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고 볼 수가 없다 (1)
* * *
“네?”
훈훈한 얘기를 하고 있는데, 왜 갑자기 찬물이지.
긍정맨 변 팀장답지 않게, 별것도 아닌 주제에 반론을 표했다.
홍지아도 의아해서 바라봤다.
“아~.”
우리 둘이 정색하는 모습에 변 팀장은 당황하여 손사래를 쳤다.
“별 뜻 없어~. 사람 일은 모르는 거잖아~. 그냥 그 뜻으로 대꾸한 거야.”
“…….”
별 뜻 없이 대꾸한 거치고는 날카로운 느낌이었다.
“강 대리 능력 있잖아~. 좋은 기회가 생길 수도 있는 거지. 안 그래?”
이번엔 홍지아를 바라보며 물었고, 홍지아는 마지못해 대꾸했다.
“뭐, 강 대리님이야 그렇긴 하죠. 저 같은 잉여는 그저 주어진 일에 감사하며 열심히 살아야겠지만.”
불편한 마음이 들어서 난 너스레를 떨며 대꾸했다.
“야야.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왜요~. 맞잖아요.”
“자기 자신을 소중히 해야지.”
“현실을 자각하는 게 더 중요하거든요.”
“어쭈 자꾸 말대꾸하네? 선배한테?”
“하이고~, 꼰…… 대.”
“뭐어?”
난 홍지아와 투덕거리기 시작했고, 어느덧 이 대화가 왜 시작되었는지도 까먹게 되었다.
“아무리 편해도 예의는 지키라고 했지?”
“가족 같다면서요?”
“헛…….”
홍지아는 어린 친구치고는 말발이 센 편이다.
“가족끼리 예의 차려요? 가족 간에 이 정도도 대화 못 해요?”
“…….”
“가족이란 말…… 그냥 한 소리였어요?”
“가…….”
홍지아……. 말로는 못 당하겠다.
난 뭐라도 대꾸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막무가내로 소리쳤다.
“가좆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어머…….”
홍지아는 깜짝 놀라서 입을 막았다.
“욕했어. 어머. 어머. 욕했어.”
헉스.
나도 모르게.
난 재빨리 눈을 돌렸다.
“욕 아니야! 가족 같다고! 그게 왜 욕이야?”
“방금 ‘족’이 가족의 ‘족’ 발음이 아니었는데.”
“아니라고. 강조해서 말하다 보니 그렇게 들린 거야.”
“어머. 그래요? 알았어요. 가 좆 같다~. 아~, 가 좆 같네?”
“야, 그걸 띄어서 발음하면 어떡해?!”
하여간 홍지아와 말을 길게 하면 안 좋다.
결국 변 팀장이 끼어들었다.
“그만. 그만. 애들도 아니고 진짜. 옆 팀에서 웃는 거 안 보여?”
어쩌다 보니, 가족을 주제로…… 나와 홍지아는 핏대를 세우고 있었고, 옆에 영업 2팀 사람들은 키득대고 있었다.
나와 홍지아는 얼굴을 붉히며 관두었다.
지금 약간 후회가 든다.
그냥 어려워하도록 내버려둘걸.
“흥.”
콧방귀를 뀌며 홍지아는 자리로 돌아갔다.
* * *
오후 2시쯤.
난 홍지아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촬영 1팀에서 오더 수주 및 스케줄 담당을 맡고 있다.
가끔은 촬영날 조교 역할을 해주기도 한다.
공모전 수상 이후 일감이 몰리고 있었고, 요즘은 오전, 오후 할 것 없이 스케줄이 꽉 찬다.
웬일로 오늘 오전에 스케줄이 없어서, 사무실에 있었지만.
오후에는 분명 스케줄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근데 이상하게 말이없다.
“홍지아 씨, 오후 스케줄 어디야?”
“없어요.”
“어? 진짜?”
오후에 스케줄이 없다고?
상 탄 지 이제 막 3주 차 접어들었는데……. 벌써 공모전 빨이 다 사라졌나?
“네, 오늘은 저녁 스케줄이 있어요.”
“아…….”
요즘은 돌, 칠순 등 잔치 촬영도 많이 잡힌다.
우리 팀. 아니, 진일상사의 일감 잡는 기준은 딱 하나다.
돈 되는 거. 무조건 돈 되는 거.
가성비 대비 수익이 가장 높은 일.
“잔치겠지?”
“네.”
“무슨 잔치?”
“칠순이에요.”
“아…….”
돌잔치는 몇 번 해봤지만, 칠순은 처음인데.
“장소는?”
“논현동에 있는 파크로얄 호텔이요.”
“헉.”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은 호텔 중 하나.
“뭘 놀라세요. 일반 사람이 공모전 대상 수상자를 촬영기사로 부르겠어요?”
“얼마 받기로 했어?”
“5백만 원이요.”
“헉!”
놀라서 벌린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혹시 칠순 어르신 성장 앨범 찍는 거 아니지? 앞으로 주기적으로 촬영을 해야 한다든지…….”
난 믿기지 않아서 되물었다.
고작 사진 몇 번 찍는 행사 하나에 수수료가 5백이라니.
“호호. 무슨 말씀을. 당연히 단건 계약이죠.”
“…….”
“칠순 어르신 자제분 중 한 분이 강 대리님 수상 내용을 신문으로 보셨나 봐요.”
“…….”
“개인 행사는 촬영이 어렵고, 만약 한다고 해도 비용이 높다고 말씀드렸는데, 처음부터 500 부르시던데요?”
업무 보는 척 듣고 있던 변 팀장이 말을 덧붙였다.
“에이~, 그걸 그대로 받아들이면 어떡하나? 협상을 했어야지. 한 번만 튕겼어도 200은 더 받았을 거 같은데.”
“그러니까요. 금액만 보고 너무 놀라서 저도 모르게 그만……. 끊고 나서 후회했어요.”
꿀꺽.
내 손을 바라봤다.
이게 도대체가…….
돈 벌기가 이렇게 쉬운 일이었나?
어제는 네모튜브에서 종이학 한 마리 접어주고 100만 원 받았다.
오늘 저녁엔 칠순 잔치 가서 사진 촬영 좀 하고 나면 500만 원을 번다.
물론 촬영은 회사에 소속되어 일하는 것이긴 하지만.
단 이틀 만에 600만 원을…….
“치……, 이거 순전히 강 대리님 이름값인데. 좀 억울하지 않아요?”
홍지아의 말에 변 팀장이 대꾸했다.
“홍지아 씨, 그렇게 생각하면 안 돼~. 공모전도 회사 일을 하다가 연결된 거잖아. 부산도 출장으로 간 거였고.”
“…….”
“회사 일에 내가 잘나서 수익이 났다는 생각을 하면, 회사 생활하기 힘들어~.”
“하지만. 칠순 잔치 고객께서 ‘진일상사’ 보고 컨택한 게 아니잖아요. 국제공모전 대상 수상자 ‘강태평’을 보고 컨택한 거지.”
변 팀장도 이 말에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대기업이야…… 회사 간판빨로 영업한다고 하지만……. 진일상사 이름 아는 사람은 손에 꼽을 텐데.”
탁. 탁.
급기야 변 팀장은 책상을 두들기며 홍지아의 말을 끊었다.
그리고 주변을 살피면서, 그답지 않게 약간 정색하는 얼굴로 말했다.
“홍지아 씨, 오늘 말 많네. 나 팀장인 거 잊었어? 이제 그만하지?”
“…….”
“자, 일들 해.”
그러면서 변 팀장은 내 눈치를 봤다.
* * *
저녁 6시.
나와 홍지아는 논현역에 도착했다.
장비는 여느 때와 같았다.
안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디지털카메라 하나.
“굳이 뭘 같이 오겠다고…….”
“촬영 기사 가는데, 보조 기사가 안 따라가요?”
“그냥 실내에서 사진 몇 번 찍으면 되는걸. 홍지아 씨가 도울 거 없는데 뭐하러 저녁에 고생하겠다고.”
“수수료 500씩이나 받으며 혼자 달랑 와봐요. 고객이 성의 없다고 생각하지. 액션이라는 건 중요하다고요. 회사 생활 해보셔서 알잖아요.”
어째 입사 1년 좀 넘은 친구가, 한 5년은 다닌 거처럼 말하네.
“그러니까. 강 대리님에게는 제가 꼭 필요하다고요.”
“홍지아 씨 말대로면 보조기사가 필요한 거지, 홍지아가 필요한 건 아닌 거 같은데.”
홍지아는 이 말에는 대꾸하지 않고 딴청을 부렸다.
“다 왔네. 들어가죠.”
파크로얄 호텔.
이런 초호화 호텔은 처음이다.
로비부터 온통 금빛의 향연인데, 딴 세상 같았다.
초호화 호텔은 처음이지만, 호텔은 자주 와봤다. 똥손일 때 호텔에서 일했던 경험 때문이다.
일 시작해서 깨진 접시가 50개가 넘어갔을 때쯤, 이제 그만 나오라는 통보를 받았었다.
그래도 셰프가 사람이 괜찮았다.
50개까지 기회를 주었던 거 보면.
일주일이면 그 당시 내겐 꽤 오래 버틴 거였다.
그래서 호텔에 대해선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다.
“뭘 그렇게 생각해요?”
홍지아는 날 멀뚱히 바라봤다.
“아무것도 아니야. 몇 층으로 가면 돼?”
“35층 대연회장이에요.”
“대연회장…….”
위이잉―.
엘리베이터를 탔다.
홍지아는 곁눈질로 날 바라보더니.
“강 기사님, 오늘 컨디션 어때요?”
“나쁘지 않아. 홍 보조는 어때?”
“저도요.”
그녀는 기지개를 켜고는 말했다.
“여기 밥은 주겠죠?”
“뭐……, 그렇지 않을까?”
“끝나고 좋은 안주에 술 한잔하고 가야겠네요.”
“…….”
“인증 샷도 올려야지.”
훗.
“홍지아 씨, 여기 따라온 목적이 있었구만?”
딩동!
“흠. 다 왔네요.”
하여간 자기 불리한 말만 나오면 무조건 모른 척이다.
“이야~.”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탄성이 절로 나왔다.
“어머~.”
커다란 연회장 중앙에는 얼음 돌고래가 있고.
그 위에 샴페인이 흐르고 있었다.
서빙을 하는 여 직원들은 하나같이 붉은색 치파오를 입고 있었는데.
옆트임이 좀 깊었다.
남 직원들도 깔끔한 정장을 입고 있고, 영화배우처럼 다들 멋있고 건장했다.
신세계.
내가 살던 대한민국이 맞나 싶은.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했던 풍경이었다.
“어떻게 오셨어요?”
연회장 출입구 앞의 리셉션.
아리따운 아가씨가 상냥한 미소로 물었다.
“아, 네. 촬영 의뢰받고 왔습니다. 진일상사 촬영 팀입니다.”
“상사요? 촬영 팀?”
아가씨는 뭔가 매칭이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부산국제사진공모전 대상 수상자 강태평이라고 전해주시면 알 거예요.”
홍지아가 재빨리 다시 말했다.
“아~, 네. 잠시만요.”
아가씨가 어딘가로 무전을 치는 동안 홍지아는 내게 눈치를 주었다.
“이래서 내가 있어야 한다니까요. 알아듣게 설명을 해주셔야죠. 진일상사라고 말하면 어떻게 알겠어요.”
“…….”
개인은 알지만, 회사는 모르는 아이러니한 상황.
“아! 네, 확인됐습니다. 저~ 기 안쪽으로 들어가시면, 룸이 하나 있거든요. 그 안에 들어가시면 됩니다.”
“네, 고맙습니다.”
행사 시작 30분 전.
대연회장은 분주했다.
이미 도착한 손님들도 적지 않았다.
대연회장 끝에 룸이 하나 있었는데, 금빛과 크리스털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여기 맞는 거 같지?”
“룸이 이거 하나밖에 없는데요.”
“…….”
이제 노크만 하고 들어가면 된다.
난 홍지아를 보았다.
“보조? 뭐 해?”
“흠! 알았어요.”
홍지아는 얼굴이 살짝 굳어 있었다.
피식.
이럴 땐 영락없는 학생 같다.
홍지아는 입술을 꼭 깨물고 문을 두드렸다.
똑똑.
[누구야!]
“촬영 의뢰받고 왔습니다. 강태평입니다!”
홍지아가 긴장한 듯 보여서, 내가 대신 대답했다.
[들어와!]
근데…… 느낌이 좀 이상한데.
덜컹.
문을 열었다.
안에는 곱게 한복을 입은 할머니와 가족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여러 명 있었다.
그중 짧은 스포츠머리에 40대 중반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가 말했다.
“강태평?”
목소리를 들어보니, 들어오라고 얘기했던 사람 같다.
“네, 촬영 의뢰하셨죠? 진일…… 강태평입니다.”
진일상사를 말하려다가, 홍지아가 했던 말이 생각나서 그냥 내 이름으로 소개했다.
“왜 이렇게 늦었어?”
“네?”
“1시간 전에는 와야 하는 거 아니야?”
흠…….
말하는 표정. 말투.
내가 싫어하는 스타일인데.
“사전에 얘기를 들은 게 없는데요?”
“기본을 꼭 얘기해줘야 하나? 안 알려주면 대변보고 휴지로 안 닦고, 손가락으로 닦는 거야?”
키득.
그의 대꾸에 가족 중 일부가 웃었다.
“장비는 어딨어?”
난 절대로 과격한 사람이 아니다.
또한 정의를 집행하고자 하는 의협심이 넘치는 사람도 아니다.
하지만 평생을 똥손 때문에 눈치 보며 살아왔다.
그냥 열심히 살아도 저주받은 손 때문에 욕먹을 일이 많았는데.
“근데…….”
모든 걸 잃더라도 갑질만큼은 절대로 참을 수 없다.
이유 없는 갑질까지 당하며 살기엔 내 멘탈이 견딜 수가 없었다.
난 그런 삶을 살아왔다.
“왜…… 혀가 반 토막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