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손으로 살아가기-22화 (22/156)

네모의 신 (1)

* * *

‘네모의 신?’

덜컹.

그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고~, 좀 늦었습니다~.”

얼굴에 턱수염이 덥수룩한 한 남자가 들어왔다.

체격이 어찌나 큰지 현관문이 비좁아 보일 정도였다.

근데…… 그가 나타나자 네모 씨와 정카는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다들 뭐 해요? 빨리 촬영 준비해야죠?”

“아……, 하하. 네모삼촌, 컨디션 어때요?”

네모삼촌?

저 사람이 네모튜브 고정 출연자구나.

영상에 나오는 손이 참 곱던데…….

“으허허. 좋죠~. 아주~. 좋죠~~.”

“…….”

상상했던 이미지와 너무 딴판인데.

얼굴과 체격은 소 한 마리 거뜬하게 때려잡게 생겼는데.

“오늘 네일 숍에 들렀다 왔거든요. 어때요? 화면발 잘 잡히겠죠? 으하하.”

그리고 손을 들어 보이며 웃는데.

포샵이 아니었다.

손가락이 길고 가늘며 게다가 우윳빛깔이었다.

정말…… 곱디고운 손이었다.

그리고 손도 체격에 비해 작아서 그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을 때는…… 얼굴 크기와 너무 대비돼서 기괴해 보일 정도였다.

베이비 핸드.

“어? 근데 이분은 누구시죠?”

네모삼촌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제야 날 발견한 듯했다.

“오늘 소품 쓰는 거 없는데?”

네모삼촌의 질문에 네모 씨는 머뭇거렸고, 정카도 눈치만 봤다.

“뭐예요?”

그냥 소개하면 돼지. 왜 머뭇거리지?

뻘쭘해서 그냥 내가 나섰다.

“안녕하세요. 전 강태평이라고 합니다.”

난 대뜸 먼저 인사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전 네모삼촌…….”

“네, 알고 있습니다. 어제 영상 잘 봤습니다. 종이접기 정말 잘하시던데요.”

“으허허. 고맙습니다. 오늘 촬영 구경하러 오신 건가?”

네모 씨와 정카는 여전히 눈치만 볼 뿐.

뭐라고 설명할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아, 네. 겸사겸사 왔습니다. 네모 씨께서 초대해 주셔서요.”

“겸사…… 겸사? 초대?”

네모삼촌은 꺼림칙한 표정으로…… 네모 씨를 바라봤다.

이제야 뭔가 느낌이 온 듯. 설명을 구하는 표정.

“네모 씨, 뭐지?”

“아……. 하!하!”

네모 씨는 갑자기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이분이 신의 학 접으신 분이에요~. 오늘 촬영장 구경 오신다고~.”

“아…….”

“구독자님께 약속했었잖아요. 한번 모신다고.”

“아……. 한 번? 한 번만이라고? 과연?”

네모삼촌은 주먹 쥔 손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아니……, 어떻게 내게 아무런 말도 없이.”

그는 작은 손으로 입을 가리고 덜덜 떨었다.

“너무하네. 난 결국 도구일 뿐이었나. 종이 접는 도구.”

“…….”

“내가 종이 말고 당신들을 접어 버렸어야 했는데.”

산적처럼 생긴 남자. 마지막 말은 약간 무섭게 느껴졌다.

네모삼촌은 갑자기 뒤돌아 나가려 했고, 네모 씨와 정카가 그의 양팔을 잡았다.

“놔~. 이거 놔~.”

잡힌 손을 빼내려 하는데, 시늉만 할 뿐 힘을 주는 것 같아 보이진 않았다.

* * *

“이해해 줘요. 예술 종사자라 감수성이 좀 예민해요. 감정 기복이 좀…….”

네모 씨는 내 귀에 소곤대듯 말했다.

“아……, 네.”

종이접기도……, 그래. 예술이지.

네모 씨와 정카는 네모삼촌을 한참 달래었다.

네모삼촌 입장에서 서운해할 수도 있지만……. 뭐,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한데.

거의 방송 시작 시간이 다 되어 갈 때쯤.

“알았어요. 어쨌든 함께 일하는 사람에게 이건 아니라고 봐요. 계획을 얘기하고 이해를 구했으면 됐잖아요.”

“알았어요. 미안해요.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 못 했어요.”

예술적 감성도 한몫했겠지만.

아무래도 자신의 일거리를 뺏길 거라는 염려 때문에 예민했던 게 아닐까 싶다.

어느 정도 기분이 풀린 얼굴로 네모삼촌은 날 바라봤다.

“초면에 실례가 많았어요.”

“실례는요. 무슨. 괜히 제가 미안해지네요. 불편하게 해드린 것 같아서.”

“그쪽이 미안할 게 뭐 있어요. 저 무심한 두 양반이 문제지.”

네모삼촌은 내게 손을 내밀었다.

“정식으로 인사하죠. 네모삼촌이라고 합니다. 성함이…… 아까 말씀 주셨던 거 같은데.”

“아, 네. 강태평입니다. 반가워요.”

난 그의 손을 꼭 잡았다.

“엇…….”

손을 마주 잡고 몇 번 흔들자, 그의 얼굴이 평안해졌다.

“손 느낌이……. 좋네요.”

“하하. 네. 네모삼촌이야말로. 손 관리를 많이 하시나 봐요.”

너무 부드러워서 여자 손 만지는 줄 알았다.

씨익.

날 보고 환하게 웃는 네모삼촌.

덥수룩한 수염 사이로 하얀 이빨이 보였다.

손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운 감촉과 산적 같은 외모.

뭔가 좀 기분이 묘하다.

아오. 손 빨리 빼야겠다.

“하하!”

난 뺀 손으로 파란 책상을 가리키며 말했다.

“자, 어서 일 보시죠. 전 옆에서 구경 좀 하다가 가겠습니다.”

네모삼촌이 오기 직전에 내게 출연을 제안했었지만, 그가 온 이후로 네모 씨는 내 출연에 대해 더 얘기하지 못했다.

“흠! 네모삼촌, 오늘 뭐 만들 거죠?”

“오늘은 간단한 거로 두 개 준비했어요. 너구리랑 산토끼요.”

“저번에 토끼는 하지 않았어요?”

“그건 토끼고, 이번엔 산토끼.”

“아…….”

이 말을 들은 네모 씨의 표정은.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

똥손으로 눈칫밥은 엄청나게 먹어봐서, 표정만 봐도 안다.

분명히 불만이 많지만, 대안이 마땅치 않아서 참는 표정이었다.

“정카, 바로 촬영준비 해. 네모삼촌님은 바로 자리하시고요.”

“알았어.”

“네.”

오후 2시, 10초 전.

“자! 준비됐죠?”

네모 씨의 표정이 진지했다.

“하나, 둘~, 짝!”

정카가 들고 있던 카메라에 불이 들어오고, 너튜브 라이브가 시작됐다.

네모삼촌이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조카님들~, 안녕하세요~. 네모삼촌입니다~.”

목소리가 청아하고, 단아했다.

상냥하고 부드러운 목소리 톤.

화면에 잡힌 하얗고 고운 손이 이리저리 손짓하며 대화를 해나갔다.

“오늘은~ 너구리랑 산토끼를 만들어 볼 건데요~. 우리 조카님들~, 준비되셨죠?”

멘트 시작과 동시에 댓글 창이 올라갔다.

└ 아, 네모삼촌 목소리 들으니까 좋다.

└ 삼촌 기다렸다고.

└ 오늘도 창조주가 되게 해줘요!

호의적인 댓글도 많았지만, 일부 불편한 댓글들도 보였다.

└ 근데 토끼 저번에 하지 않았었냐?

└ 그러게. 이번엔 산토끼? 저번엔 집토끼였나?

└ 다음엔 토끼 요리.

└ 그다음은 토끼탕.

└ 자이언트 토끼.

└ 토끼 간.

└ 그럼 마지막은 용왕이야?

“…….”

안 좋은 댓글은 금방 확장이 되었다.

종이접기 얘기는 없고, 각종 토끼 종류 얘기가 나오면서 시선이 분산되고 있었다.

이런 걸 분탕질이라고 하는 건가.

“으이구……. 내가 이럴 줄 알았다.”

네모 씨는 댓글 창을 보면서 부글거렸다.

하지만 네모삼촌은 개의치 않았다. 성격 예민해 보이던데……. 아무래도 진행을 오래 해서 그런 걸까?

댓글 멘탈은 좋아 보이네.

“하하. 여러분, 저번에 한 건 집토끼고요. 오늘은 산토끼가 맞습니다. 두 토끼는 엄연히 달라요.”

네모삼촌은 화면에 가득 잡힌 손으로 토끼 모양을 그리며 설명했다.

“집토끼는 대부분 하얗고요~, 산토끼에 비해 앞다리가 좀 짧아요. 산토끼는 등 부분에 갈색빛을 띠고 있답니다.”

└ 헐. 뭐야? 생물 시간이야?

└ 이 어처구니없는 디테일 뭐야?

└ 네모튜브 감 잃었네.

└ 결국은 색종이 색깔 바꾸고, 앞다리 길이 다르게 해서 토끼 만든다는 거잖아?

└ 안드로메다로 안녕…….

접속자 수가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고.

평온했던 두 남자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카메라를 붙잡고 있는 정카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고.

네모 씨는 안절부절못했다.

“자~, 그럼 너구리 먼저 접어 볼까요? 노란색 종이와 갈색 종이 두 개를 준비해 주세요~.”

네모삼촌은 멘탈이 정말 강했다.

접속자 수가 실시간으로 1만 이상씩 빠지고 있는데도, 묵묵히 자기 길을 갔다.

“눈 부분에 너무 진한 갈색으로 준비하시면 안 됩니다~. 자칫하다간 판다처럼 보일 수 있거든요~. 허허.”

이걸 재밌자고 하는 멘트인가?

“아, 칼로 이렇게~, 동그랗게 잘라서 너구리 눈을 만들어야 하는데요~. 아! 여기서 문제! 칼을 보니까 떠오르는 문제가 있네요. 허허.”

네모 씨와 정카는 초조하다 못해, 얼굴이 점점 새파래지고 있었다.

“칼이 정색하면?”

“…….”

꿀꺽.

어디선가 침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제발……. 제발 하지 말아줘…….”

그리고 네모 씨의 간절한 바람도 들렸다.

네모삼촌은 환하게 웃으며 소리쳤다.

“검정색! 우하하하.”

헐…….

칼이 정색하면 검정색이라고?

댓글 창은 난리가 났다.

└ 젠장…….

└ 검증된 농담 아니면 하지 말라고.

└ 여기가 실험실이야?

└ 검정색? 개정색하는 거 보고 싶어?

└ 빠이.

└ 안녕.

아무래도 이상하다.

네모삼촌이 원래 저랬었나?

어제 영상 볼 때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거 같은데.

왜 자꾸 무리수를 두지?

혹시…… 나 때문인가?

이제 접속자 수가 3만씩 빠져나가고 있었다.

“안 돼. 더는 안 돼.”

네모 씨는 얼굴이 벌게져서, 노트북에 앞에 앉았다.

그리고 분노의 타이핑을 하기 시작했다.

곧이어 영상 아래에 커다란 말풍선이 나타났다.

[오늘 신의 학이 나타납니다.]

헛…….

열심히 너구리를 접고 있던 네모삼촌의 표정이 굳어졌고.

정카도 카메라에서 시선을 떼고 네모 씨를 바라봤다.

하지만, 네모 씨는 거침이 없었다.

“강태평 씨, 아까 얘기했던 거 있죠.”

“…….”

“준비하세요.”

* * *

강태평은 굳은 표정으로 열심히 손 스트레칭을 하기 시작했다.

네모튜브에서 라이브는 자주 하는 행사가 아니었다.

구독자를 모으기는 힘들지만, 흩어지는 건 순식간이다.

분명 네모삼촌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오늘 컨디션이 안 좋아 보이고 콘셉트도 잘 못 잡고 있다.

더욱이 그런 상황에서 열심히 한다는 게 문제였다.

신의 학이 나타난다는 말풍선과 함께 댓글 창은 다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 신의 학?

└ 설마…….

└ 진짜로?

네모 씨는 확실히 운영자는 운영자였다.

상황을 보고 결단을 내리니 거침이 없었다.

[네모삼촌, 너구리 끝내고 산토끼는 다음에 한다고 멘트 치세요.]

네모삼촌은 살짝 고개를 저었다.

[따르세요. 제가 피디입니다.]

네모 씨는 굳은 표정으로 네모삼촌을 바라보았고.

휴우―.

네모삼촌은 크게 한숨을 쉬었다.

어느덧 너구리는 다 만들었다.

아무리 연한 갈색으로 했어도, 얼핏 보면 판다처럼 보이는 너구리였다.

“조카님들~, 오늘 저는 여기까지입니다. 신의 학 주인공이 오늘 방문하셨다고 하네요. 아래 말풍선 보셨죠?”

내키지 않더라도 네모삼촌은 자기 역할을 했다.

“아쉽지만 산토끼는 다음에 보여드리기로 할게요~. 자, 그럼 신의 학을 만드신 장본인을 모실게요.”

“…….”

잠시 정적이 흘렀다.

네모삼촌은 잠시 머뭇거렸다.

차마 입에서 떨어지지 않는 듯했다.

휴우―.

결국 힘겹게 입을 열었다.

“네모의 신입니다.”

└ 우와~!

└ 설마…… 진짜로 신의 학 만든 분이라고?

└ 만들기 전까진 못 믿는다.

네모의 신 소개와 함께, 댓글 창은 완전히 불타올랐다.

그와 동시에 접속자 수도 폭증하기 시작했다.

곧 파란 책상 위의 손이 바뀌었고.

흐흡~, 휴우.

강태평은 크게 심호흡했다.

화면 속에 비친 손.

좀 전의 네모삼촌처럼 곱고 이쁜 손과는 달랐다.

손톱도 좀 깨져 있고, 여기저기 흉터도 있었으며, 손 마디에 주름도 많았다.

사무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일반적인 남자의 손이었다.

근데 이상하게도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마치…… 빛이 나는 것 같았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강태평의 목소리가 너튜브의 영상을 타고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흠.”

자신을 지칭해야 하는데, 민망함 때문인지 헛기침을 몇 번 했다.

“네모의 신입니다. 지금부터…….”

“…….”

꿀꺽.

네모튜브의 세 남자는 숨죽이고 화면 속의 강태평의 손만 바라봤다.

“신의 학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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