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타가 오다 (1)
* * *
집으로 돌아오는 길.
곰곰이 생각했다.
“참……. 내가 좀 변하긴 했나. 그런 대책 없는 소리를…….”
거래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나면 얹혀서 살 테니 연락 달라고?
그 가죽 재킷 남자에게 호기롭게 말했던 어이없는 제안.
3억.
3억이면 보육원 및 그 주변 땅까지 모두 살 수 있다.
보육원이 완벽하게 지켜지는 것이다.
왜 난 3억이 없을까?
그냥 수중에 있었다면, 해결될 일이었는데.
난 가질 수 없는 돈인가?
돈 욕심은 없이 살았지만, 정말 필요한 순간에 없으니 아쉽다.
일단 그 남자가 했던 말을 생각해 보면…….
보육원 땅만 사면 2억에 가능하다고 했었다.
하지만 그 남자 태도를 봤을 때, 어떻게든 땅을 모두 현금화시킬 것처럼 보이던데…….
보육원부지만 2억에 내가 사고, 주변 부지에 축사나 러브러브 한 게 생긴다면…….
보육원은 외진 곳이긴 하지만, 서울과 멀지 않고, 주변 경관이 좋다.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일이었다.
아셀라 보육원 옆 건물이 러브호텔?
안 돼. 그냥 다 사야 한다.
젠장……. 근데 중요한 건.
내 수중엔 꼴랑 1천만 원 정도밖에 없다.
사진 공모전 대상 성과급 500만 원.
너튜브 출연료+후원금 600만 원.
합쳐서 1,100만 원인데.
근데 여기서 기분 내느라 소곱창 사 먹은 것과 수녀님께 드린 봉헌금.
이틀 만에 100만 원가량이 사라진 것이다.
“허허. 참 묘하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어제만 해도 600만 원에서 소곱창 하나 사 먹을 땐 돈이 참 하찮다고 생각했는데.
3억이 목표치가 되어 버리고, 수중에 있는 돈이 그에 한참 미치질 못하니까.
어제 먹은 소곱창이 엄청 아깝다.
그냥 2인분만 먹고 올걸.
3억…….
막막하다.
* * *
다음 날 일요일.
구립도서관에 왔다.
취업 준비할 때 이후로 도서관은 정말 오랜만이다.
이곳에서 생각을 정리하며, 좀 꼼꼼하게 따져보려 한다.
*현재 보유금액: 1,030만 원
최근에 모인 돈이다. 이게 전부다.
회사를 3년을 넘게 다녔지만, 모아 둔 돈은 없었다.
낭비벽이 있거나, 씀씀이가 헤퍼서 그런 건 아니다.
과거엔 똥손 덕분에 돈 쓸 일이 많이 생겼었다.
부서지거나, 다치거나.
내가 의도치 않더라도, 어쨌든 내 손이 저지른 일들이었기 때문에 수리비나 치료비로 나가는 돈이 꽤 많았다.
돈 좀 모았다 싶으면, 여지없이 큰일이 터졌었다.
그런 걸 상쇄하고 남을 만큼 월급이 많은 것도 아니었고.
‘아니야. 그만 생각하자.’
피해의식 따위는 벗어버리자.
이젠 금손의 강태평이니까.
과거에 연연해서는 안 된다.
그럼, 앞으로를 생각하자면…….
*월 예상 수입.
급여: 211만 원
네모튜브 출연료(주2회): 800만 원
후원금: ???(최소 200만 원)
후원금은 얼마가 들어올지 모른다.
일단 이번에 2주 동안 200만 원이 들어왔으니까, 월 200으로 가정하려 한다.
계획이라는 건 보수적인 게 좋으니까.
그렇게 했을 때…….
*월 총 예상 수입 1,211만 원
3억에서 현재 보유금액 1,030만 원을 빼고, 그 금액을 월 예상 수입 1,211만 원으로 나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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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24개월 걸리네.
물론 이건 숨만 쉬고 산다는 가정하에서다.
그렇다면…….
난 아프지 않도록 건강 상태를 유지하면서.
밥은 최대한 회사에서 해결하고.
자발적 1일 1식을 하면서.
간디가 되어가는 것이다.
그러면 24개월 만에 3억을 모을 수 있다.
“하하.”
물론, 외부 환경도 도와줘야 한다.
24개월 동안 그 땅이 안 팔려야 하며,
물가나 시세도 오르지 않아서, 최소한 현재 가격을 유지해야 한다.
“하하하.”
자꾸 헛웃음이 나왔다.
주변 사람들이 힐끔거리며 날 쳐다봤지만, 어이없는 실소가 자꾸 번져 나왔다.
3억? 보육원 부지 매입?
지금 상태로는 아득히 멀어 보였다.
아니, 가능성이 전혀 없어 보였다.
돈? 딱히 관심이 없어서 깊이 생각 안 해보고 살았다.
그냥 불편하지만 않으면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막상 필요한 순간이 되니, 왜 이렇게 안일하게 살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3년간 그저 회사만 열심히 다니는 게 최선이었을까?
뭐라도 좀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시간은 돈을 기다려 주지 않는데.
이래서 돈에 구속받고, 돈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는 건가.
지금처럼 살다간 계속 돈을 좇으며 살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집에 가자.”
난 계획이라고 종이에 적어놨던 걸 찢어서 휴지통에 버렸다.
터벅. 터벅.
그나마 다행이다.
지금이라도 뭔가 깨달은 것 같아서.
모아서 될 일이 아니다.
* * *
“어째, 오늘 강 대리가 좀 이상한데?”
변 팀장이 내 옆에 와서 힐끔 바라보고는 말했다.
“…….”
“어디 안 좋아?”
“아니요. 평소랑 똑같습니다.”
“에이~, 똑같은 게 아닌데?”
변 팀장은 내 표정을 찬찬히 살피면서 말했다.
“주말에 무슨 일 있었어?”
대꾸를 안 하자 변 팀장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무슨 일 있을 리가 없는데, 혼자 지내고 여자 친구도 없고……. 운동도 안 하잖아. 아!”
변 팀장은 뭔가 생각난 듯 얼굴을 가까이 대고 소곤댔다.
“네모튜브? 요즘 잘 안 돼?”
“훗.”
이렇게 관심 가져 주는 거. 고맙기도 하면서도 참…… 왜 이러나 싶다.
“주말에 네모튜브 일정 없었습니다.”
“아, 그래? 거참, 이상하네. 이거 먹어.”
변 팀장은 알사탕 두 개를 건네며 한쪽 눈을 찡긋했다.
“아무래도 당 떨어졌나 보네. 먹고 힘내~.”
그냥 허무한 느낌이 드니, 의욕이 잘 안 생겨서 그렇다.
팀원들 보는 게 즐겁고, 회사 생활에도 만족하지만.
이렇게 돈 벌면서 살아야 하나?
온종일 회사에 있고, 월 200씩 받으면서?
이게 최선일까?
“휴우~.”
나도 모르게 한숨이 쉬어졌다.
“아, 왜 그래~. 형이라고 생각하고 얘기해 봐. 걱정되잖아.”
“……. 팀장님.”
마침 홍지아는 어디 갔는지, 자리에 없었다.
“지금의 삶 만족하세요?”
“뭐?”
“돈 안 부족하세요?”
변 팀장은 황당한 듯 날 바라보다가 웃었다.
“하하. 뭐야. 갑자기 요상한 질문을 두 개나 던지네? 자기 사춘기야?”
“…….”
“아무래도 요즘 좋은 일 자꾸 생기니까, 사춘기 왔나 본데?”
그런가? 나도 그냥 피식 웃었다.
“만족할 만한 삶이 어딨나? 그거야 내 눈높이에 따라서 달라지는 거지. 눈높이를 낮추면~ 조금만 좋아도 만족하는 거고, 높이면~ 뭘 해도 불만족스럽겠지.”
“…….”
“그리고 돈이야 항상 부족해~. 대출만 해도 이미 몇 갠데. 우리 집 애가 둘인 거 알지? 게다가 우리 외벌이잖아.”
변 팀장은 웃으며 말했다.
“대출도 다~ 자산이라고 생각하면서 살면 돼. 내가 받을 능력되니까 대출해주는 거 아니야? 응? 은행에 인정받는다고 생각하면서. 하하. 다들 그렇게 사는걸, 뭐~.”
“만약, 당장 큰 목돈이 없어서 가족을 지킬 수 없는 일이 생긴다면요?”
난 내 상황에 견줄 수 있는 질문을 해봤다. 그가 좋은 답을 해주길 진심으로 바랐다.
하지만, 이 질문에 평온한 미소를 짓고 있던 변 팀장은 당황했다.
“그, 글쎄다~. 그럴 일은 안 생길걸? 하하.”
변 팀장은 생각하기도 싫다는 듯, 손사래를 치고 자리로 돌아가 버렸다.
* * *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오늘은 네모튜브 촬영이 있는 날.
난 재빨리 인사하고, 칼퇴했다.
뭐가 옳은지는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네모튜브는 변동적이다.
내가 하는 만큼에 따라서 수입이 늘어날 수도 줄어들 수도 있다.
회사에서는 많이 하든 적게 하든 큰 변동이 없다.
뭐, 간혹 있기는 하지. 상여금이라는 명목으로.
500만 원 수수료의 칠순 잔치를 700만 원에 해냈다고 상여금 10만 원 받은 정도? 이 정도의 변동성은 있다.
하지만 안정적이라는 장점은 있긴 하다. 매달 급여는 꼬박꼬박 나오니까.
뭐……. 중소기업이라서 그것도 절대적이라고 보긴 어렵지만.
“어서 오세요~.”
네모 씨는 날 반갑게 맞아주었다.
“안녕하세요.”
네모삼촌과 정카도 이미 와 있었다.
“굿 이브닝~, 미스터 강~.”
“태평 씨~, 어서 와요.”
네모 씨가 말했다.
“오늘은 ‘신의 학 버전 5’?”
종이학만 주야장천 만들고 있다.
그래도 봐주는 구독자들이 있다는 게 신기했다.
“뭐, 그렇죠. 아직 할 줄 아는 게 없으니.”
네모삼촌이 웃으며 말했다.
“태평 씨, 그러지 말고 오늘 딴 거 한번 해볼래?”
“뭐요?”
“뭐……, 아무거나. 산토끼는 어때? 저번에 하려다가 당신 때문에 그만둔 거. 집토끼는 내가 했었으니…….”
토끼타령에 네모 씨는 말을 끊었다.
“뭔 전생에 토끼였나. 그냥 신의 학 해요. 태평 씨는 절대로 어설프게 가면 안 돼요. 그게 콘셉트니까.”
“콘셉트?”
“네, 신비주의. 태평 씨는 신이잖아요. 네모의 신.”
“아……. 네.”
결국 ‘신의 학 ver.5’로 녹화를 시작했고, 성공적으로 잘 마쳤다.
“아오~, 볼 때마다 힐링 돼.”
정카는 카메라를 내리면서 활짝 웃었다.
“오늘은 네모삼촌 덕이 컸어요. 화면에 두 사람 손이 나와도 그렇게 꽉 차 보이지 않네요.”
네모 씨는 녹화된 영상을 보며 말했다.
오늘은 신의 학을 하얀색 종이로 만들었고, 네모삼촌은 달을 만들었다.
‘신의 학 ver.5’의 주제는 ‘월광 소나타’였다.
구독자들의 반응을 봐야겠지만, 요즘 네모튜브는 ‘따라 하기’가 아닌 ‘감상하기’ 성격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대중성을 잃을까 봐 우려되는 부분도 있었지만, 어쨌든 구독자들 반응이 좋으니 이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뭐, 할 말 있어요?”
녹화가 끝났는데도, 안 가고 있는 나에게 네모 씨가 물었다.
평소에 나는 다음 날 출근에 지장 된다며, 녹화가 끝나자마자 스튜디오를 나갔었다.
“……. 지난주에 송금해주신 거 잘 받았습니다. 고마워요.”
“허헛. 고맙긴요. 당연한 대가를 드린 건데. 도리어 제가 고맙죠. 전 많이 번 만큼 많이 드린 거뿐입니다.”
“아……. 네.”
뭔가 할 말은 있지만, 어떻게 꺼내야 할지.
이상하게 돈 얘기는 꺼내기가 참 껄끄럽다.
“태평 씨, 혹시 돈 필요해요?”
“…….”
놀라서 그를 바라봤다.
“하하. 뭘 그렇게 놀라요? 지난주에 돈 보내준 거 고맙다고 하면서 쭈뼛거리시니까…….”
“아……. 네.”
난 머리를 긁적이며 대꾸했다.
“처음엔 신기하기도 하고 없어질 것처럼 당혹스러웠는데, 정신 좀 차리고 나니까 욕심이 생기네요?”
솔직하게 말했다.
“실제로 돈이 필요한 일이 생기기도 했고요.”
네모 씨는 두 손을 펼치며 환하게 웃었다.
“돈이라는 게 내 가치를 입증하는 측면도 있거든요. 필요에 의한 것 외에도, 많이 버는 것 자체를 즐길 줄도 알아야 합니다.”
그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돈 벌고 싶으시다는 건, 일을 많이 하시겠다는 거잖아요. 저야 완전 환영이죠.”
옆에서 가만히 듣던 정카도 말했다.
“그럼~ 완전 환영이지.”
네모 씨는 의자를 가져와 내 앞에 당겨 앉았다.
“자~, 일단 돈 필요한 일이 생기셨다니…… 얼마나 필요한지 들어볼까요?”
“…….”
“그에 맞춰서 제가 일을 꾸며볼게요. 얼마를 원하시든 태평 씨라면 가능할 겁니다.”
이렇게까지 해주는 그가 고맙다 못해, 좀 의아했다.
너무 친절한 사람은 의심해야 한다는…… 내 오랜 지론이 있다.
네모 씨는 이런 내 마음을 눈치챘는지, 손사래를 쳤다.
“하하. 태평 씨에게 고마운 게 많아서 힘닿는 대로 돕고 싶을 뿐이에요. 다른 의도는 없어요.”
“…….”
“태평 씨의 팬이기도 하고요.”
네모 씨의 눈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그렇다면…… 더 의심하지 말고.
일단 얘기해 보자.
“3억이 필요합니다.”
“…….”
네모 씨는 의자를 다시 뒤로 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