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손으로 살아가기-31화 (31/156)

오리가미 (1)

* * *

갑자기 이상한 말을 하는 네모삼촌이 이상했다.

종이 접는데 ‘혼’ 이야기가 왜 나오지.

“고대에는 종이접기가 주술의 용도로도 쓰였거든. 뭐, 최소한의 기원 정도는 알아두는 게 좋잖아.”

“…….”

“어쨌든 지금도 무형의 종이로 하나의 모형을 창조해내는 건 동일하니까. 종이에 혼을 불어넣는다고 생각하면 좀 더 예술 하기가 좋지.”

“흠……. 뭐, 그렇겠네요.”

종이에 담긴 혼을 보존한다. 그래서 종이를 훼손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럼 종이를 찢거나, 붙이는 걸 하면 안 된다는 건가요?”

네모삼촌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건 종이접기가 아니라 종이 조형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해.”

“아…….”

“넓은 의미에서는 종이접기이긴 해.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달라. 난 강태평 씨는 정통으로 발전해 갔으면 좋겠어.”

“…….”

“그냥 종이 한 장으로 끝내버리는 거. 오리거나 붙이지 말고.”

“왜죠?”

“세계적으로도 그걸 진짜로 인정해 주기도 하고…….”

네모삼촌은 날 그윽하게 바라봤다.

“태평 씨라면 그 길로 가도 충분할 것 같아서. 뭐, 물론 태평 씨가 종이 조형으로 배워보고 싶다면 어쩔 수 없지만.”

난 네모삼촌이 한 말을 곰곰이 생각하며, 내 손을 바라봤다.

나를 잘 지켜보고 하는 말이니까.

나도 뭐 굳이 너무 확장해서 벌리고 싶지는 않다.

그의 제안대로 하는 게 낫겠다.

“좋아요. ‘종이접기’로 가죠. 정통으로요.”

“하하. 그래. 방향은 정했군. 다행이다. 난 종이 조형은 잘 모르는데.”

뭐야……. 그래서 유도한 거였어?

그리고 네모삼촌은 ‘오리가미’, 즉 종이접기의 역사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난 묵묵히 그의 말을 들었다.

“그러니까 19세기에 일본에서 대유행을 타서, 일본 용어인 ‘오리가미’라는 말이 국제 공용어가 된 거야. 거의 뭐, 종이접기 종주국처럼 되어 버렸지.”

“흠……. 그렇군요.”

“종이접기의 법칙은 간단해.”

# 정통 종이접기의 법칙

1) 정사각형의 종이를 사용.

2) 접착, 분할, 결합해서는 안 됨.

3) 완성된 작품을 어느 각도에서 봐도 무엇을 표현한 것인지 알아볼 수 있어야 함.

그가 알려준 법칙을 몇 번 되뇌었다.

뭐……. 그리 어렵거나 복잡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정사각형 종이 하나로 그대로 접으면 된다는 뜻.

“요즘은 종이접기가 아트 개념이 강해서 이 법칙이 많이 희석됐거든? 하지만 이게 정통이고, 이 법칙을 지킨 작품이 높이 평가돼. 물론, 이것을 지키면서 멋진 작품을 만들긴 쉽지 않지.”

“뭐……. 제가 예술 하자는 건 아닌데. 높이 평가 안 되도 돼요. 그저 돈만 잘 벌 수 있으면.”

“높이 평가되어야 돈이 잘 벌리겠지?”

아……. 하긴 그렇네.

“자~, 그럼 실전으로 들어가 볼까.”

* * *

네모삼촌은 색종이를 여러 장 꺼내어 하나씩 접으며 설명했다.

“우선 용어를 알아야 하니까.”

스윽. 스윽.

그는 종이를 사각형 모양으로 반으로 접었다.

“이것을…… ‘사각 접기’라고 한다.”

“네.”

이번엔 종이를 삼각형 모양으로 반으로 접었다.

“이것은…… ‘삼각 접기’라고 한다.”

“…….”

산 접기, 계단 접기, 계곡 접기, 물고기 접기, 아이스크림 삼단 접기, 방석 접기…….

네모삼촌은 하나씩 접으면서 용어를 알려주는데.

용어는 그럴듯한데, 막상 해보니…… 별거 아니었다.

이미 신의 학 접을 때 다 했던 것들이다. 용어만 모를 뿐. 이걸 굳이…….

“이거 다 아는 건데, 용어를 외워야 해요?”

“응? 알아?”

“신의 학 접을 때 다 했던 거잖아요.”

“뭐……. 그렇기야 하지. 근데 용어는 모르고 접었잖아.”

“알고 접어야 신의 학이에요?”

“…….”

네모삼촌은 머리를 긁적였다.

“알아야 책을 보더라도 따라 할 수가…….”

“책 말고 네모삼촌한테 배우잖아요.”

반드시 배워야 하는 거라면 하겠는데, 용어 숙지는 지금 내게는 굳이 필요 없어 보였다.

그럴 시간도 없고.

네모삼촌은 약간 당황한 표정이었다.

“흠……. 예정보다 많이 빠른데? 여기까지 1주 과정인데.”

“1주 과정이요?”

“나 종이접기 마스터거든. 지도자 자격증 갖고 있어.”

“종이접기도 자격증이 있어요?”

“응. 한국종이접기협회에서……. 왜? 태평 씨 관심 있어?”

“아니요.”

“흠! 그러면 다음 과정으로.”

네모삼촌이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신의 학을 접었으니 기본형은 마스터한 거고, 기본형 응용작품 연습까지 끝났다고 봐야겠지. 그렇다면 기본이 없는 작품을……. 뭐야, 바로 3주 차로 넘어가네?”

“…….”

“잠깐만. 내가 지금 접는 거 잘 봐봐.”

네모삼촌은 이마에 땀을 흘리며 뭔가를 열심히 접었다.

약 10여 분 뒤.

“휴~, 오랜만에 만드니까, 어렵네.”

그가 만든 것은 장미꽃 모양의 종이였는데, 소용돌이치는 꽃잎 모양이었다.

“태평 씨, ‘회오리 장미’라는 작품이거든? 기본형이 없는 작품.”

기본형이 없는 작품?

“말 그대로야. 자기가 만들었던 종이학이랑 방식이 좀 다르지 않았어?”

흠……. 종이학 접을 때는 약간 각지게 접어서 했다면, 회오리 장미는 둥글게 말거나, 밀어 넣거나 하는 방식?

근데 딱히 잘 모르겠다. 그냥 종이 접은 거 같은데.

열심히 하는 네모삼촌을 위해서 약간은 맞춰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네……. 좀 달랐어요.”

“하핫. 그렇지? 이거 할 수 있겠어?”

난 머릿속으로 좀 전에 네모삼촌이 했던 것을 떠올려 봤다.

“글쎄요. 한번 해볼게요.”

스윽― 스윽―.

종이를 접기 시작했다.

하여간…… 참 신기하다.

문득, 눈보다 손이 빠르다는 유명한 영화 대사가 떠오른다.

타짜가 눈보다 손이 빠르다면.

금손은 머리보다 손이 먼저 움직인다.

접기 시작할 때는 긴가민가했는데, 막상 손에 종이가 닿으니 순식간이다.

5분도 채 안 걸렸다.

뚝딱.

“된 거 같은데요?”

“…….”

네모삼촌은 입을 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뭐…… 뭐지.”

그는 말을 더듬거렸다.

“다음은요?”

“다, 다음? 다음은 4주 차 마스터 과정인데.”

그는 자꾸 말을 더듬거렸다.

정식으로 배운 지 이제 30분 정도 지났다.

그중 10분은 ‘오리가미’ 역사 공부, 10분은 네모삼촌이 ‘회오리 장미’ 접는 데 기다린 시간이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지?”

이게 그렇게 대단한 건가.

“자네 진짜 종이접기 처음 맞지?”

“엄밀히 말하면 처음은 아니죠. 신의 학 몇 번 접었으니까.”

“그거 말고 다른 거 접어본 적은?”

“당연히 없죠.”

네모삼촌은 고민하더니, 뭔가 결심한 듯싶었다.

“좋아. ‘울부짖는 공룡’ 가자.”

“‘울부짖는 공룡’이요?”

“기본형이 없는 고급 과정.”

뭔가 자꾸 말이 늘어 간다.

“그럼 기다리면 되죠?”

‘회오리 장미’를 할 때는 네모삼촌이 접는 데 10분 정도 걸렸었다.

“아니, 이건 오래 걸려서 당장 못 접어. 나도 접어본 지 오래돼서 기억도 잘 안 나고.”

“그럼 어떡해요?”

“내가 사진을 보여줄 테니, 그거 보고 접어볼 수 있을까?”

사진? 접는 과정도 못 본 것을 접어보라고?

“하아……. 글쎄요.”

왠지 자신 없는데.

“고화질이라 사진 확대도 가능하니까, 일단 한번 해봐.”

“몇 픽셀인데요?”

“…….”

사진 얘기에 나도 모르게 그만.

“아, 아니에요. 일단 알겠으니까, 보여 주세요.”

네모삼촌은 태블릿을 꺼내었고, 그 안에 초록색 공룡 한 마리가 울부짖고 있었다.

머리 모양, 이빨, 살아 있는 턱선. 발톱까지.

디테일이 장난 아니었다.

이걸 종이 한 장으로 접은 거라고?

“네모삼촌이 만든 거예요?”

“아니야. 나도 이렇게까지 퀄리티 있게는 못 접어. 이왕 보여 줄 거 가장 잘 만든 거를 가져왔지.”

“아……. 네.”

난 사진을 확대해가며 꼼꼼히 살폈다.

와……. 이거 쉽지 않겠는데.

이게 과연 사람 손으로 만든 게 맞나?

믿기지 않는데.

“이거 진짜 사람 손으로 접은 거 맞죠?”

“맞아.”

“접착, 분할, 결합 안 하고, 종이 한 장으로요?”

“그렇다니까.”

내가 놀라워하는 모습에 네모삼촌의 표정이 좀 밝아졌다.

“해볼 수 있겠어?”

“하아~.”

책상 위에 놓인 종이 하나.

난 파란색 종이를 물끄러미 응시하며, 손가락 스트레칭을 했다.

“일단 한번 해볼게요.”

휴우~.

나의 금손을 파란 종이 위에 살포시 올려놓았다.

* * *

약 10분 뒤.

네모삼촌과 강태평의 사이에는 ‘울부짖는 공룡’ 한 마리가 놓여 있었다.

본인이 만들어 놓고도, 강태평은 신기한 듯 공룡을 바라보고 있었고.

네모삼촌의 시선은 공룡이 아닌 강태평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는 강태평이 더 신기했다.

마치 귀신을 본 것처럼, 겁먹은 듯한 얼굴로 강태평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건 정말…… 천재라는 표현으로도 모자랄 정도야. 닉네임이 네모의 신이더니……. 정말로 신인가?’’

“얼추 비슷한 거 같은데요? 어때요?”

“프로야.”

“네?”

“이건 프로라고…….”

“…….”

“오리가미 아티스트.”

네모삼촌은 말문이 트인 듯 입을 튀기며 찬양하기 시작했다.

“정식이고 뭣이고, 다 필요 없어. 당신은 이미 다 하고 있다고. 종이의 혼을 살리고 있고, 기본, 응용, 기본 없는 고급까지 모두 다. 거기다 디테일까지 살아 있어. 사진만 보고 따라 접는 눈썰미는 또 어떻고.”

역시 네모삼촌은 감성적이었다.

흥분해서 눈까지 붉게 충혈되어 있었고, 강태평은 조금씩 부담을 느껴가고 있었다.

“전문가 과정도 끝났어. 바로 창작으로 넘어가자. CP(Crease pattern), 다이어그램, 박스 플릿(Box pleat) 하면 될 것 같아.”

강태평은 생소한 용어에 어리둥절했다.

‘창작? 종이접기를 창작한다고? 그리고 용어들은 또 뭐야.’

“그 뜻은…….”

네모삼촌은 의심의 여지 없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태평 씨는 오리가미 공예가로서 자질이 충분해.”

“…….”

“이런 기본은 할 필요도 없고, 시간도 아까워. 바로 작품 활동하자고.”

꿀꺽.

난 ‘울부짖는 공룡’을 보았다.

내가 만들긴 했지만…… 새삼 좀 신기하긴 하다.

이걸 어떻게 만들었지?

내가 만들고도 어떻게 만들었는지 의아해하는 모양새라니.

풉!

나도 모르게 실소가 터져 나왔다.

금손……. 진짜 가면 갈수록 대박이네.

# 종이 공예

Before: 들어본 적도 없고, 상상도 안 해봤다.

After: 손대자마자 아티스트.

“저 그럼 어떻게 하면 되는데요?”

“오늘 이동하기엔 좀 늦었고, 자기 언제 시간 돼?”

“어디에 가야 해요?”

“응. ‘한국종이접기협회’. 거기 근무 시간이 있거든. 방문하겠다고 미리 얘기를 해두면 되는데, 오늘은 너무 늦었어.”

강태평은 당혹스러웠다.

‘종이접기협회? 이거 너무 깊이 들어가는 거 아닌가.’

“거기까지 꼭 가야 해요?”

“창작은 가르칠 수가 없거든. 직접 봐야지. 거기에 전시물들이 있어서.”

“아…….”

네모삼촌은 강태평이 고민하는 얼굴을 보다가 피식 웃으며 물었다.

“왜? 부담스러워서?”

“…….”

“하핫.”

아무 말 못 하는 강태평을 보며 네모삼촌은 큰 소리로 웃었다.

“이봐! 자네 같은 사람은 부담감 좀 가져야지. 그 능력 갖고 맘 편하게 살려고 했어?”

“…….”

“가진 게 있으면 보여줘야 하는 게 재능충의 의무 아닌가?”

네모삼촌은 강태평의 눈을 빤히 보고 있었다.

“부담감을 즐기라고. 반드시 그래야만 해.”

예상치 못한 네모삼촌의 의미심장한 말에 강태평은 잠시 고민했다.

그러다가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내일 출근해서 스케줄 보고 언제 갈지 연락 드릴게요.”

“하하. 그래.”

네모삼촌은 뭐가 그리 신나는지 싱글벙글이었다.

근데, 강태평은 뭔가 더 할 말이 있었다.

‘예술적 얘기하고 있는데, 이런 질문을 해도 되려나. 좀 찬물 끼얹는 거 같긴 한데.’

네모삼촌은 강태평의 표정을 살피고는 물었다.

“왜? 할 말 있으면 해.”

“뭐…… 창작이니, 공예니 하는 거요.”

“응.”

“그거 돈 되는 거 확실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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