서 연락 드릴게요.”

“넵. 차 조심, 개 조심, 무엇보다도…….”

네모 씨는 문을 닫기 전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손 조심.”

* * *

청량리에서 무궁화호를 탔다.

목적지는 단양역.

고속버스는 피하고 싶어서, 일부러 기차로 갈 수 있는 지역을 정했다.

마침 이곳에 아는 사람도 있고.

단양역에서 택시를 타고 30분 정도 갔다.

점점 주변 풍경에 숲이 우거지더니, 산속으로 들어갔다.

산 중턱쯤까지 왔을 때쯤.

“아니, 원. 내가 단양 토박인데, 이런 곳에 사람이 산다고?”

다시 내려갈 생각에 짜증이 나는지, 택시 기사는 투덜거렸다.

‘단양 수도원’.

길 안내 표지판이 나오자, 택시 기사는 입을 다물었다.

사실 나도 긴가민가했다. 너무 깊숙이 들어와서.

끼이익.

“여기 맞죠? 확실히 맞죠? 저 진짜 갑니다?”

산속에 두고 가기가 못내 내키지 않는 듯, 택시 기사는 몇 번을 확인했다.

“네, 맞아요. 감사합니다.”

부우웅―.

택시가 떠나간 뒤, 난 조심스럽게 수도원 안으로 들어갔다.

좀 걸어 들어가자, 붉은 벽돌로 된 오래된 건물이 나타났고 그 앞에 수사님들 몇 분이 계셨다.

“실례합니다.”

“네, 어쩐 일이세요?”

이 오지에서 일반인을 만난 게 신기한지, 수사님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김레오 수사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지금 식사 중이신데 잠시만요.”

한 수사님이 건물 안으로 들어갔고, 조금 있다가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태평아!”

“형님!”

우리는 반가워서 바로 얼싸안았다.

김레오. 나와 함께 아셀라 보육원에서 자란 7살 위의 형이다.

착하고, 자애롭고, 신앙심이 두텁고, 평화를 사랑하며, 박애주의자인……. 하여간 인간 같지 않은 형.

보육원에서 내 또래 아이들은 모두 김레오를 아버지처럼 여기며 자랐다.

그는 22살이 되던 해에 서품을 받으면서 자연스럽게 헤어졌다.

어릴 적에 헤어졌지만, 난 그와 간간이 편지로 연락을 이어왔다.

“어서 와라, 태평아.”

“형님~, 보고 싶었어요.”

“하하. 그래. 나도. 어머니는 잘 계시지?”

아셀라 보육원의 김성애 수녀님을 말하는 것이다. 나뿐만이 아니라, 보육원 출신 모두가 그녀를 어머니라고 부른다.

“네, 잘 계시긴 하는데……. 혹시 소식 들었어요?”

“응. 들었지.”

“너무 속상해요. 왜 하필…… 우리 보육원에 이런 일이.”

김레오는 물끄러미 하늘을 보며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사람 일로 할 수 없는 걸 어쩌겠니? 다 주님의 뜻이 있겠지.”

“…….”

이런 상황에서도 참 태평하다.

보육원에서 자랄 때, 사제와 수녀들을 많이 봐왔다.

매사에 걱정하지 않고, 현실에 충실히 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분명 훌륭한 태도지만.

난 그 태도가 썩 마음에 들진 않는다.

“형님, 그래도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죠.”

“하하. 그래? 그 말도 맞다.”

“…….”

“뭐, 좋은 생각이 있는 거니?”

“네, 그래서 여기 온 거예요.”

김레오는 날 물끄러미 바라봤다.

보육원 땅이 날아가게 생긴 암담한 상황에서, ‘수도원’을 찾아왔다는 것.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목적은 뻔할 것이다.

아마 김레오도 그런 생각을 한 것 같았다. 내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그래, 어려울 때 주님께 간구하는 것은 좋은 생각이지. 잘 왔다. 형이랑 열심히 작정 기도해 보자.”

“아니요.”

난 피식 웃으며, 살며시 손을 빼었다.

그리고 가방을 열어서, 색종이 100묶음을 보여 주었다.

“저 학 좀 접을게요.”

* * *

이곳에 도착한 날. 김레오에게 왜 종이학을 접으려는지.

왜 지금 나는 종이학을 미친 듯이 접을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었다.

얘기를 다 들은 김레오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내 손을 꼭 잡고 기도해 주었다.

불쌍한 영혼을 보살펴 달라며, 간절히 기도를 해주셨다.

그리고 수도원에 잘 왔다고 말씀하셨다.

신앙의 힘으로 극복해보자고.

아무래도 날 미친놈 취급하는 거 같은데.

더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았다.

이해시키기도 힘들고, 시간도 아껴야 하니까.

지금은 한시가 급하고, 결과가 중요하다. 미친놈 취급…… 좀 받고 말지, 뭐. 나중에 다 알게 될 텐데.

그래서 나는 말을 바꿨다.

4일간만 집중해서 기도할 수 있게 독방을 마련해 달라고 했다.

하지만 색종이만큼은 꼭 같이 있게 해달라고 말했다. 그래야 마음이 안정된다고 하면서.

내 상태를 심각하게 보고 있는 김레오는 기꺼이 독방을 마련해 주었다.

그렇게 난 종이접기를 시작했다.

“남들이 이해할 수 없는 일을 하는 건 참 고독한 일이야.”

방에 틀어박혀 종이학을 접은 지 이틀째.

핸드폰도 꺼놨고, 방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숨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고요한 공간.

사각. 사각.

종이학 접는 소리만 가득했다.

난 종이학 접기에 집중하기 위해 불도 켜지 않았다.

커튼을 쳐서 어둡게 하고, 오로지 내가 종이학 접는 공간만 촛불로 밝게 했다.

이렇게 며칠 지나고 나니, 현실 감각이 없어진다.

물아일체.

내가 학을 접는 건지, 학이 나를 접는 건지.

간혹 현타가 와서 피식 웃음이 나올 때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진지했다.

한 마리당 10만 원이라는 생각하면, 진지해질 수밖에 없다.

사각. 사각.

촛불 앞에 웅크리고 앉아, 열심히 종이학을 접으면서 마음속으로 결연히 외쳤다.

‘보육원 땅, 꼭 지키고 말겠어.’

사각. 사각.

그러면서 난 집중하여 손을 부지런히 꼼지락거렸다.

4일이라는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똑똑.

내가 부탁한 시간에 노크 소리가 들렸다.

“네~.”

“태평아, 형이야.”

“들어오세요.”

활짝.

문을 열고 들어온 김레오는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입을 벌리고 말았다.

어두운 방 안. 촛불 앞에 앉아 있는 강태평.

그의 몸 주변엔 온통 종이학이었다.

도대체 몇 십 마리, 아니…… 몇 백 마리를 접은 건지.

눈으로 보면서도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 풍경이었다.

마치 학으로 만든 구름 위에 앉아 있는 것 같았다.

표정도 꼭 도인같이 하고서는…….

“태, 태평아, 너 괜찮은 거니?”

“네, 형님. 저 괜찮아요.”

가까이 다가간 김레오는 강태평의 손부터 살폈다.

손가락 끝이 온통 새빨갛고, 물집이 잡혀 있었으며, 검지는 손톱 사이에 핏물도 고여 있었다.

“야…… 너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야. 흑!”

김레오는 강태평의 손을 어루만지더니, 갑자기 와락 껴안았다.

“여기서 형이랑 같이 살자. 태평아, 미안하다. 형이 미안하다.”

“…….”

울고 있는 김레오를 보면서 강태평은 어이가 없었다.

‘왜 울지? 나만큼 기뻐서 우나?’

강태평은 결과는 두고 봐야겠지만, 그저 이 시간이 끝났다는 생각에 기쁠 따름이었다.

“형님, 울지 마세요. 왜 울어요.”

“흑……. 태평아, 형이 미안하다. 형이 너무 무심했어. 뭐 해줄 거 없니? 뭐든 말만 해 봐. 형이 힘닿는 대로 다 도와줄게.”

그는 여전히 강태평을 꼭 끌어안고 있었다.

‘잘됐다. 좀 쉬고 싶었는데, 부탁 좀 해야겠네.’

강태평은 피식 웃고는 말했다.

“학 몇 마리인지 좀 세줄래요?”

* * *

김레오와 나는 종이학을 유리병 안에 담았다.

준비해온 유리병은 세 개.

고객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하트 모양의 이쁜 거로 준비했다.

“형님, 한 마리도 다치지 않게 조심해서 넣어야 해요.”

“…….”

“하나당 10만 원짜리예요.”

김레오는 여전히 강태평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진짜 가야 하니? 그냥 온 김에 더 요양하지 그러니.”

“종이학 납품하러 가야 해요.”

“할렐루야…….”

김레오는 성호를 긋고는 하늘을 향해 뭐라고 중얼거렸다.

“그래, 조심해서 가거라. 언제든 쉬고 싶을 때 또 오고.”

“고맙습니다. 형님. 덕분에 잘 접고 가요. 이곳…… 작업하기 좋네요. 하하.”

“그래, 집에 혼자 찾아갈 수 있지? 도착하면 병원부터 가봐.”

“무슨 소리세요. 그럼 저 갑니다.”

“그래, 건강하고. 어머니께 안부 전해주고.”

난 김레오를 향해 꾸벅 인사하고 뒤돌았다.

“하나님은 널 사랑하신단다. 잊지 말아라~”

뒤에서 김레오의 목소리가 들렸다.

총 개수는 2,534마리.

결국, 목표 달성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홀가분했다.

어쨌든 노가다는 끝이 났으니까.

지금 바로 사무장 만나서 이놈의 종이학을 납품하고, 순댓국에 소주나 한잔해야지.

부족한 돈은?

어떻게든 될 것이다.

나에겐 금손이 있으니까.

하지만 종이학 접기는 이제 안 할란다. 돈도 좋지만, 삶의 질도 중요하다.

거의 다 왔다.

* * *

난 사주경계를 철저히 하면서 다녔다.

사람들의 시선을 조심히 했고, 누군가 가까이 다가오면 예민하게 굴었다.

“뭐예요?!”

“어머…… 죄송합니다.”

특히 가방에는 누가 살짝 스치기만 해도, 날카로워졌다.

2억 5천만 원짜리가 들어 있는 가방.

종이학 2천 5백 마리가 들어 있다.

내가 만들었지만, 다시는 못 만들겠다. 이제 학은 보기도 싫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난 백팩을 반대로 매어서, 가슴에 꼭 끌어안았다.

[띠리링―. 열차가 도착하고 있습니다.]

단양역에서 무궁화호에 올라탔다.

청량리역까지 약 2시간.

KTX를 탈까 하다가, 1시간 아끼자고 두 배 가격을 들이기 아까웠다.

사무장을 만나러 갈 것이다.

오늘 이 빌어먹을 종이학을 납품하고, 2억 5천만 원 받는 것이다.

빨리 건네주고 싶다.

이제 학은 꼴도 보기 싫다. 질렸다.

이제 2시간만 버티면…… 난 잠들지 않으려고 눈을 부릅떴다.

2시간 뒤.

“저기요! 저기요!”

음?

“일어나세요!”

화들짝. 눈을 번쩍 떴다.

기차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난 깨자마자 학부터 챙겼다.

“내 학! 내 학! 내 하악!”

역무원은 이상한 듯 날 바라봤다.

“학? 이봐요. 괜찮아요? 혹시 술 드셨어요?”

헉! 가방이 안 보인다!

어디 간 거지?

역무원의 물음에 대답할 정신도 없었다.

난 미친 듯이 소리치며 두리번거렸다.

“내 가방! 으아악!”

역무원은 이상하다는 듯 날 바라봤다.

“아이고~, 망했다. 왜 잠이 든 거야! 4일을 버텨놓고 왜 2시간을 못 버텨~!”

단양 수도원에서 제대로 못 잤었다.

긴장 풀리고, 편안한 의자에 앉았더니 기절을 한 것 같은데.

가방이 없어지다니! 2억 5천만 원이!

“…….”

넋이 나가 버렸다.

역무원은 이런 날 가만히 보다가.

“머리에 베고 계신 건 뭐예요?”

재빨리 머리 뒤에 있는 걸 들었다.

여기 있었네.

이게 언제 머리 뒤로 가 있었지?

“찾았네요.”

내 말에 역무원은 한숨 쉬면서 날 바라봤다.

“어서 내리세요.”

* * *

한국종이접기협회, 사무장실.

똑똑.

[들어오세요.]

벌컥.

문을 열고 들어가자, 김보경 사무장이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어머~, 네모의 신님, 어서 오세요.”

“그냥 이름 불러주셔도 됩니다.”

“아~, 네. 호호. 전 이게 익숙해서.”

사무장은 소파를 가리켰다.

“앉으세요. 많이 피곤해 보이시네.”

“네……. 고맙습니다.”

사무장은 앉아 있는 날 가만히 바라봤다.

수염은 덥수룩하고, 눈은 퀭하다. 4일 동안 가볍게 세수와 양치만 하면서 오로지 종이학 접기에만 매달렸다.

먹는 것도 살기 위해 먹었다.

정말 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3,000마리를 못 채워서, 아쉬움은 남지만.

안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아, 인사를 제대로 안 했네.”

사무장은 갑자기 손을 쭉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잘 지냈어요?”

뭐야? 좀 전에 인사 다 했는데, 갑자기 왜 악수를?

내가 가만히 내민 손을 바라보자, 그녀는 어서 잡으라는 듯 손을 흔들었다.

“아, 네. 사무장님도 잘 지내셨죠?”

난 마지못해 손을 잡았고.

사무장은 눈에 흰자를 보이며 살짝 몸을 떨었다.

난 소름이 돋아서 얼른 손을 빼려 했고, 사무장은 이번에도 꽉 잡고 안 놓으려 했다.

힘으로 겨우 손을 빼낸 뒤, 가방을 열어 종이학을 꺼내었다.

“2,534마리에요. 분명히 접은 개수만큼 구매하신다고 하셨었죠?”

“우와~, 많이 접으셨네요.”

사무장은 유리병 안에 든 종이학을 신기한 듯 바라봤다.

“물건은 확실하죠?”

“확인해 보시죠.”

사무장은 유리병에서 종이학 한 마리를 꺼내어 손바닥 위에 올려놨다.

착각인가?

종이학이 빛나는 것 같았다.

접는 것에만 정신 팔려서, 만든 종이학을 자세히 볼 생각을 못 했었다.

“어머…….”

사무장은 종이학을 보며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신의 학 맞네. 확실히 신의 학이야. 근데…….”

사무장은 눈 바로 앞까지 학을 놓고서, 꼼꼼하게 보았다.

“역경을 딛고 일어선, 신 중의 신이랄까? 이전의 신의 학이 아프로디테라면, 이번 신의 학은 제우스?”

“…….”

그냥 저 하고 싶은 대로 지껄이게 내버려 두었다. 대꾸할 기운도 없다.

“찬란한 눈매와 주름. 날개 깃털의 디테일하며…….”

사무장은 감탄하면서 계속 중얼거렸다. 난 돈 받는 대로 땅 주인 만나러 가야 한다.

오늘 계약하기로 했다.

“저…… 죄송한데. 물건 이상 없으면 인수하시고, 빨리 돈을……. 제가 가 봐야 할 곳이 있어서요.”

“어머, 네, 죄송해요.”

그녀는 핸드폰과 OTP 단말기를 꺼내었다.

“계좌번호 불러주세요.”

“학 개수 안 세어봐도 돼요?”

“이미 여러 번 세어보셨을 거 아니에요? 맞겠죠.”

“낙장불입입니다. 나중에 개수 틀리다고 10만 원 빼달라던지 그러시면 안 돼요.”

“알겠으니까, 계좌번호 불러요.”

“형제은행 2011―****.”

내가 불러주는 대로 사무장은 그대로 입력했다.

두근. 두근.

진짜…… 돈 들어오는 거야?

막상 이 순간이 되니 실감이 안 났다.

“2천 534만 원 송금하면 되죠?”

난 식겁해서 눈이 동그래졌다.

“공 하나가 빠졌는데요오?!”

뭐야?!

여기서 개수작 부리는 건 아니겠지?!

“아, 맞다. 호호. 미안요.”

휴우―. 다행이다. 깜짝 놀랐네.

“자! 됐어요.”

위이잉―.

내 핸드폰 진동음이 울렸다.

두근. 두근.

[253,400,000 김보경]

하나, 둘, 셋…….

난 천천히 자릿수를 세어보았다.

흡!

맞다! 분명히 2억5천이다!

불끈!

난 책상 아래에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제 5천만 원만 더 있으면 된다.

2억 5천을 해결해서 그런 걸까?

5천만 원이 못 넘을 벽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고맙습니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제가 고맙죠. 너무 고생 많았어요. 힘들었을 텐데……. 어머, 손 좀 봐.”

사무장은 갈라진 내 손톱을 바라보았고, 그러면서 또 은근슬쩍 내 손을 잡으려 했다.

그러기 전에 난 자연스럽게 손을 주머니에 꽂아 넣으며 말했다.

“하하. 대가를 확실하게 받았기 때문에, 이 정도 고생은 괜찮습니다.”

“근데…… 태평 씨 이거 알아요?”

“뭘요?”

“오늘 득 본 사람은 저인데.”

“…….”

난 의구심 섞인 눈으로 사무장을 바라봤다.

“난 A급 상품을 의뢰했는데, S급 상품을 가져오셨거든요. 그러니 제가 이득이죠.”

“…….”

“딸에게 생일 선물로 주기 아까울 정도예요. 그냥 내가 소장해 버릴까? 호호.”

그건 뭐, 알아서 하시고.

“그럼, 진짜 가보겠습니다.”

“네~, 들어가세요. 제가 다음에 밥 한번…….”

뒷말은 못들은 걸로 하고, 난 재빨리 걸음을 옮겼다.

휴가 마지막 날.

오늘 할 일이 많다.

* * *

1호선 열차를 탔다.

1시간 반 뒤, 의정부역을 지나 가능역에 도착.

역 근처 카페에서 땅 주인을 기다렸다.

기다린 지 얼마 안 되어, 중절모를 쓴 중년 남자가 나타났다.

그때 한번 봤지만, 난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 땅 주인도 날 알아봤는지 다가왔다.

“강태평 씨 맞죠?”

“네, 맞습니다. 안녕하세요.”

우리는 가볍게 서로의 신원을 확인한 후, 마주 보고 앉았다.

“하하. 그때 부탁하신 게 기억나서, 혹시나 해서 메시지 보내 본 거였는데.”

“…….”

“정말로 이렇게 거래로 연결될 줄은 몰랐네요.”

땅 주인은 기분이 아주 좋아 보였다.

하긴, 평당 145만 원에 거래하려던 찰나에 제값 주고 거래하게 되었으니.

“젊으신 분이 대단하네요. 벌써 이런 목돈을 가지고 계시고…….”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그는 계약서를 꺼내었고.

난 내심 궁금했던 부분을 물어보았다.

“근데 왜 중개사 통하지 않고, 직접 하시나요? 공증인도 없이…….”

“중개료 들잖아요~.”

“아……. 겨우 그 이유에요?”

“겨우라뇨. 티끌 모아 태산이죠. 근데…… 사실 티끌도 아니지.”

그는 연신 싱글벙글이었다.

“주택 외 중개수수료는 0.9%에요. 3억이면 270만 원. 적은 돈 아니죠? 내가 매수할 고객을 직접 찾았는데, 왜 돈 아깝게 중개사를 껴서 거래해요.”

“…….”

“게다가 전 부동산 거래를 한두 건 하는 게 아니거든요. 주택도 하고, 토지도 하고 하니깐. 아낄 수 있는 건 직접 하는 게 좋죠.”

“이거 하나 하시는 게 아니라고요?”

“하하. 그럼 제가 재산이 이 땅 하나인 줄 알았어요?”

사십 대 중반 정도로밖에 안 보이는데……. 완전 딴 세상 얘기 같네.

사무장도 그렇고, 은근 이 세상엔 부자들이 많구나.

오십 다 되어 가는데, 회사 짤릴까 봐 전전긍긍하는 변 팀장과 대조적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돈 많다는 양반이 중개수수료 아끼려고 직접 매수자를 찾아다니고.

뭐……. 그렇게 아끼니까 부자가 된 걸 수도 있겠지.

“계약서 보세요.”

“네.”

난 계약서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특이 사항은 딱히 없는데…… 한 가지 맘에 걸리는 게 있었다.

“사장님, 잔금 일자요.”

잔금 일자는 한 달 뒤로 되어 있다.

한 달 안에 5천만 원을 만들 수 있을까?

종이학이야 특이 케이스였다고 하지만…….

네모튜브 출연료를 온전히 다 모은다고 해도 5천만이 되려면 4개월은 걸린다.

“왜요? 좀 미뤄줘요? 통상적인 날짜로 한 건데.”

“네, 가능하시면 넉 달 뒤로 했으면 합니다.”

“네에?!”

땅 주인은 황당한 듯 날 바라봤다.

“헤헤.”

난 딱히 할 말도 없고, 민망함에 그를 보여 헤벌쭉 웃었다.

“장난하세요? 그건 거래가 아니라 그냥 걸어놓는 거잖아요.”

“…….”

“여기서 보름 정도 더 미루는 것 말고는 안 돼요.”

“저도 안 되겠는데요.”

한번 버텨봤다.

“그럼 계약 없던 거로 해요. 가계약금은 그대로 돌려 드릴 테니까.”

“네?”

“내가 부동산은 많지만, 급전이 필요해서 현금화하려는 거라고요. 그렇게 오래 둘 수가 없어요.”

말이 안 통한다고 판단하자, 땅 주인은 칼 같았다.

그는 대뜸 핸드폰을 들었다. 아마도 평당 145만 원에 하기로 했던 사람에게 연락하려는 듯싶었다.

“자, 잠깐만요!”

난 황급히 그의 핸드폰을 잡았다.

“아유~, 왜 이렇게 급하세요~.”

난 계약서의 잔금일 날짜를 30일에서 45일로 수정하며 말했다.

“알겠어요. 45일 뒤에 잔금 치르는 거로 할게요.”

난 먼저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그에게 건네었다.

“흠. 잔금 못 치르면, 계약금 어떻게 되는지 아시죠?”

원룸 전세 계약 해봤기 때문에 그 정도는 안다. 잔금 날짜 못 맞추면, 계약금은 날아간다.

“알죠…….”

난 계약금으로 매수금액 10%인 3,000만 원을 땅 주인 계좌로 송금했다.

* * *

“안녕하세요~.”

금요일 아침.

이게 얼마만의 출근인가.

산속 수도원에서…… 겨우 4일이긴 하지만 답답해 죽는 줄 알았다.

“대리님, 안녕하세요~.”

“강 대리~, 왔어?”

난 오늘 9시 정각에 맞춰서 왔고, 홍지아와 변 팀장은 이미 와 있었다.

“하하. 오래만에 보니까 반갑네요.”

“그러니까~. 아무래도 나 강 대리랑 같이 살아야겠어. 이제 잠깐만 안 봐도 허전해~.”

변 팀장의 너스레에 우리는 같이 웃었다.

“휴가는 잘 갔다 왔고?”

“아, 네. 뭐…….”

“근데, 어째 더 피곤해 보이네? 살도 많이 빠졌는데?”

“하하……. 네.”

아직 체력 회복이 안 되었다.

힘들어 뒤질 것 같다.

“두 분 믹스 드시죠?”

“어~, 땡큐~.”

웬일로 홍지아가 커피를 타준다며 탕비실로 갔다. 굉장히 드문 일인데.

“하하. 홍지아 씨도 강 대리 와서 반가운가 보다.”

“하하. 별일이네요. 커피 타서 갖다 바치기 바빴는데.”

난 변 팀장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기회를 엿보았다.

아무리 고민해 봐도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강 대리 없으니까, 너무 썰렁해~.”

그냥 이리저리 찔러 보는 수밖에.

“하하~. 팀장님~, 여윳돈 좀 있으세요? 저 돈 좀 꿔주세요.”

난 아무렇지도 않게 슬쩍 얘기했다.

“응? 얼마나?”

변 팀장은 웃으며 물었고, 난 속으로 침을 꿀꺽 삼키고 대답했다.

“오천만 원이요.”

이미 받은 복

* * *

“뭐가 어째?”

“못 들으셨어요?”

변 팀장은 눈알을 돌리더니, 딴말했다.

“휴가 때 어디 놀러 갔었어?”

“팀장님, 오천만 원이요.”

“…….”

못 들은 건가, 못 들은 척하는 건가.

어쨌든 뽑은 칼이기 때문에 난 재차 말했다.

“오천만 원만 꿔주세요.”

“강 대리, 무슨 저녁값 빌리듯 말하고 있어? 오천만 원을.”

“…….”

들은 게 맞구나.

난 웃으며 말했다.

“제가 정말 급한 일이 있어서 그래요. 4개월 뒤에 확실히 갚을 수 있어요.”

“지금은 오천만 원이 없는데, 4개월 뒤에 생긴다고?”

“네.”

“그 큰돈이 그 짧은 시간 내에 어떻게 생겨?!”

변 팀장은 찬찬히 내 얼굴을 살폈다.

“표정도 안 좋고, 눈도 충혈되어 있고, 다크서클에……. 휴가 갔다 와서는 갑자기 오천만 원을 빌려달라고 하질 않나. 강 대리, 진짜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야?”

“…….”

고민이 됐다. 자초지종을 얘길 할까.

“혹시 나 말고 경찰이랑 대화해야 하는 건 아니야? 뭐, 협박을 받고 있는다든지…… 사기를 당했다든지.”

“그런 거 아니에요.”

“근데 왜 말을 못 해?”

“…….”

“다른 건 알 바 없고, 그냥 돈만 빌려주면 된다는 거야?”

변 팀장은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얘기를 하는 게…… 나으려나.

“솔직히 말해서 나 그런 큰돈 빌려줄 상황이 못 돼. 하지만 내가 돈은 못 빌려주더라도 도움이 될 수도 있어. 자네보다 인생 경험이 많다고.”

“…….”

“얘기해 봐. 자네 요즘 좀 이상했단 말이야. 나도 자꾸 신경 쓰여.”

그래……. 조언을 구해보자.

선배님이시고, 나보다 경험이 많으시니까.

“팀장님, 제가 고아인 건 아시잖아요.”

“알지.”

“제가 자랐던 보육원이 없어질 위기에 처했거든요. 보육원 토지가 매각될 수도 있어서요. 그래서 제가 그 땅을 사려고 합니다.”

그리고 난 변 팀장에게 일련의 과정을 설명해 주었다.

그중 종이학 접어서 2억 5천만 원을 벌은 얘기만 제외했다. 그 돈은 회사 생활 하면서 모았다고 대충 둘러대었다.

“이야~, 대단하네. 회사 생활 얼마나 했다고 2억 5천을 모았어? 뭐, 투자를 했나?”

“뭐……. 그냥 이것저것 했습니다.”

“돈 모으기가 쉽지 않은데. 모으기는커녕 부족하지 않으면 다행이지.”

“…….”

“우리 집만 해도. 애들 엄마가 알뜰하지 않았으면 내 집 마련도 못 했을 거야. 서울 변두리 빌라라도 내 집 하나 있으니, 그나마 마음이 좀 놓이는 거지.”

변 팀장은 곰곰이 생각하더니 말했다.

“근데, 참 희한하네. 어떻게 보육원이 임대된 땅 위에 세워졌을까?”

“아, 그건요.”

현재 땅 주인의 어머니가 무상 임대를 해줬었고, 사망 후 주인이 바뀌면서 이런 일이 발생 되었다고 설명해 주었다.

“아들이 어머니의 뜻을 이었으면 참 좋았을걸……. 안타깝네.”

“네……. 저도 땅 주인이 이해가 되면서도 서운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더라고요.”

그때, 홍지아가 왔다.

“무슨 얘기들을 그렇게 심각하게 하세요?”

홍지아가 건네는 커피를 받으며, 변 팀장이 말했다.

“응~, 아무것도 아니야. 강 대리, 담배 피우러 가자.”

“네.”

건물 옥상.

올라가는 내내 변 팀장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뭔가를 계속 고민하는 듯하더니.

옥상에 올라오자마자, 누군가와 통화했다.

“아, 그래. 가능하다고? 그래~, 알았어. 바쁠 텐데 고마워~.”

통화를 끊고, 변 팀장은 품에서 담배를 꺼내었다.

“자기는 안 피지?”

“네, 전 커피만 마시겠습니다.”

흐읍~ 휴우~.

변 팀장은 담배를 깊게 내쉬고는 말했다.

“사람이 혼자서만 해결하려 하지 말고, 문제가 생기면 머리를 맞대야 한다니까.”

통화한 이후 변 팀장은 표정이 밝아져 있었다.

“왜요? 뭐 방법이 있습니까?”

솔직히 큰 기대 안 하고 물었다.

그는 묻는 말에는 대꾸하지 않고, 담배를 태우며 내게 물었다.

“보육원 땅에 철도용지, 묘지, 사적지, 공원 같은 게 있는 건 아니지?”

“물론이죠. 땅 위에 보육원 하나 있고 나머지는 그냥 비어 있습니다.”

“그럼 됐네.”

그는 피식 웃었다.

“내가 주택은 잘 아는데, 토지는 잘 몰라서……. 혹시나 해서 은행 친구한테 지금 물어본 거거든?”

“네?”

“자네 이미 해결됐어.”

“…….”

“토지담보대출로 못해도 40% 이상은 가능하대. 내가 방금 말한 용도만 아니라면.”

“…….”

변 팀장은 내 어깨를 두들기며 웃었다.

“2억 5천 있다며? 담보대출로 5천만 원 해결하는 건 일도 아닐 것 같은데? 20%도 안 되는 비중이잖아.”

맙소사!

해결된 거야? 이렇게 쉽게?!

대출은 생각도 못 했었다.

왜 바보같이 그 생각을 못 했었지?

그냥 돈만 모아야 한다는 생각 말고는…….

마음속에 얹힌 돌덩이 하나가 쭉 내려가는 것 같았다.

기쁨에 손이 덜덜 떨렸다.

보육원을…… 지킬 수 있다!

“팀장님, 정말 고맙습니다.”

“고맙긴~. 은행에 고마워해야지. 예전에 내가 그랬잖아. 대출도 재산이라고.”

한편으로는…… 나 왜 2,500마리나 접은 걸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어차피 대출은 갚아야 할 돈이니까.

“팀장님, 근데 신용대출도 있잖아요?”

변 팀장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우리 회사 네임드와 급여 고려했을 때, 신용대출은 비추야. 그냥 담보대출로 해.”

“아……. 네.”

두근. 두근.

가슴이 두근거린다. 당장이라도 은행에 달려가고 싶었다.

피식.

변 팀장은 이런 날 보더니, 슬쩍 웃으며 말했다.

“갔다 와~. 요 앞에 있잖아.”

“그래도…… 되겠습니까?”

“얼마나 걸린다고. 괜찮아~. 어서 갔다 와.”

난 허리를 깊숙이 숙여 인사했다.

“팀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하하. 팀을 위해서이기도 한 거니까. 걱정거리 빨리 떨치고, 업무에 집중해야지.”

“네, 그럼 빨리 다녀오겠습니다.”

“강 대리~, 파이팅~.”

옥상 출구를 향해 달려가는 내게 변 팀장은 엄지를 내밀었다.

덜컹!

강태평이 옥상 출입구로 나간 뒤.

변 팀장은 담배를 깊숙이 빨았다.

“저 나이에 2억 5천 모았다는데……. 난 그동안 뭐 하고 산 거냐.”

종이학으로 번 돈 임을 모르므로, 변 팀장으로서는 이 사실이 약간은 불편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남을 위해 쓰겠다고? 강태평이 대단하네~. 복 받겠어~.”

어느새 1층으로 내려와 횡단보도를 뛰어가는 강태평.

변 팀장은 옥상에서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 * *

그날, 난 바로 은행을 찾아갔고.

변 팀장의 말대로 토지 담보대출로 5천만 원을 받는 건 어렵지 않았다.

며칠 뒤, 은행에서 요구하는 각종 서류를 제출했다.

“진짜, 5천만 원만 대출받으시면 돼요?”

도리어 대출 담당 직원이 아쉬운 투로 이렇게 물었다.

대출 계약을 하고, 실행일을 정하고 나니 아무런 걱정이 없어졌다.

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네모튜브는 기존처럼 주 2회 출연만 하였고, 돈이 급하지 않으므로 종이 조형 창작은 미뤘다.

네모삼촌이 계속 진도를 나가자는 걸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미루었다.

그리고 난 더 이상 종이학 영상은 찍지 않았다.

이젠 종이학만은 못 하겠다고 선언했고, 학은 내 눈앞에서 안 보이게 해달라고 네모 씨에게 신신당부했다.

‘학’ 소리도 듣기 싫다.

대신 ‘정통’ 연습을 할 때 접어봤던 ‘회오리 장미’와 ‘울부짖는 공룡’을 여러 가지 버전으로 접었다.

그것만으로도 구독자들은 만족해했다.

이렇든 네모튜브 활동은 아주 기본만 했으며, 더 이상 확장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동안 소홀했던 회사에 집중했다.

변 팀장에게 고맙고 미안해서, 더 열심히 하고 싶었다.

“강 대리~, 요즘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 하는 건데요.”

촬영 일정을 빡빡하게 잡았고, 정말 열심히 찍으러 다녔다.

촬영 1팀이 벌어들이는 매출액은 진일상사 매출 비중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고.

4분기가 시작될 시점부터는 영업 1, 2팀 실적을 합쳐도, 촬영 1팀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한다고 해서 월급이 많아지고, 성과급을 많이 받는 것도 아니지만.

변 팀장과 홍지아가 기뻐하니까.

나 또한 보람을 느끼고.

네모튜브로 이미 적지 않은 돈을 벌고 있다.

회사 생활? 돈이 다가 아니다.

난 이 정도로도 만족한다.

그렇게 45일이 지났다.

아셀라 보육원. 접견실.

나와 김성애 수녀님은 땅 주인을 마주 보고 앉았다.

“5천만 원 들어왔죠?”

좀 전에 은행으로부터 대출 실행되었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네, 방금 들어왔네요.”

“3천만 원은 계약금으로 드렸으니까, 남은 2억 2천만 원 지금 송금하겠습니다.”

“네.”

스마트 뱅킹으로 2억 2천만 원을 바로 송금했고.

땅 주인의 핸드폰이 울렸다.

띠링.

그는 입금 내역을 확인하고는 환하게 웃었다.

“확인됐네요.”

그는 토지 등기에 필요한 서류.

매도용 인감증명서, 등기권리증, 주민등록초본, 신분증 사본을 건네었다.

“여기 있습니다.”

“네.”

그리고 일어나면서 악수를 청했다.

“보아하니 단기간에 돈을 융통하신 거 같은데.”

“…….”

“대단하시네요, 수녀님. 좋은 제자를 두셨습니다. 하하.”

“제자 아니에요~. 제 아들입니다~.”

수녀님은 내 팔을 꼭 껴안으셨다.

“그럼 볼일 끝났으니,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네, 살펴 가세요.”

덜컹.

그가 나간 뒤.

철퍼덕.

김성애 수녀님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어머니!”

강태평은 깜짝 놀라서, 수녀님을 잡아 일으켰고.

“괜찮다, 태평아. 긴장이 풀려서 그래.”

수녀님은 웃고 있지만, 눈가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이 아이들을 어떻게 해야 하나……. 주님께 기도는 하면서도 인간적인 걱정이 끊이질 않더구나.”

“…….”

“주님께서 널 보내주신 거 같아. 고맙다, 태평아.”

그리고는 강태평에게 안겨 한참을 목놓아 울었다.

강태평 또한 수녀님을 안고 눈가가 촉촉해졌다.

“어머니, 아니에요. 순전히 저 자신을 위해 한 일인데. 그렇게 말씀하시면 면목이 없어요.”

“태평아…….”

“전 여기밖에 없잖아요. 이곳이 전부고, 제 뿌리라고요.”

“…….”

“이곳까지 사라지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될까 봐…….”

강태평도 눈가를 살짝 훔쳤다.

“그냥 그뿐이에요. 수녀님이 이렇게 마음이 힘드셨다고 하니까…… 도리어 제가 죄송하네요.”

수녀님은 강태평의 등을 쓸어 내렸다.

“아이고…… 우리 태평이. 불쌍한 태평이.”

강태평은 입술을 꾹 다물며, 더 이상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했다.

“걱정하게 해서 엄마가 미안하다. 이제 엄마가 잘 지킬게.”

“어머니…….”

수녀님은 눈가를 훔치고 말했다.

“태평아, 의도치 않은 선행도 선행이란다.”

“…….”

“부끄러워할 필요 없어. 넌 큰일을 한 거야.”

수녀님은 웃으며 강태평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우리 아들, 큰 복을 받을 거야. 주님께서 기억하실 거야.”

“…….”

‘이미 큰 복을 받고 있습니다, 어머니.’

강태평은 수녀님을 꼭 끌어안은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내 손이지만, 고맙다.’

접견실 문틈 사이로 보육원 아이들이 얼굴을 삐죽이 내밀고.

이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었다.

불청객일까?

* * *

일주일 뒤.

“강태평 씨~.”

“배달 왔습니다~. 여기 사인해 주세요.”

사무실로 우편이 하나 배달되었다.

보내는 이 ‘의정부지방법원’.

뭔지 예상이 된다.

난 주변을 살핀 후 조심히 봉투를 열어보았다.

‘등기권리증’.

법원 마크가 표시된 보안 스티커가 날 반겼다.

처음으로 자산이 생긴 순간이었다.

재산 증식을 목적으로 매수한 토지는 아니지만, 어쨌든 내 명의로 된 자산이 생겼다.

등기부등본에 기재된 내 이름 ‘강태평’을 보면서 내심 뿌듯했다.

단기간이었지만, 말 그대로 피, 땀, 눈물로 이룩한 결과.

이제 ‘학’자도 듣기 싫다는 부작용이 생기긴 했지만.

“뭐야?”

변 팀장이 걸어오면서 물었다.

“아, 아닙니다.”

변 팀장은 힐끔 보고서는 싱긋 웃었다.

“저번에 말했던 그거구나?”

“아……. 네.”

그는 내 어깨를 두들기며 말했다.

“축하해~. 이유야 어쨌건 강 대리도 땅 주인이 됐네.”

“땅 주인이요? 하하…….”

땅 주인이라……. 막상 그렇게 호칭을 받고 나니 기분이 묘하다.

언젠간 집주인도 될 수 있겠지.

내 땅 하나 생겼다는 사실만으로도 이상하게 든든한 기분이 든다.

난 등기권리증을 서류봉투에 다시 동봉 후, 서랍 안에 넣었다.

“강 대리, 오늘은 촬영 없어?”

“이제 곧 나가봐야 합니다.”

“그래……. 스케줄 너무 타이트하게 잡지 마.”

“올해 얼마 안 남았는데, 압도적인 1등을 해야죠.”

이미 촬영 1팀의 성과는 압도적이었다.

다른 팀들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며, 이젠 촬영 1팀 하나만으로 진일상사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너무 욕심 부리지 마~. 강 대리 쓰러지면 회사가 쓰러지는 거야.”

“…….”

“동업자 정신도 그렇고……. 너무 잘해버리면 다른 팀 사람들이 뭐가 되겠어. 아!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거!”

난 변 팀장을 바라보았다.

그는 날 향해 눈을 찡긋하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일 많이 한다고 월급 많이 나오는 것도 아니잖아.”

“풉.”

이건 팀장이 할 소리는 아닌 것 같은데.

“알겠습니다. 이미 받아 놓은 건 어쩔 수 없지만, 수주량을 좀 조정할게요. 홍지아 씨에게도 말해 놓겠습니다.”

“그래~.”

난 짐을 챙겼고, 책상 위에 놓인 조그만 디지털카메라를 주머니에 넣었다.

“강 대리, 카메라 좀 바꿔줄까?”

“하하. 카메라요?”

어떤 카메라든 지금 내게는 상관이 없다.

어차피 다 잘 찍힐 거, 작고 간편한 게 좋다.

“아닙니다. 전 이게 딱 좋습니다.”

“그래. 이제 사장님한테 장비 구매 얘기할 수준 충분히 되니까.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 말하라고.”

“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어이~, 수고!”

2시간 뒤, 사무실로 돌아왔다.

촬영장소가 근처인 데다가, 사진을 빨리 찍는 편이기에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응? 아무도 없네?”

어디를 갔는지 사무실에는 홍지아도, 변 팀장도 보이지 않았다.

“강 대리!”

영업 2팀의 대리님이 날 불렀다.

“네~.”

“자기 찾는 손님 오셨어. 회의실로 가봐.”

우리 회사에 접견실 따위는 없고, 아무나 자유롭게 들어올 수 있다.

“아, 네.”

난 고개를 갸우뚱했다.

누구지? 날 찾아올 사람이 없는데.

혹시 네모 씨?

이상하다……. 어제저녁에 스튜디오에서 봤는데. 할 말 있으면 전화를 했겠지.

불투명 유리 벽으로 남성의 실루엣이 보였다.

난 살며시 문을 열었다.

“엇?!”

낯선 듯하면서도 어디서 본듯한 얼굴.

“누구시더라?”

난 남자를 보자마자,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왠지 모를 거부감이 느껴져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궁금해서 직접 와봤는데, 회사 사이즈 죽이네요.”

남자는 기분 나쁘게 웃으며 내게 악수를 건네었다.

“표정이 왜 그래요? 저 기억 안 나요? 배병규예요.”

* * *

배병규… 배병규…….

이름만 들어서는 잘 기억이 안 난다.

근데 뭔가 재수 없는 느낌이 들긴 했다.

내가 계속 고개를 갸우뚱하자, 남자는 웃으며 말했다.

“두 달 전인가? 우리 어머니 칠순 때 왔었잖아요.”

“아~~ 아~.”

‘칠순’ 얘기를 하니, 바로 기억이 났다.

그 초면에 반말 찍찍하던 갑질 아저씨?

그래……. 그 남자 이름이 배병규였지.

난 본능적으로 경계를 하였다.

여차하면 도망갈 생각이었다.

단체 사진 찍을 때 이 남자를 기마자세 시키며 골탕을 먹였었다.

혹시 보복하려고 온 건 아니겠지.

“손 부끄럽네. 악수 안 할 거예요?”

그러고 보니 배병규는 한참 손을 내밀고 있었다.

“…….”

난 잠시 그의 손을 내려다보다가, 어쨌든 악의로 보이진 않아서 살며시 손을 잡았다.

“헛…….”

악수하자마자, 그의 표정이 살며시 변했다.

“아……. 따뜻해.”

“네?”

“아, 아닙니다.”

배병규는 이상한 기분에 재빨리 손을 빼었다.

“일단 앉으시죠.”

“네.”

난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다.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이 장소에 그가 와 있다는 것 자체가 현실감이 없다.

도대체 왜 온 거지?

“어르신은 건강하시죠?”

그래도 고객의 안부부터 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네, 건강하세요. 칠순 때 찍은 사진 지금도 많이 보세요. 특히 독사진을 아주 마음에 들어 하세요.”

“그래요?”

“네, 힘들었던 시절을 위로받는 것 같다고 하시면서요. 강태평 씨에게 고맙다는 말을 자주 하세요.”

“아……. 네, 제가 감사하네요.”

이런 안부 인사를 주고받는데, 배병규는 본론을 꺼내질 않았다.

분명히 여기 온 건 이유가 있을 텐데.

결국 내가 먼저 물었다.

“근데…… 그냥 오신 건 아니실 텐데.”

배병규는 살며시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렇죠. 용건이 있으니까 왔죠.”

“…….”

“촬영 제안 드리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촬영을 제안하고 싶어서 찾아왔다?

그게 무슨 말이지? 칠순 잔치도 의뢰를 해봤으면서 방법을 모르나?

“그거야, 저희 회사 촬영 팀에 의뢰하시면…….”

촬영 1팀 대표번호가 있고, 오더 수주 접수는 홍지아가 담당이다.

배병규는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닙니다. 회사가 아니라, 개인으로서 의뢰를 드리고 싶어서 찾아온 겁니다.”

“네?”

“지금 자세히 설명드리긴 좀 어렵지만, 전 사업을 하고 있어요. 개인사업이긴 하지만 규모가 작지는 않습니다. 아마 진일상사보다는 클 거예요.”

“…….”

“사업 특성상 보안 유지가 매우 중요하거든요. 그래서 매 시즌 저희는 프리랜서 개인 촬영 기사와 협업을 하고 있습니다.”

아……. 무슨 말을 꺼내려는지 이제 조금씩 감이 오기 시작했다.

배병규는 설명을 이어갔다.

“회사 규모가 아무리 작아도, 실적 보고를 하게 되고, 또 팀과 팀원들이 있고, 좋은 건 더 소문나게 되고……. 아시잖아요? 사람 있는 곳에서 말은 계속 생겨날 수밖에 없다는 거.”

“뭐, 그렇죠. 그건 어쩔 수 없는 거니까요.”

그는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래서 진일상사가 아닌, ‘강태평’ 씨에게 의뢰를 드리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

.

.

.

나에게…… 의뢰를 하고 싶다고?

“촬영료는 업계 최고 수준으로 맞춰 드릴 겁니다. 저희는 무조건 퀄리티 위주니까요.”

“…….”

“아무에게나 이런 의뢰 드리지 않습니다. 참고로 2019년 제주국제공모전 대상 수상자가 작년까지 저희와 일했었습니다.”

그의 제안이 당혹스럽다.

갑자기 나타나서는…….

“좀 갑작스럽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내부적으로 많은 검토를 하고 제안 드리는 거예요.”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 한다.

도대체가 금손이 생긴 이후부터 인생이 롤러코스터 같다.

안 좋은 일은 아니지만…… 평안한 날이 없네.

“잠깐만요.”

난 그의 말을 멈추고, 물었다.

“반드시 개인이어야 합니까?”

“네.”

“그럼, 저 보고 퇴사를 하라는 말씀이신가요?”

“하하.”

그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그럴 리가요. 프리랜서로 일해주시면 됩니다. 세금, 촬영, 업무, 소통 등 모든 측면에서요.”

“…….”

“저희와 일할 때만 ‘진일상사’가 아니면 됩니다.”

“그게 의미가 있습니까?”

“일 시작하기 전에 비밀서약서를 작성하실 겁니다. 적어도 세금계산서를 ‘진일상사’로 발행하지 않으니, 전산을 통해서는 수임료나 거래처를 알 수 없겠죠.”

“…….”

“강태평 씨가 말하지 않는 한.”

회사를 찾아와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제안을 회사원에게 한다.

이 자신감은 뭘까.

아무래도 돈이겠지?

“대략 얼마나 주실 건지 여쭤봐도 될까요?”

“음……. 자세한 건 협의를 해야겠지만.”

그는 뭔가 생각하다가, 살짝 미소지으며 말했다.

“우리 어머니 칠순 잔치 때 700만 원 정도 드렸었죠?”

“네.”

“못 해도 그 배 이상은 될 겁니다.”

“촬영 한 번에요?”

“네.”

부릅.

나도 모르게 눈이 번쩍 떠졌다.

촬영 한 번 하는데, 1,400만 원 이상이라고?

“근데 촬영 기사들이 보통 혼자 다니지는 않을 텐데.”

“보조 한두 명 정도는 괜찮습니다. 물론 그분들도 비밀서약서는 작성하셔야 합니다.”

“도대체 뭘 촬영하길래…….”

“그건 지금 말씀드릴 수 없어요.”

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다.

“혹시…… 야시시한…… 뭐, 그런 거 아니죠?”

“그런 게 뭐죠?

“야동이나…… 누드 같은 거?”

“하하. 아니에요. 합법적인 거니까, 염려 안 하셔도 돼요.”

흠……. 내 개인적으로 문제 될 것 없었다. 촬영을 주말에 해도 되는 거니까.

다만, 회사가 허락할까? 그게 좀 걸린다.

네모튜브는 내 업종과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지만. 촬영팀에 속해 있는데, 개인 촬영을 하겠다는 건…… 이건 비밀로 했다가는 문제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내가 떳떳하지 못한 기분으로는 일하고 싶지 않다.

“좋은 제안이긴 한데, 저 혼자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어서요. 좀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요?”

“네, 회사에 허락을 받아야 하니까요. 몰래 할 수는 없습니다.”

“흠…….”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다만, 제가 만나러 왔다는 것과 저와 나눈 내용은 비밀로 해주셨으면 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좋은 소식 기다리겠습니다.”

배병규는 일어나면서 내게 꾸벅 인사를 했다.

“근데…….”

난 가려는 그를 향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칠순 잔치 때 그분 맞아요? 너무 다르신데?”

“일할 때는 달라요. 가족 앞에서만 그럽니다.”

“네? 아, 네.”

희한한 양반이네. 뭐, 사정이 있나?

“그럼 연락드릴게요.”

“네, 가보겠습니다.”

그가 나간 뒤.

난 회의실에 가만히 앉아서 생각했다.

좀 걸쩍지근하지만…… 회사 업무에 지장 가지 않으면 되는 거잖아?

당당히 사전에 신고하고, 개인 촬영은 주말에 하면 되고.

이런 큰돈을 주겠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래, 이 정도는 이해해 줄 거야. 내가 요즘 회사에 기여하고 있는 게 얼만데.”

난 회의실을 나갔다.

자리로 돌아왔더니, 홍지아와 변 팀장이 와 있었다.

타닥. 타닥.

홍지아는 뭐가 그렇게 바쁜지 열심히 타자를 치고 있다.

“강 대리~, 어딜 그렇게 돌아다녀?”

“팀장님도 방금 들어오신 거 같은데요~.”

“흠!”

변 팀장은 헛기침하며 미소를 지었다.

난 앉아서 잠깐 할 말을 정리 후에, 변 팀장에게 갔다.

“팀장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어, 얘기해.”

“저…… 개인 촬영 좀 해도 됩니까?”

“……. 응?!”

변 팀장은 불안한 표정으로 날 올려다봤고.

홍지아의 타자 소리가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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