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손으로 살아가기-32화 (32/156)

오리가미 (2)

* * *

지금 시간 오후 5시 50분.

모니터 화면에 엑셀, 포토샵 등 프로그램들을 닫고.

바탕화면을 깨끗하게 했다.

소지품은 가방 안에 넣어두고, 슬리퍼를 구두로 갈아 신었다.

모든 준비는 끝난 것이다.

6시 땡 되면 바로 퇴근할 수 있게.

요즘 저녁 촬영 일정이 자주 잡혀서, 겨우 시간을 만들었다.

오늘 한국종이접기협회를 가기로 했다.

“강 대리?”

음?

변 팀장이 내 뒤에 서서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헉! 깜짝이야!”

변 팀장도 흠칫 놀랐다.

“뭐야? 왜 이렇게 놀래?”

“소리도 없이 뒤에 서 계시면 놀라죠.”

“하하, 그랬어?”

변 팀장은 물끄러미 나와 내 주변을 살피며 물었다.

“요즘 뭐 좋은 일 생겼어?”

“네?”

“아니, 뭐 여자 친구라던가.”

그러면서도 그의 눈이 내 책상과 모니터 화면을 살폈다.

“아니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 이상하다…….”

“뭐가요?”

“그냥~ 요즘 강 대리가 바빠 보여서.”

“…….”

네모튜브 촬영 있는 날이 아니면, 난 평소 사무실에 오래 남아 있는 편이다.

업무 때문에 그런 경우도 있지만, 집에 일찍 가봐야 할 일도 없고. 회사에 있는 게 이상하게 맘이 편하다.

변 팀장도 평소 퇴근을 늦게 한다.

어느 날 궁금해서 물어봤더니 자신은 이게 진짜 쉬는 거라고 했었다.

애 둘 아빠는 주말이 제일 힘들다며.

“네모튜브 촬영을 매일 하는 것도 아닐 텐데.”

“…….”

네모튜브 구독자라서 일일 방송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다.

5분 전.

이러는 와중에도 내 눈은 시계를 향해 있었다.

“혼자 밥 먹기 심심하잖아. 오늘도 일찍 가야 하는 거야?”

“하하.”

혼자 있기 싫다고 부하직원에게 야근을 종용하다니.

모르는 사람이 보면 부당하다고 느낄 수 있겠지만, 난 그냥 웃음이 나왔다.

변 팀장이니까.

“이번 주에 바쁜 일이 좀 많네요~.”

“그럼 다음 주에는 일찍 퇴근 안 할거지?”

“…….”

글쎄…… 그건 확답 못 하겠다.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홍지아가 말했다.

“요즘 우리 팀 마음이 편해져서 그래요. 강 대리님 긴장이 풀리셨어.”

“뭐어?”

요즘 홍지아를 볼 때면, 내가 이 팀의 막내 같다. 상사 둘을 모시고 있는 기분이다.

“이야~, 홍지아 씨 말 무섭게 하네.”

“맞잖아요? 아니에요? 간절함이 사라졌잖아요.”

“…….”

우리 ‘촬영 1팀’ 변경 전 팀명은 ‘영업 3팀’.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팀 실적이 너무 안 좋아서 해체될 위기에 처해 있었다.

촬영팀으로 바뀌면서 조금씩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고.

짧은 시간 내에 영업 1, 2팀에 비견되는 실적을 올리게 되었다.

제이엠인터내셔날과 2천만 원 계약 따낼 때만 해도 올해 매출 1등 해보자는 건…… 그냥 호기에 찬 말이었는데.

이젠 촬영 1팀은 안정적인 궤도에 올랐고, 정말로 매출 1위 가능성도 보인다.

다른 팀들은 오더 수주하러 뛰어다니고, 문전박대도 당하고 고생하고 있는데.

우리 팀은 가만히 있어도, 촬영 의뢰가 계속 들어 오고 있으니까.

심지어 스케줄 내에 소화할 수 없어서, 규모와 가격을 보고 고르는 수준이다.

그래서일까. 요즘 민경원 사장 얼굴 본지도 오래되었다.

민 사장은 잘되고 있는 팀에는 얼굴을 안 비춘다. 성과급 달라고 할까 봐.

“꼭 간절해야만 하냐? 우리 팀 그동안 고생 많이 했잖아.”

난 피식 웃으며 홍지아 씨 말에 대꾸했고, 변 팀장도 웃으며 말했다.

“뭐, 고생이라기보다는 눈칫밥을 많이 먹은 거지.”

나 빨리 가야 하는데, 홍지아는 분위기 파악 못 하고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몽고가 왜 망했는지 알아요? 유목민 마인드를 잃어버려서 그런 거라고요. 그들의 아이덴티티는 농경이 아니라 유목민이었다고요. 송나라를 정복하고 농경 사회의 편한 맛에 익숙해진 거죠. 위험을 무릅쓰며 개척하지 않고, 안주하는 삶을 선택한 거죠. 호랑이가 사냥하러 다니지 않고, 우리 안에서 풍족한 음식으로 살다 보니 고양이가 되어 버린 거고. 긴장감을 잃은 그들은 결국 망국의 길로…….”

홍지아…… 푼수인 줄로만 알았는데, 요즘 꼰댓기까지 추가된 거 같다.

빨리 가야 하는데…… 쓸데없는 소리 듣느라 6시가 결국 넘어버렸다.

말하는 도중에 미안하지만…….

“그러니까 지금 잘 나가고 있다고 만족하면 안 되고요. 다른 먹거리를…….”

“그래, 저녁 맛있게 먹어. 팀장님 저 급한 일이 있어서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꾸벅.

인사 후, 재빨리 일어났다.

“…….”

바람처럼 사라진 강태평을 바라보며, 홍지아는 입을 삐죽거렸다.

“씨이……. 말하고 있는데.”

변 팀장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아 씨, 적당히 좀 해. 입 안 아파? 그리고 연애를 좀 해. 젊은 친구가 만날 왜 야근이야?”

“야망이 생겼거든요.”

이런 말을 팀장 앞에서 내뱉는 홍지아가 참 신기했다.

변 팀장은 피식 웃었다.

‘어이구, 이 푼수.’

* * *

“어이쿠, 죄송합니다~.”

네모 씨와 네모삼촌이 기다리고 있었다.

네모 씨도 협회에 볼일이 있다며 합류했다.

“괜찮아요~. 회사원인데 이해해 줘야지.”

그들 뒤에 있는 건물을 보았다.

‘한국종이접기협회’.

짙은 갈색의 명패가 정문 옆 기둥에 박혀 있었다.

약 5층 정도 되어 보이는 건물이었는데, 외벽은 색바랜 아이보리색의 타일로 되어 있었다.

전체적으로 깔끔하긴 했지만, 꽤 오래된 건물 같아 보였다.

“태평 씨, 들어갈까? 여기 원래 근무 시간 칼인데, 네모튜브에서 방문한다니까 특별히 허용해 준 거야.”

일단 오기는 왔다.

이곳에 오는 거, 너무 깊이 들어가는 건 아닌지 고민됐었다.

하지만 오리가미를 정식으로 배우던 날, ‘돈이 되겠냐?’ 나의 물음에 대한 네모삼촌의 답은…… 날 이곳으로 이끌었다.

‘잘된 작품은 값을 매길 수가 없지. 미술 작품 같다고 생각하면 돼.’

“그래서 빨리 보고 나와야 해. 태평 씨 무슨 생각 해?”

상념은 떨치고 현실에 집중하자.

난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네, 어서 들어가시죠.”

건물 내부는 어릴 적 다니던 고등학교를 연상케 했다.

중앙 계단이 있고, 그 옆으로 사무실들이 쭉 늘어져 있었다.

“어디서 오셨어요?”

경비원이 나타나 살짝 목례를 하며 말을 거셨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네모튜브에서 왔는데요. 사무장님께 연락을 드렸었는데.”

네모 씨의 말에 경비원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네. 네모튜브에서 오셨군요. 얘기 들었습니다. 전시장 보러 오신다고.”

“네~, 맞아요.”

“전시장 위치는요~.”

네모 씨는 위치를 알려주려는 경비원을 제지했다.

“하하. 알고 있습니다. 저희 여기 자주 와요.”

“아~, 네. 제가 온 지 얼마 안 돼서.”

네모삼촌은 경비원에게 물었다.

“사무장님은 사무실에 계시나요?”

“네, 아직 퇴근 안 하셨습니다.”

“그럼 잘 보다가 가겠습니다~.”

“네~, 수고하세요.”

우리는 네모삼촌을 따라서 2층으로 올라갔다.

확실히 그는 이곳을 잘 아는 듯, 걸어가는 데 거침이 없었다.

“어, 여기야.”

[역사관]

네모삼촌은 팻말을 보며 말했다.

“역사관이 상시 전시관이라고 보면 돼.”

“…….”

“종이접기협회에서 공모전 수상작, 기증, 선물 받은 종이 조형물을 전시해 놓은 곳이야.”

‘역사관’ 안을 들어가려는데, 뭔가 좀 으스스한 기분이 느껴졌다.

늦은 시간에 오래된 건물. 인기척도 전혀 안 느껴지는 곳에 와서 그런 걸까.

“뭐 해? 어서 들어와.”

먼저 들어간 네모삼촌의 손짓에 나와 네모 씨는 눈을 마주치고는 들어갔다.

아마도, 네모 씨도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낀 게 아닐까 싶었다.

안으로 점점 들어가니, 유리관 안에 전시된 조형물들이 보였는데…….

“우와~.”

나도 모르게 입이 떡 벌어졌다.

밀짚모자, 바게트 빵, 보석, 펜……. 도저히 종이로 만들어졌다고 보기 어려운…… 현물과 거의 동일한 조형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모양도 그렇지만, 색감까지도 거의 똑같았다. 종이의 질감이 전혀 안 느껴질 정도.

“이, 이게 진짜 종이로 만든 거라고요?”

“하하. 신기하지?”

믿기지 않아서, 한번 만져보고 싶다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참 신기하다.

한편으로는 굳이 저걸 종이로 왜 만드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고.

“일반부 공모전 수상작이라 수준이 높아. 좀 더 안쪽으로.”

안으로 들어가니 이제야 좀 종이 질감 나는 느낌의 작품들이 있었다.

숲의 형상화, 3.1운동 하는 모습 등 좀 더 창작적인 조형이었다.

특히 인상적인 건 ‘하늘의 빛’이라는 작품이었는데, 푸르고 하얀 종이로 하늘을 형상화하고, 회오리 장미와 비슷한 모양의 다양한 색깔의 종이들이 그 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전 이쪽이 더 맘에 드네요. 아까 거는 종이 느낌도 안 나고, 무슨 모조품 같았어요.”

“하하. 나도 그래. 이쪽이 정통에 더 가깝지.”

정통…….

그러고 보니.

지금 보여준 작품들은 네모삼촌이 설명해줬던 ‘정통’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분명 지금까지 본 전시된 작품들은 접착, 분할, 결합을 많이 한 것 같은데.

전시장을 둘러보면 둘러볼수록 ‘정통’ 같아 보이는 작품은 단 하나도 안 보였다.

“네모삼촌.”

“응?”

“작품들이 멋지긴 한데. 저한테 정통을 강조하셨잖아요.”

“그랬지.”

“종이 조형은 정통은 불가능한 건가요? 네모삼촌이 얘기한 기준으로는 정통은 하나도 안 보이는데요.”

훗.

내 말에 네모삼촌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정통 방식으로 만든 종이 조형은 잘 없어.”

“왜요?”

“그야, 어려우니까. 종이를 자르고, 붙이고, 엮으면서 조형을 하면 훨씬 표현하기가 쉽잖아.”

“…….”

뭐야. 그럼 나에게 이상을 제시했다는 건가?

“태평 씨, 이쪽으로 와봐. 이게 진짜 보여 주고 싶었던 거야.”

전시관 가장 안쪽.

여러 개의 노란 조명이 집중해서 비추고 있는 곳에 조그만 작품이 하나 있었다.

음?!

“한국종이접기협회. 즉, 한국 오리가미가 설립되었던 1989년. 일본의 아카네 아다미 상이 기증한 작품이야.”

“…….”

네모삼촌이 설명하기 전부터 난 이 작품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노란색 종이로 만들어진 하늘로 승천하는 용.

용의 머리부터 꼬리 끝까지.

하나하나 디테일이 살아 있는데.

용의 수염, 발톱, 눈매, 심지어 비닐 한 조각까지 모두 표현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더 놀라웠던 건.

이건 종이 하나로 만든 게 분명하다는 것.

아무리 자세히 봐도 자르거나 붙인 흔적은 없었다.

“작품명은 류진(龍神). 우리나라 말로 용신이지.”

“와……. 진짜 어마어마하네요.”

종이라는 재료로 다양한 표현을 한다는 것도 충분히 신기하고 멋있었지만.

종이 한 장 그대로를.

오리거나, 붙이지 않으면서.

이런 디테일한 작품을 만들어 낸다는 건…… 신기하다 못 해 경이롭다고 느껴졌다.

심지어 어떻게 접어야 하는지 누가 알려준 것도 아닐 텐데.

이걸 접어낼 생각을 어떻게 했을까.

“이래서 종이 조형 창작은 쉽지 않아. 디테일한 부분을 구현해 내는 것도 어렵지만, 그 설계도까지 구상해야 하니까.”

꿀꺽.

류진(龍神). 이 작품을 만난 이후로 난 자연스럽게 이쪽 세계에 빠져드는 기분이었다.

아직도 시선을 못 떼고 혼이 나가 있는 날, 네모 씨와 네모삼촌은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네모 씨!”

전시관 입구 쪽에서 낯선 사람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또각. 또각.

날카로운 구두 소리에 난 시선을 돌렸다.

흰 테 안경을 쓴 차가운 인상의 중년 여성이 네모 씨와 악수를 하고 있었다.

“사무장님, 안녕하세요.”

“호호. 요즘 많이 바쁜가 봐요. 얼굴 보기 힘드네~.”

“하하. 바쁜 게 좋은 거죠.”

사무장은 네모삼촌과도 가볍게 인사한 후 날 바라봤다.

“이분은?”

네모 씨는 날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하는 듯했다.

‘네모의 신’ 익명으로 활동하고 있고, 난 얼굴 드러내는 게 싫다고 했었기 때문에.

하지만……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 혹시.”

사무장은 오른손을 내밀었다.

“이거 만드신 분?”

그녀의 손 위에 ‘신의 학’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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