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손으로 살아가기-23화 (23/156)

네모의 신 (2)

* * *

[빠밤~.]

종이접기를 시작하려는데, 갑자기 빵빠레 소리가 들렸다.

뭔가 싶어서 봤더니, 네모 씨가 날 보며 윙크했다.

“효과음이에요. 우리는 중요한 타이밍에 이런 효과음 넣거든요. 방금 멘트 멋졌어요.”

난 피식 웃었다.

‘신의 학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이 멘트 말하는 건가?

“신의 학을 만든다는 건 본인이 신이라는 얘기. 즉 자신감이잖아요.”

아……. 말이 또 그렇게 되네.

└ 왜 하다가 마냐.

└ 누가 방해하나?

└ 네모의 신~, 보여 주세용~.

종이를 접으려다가 멈추니 금세 또 댓글 창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네모 씨, 입 다물라잖아.”

정카가 카메라를 든 채로 중얼거렸고, 네모 씨는 양손을 들며 뒤로 저만치 물러났다.

휴우―.

난 심호흡을 하고 눈을 감았다.

그때 접었던 걸 떠올려봤는데.

기억이 잘 안 난다.

어떻게 접었었더라.

“…….”

난 살며시 눈을 떴다.

네모 씨, 정카, 네모삼촌은 긴장된 얼굴로 날 보고 있었다.

사무실 안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고요했다.

모두가 집중한 분위기.

심지어 댓글 창도 멈췄다.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내게 큰 기대를 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난 내 손을 바라봤다.

‘그래, 난 기억하지 못해도 손이 기억하고 있을 거야. 그때도 그랬었지.’

똑.

어디선가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고.

난 내 손을 종이 위에 올려놓았다.

더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머리는 기억 못 해도 몸이 기억한다는 말이 있듯.

난 내 손이 기억했다.

거침이 없었다.

종이에 닿은 손은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주변의 모든 공기가 얼어붙은 듯.

모두가 숨죽이고 지켜봤다.

창조주가 된 내 손은 마술을 펼치고 있었다.

내 손은 종이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내가 종이를 학이라 부르니.

종이는 정말 신의 학이 되었다.

# 종이접기

Before: 멀쩡한 것도 손대면 깨지는데……. 생각해본 적도 없다.

After: 종이에 영혼을 불어넣었다.

* * *

홍지아의 원룸.

“얘~, 우리 날씨도 좋은데~ 나들이 가자니까.”

친구는 컴퓨터 앞에 앉아서 뭔가 기다리는 듯한 홍지아가 이해가 안 되었다.

“집에 놀러 오라더니. 이게 뭐니? 혼자 컴퓨터 할 거면 난 왜 오라고 그런 거야?”

“내가 언제 놀러 오라 그랬어?”

“어머…….”

“네가 말도 없이 놀러 온 거지.”

“…….”

홍지아의 말에 친구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어머……, 계집애. 차가운 거 봐. 그러니까 네가 남자 친구가 없는 거야~.”

“좀 닥쳐줄래? 네모튜브 할 시간인 듯한데…….”

“칫.”

홍지아는 시계를 확인 후, 너튜브 라이브를 켰다.

“하여간. 와도 어쩌면 시간 딱 맞춰서 오냐. 미안하게시리.”

“야, 뭔데 그래?”

친구도 홍지아의 진지한 표정에 궁금해져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어머. 뭐야? 종이접기?”

영상 속에는 네모삼촌이 열심히 ‘너구리’를 접고 있었다.

[자~, 조카 여러분~, 여기선 왼쪽으로 접은 뒤에~ 한 번 꺾어서 넘기면 됩니다~. 참 쉽죠?]

부드러운 목소리의 남자와 예쁜 손.

“저 사람 ‘쉽다’라는 말 참 많이 한다. 하나도 안 쉬워 보이는데.”

“…….”

“너 이런 데 취미 있니? 이렇게 손 보면서 상상하는 거야? 목소리랑 손이 멋지긴 한데……. 그냥 사람을 만나.”

그러면서 친구는 묘한 눈빛으로 홍지아를 바라봤다.

“야, 그 눈빛 뭐야?”

“호호.”

“나 지금 장난할 기분 아니거든.”

홍지아는 진지한 눈길로 화면을 주시하며 중얼거렸다.

“하아……. 오늘 안 나오시나.”

“누가 나와?”

친구는 종이접기 영상에 흥미를 잃고, 다시 침대에 누워 빈둥거렸다.

“있어. 손만 대면 다 잘되는…… 이상한 사람.”

“너 오늘 좀 이상한 거 같아.”

홍지아는 강태평을 기다리고 있었다.

네모튜브가 강태평에게 접근했으니, 머지않아 출연할 거라고 생각했다.

변 팀장이 팀 차원에서 관여하지 않기로 공표했었다.

그래서 언제 출연할지, 가서 뭘 하는지 공공연하게 물어보기도 어려웠다.

속초에서 살아 돌아온 이후, 강태평의 행보는 흥미로움 그 자체였다.

순수한 호기심. 그에 신기함까지 더해져 계속 강태평을 주시하게 됐다.

“분명히 뭔가 있어.”

홍지아는 예능 프로, 아이돌 영상, 드라마 같은 것보다도 강태평을 관찰하는 게 훨씬 더 흥미로웠다.

“엇!”

어느 순간 홍지아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어머. 어머. 진짜 나와. 대애박!”

[오늘 신의 학이 나타납니다.]

이 썸네일을 보고 홍지아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기다린 보람이 있네.’

홍지아의 손에 땀이 배기고 있었다.

정말 강태평이 100만 너튜브에 출연한다는 게 너무 신기했고.

그 사람이 같은 사무실 옆자리에 앉는 회사 선배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뭐야? 뭐가 대박인데?”

친구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컴퓨터 앞에 다가와 앉았고.

그때 화면 속 손이 바뀌었다.

[안녕하세요. 네모의 신입니다…….]

“풉!”

홍지아는 물 마시며 화면을 지켜보다가, 뿜었다.

“어우. 디러. 뭐야?!”

친구는 몸에 튄 물을 닦으며 투덜거렸고. 홍지아는 키득거리며 함께 닦아주었다.

“푸하핫. 네모의 신. 이미 한 가족이 되신 건가? 닉네임 하고는……. 하하.”

친구는 그런 홍지아를 신기하게 바라봤다.

“아는 사람 나왔어? 뭐가 그렇게 신나니? 누군데?”

“응? 아, 아니. 그냥~ 네모의 신 웃기잖아.”

“웃기긴 하지만…….”

친구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홍지아는 화면의 강태평의 손을 보며 생각했다.

‘일부러 익명으로 하신 거 같은데, 지켜 드려야지. 강 대리님, 파이팅입니다!’

홍지아는 정자세가 되어 지켜봤고.

어느덧 친구도 의자를 끌어와 옆에 앉았다.

[신의 학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쓱삭. 쓱삭.

“…….”

쓱삭. 쓱삭.

강태평의 손은 춤을 추듯 움직였다.

네모삼촌처럼 설명도 없었다.

그냥 만들었다.

아니……, 설명이 필요 없었다. 설명해 준다고 해도 따라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아니……, 이게 뭐야? 말이 돼?”

친구의 표정이 일그러지고 있었고.

꿀꺽.

홍지아는 침을 삼켰다.

강태평의 손은 마치 뼈가 없는 연체동물처럼 움직였고.

그의 손이 종이에 닿으면…… 종이에 생기가 도는 것 같았다.

‘참……. 뭐라고 설명하기가 어렵네. 그냥 마술 같아. 진짜 마술.’

홍지아는 뭔가 번뜩 떠올라서, 바로 메시지 창을 열었다.

[변 팀장님, 홍지아입니다. 주말에 연락드려 죄송합니다. 지금 너튜브 라이브 ‘네모튜브’ 열어보세요. 강태평 대리 나왔습니다.]

종이학은 거의 다 접어가고 있었고.

마치 살아서 움직일 것 같았다.

종이에 생명이 담겼다.

[보시고 함께 응원하시면 좋을 것 같아서 연락 드렸습니다.]

“나랑 같이 일하는 사람이…… 진짜 보통 사람이 아니었구나.”

홍지아의 눈에 이채로움이 들어섰다가, 곧 씁쓸함으로 바뀌었다.

“지아야, 이거 네모튜브라고 했지?”

친구는 핸드폰을 켜며 중얼거렸다.

“나도 구독해야지.”

* * *

태초에 신께서 말씀하시기를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생겼다.

이를 시작으로 만물을 창조하신 후, 자신이 만든 걸 보시며 한마디 하셨다.

마치 지금처럼.

“보기 좋네.”

강태평은 신의 학을 완성 후 고개를 끄덕였다.

“…….”

네모의 신은 그가 만든 걸 보기 좋다고 간단하게 말할 뿐이지만,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와…….”

뭐라 말도 나오지 않았다.

└ …….

심지어 댓글 창도 정적에 휩싸였다.

하지만 실시간 접속자 수는 말도 안 되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2만…… 5만…… 10만…….

네모튜브에서 너튜브 라이브를 시작한 이래로 최고 접속자 수를 기록했다.

단 10분의 영상만으로.

강태평은 눈을 끔뻑이며 네모 씨를 바라봤다.

종이학은 다 만들었고, 이후에 어떻게 해야 할지를 묻는 듯했다.

네모 씨는 정신을 차리려는 듯 머리를 세차게 흔들고는 팻말을 들었다.

[인사하고 마무리하세요.]

‘내가 마무리 인사를 하라고?’

강태평은 못내 좀 어색했지만, 라이브 중이기 때문에 뭐라고 거부하기도 그랬다.

어색하게 마무리 인사를 했다.

“여러분, 이상 강태……. 흡!”

그는 무의식중에 본인 이름을 말할 뻔했다. 놀라서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휴우~, 엿 될 뻔했네.”

“죄송합니다. 이상 흠! 네모의 신이었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네모 씨는 강태평에게 카메라 앵글 밖으로 나오라는 사인을 보냈다.

강태평이 나온 뒤에야.

댓글 창은 폭발했다.

화면 속 파란색 책상 위. 수많은 댓글들이 수놓았다.

└ 영접했습니다.

└ 신의 학을 영접했습니다.

└ 믿기지가 않네요. ㅎㅎ

└ 그게…… 진짜 사람이 만들었을 줄은…….

└ 아니야. 방금 그 손은 사람 손이 아니었어.

댓글 창은 강태평을 칭찬하다 못해, 찬양하는 수준이었고.

점점 과열된 여론은 묘한 흐름으로 번져가기 시작했다.

└ 강태X?

└ 신을 찾자.

└ 키보드 워리어들이여, 일어나라.

난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갔다.

“어째 비슷했나요? 한 달도 더 된 일이라…… 잘 기억이 안 나서. 허허.”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정카와 네모삼촌은 살짝 뒷걸음질을 쳤고.

네모 씨는 멍하니 날 바라보는데.

약간은 두려움이 섞인…… 묘한 눈빛이었다.

“왜요? 별로였어요? 비슷하게 만든 거 같은데.”

“…….”

“맘에 안 드시면 출연 제의는 없던 거로 하셔도 돼요. 저도 막 엄청 내키던 건 아니라서……. 하지만 오늘 출연료는 주셨으면 하는데. 오는데 교통비도 들었고…….”

네모 씨는 두 손으로 내 손을 꼭 잡았다.

“더 말하지 마세요.”

“네에?!”

그는 감격에 겨운 눈으로 내 손을 꼭 잡고 흔들었다.

“고맙습니다. 제 앞에 나타나 주셔서 고맙습니다.”

네모 씨는 감정이 고양되어 있었고, 멈추지 않았다.

“우리 바로 출연 계약 맺는 게 어떻습니까?”

나 또한 그게 목적이긴 했지만.

네모삼촌을 바라보았다.

고개를 숙이고, 내가 있는 쪽에서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내가 신의 학을 접기 전과는 태도가 완전 달라졌다.

어깨가 축져져서는…….

“어서요. 혹시 출연료가 맘에 안 드시나요? 원하는 수준을 말씀해 주세요.”

“…….”

네모삼촌의 씁쓸한 얼굴을 보니 생각이 많아졌다.

내가 말을 않고, 생각에 잠기자.

네모 씨는 불안해졌는지 말이 더 빨라졌다.

“그 외에 어떤 제안이든 최대한 들어드릴 용의가 있으니. 일단 말씀을…….”

이제 네모 씨의 안중에 네모삼촌은 없었다.

조금도 눈치 보지 않았다.

다 쓴 헌신짝 보듯…….

예전의 날 보는 것 같아서.

이런 광경은 도저히 보고 넘길 수가 없다.

“출연 제의는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뭐, 그러려고 온 거니까요.”

“우왓! 감사합니다!’

네모 씨는 주먹을 불끈 쥐었고, 정카도 옆에서 활짝 웃었다.

그리고 네모삼촌은 가방을 챙기고 있었다.

“일단 출연료는 이번에 제안해 주신 대로 진행하겠습니다. 추후에 반응이 더 뜨거워지면 다시 협의해는 거로 해 주시면 좋겠어요.”

“아~, 물론이죠. 제가 오늘 말씀드렸던 출연료 두 배. 회당 100만 원. 그건 보증하겠습니다. 그 외에 후원금은 별도고요.”

네모 씨는 상품성에 확신을 가진 듯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라이브가 끝난 지 20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댓글 창은 살아 있었다.

“하지만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네모 씨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뭐든 말씀하세요~.”

“이건 제가 이 일을 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니까요. 반드시 들어주셔야만 합니다.”

“네~, 네~.”

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전 손재주가 좀 있을 뿐이지. 종이접기 종류라던지, 색종이 고르는 법 등 아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

“그래서…….”

난 네모삼촌을 바라보았다.

“네모삼촌님과 함께 일했으면 합니다. 가르침을 받던지, 함께 출연하든지요.”

이 말이 끝나자, 네모 씨의 표정이 불편하게 변했고.

막 문밖으로 나서려던 네모삼촌은 걸음을 멈추었다.

“강태평 씨…….”

그의 덥수룩한 턱수염 사이로 실룩이는 입술이 보였다.

이미 대단한 사람

* * *

“강……, 강태평 씨.”

네모삼촌. 그의 턱수염 안에 입술이 씰룩거리는데, 웃는 건지 아니면 울려는 건지 헷갈렸다.

툭. 툭.

그때 정카가 다가와 네모삼촌의 어깨를 두들겼고.

네모삼촌은 크게 한숨을 쉬었다.

그 모습을 보며 네모 씨는 안도했다.

진짜…… 감정이 북받쳤던 건가?

겨우 이걸로?

“얘기했잖아요. 감수성이 예민하다고.”

황당해서 네모삼촌을 바라보고 있는데, 네모 씨가 조용히 다가와 말했다.

“아……. 네.”

네모삼촌을 위해 한 일이 아니다.

이런 꼴을 못 보겠어서, 날 위해 제안한 것이다.

갑질 비슷한 건 절대 보기 싫다.

남의 일이라도, 그런 일은 내 일처럼 느껴진다.

휴우―

감정이 추슬러졌는지, 네모삼촌이 한숨을 쉬고는 다가왔다.

“강태평 씨, 고마워요.”

“아닙니다.”

그는 내 손을 꼭 잡았다.

“오늘 처음 본 사이인데, 제 생각까지 해주고.”

“필요한 부분을 요청한 것뿐입니다. 그렇게 고마워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네모삼촌은 멀뚱히 네모 씨를 바라봤다.

“네모 씨, 나 어떡해? 집에 가?”

“…….”

네모 씨는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가긴 어딜 가요. 함께 해야지.”

“……!”

네모 씨는 날 바라봤다.

“조건은 한 가지라고 했죠?”

“네.”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는 웃으며 내게 악수를 건네었다.

“도리어 그런 조건을 해주셔서 감사하네요.”

“…….”

“머리와 감정이 잘 조화가 되어야 하는데, 방금은 제가 급한 결정을 내릴 뻔했어요.”

그러면서 네모 삼촌을 바라보았다.

네모삼촌은 어느새 감정이 돌아왔는지, 웃으며 정카와 대화하고 있었다.

“그동안 함께 한 시간이 있고, 네모튜브 흥행에 큰 공헌을 한 사람을…….”

그는 내게 꾸벅 인사를 했다.

“고맙습니다.”

오늘 ‘고맙다’라는 말을 참 많이 듣네.

난 배려하고자 한 일이 아닌데.

“제가 고맙네요.”

나 또한 꾸벅 인사를 했다.

네모 씨는 크게 외쳤다.

“네모삼촌! 정카! 일로 와 봐!”

두 사람이 다가오자, 네모 씨가 말했다.

“네모튜브에 새 식구가 생겼으니, 우리 기념사진 한번 찍자고요.”

“새 식구요?”

난 당황하여 되물었다.

출연하기로 하긴 했지만, 새 식구라고 하기엔 좀…….

“당연하죠. 앞으로 쭉 함께할 건데.”

큰 기대가 담긴 눈빛.

정카와 네모삼촌 또한 진심으로 날 반기는 느낌이었다.

“뭘 그렇게 당황해요? 출연하기로 했잖아요.”

“아, 뭐, 그렇긴 하죠. 가끔 나와서 출연하는 거로.”

“맞아요. 그러니까 새 식구죠.”

내가 이 일을 가볍게 생각했다.

알바? 프리랜서 정도?

뭔가 새로 소속되어 한 팀을 이룬다고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네모 씨는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나의 출연에 의의를 두는 것 같았다.

“어서 이쪽으로 서요. 카메라는 내가 가져올 테니까.”

사진 촬영……. 이것도 좀 부담스러운데.

이제 와서 거부하기도 뭐해서, 일단 그들이 하자는 대로 했다.

우리 세 사람은 그 자리에서 대기하고 있었고, 네모 씨는 삼각대 위에 카메라를 놓고 조정했다.

“…….”

꼼지락. 꼼지락.

수평도 제대로 못 맞추고.

삼각대, 카메라 모두 제각각이다.

지지대와의 각도 및 피사체의 구도를 생각하면…….

젠장! 난 갑자기 이 와중에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맨날 사진기 들고 촬영만 하러 다녔더니.

직업병이 생겼나.

“자~, 다 됐습니다.”

네모 씨가 우리를 향해 걸어왔지만.

손이 근질거려서……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난 촬영 1팀의 강 대리다.

“잠깐만요. 그렇게 하면 안 돼요.”

강태평은 삼각대로 갔다.

다리 길이 조절하며 나사 풀고 조이고, 카메라 수평 맞추고, 피사체와의 거리 조정하고, 조리갯값 맞추고…….

네모삼촌은 그 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와……. 강태평 씨, 뭐야? 장비를 굉장히 잘 다루네?”

“카메라를 잘 아는 것 같은데요?”

정카도 한마디 했다.

네모 씨는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뭔가 생각난 듯 말했다.

“아, 맞다. 강태평 씨 촬영팀에서 근무하잖아. 진일상사.”

“그렇네. 그때 같이 찾아갔었지.”

정카도 이제야 생각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네모삼촌은 여전히 고개를 갸우뚱했다.

“상사? 촬영팀? 뭔가 안 어울리는데.”

약 3분 정도 지났을 때쯤.

강태평은 손을 털며 다가왔다.

“10초 뒤에 찍혀요. 자세 잡으시죠.”

“네.”

“턱 당기고. 카메라 정면 바라보세요. 입꼬리 살짝 올리고, 입만 웃지 말고 눈도 웃으면서. 카메라가 귀여운 아기라고 생각하세요.”

“…….”

네모 씨는 속으로 생각했다.

‘뭐야……. 사진 찍고 싶었던 건가?’

찰칵!

셔터음과 동시에 네모 씨는 일어났다.

“한 번 더 찍어야죠?”

강태평은 고개를 저었다.

“원 샷 원 킬입니다. 제 스타일.”

그리곤 쿨하게 가방을 집어 들었다.

“그럼 저 먼저 갑니다~. 오늘 재밌었어요~.”

“아니, 식사라도 하고 가시…….”

쾅!

어느새 강태평은 나가버리고 없었다.

뒷모습을 바라보며 정카는 중얼거렸다.

“묘~ 하다.”

“그러게.”

네모 씨가 말했다.

“괜찮은 사람 같은데, 사회성이 없어 보이기도 하고……. 근데 은근 또 사람 챙기는 것 같기도 하고.”

“특출난 사람들은 좀 특이한 구석이 있잖아~.”

“흠……. 그렇지.”

네모 씨는 무심코 카메라에 찍힌 사진을 확인하다가 화들짝 놀랐다.

“헉!”

“왜? 왜에?!”

“대박! 사진 왜 이렇게 잘 찍혔어?!”

네모 씨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냥 단순한 기념 촬영이었는데.

카메라 안에는 웬 작품 사진이 담겨 있었다.

실내에 들어오는 자연광을 활용하여, 네 사람의 얼굴의 1/3가량이 그늘져 있었고.

각기 웃고 있는데, 우는 것 같기도 하고. 삶의 고뇌와 희망이 오묘하게 섞여 있었다.

“…….”

사진을 들여다보던 정카와 네모삼촌도 저절로 입이 벌어졌다.

칼로 잰듯한 완벽한 구도.

삼각대 원샷으로 찍은 사진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꿀꺽.

어디선가 침 삼키는 소리가 들렸고.

정카가 읊조리듯 말했다.

“저기…… 강태평 씨 정체가 뭘까?”

신의 학을 접은 것부터, 좀 전의 촬영한 사진까지.

강태평은 못하는 게 없는 슈퍼맨 같아 보였다.

그것도 좀 잘하는 수준이 아니라, 말도 안 되게 잘해버리니까.

네모삼촌은 핸드폰을 켰다.

“검색해 보면 알지. 아무리 봐도 보통 사람이 아닌 거 같아.”

그는 초록 창을 열었다.

[검색어: 강태평]

.

.

.

.

[제15회 부산국제사진공모전 대상 수상자]

[속초버스재난사고 기적의 생존자]

* * *

다음 날 월요일 아침.

난 여느 때처럼 회사로 향했다.

월요일 아침이라서일까.

전철 안의 사람들.

표정이 유독 굳어 있다.

회사 가는 게 그렇게 싫을까?

난 회사 안 가면 어색할 거 같은데.

회사를 안 가면 월요일 아침이 얼마나 허전할까?

그래도 갈 곳이 있고, 만날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괜찮지 않나?

난 친구도 없고, 가족도 없으며 항상 혼자다.

변 팀장과 홍지아 만날 생각에 난 월요일이 기다려진다.

“안녕하세요!”

진일상사 도착.

출입구 가까이에 위치한 영업 1팀 선배들에게 반갑게 인사를 받아줬다.

“여어~, 강태평 대리~, 오늘도 일찍 왔네?!”

“하하, 넵. 좋은 아침입니다.”

난 회사 일 바쁜 거 말고는 아무런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일 바쁜 것도, 뭐…… 엄밀히 말하면 스트레스로 느껴지진 않는다.

일하는 동안은 아무 생각도 들지 않고, 마치고 나면 개운하니까.

‘촬영 1팀’.

천장에 팀 팻말이 달려 있고, 그 옆에 커다란 팻말이 하나 더 있다.

[부산국제사진공모전 대상 수상 촬영 1팀 민경원 드림]

지난주에 회사 자체적으로 시상식을 가졌었다. 민경원 사장이 커다란 팻말을 하나 만들어 주었다.

이걸 왜 회사에서 받아야 하는지, 민경원 사장 이름은 왜 들어가 있는지 이해는 안 되지만.

어쨌든 회사에 소속된 사람이니, 그냥 그러려니 하고 받았다.

공식적인 행사 덕분에 직원 모두에게 한 번 더 축하를 받기도 했고.

“대리님, 안녕하세요.”

“오~, 홍지아 씨, 왔어?”

“네.”

타닥. 타닥.

홍지아는 도착하자마자 눈길도 주지 않고, 타자에 집중했다.

평소엔 월요일에 출근하면, 주말에 있었던 묻지도 않은 일 미주알고주알 다 말하며 푼수를 떨어대는데.

오늘은 좀 다르다. 급한 일이 있나?

출근 시간 30분 정도 지났을 때쯤.

“여어~, 굿모닝~, 에브리바디~.”

변 팀장이 왔다.

“팀장님 안녕하세요! 월요일부터 시장 조사를! 하하.”

“응? 하핫. 역시~ 나 알아주는 사람은 강 대리밖에 없어~.”

평소 시장조사 핑계로 10시 좀 넘어서 왔는데, 그에 비하면 오늘은 좀 이른 편이었다.

“근데 좀 짧게 하고 오신 거 아니에요?”

“아~, 월요일이잖아~. 현업도 챙겨야 하니깐.”

오전 시간이 지나가고.

두 사람 다 오늘따라 말이 없다.

이상하게…… 거리감이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뭔가 가리는 듯한? 혹은 피하는 듯한 기분?

아침엔 그러려니 했는데, 오전이 다 가도록 이런 기분이 드는 건…….

분명 뭔가 있는 것이다.

난 똥손으로 30년을 넘게 살아온 눈치 200단이다.

“홍지아 씨?”

“네, 대리님.”

“잠깐 이리로 와 봐.”

난 홍지아를 내 책상으로 불렀다.

“부르셨어요?”

“응, 여기 앉아.”

간이 의자를 가리켰고, 홍지아는 다소곳이 앉았다.

“…….”

“…….”

역시, 이상하다.

내 눈을 못 쳐다본다.

분명 이건 피하는 것이다.

“왜 그래?”

“뭐가요?”

“나한테 뭐 불만 있어?”

“네? 갑자기 무슨 불만요.”

여전히 시선을 피하며 안절부절못한다.

“이상한데? 평소랑 다른데?”

“…….”

난 가만히 홍지아를 바라보았고.

그녀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진짜 말 안 할 거야?”

“…….”

입을 꾹 다물고 있어서, 충격요법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너 나 좋아하니?”

홍지아는 눈을 부릅떴다.

“아니요! 무슨 그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

“내가 얘기했었죠! 저 키 큰 사람 좋아한다고.”

“야야. 일 절만 해.”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제야 날 바라보네.

“그래~, 이래야 홍지아답지. 오전 내내 왜 그런 거야?”

“…….”

“계속 이렇게 얘기 안 하고 피하면, 날 좋아한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어.”

“아, 말해요! 말해!”

홍지아는 짜증 난다는 듯 입을 열었다.

“모르겠어요. 그냥 좀…… 어려워졌어요.”

“뭐어? 어려워? 누가?”

“…….”

“내가?”

갑자기 웬 뚱딴지같은 소리를.

뒤에 앉아서 지켜보고 있던 변 팀장이 다가와 목소리를 죽이고 말했다.

“어제 홍지아 씨가 알려줘서 네모튜브 봤거든.”

“아…….”

어제 방송 봤나 보구나.

“영상에 손만 나왔는데, 알아보셨어요?”

“목소리가 나오잖아. 그리고 강 대리가 나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

그렇긴 하네. 근데…….

“그게 왜요?”

“흠!”

변 팀장은 헛기침하고는 다시 작은 소리로 말했다. 다른 팀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도록.

“그 채널 구독자가 100만이 넘고, 강 대리가 종이접기할 때 접속자 수가 10만이 넘었었다고. 댓글 열기도 장난 아니었고.”

“…….”

“그런 사람이 내 부하직원이라고 생각하니…… 쪼~금 어렵네?”

이러면서 변 팀장은 혀를 쏙 내밀고 웃었다.

난 어이가 없어서 홍지아를 바라봤다.

“그래서 어렵다는 거였어?”

“……네.”

“하하하.”

난 큰 소리로 웃었다.

“둘 다 왜 그래요. 방송에 손만 출연했고…… 구독자 수가 100만이든, 1,000만이든 뭐가 중요해요.”

“…….”

“전 어쨌든 진일상사 촬영 1팀 소속이고, 팀장님의 부하직원이며 홍지아 씨 선배인 강태평 대리일 뿐인데.”

이제야 두 사람은 조금 미소를 지었다.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요.”

지금은 정말 회사가 가족 같다고 생각한다.

이 두 사람 덕분에.

“전 계속 함께이니까요.”

하지만 이 말에는 변 팀장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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