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씩 달라지는 일상 (2)
* * *
진일상사에 입사하여, 첫 달에 통장에 찍힌 월급은 178만 원.
작년부터 200만 원을 겨우 넘겼다.
매년 월급 10만 원 정도를 더 올리려고 치열하게 성과 경쟁하고, 인사평가 준비하고, 승진 시험…….
물론 일 자체에 재미를 느끼거나, 돈보다는 성취감을 중시하는 직원들도 있지만.
아마 대부분이 회사에 다니는 목적은 ‘돈’일 것이다.
“와……. 이게, 이렇게 쉽게 단순히……. 이래도 되나?”
‘600만 원.’
내 월급의 대략 세 배다.
그것도 2주 동안 겨우 4차례 출연하고 받은 돈이다.
난 몇 번을 통장에 찍힌 금액을 확인하였다.
신기루처럼 보이기도 하고…….
월급 외의 수입이다 보니, 공돈 생긴 기분이기도 했다.
좋기는 한데, 이걸 어디다 쓰지.
내가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애인,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다.
딱히 뭔가를 갖고 싶다는 물욕도 없다.
하지만 확실한 건.
든든한 기분이 든다.
아무리 써도 다시 생겨날 것 같은 기분.
돈이라는 게, 꼭 필요해야만 좋은 건 아니구나.
자신감이 한차례 또 업그레이드되는 기분이었다.
“좋아. 오늘 저녁은 소곱창이다.”
난 발걸음을 돌렸다.
소곱창집.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지만, 너무 비싸서 잘 와볼 수 없는 곳.
심지어 회사 회식도 소곱창 집에서는 잘 안 한다.
“어서 오세요~.”
난 안에 들어가 두리번거렸다.
“몇 분이세요?”
“혼자입니다.”
“…….”
난 아무렇지도 않게 대꾸했다.
“어디 앉을까요?”
“……. 뭐, 편한데 앉으시면 되긴 하는데.”
평소에 혼자 온 손님을 본 적이 없어서일까?
사장님 표정이 떨떠름하다.
난 창가 쪽에 앉았다.
사장님은 메뉴판을 올려놓으며 말했다.
“죄송한데…… 최소 2인분은 주문하셔야 하는데……. 그리고 곧 있으면 피크 타임이라 자리를 좀…….”
난 메뉴판을 열어보지도 않았다.
“소곱창 3인분 주세요.”
“네?!”
사장님의 표정이 밝아지고 있었다.
“술은 백십세주로 주시고요. 육회도 한 접시 주세요.”
“어이쿠야.”
난 오늘 저녁은 밥 대신 소만 먹을 생각이다.
포만감을 극대화하는 탄수화물 따위는 먹지 않을 것이다.
소의 곱창, 소의 대창, 소 회…….
술도 평소 안 먹어봤던, 소주의 두 배 이상 가격 되는 걸 시켰다.
“사장님, 배가 많이 고프거든요. 빨리 주세요.”
“하하. 네! 알겠습니다!”
약 한 시간 동안.
나만의 소 파티가 열렸다.
오로지 곱창만으로 배를 가득 채웠다.
“밥 볶아 드려요?”
사장님은 아주 친절했다.
테이블 주변을 서성이며, 먹는 동안 불편하지 않도록 신경을 많이 써주었다.
“아니요. 밥은 됐고요. 소곱창 1인분 더 주세요.”
“우와!”
저녁 시간이 끝나 가지만, 가게에 손님은 몇 테이블 없었다.
피크 타임 어쩌고 했던 건 그냥 바람이었나.
소곱창 4인분에 육회 한 접시.
백십세주는 두 병을 마셨다.
“으아~, 좋다.”
고급지게 느껴지는 포만감.
난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대로 갔다.
“얼마에요?”
“11만 6천 원입니다~.”
“넵.”
난 체크카드를 꺼내어 건넸다.
띠릭. 띠릭.
“카드가 안…… 되는데요?”
“아…….”
체크카드용 통장은 따로 쓰는데, 잔액이 없는 걸 깜빡했다.
난 신용카드는 사용하지 않는다.
“다른 카드…… 있으시죠?”
사장님의 눈빛이 약간 불안했는데, 애써 침착해 보이려 하는 모습이었다.
“아, 저 카드가 이거밖에 없거든요.”
“…….”
난 핸드폰을 꺼내며 물었다.
“계좌이체 해도 되나요?”
“헉! 물론이죠!”
사장의 얼굴은 금세 또 싱글벙글.
그가 알려준 계좌로 송금을 했다.
사장은 밖까지 배웅해 주었다.
“고맙습니다! 또 오세요!”
난 여유 있는 미소로 그의 인사에 화답했다.
11만 6천 원…….
혼자 먹는데, 좀 과했나? 싶은 생각이 잠깐 들었는데, 난 고개를 저으며 피식 웃었다.
600만 원 벌었는데, 이까짓 거.
* * *
다음 날 주말 아침.
주말…….
예전엔 혼자 있을 수 있어서 주말이 좋았다.
각종 위험에서 안전해질 수 있고, 유일하게 긴장을 풀 수 있는 시간.
내 손으로 뭐만 하면 위험해졌었으니까, 그래서 초긴장 상태로 살아야 했고.
하지만 이젠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게 더 즐거워져서, 주말이 더 싫다.
금손으로 살아온 지 이제 몇 달 되었는데, 여전히 주말엔 딱히 할 일이 없다.
‘홍지아한테 소개팅 좀 시켜달라고 해볼까.’
이런 생각도 몇 번 들었지만,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요청하지 않아도 알아서 좀 해주면 좋을 텐데…….
이번 주말엔 네모튜브 출연 일정도 없고.
침대에서 빈둥대며 누워 있는데, 좀이 쑤셔서 견딜 수가 없었다.
“어머니 만나러 가볼까.”
그래……. 적어도 날 반겨주는 곳이 하나 있지. 아무 때나 가도 되고.
아셀라 보육원.
김성애 수녀님은 날 보자마자, 청소기부터 맡기셨다.
“태평아~, 능력 좀 보여다오. 우리가 널 얼마나 기다렸다고~.”
“하하. 맡겨만 주세요.”
우에엥―!
내 손을 맞이한 청소기는 예전처럼 야수의 울부짖음으로 모든 걸 빨아들였다.
순식간에 보육원 전체를 돌았고, 구석진 곳 먼지까지 완벽하게 빨아들였다.
“고거 참 신기하단 말이야. 너 가고 나면 청소기가 구닥다리로 돌아가 버리거든.”
“하하. 청소기가 사람 타나?”
“그러게 말이다. 아주 제대로 고물인 거지, 뭐.”
도착하자 청소기를 돌린 후, 난 수녀님을 마주 보고 앉았다.
“어머니, 건강하셨죠?”
난 김성애 수녀님을 어머니라고 부른다.
“오냐. 태평이 얼굴이 많이 좋아졌구나.”
“그래요?”
“응. 많이 편안해졌어. 보기 좋아.”
수녀님은 물끄러미 내 눈을 바라보았다.
단순히 바라봐 주기만 하는데도, 따뜻했다.
“근데 요즘 좀 자주 오는 거 같다?”
뜨끔.
“심경에 변화가 생긴 거니? 만날 사람이 없는 거니?”
예전엔 일 년에 한 번도 올까 말까 했다.
속초에서 살아 돌아온 뒤로는 거의 매달 오는 것 같다.
“역시, 우리 어머니는 예리하셔요. 하하.”
“그래? 내가 물은 것 중에 답이 있었어?”
“네, 집에 혼자 있기 싫은데, 만날 사람이 없어서 왔어요.”
수녀님은 피식 웃었다.
“역시! 우리 태평이는 대책 없이 솔직하구나.”
“하하. 제가 어디 가나요?”
수녀님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난 품에서 봉투를 하나 꺼내었다.
“어머니, 이거.”
수녀님은 봉투를 열어보더니.
“어머.”
눈이 동그래져서 날 바라봤다.
“무슨 돈을 이렇게 많이 넣었니?”
이번에 받은 너튜브 수입의 1/10.
60만 원을 넣었다.
“봉헌금이요.”
성당도 잘 안 가고, 월급 받을 때마다 꼬박 봉헌금을 낸 것도 아니었지만.
봉헌금을 핑계로 수녀님께 도움을 드리고 싶다…… 는 건 2차적인 이유고.
수입이 큰 데다가, 왠지 내 돈처럼 느껴지지 않아서인지 아깝지 않았다.
이럴 때 한번 쓰는 거지.
“봉헌금?”
수녀님은 눈대중으로 대충 금액을 짐작한 후 물었다.
“요즘 무슨 일 있니? 갑자기 뭔 큰돈이 생겼기에.”
수녀님은 큰돈에 대한 반가움보다는, 걱정을 먼저 하셨다.
내가 중소기업을 다니고 있으며, 이재에 밝지 않은 사람 임을 아시기에.
“아무 일 없어요. 그냥 회사일 외에 다른 사람들 일을 조금 돕고 있는데. 보답을 받은 거예요.”
“……. 나쁜 일은 아니지?”
“하하. 나쁜 일 아니에요. 도리어 좋은 일에 가까울걸요?”
내가 만든 종이학에 사람들이 기뻐하고 좋아하니까.
“흠……. 그래. 우리 태평이 믿는다. 오냐. 네가 준 봉헌금은 주님의 일을 위해서 잘 쓸게.”
“넵, 부탁드립니다.”
이후로 수녀님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종이접기 얘기에는 신기해하셨고, 팀원들 얘기에는 손뼉을 치며 재밌어하셨다.
“호호. 너희 팀장님은 시장에서 그냥 부업 하시는 게 아닐까?”
“하하. 저도 약간은 그런 생각 해요. 합리적 의심이죠.”
그렇게 늦은 오후가 되어갈 때쯤.
“안녕하세요~.”
한 오십 정도 되어 보이는 중년 남성이 들어왔다.
갈색 가죽 재킷에, 검은색 기지 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이곳 보육원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오셨어요?”
수녀님은 이 남자를 아는지, 익숙하게 인사했다.
“네네, 수녀님.”
남자는 두 손을 모으고 합장했다.
“그거 아니라니까요…….”
“아, 미안합니다. 자꾸 까먹네요.”
남자는 머리를 긁적였고, 그 뒤에 한 아주머니가 있었다.
“그럼 땅 좀 보고 가겠습니다~.”
“네…….”
남자는 아줌마를 데리고 다시 밖으로 나갔다.
땅을 보러 왔다고?
“저분 누구예요?”
“여기 땅 주인.”
“네? 여기 보육원 땅 아니에요?”
“아니라더라. 임대로 쓰고 있었대.”
아니……. 내가 어릴 적부터 있던 보육원이고, 역사가 깊은 곳인데.
여태까지 임대된 토지 위에 건물 세워서 쓴 거였다고?
“황당하지? 나도 얼마 전에 알았다.”
“…….”
“여기 토지 주인이 원래 저 양반 엄마였는데, 좋은 일 한다고 이 토지를 수십 년간 무상 임대를 해줬던 거야.”
“아…….”
“근데 돌아가시면서 아들이 상속받았고, 새로운 토지 주인은 무상 임대를 해줄 생각이 없는 거지.”
설명을 듣고 보니, 전혀 납득 못할 일은 아니었다.
“그럼…… 어떻게 되는 거예요?”
“토지가 팔리면…… 보육원은 이전하거나 해체되겠지.”
꿀꺽.
이곳이…… 없어진다고?
내 평생에 유일한 보금자리인데?
수녀님은 얼어붙은 내 표정을 보며 안심시켰다.
“근데 너무 염려 마라. 내놓은 지 석 달이 넘었는데도 아무 소식이 없어. 토지가 뭐, 쉽게 팔리겠니?”
“그러다가 팔리면요?”
“…….”
* * *
“수녀님~, 잘 봤습니다~. 가보겠습니다.”
가죽 재킷의 남자는 다시 안으로 들어와 인사했다.
“아~, 네.”
“이번엔 느낌이 좋네요~. 오늘 보육원이 아주 깨끗하더라고요. 덕분에 손님이 좋게 보신 것 같아요.”
“…….”
“때맞춰서 청소를 다 해주시고. 하하. 감사합니다~.”
놀리는 거야. 뭐야?
근데 남자의 표정은 진심이었다.
수녀님도 사람이다.
빈정 상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어이쿠. 청소 날을 잘못 잡았네. 들어가세요.”
“네~.”
남자는 인사하며 돌아섰고, 난 재빨리 그를 따라갔다.
강태평은 멀찍이서 그를 불렀다.
“저기요.”
“응? 저요?”
남자는 자신을 가리키며 물었다.
“네.”
그가 데리고 온 손님은 앞서가고 있었고, 남자는 강태평의 부름에 자리에 섰다.
“무슨 일이시죠?”
“잠깐 여쭤볼 게 있어서요.”
강태평은 물었다.
“이 땅 평당 얼마에 내놓으셨나요?”
“그건 왜요?”
“왜긴요. 관심 있으니까 물어보는 거죠.”
이 말에 남자는 눈을 빛내며 말했다.
“150만 원입니다.”
“대지 평수가 어떻게 되죠?”
“보육원 부지만 치면 100평이에요. 보육원 주변 땅까지 합치면 200평이고요.”
“지금 내놓은 건…….”
“200평 전체로 내놨죠. 그 정도 평수는 되어야 팔리지, 아니면 잘 안 팔려요.”
강태평은 생각했다.
‘100평이면 1억 5천만 원. 200평이면 3억인 거네.’
“보육원 부지만 살 수도 있나요?”
“뭐, 가능은 한데, 그러면 가격을 좀 올려야 해요. 나머지 땅은 팔기가 어려워서.”
“얼마나 올려요?”
“뭐…… 보육원 부지만 한다면 평당 200은 받아야 하지 않을까요?”
남자는 멀찍이서 기다리는 손님의 눈치를 보았다.
“저……, 손님 기다리시는데. 가봐도 될까요?”
강태평은 남자에게 명함을 건네었다.
“제가 지금 당장은 어려운데…… 땅을 살 거니까요. 혹시 거래하겠다는 분 나타나면 꼭 연락 주세요.”
“왜요?”
“그분보다 무조건 높게 쳐 드릴 테니까.”
“아……, 그래요?”
남자는 시답지 않은 표정이었다.
그는 명함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대답했다.
“뭐, 일단 알겠수다. 가볼게요.”
강태평은 그의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종이접기 열심히 해야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