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손으로 살아가기-21화 (21/156)

네모튜브 (2)

* * *

“네모튜브? 그게 뭐야?”

변 팀장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날 바라봤다.

꿀꺽.

그걸 홍지아가 어떻게 알고 있지?

난 당황하여 홍지아를 바라봤지만, 그녀는 생글거리며 그저 웃고 있었다.

“홍지아 씨, 갑자기 무슨 소리야?”

난 우선 모른 척해보았다.

“안 왔어요? 이상하다……. 오늘 강 대리님 만나러 온다고 했는데.”

“…….”

난 거짓말을 잘 못 하는 성격이다.

자꾸 홍지아의 눈을 피하자, 그녀는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이상한데?”

의심쩍은 눈으로 날 바라보며 되물었다.

“왜 숨겨요? 네모튜브 왔었죠?”

“두 사람 뭐 하는 거야? 나도 좀 알려줘~, 궁금해~.”

홍지아가 네모튜브를 알다니. 그리고 그들이 날 만나러 온 건 어떻게 알고 있을까.

확신하고 있는 눈빛이어서 더 이상 피할 수 없었다.

“아~, 하하. 그러고 보니 그 사람들이 네모튜브구나.”

“…….”

변 팀장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봤다.

“좀 전에 왔던 남자들 있잖아요. 팀장님께서 뭐 하는 사람들이냐고 물어봤던 분들이요~.”

“아~, 종이접기하는 분들?”

“네.”

변 팀장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물었다.

“홍지아 씨가 오더 수주한 분들인가 보네? 아까 보니까 강 대리랑 한창 회의 중이더라고. 촬영 일정을 잡는 건지…….”

변 팀장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자리로 가려 했다.

“하여간 요즘은 별 직업이 다 있어~. 종이 접은 걸 촬영하겠다고 대상 수상자에게 의뢰를 해 오고 말이야. 하하.”

홍지아는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말했다.

“아닌데. 그게 아닐 텐데.”

흡!

도대체 어디까지 아는 거지?

이렇게 팀장님에게 알려지면…… 부업의 가능성은…….

제발…… 더 얘기하지 마.

“강 대리님 섭외하러 온 걸 텐데요. 촬영 때문이 아니라.”

헉!

젠장. 홍지아…… 다 알고 있구나.

어떻게 된 일이지?

너도 네모튜브냐?

“뭐, 섭외?”

변 팀장은 다시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뭔 소리야? 강 대리를 왜 섭외해?”

“강 대리님이 종이접기 엄청 잘하거든요.”

다 끝났다.

모든 게 밝혀졌다.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팀장님까지 다 알게 되었다.

“좀 알아듣기 쉽게 설명 좀 해봐.”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변 팀장은 급기야 의자를 갖고 와 옆에 앉았다.

“새로운 사업 아이템인가?”

“아……. 뭐, 그럴 수도 있고요. 아닐 수도 있고요.”

홍지아는 이 말에는 애매하게 대답하였다.

* * *

부업은 무슨 부업이냐.

대리 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냥 이렇게 편하게 생각하려 했다.

네모튜브 출연료와 후원금에 대해 혹했던 마음은 벗어버리고.

그냥 허심탄회한 마음으로 나 또한 물었다.

“홍지아 씨, 나도 궁금해. 설명 좀 해줘 봐.”

“아……, 그게요.”

홍지아는 천천히 설명해 주었다.

1달 전쯤 제이엠인터내셔날에서 촬영 중 내가 종이학을 접게 되었고.

그때 이정권 대리가 어렵게 종이학을 하나 갖게 되었다고 한다.

“네모튜브의 열혈 구독자인 이정권 대리는 어느 날 영상을 보다가 네모튜브에서 올린 종이학 영상에 댓글을 단 거예요.”

“…….”

“자기에게 신의 학이 있다고.”

“신의 학?”

변 팀장은 알쏭달쏭해 했고, 홍지아는 내가 네모튜브에게 들었던 말들을 해 주었다.

왜 종이학이 아니라, 신의 학이라 불리는지.

들으면서 변 팀장은 내가 처음에 들었던 것처럼 어이없어했다.

내가 하는 말도 아닌데, 아주 낯 간지러웠다.

“그런 이유로 강 대리님의 신의 학은 유튜브 영상을 타게 되었고…… 말 그대로 난리가 났죠.”

홍지아의 말로는 해당 영상 조회 수는 100만이 넘었으며, 최근 네모튜브 영상 중에서 화제성이 단연 압도적이었다고 한다.

“그때 댓글 반응이…… 이게 ‘TV쇼 진품명품’이냐고……. 종이학이 아니라 명품을 갖다 놓으면 어떡하냐고…….”

“홍지아 씨도 봤어?”

마치 본 것처럼 얘기하기에 궁금해서 물었다.

“당연히 봤죠.”

“어떻게 알고? 홍지아 씨도 종이접기 마니아야?”

“호호. 아니요.”

홍지아는 고개를 저었다.

“종이접기는 관심 없어요. 하지만 너튜브를 많이 보거든요. 그때 유튜브로 공모전 관련 영상을 많이 찾아봤었거든요. 진일상사로도 검색해 보고.”

“…….”

“어느 날 생뚱맞게 추천 영상으로 그게 뜨더라고요. 그걸 너튜브 알고리즘이라고 하는데요. 내가 선호하거나 찾는 영상을 추천해주는…… 뭐, 그런 거예요.”

“아…….”

이제야 좀 이해가 되었다.

근데…… 홍지아 씨 말대로라면.

“그 영상에 진일상사라는 표현이 들어가나 보지?”

“진일XX 이렇게 들어가 있더라고요.”

이 말에 변 팀장이 박장대소를 하며 웃었다.

“푸하하. 어이가 없네. 진XXX을 하던지, 진일XX은 뭐야.”

난 고개를 끄덕이다가 물었다.

“그게 언제쯤이야?”

“두 분 부산에 계실 때였어요.”

“왜 말 안 해줬어?”

“그때 오시자마자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바로 사장님 미팅 들어가셔서 말할 타이밍을 놓쳤네요. 그다음은 뭐…… 아시잖아요.”

수상자 결과 발표가 나고, 우리 팀은 너무 바빴다.

서로 얼굴도 보기 힘들 정도였으니까. 아마, 그런 거 얘기할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어제 네모튜브에서 우리 사무실로 연락이 왔었어요. 방문하고 싶다고요.”

난 홍지아와 오늘 이틀 만에 보는 것이다. 변 팀장도 그렇다.

그리고 수주 담당인 홍지아는 하루에 받는 전화만 수십 통이다.

얘기가 늦게 전해진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잠자코 듣고 있던 변 팀장이 입을 열었다.

“근데 말이야…….”

나와 홍지아는 그를 바라봤다.

“그거 돈 되는 거야?”

“…….”

역시 변 팀장이다. 가장 핵심적인 걸 물었다.

홍지아는 어깨를 으쓱했고.

난 일단 잠자코 있었다.

“홍지아 씨?”

변 팀장은 홍지아에게 되물었고, 그녀는 살며시 웃으며 대답했다.

“글쎄요. 돈이 될 수도 있겠죠. 근데 자세한 건 강 대리님이 아시지 않을까요?”

“강 대리?”

“네, 네모튜브에서 오늘 여기까지 찾아온 목적이 있겠죠.”

홍지아는 힐끔 날 바라봤고, 변 팀장도 궁금했는지 내 대답을 기다렸다.

난 더 고민하지 않고, 말했다.

이렇게 된 이상, 어차피 부업에 대해선 자포자기하는 마음이었기 때문에.

“출연료 제안을 하더라고요. 그리고 뭐, 제가 출연한 회차에 후원금 등이 추가로 나오면 전부 주겠답니다.”

“오~, 얼마나 준다는데?”

변 팀장은 대수롭지 않게 물었다.

“회당 50만 원 준다던데요?”

“커컥. 50만 원?!”

변 팀장은 깜짝 놀라서 동공이 커졌다.

홍지아도 놀랐는지 입이 벌어졌다.

“…….”

두 사람은 잠시 아무런 말이 없었다.

이해한다. 나 역시도 처음에 제안을 들었을 때 이런 반응이었으니까.

“아니……, 그러면 20번 출연하면 대상 수상금인 거야?”

변 팀장의 말에 홍지아가 머리를 저었다.

“아니죠……. 그게 다가 아니죠. 후원에 광고에…… 출연료가 다가 아니죠.”

변 팀장은 갑자기 활짝 웃더니 내 어깨를 잡았다.

“강 대리! 축하해! 하하. 와~, 강 대리 진짜 대박이네!”

난 그의 말에 피식 웃었다.

“아직 출연 결정하지도 않았는데요. 그리고 사장님께 보고도 드려야 하고, 또 회사랑 어떻게 나눌지…….”

“무슨 소리야?!”

갑자기 변 팀장은 정색했다.

“그걸 회사에 왜 얘기해?”

“네?”

“절대로 얘기하지 마!”

난 눈을 끔뻑끔뻑하면서 변 팀장을 바라봤다.

“부수입 들어오는 건 회사에 알리지 않는 게 좋아. 어차피 알 수도 없고. 그걸 왜 얘기하나?”

“아니…… 그래도 팀 매출에…….”

“우리가 촬영 팀이지, 종이접기 팀이야?”

“네?!”

“지금 촬영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없어. 괜히 일거리 만들지 말라고! 나 일 많이 하는 거 싫어~.”

엇……. 이게 지금 도대체.

“그리고 뭐, 좋을 게 있다고 다 회사에 보고를 하나?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 그런 부수입 창구는 뚫어놓는 게 좋은 거야.”

“…….”

“회사 천년만년 다닐 거 아니잖아. 안 그래? 홍지아 씨?”

“아……, 네.”

홍지아도 약간 놀랐는지, 얼떨결에 대답했다.

변 팀장은 회사 생활만 해 온 사람이다.

아주 탁월한 능력을 가진 회사원도 아니며 좀 태만한 부분도 있지만, 어쨌든 회사원으로서의 본분에 충실히 한다.

그런 그의 이런 반응이 놀라웠다.

그리고…… 고마웠다.

“난 팀장으로서는 못 들은 거로 할 거니까~, 가끔 얘기나 해줘. 궁금하니까.”

툭툭.

변 팀장은 내 어깨를 두들기고는 사무실을 나섰다.

“오랜만에 시장 조사나 가 볼까~.”

* * *

토요일 오후. 내 자취방.

정오까지 잠을 자고, 침대에 누워 뒹굴거리고 있었다.

난 주말엔 웬만해선 집 밖을 나서지 않는다.

집 밖은커녕, 침대 밖으로도 잘 안 나간다.

간혹 화장실이 급하거나, 배가 고플 때만 일어난다.

“네모튜브라고 했지…….”

어제 만났던 그 사람들.

이정권 대리와 홍지아가 알 정도면 유명한 너튜버들이 맞는 것 같기는 하지만.

그래도 우선은 내가 좀 알아봐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응?”

<구독자 110만 명, 네모튜브>

“우와……, 진짜네. 신기하네.”

구독자가 110만 명이나 되는 너튜버가 날 찾아왔다는 것, 그리고 종이접기로 이 정도 구독자가 있다는 것 모두 신기했다.

몇 가지 영상을 클릭해서 보았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네모삼촌입니다. 오늘은 제트비행기를 접어볼 건데요…….]

곧 영상에는 얼굴은 보이지 않고, 손만 나와서 종이를 접는데.

흥겨운 음악. 파란색 바닥 위의 노란색의 네모난 종이.

네모난 종이가 멋진 제트비행기로 변신해 가는 과정을 보는데…… 희한하게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손만 왔다 갔다 하면서 투박한 네모를 완전 다른 무언가로 바꿔나가는 게 이상하게 힐링이 되었다.

“허……. 참나. 기분이 묘하네.”

어느샌가 난 빠져들고 있었고, 영상을 순식간에 5개나 봤다.

하나당 12분 정도였으니…… 거의 1시간을 본 것이다.

“괜히 구독자 100만 명 넘는 게 아니었어.”

구성이 심플하지만, 시선을 잡아끌며 감성을 동요시키는 영상.

네모 씨가 굉장히 영리하다고 생각했다.

‘네모삼촌.’

근데 네모삼촌은 누굴까. 네모 씨와 동일 인물인가? 이분도 보통 손재주가 아니신 거 같은데.

난 이번엔 최신 영상을 클릭해 보았다.

이번에는 붉은 여우를 만들고 있었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안녕~.]

네모삼촌의 손이 사라진 뒤, 갑자기 시뻘겋고 커다란 글자가 튀어나왔다.

<여러분! 궁금하셨죠! 신의 학의 창조자!>

어……, 어라?!

<어제 그분을 직접 만나고 왔습니다!>

이어진 영상에는 모자이크로 대부분 가려진 우리 회사 사무실과 내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며칠 생각해 보시고 연락 주시면 됩니다.>

나와 나눈 대화 일부분도 음성 변조가 된 채로 나왔다.

<네모튜브는! 신의 학 창조자를 반드시 모시겠습니다! 기대하십시오!>

영상은 끝이 났고.

나도 모르게 손이 덜덜 떨렸다.

모자이크이긴 하지만, 내가 나오다니.

그리고…… 진짜였구나. 정말로…… 나를.

혹시나 싶어서 댓글 반응도 보았다.

[신의 학 창조자님! 만나고 싶어요!]

[네모튜브! 일하네!]

[성지순례 왔습니다…….]

말 그대로 난리였다.

이 영상 주제였던 ‘붉은 여우’에 대한 댓글은 거의 없었다.

벌떡.

난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울에 내 얼굴을 비쳐 보고, 내 손도 비쳐 보았다.

손으로 종이를 접는 시늉을 해보았다.

“그래…… 얼굴이 나가는 것도 아니고, 손만 나가는 거니까.”

내 손에는 큰 흉터나 눈에 띌 만한 점은 없다.

검지 위에 작은 점이 하나 있기는 한데, 눈에 띌 정도는 아니다.

“팀장님 말대로 회사 생활 천년만년 할 것도 아니고.”

거울 속의 날 향해 씩 웃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한번 갔다 와 보자!”

신의 손길

* * *

속초에서 죽을 고비를 넘긴 후, 여러 가지 다짐을 했었다.

그중 하나가.

‘절대 망설이거나 뜸 들이지 말자.’

버스를 타고 가다가 폭우가 내리고, 낭떠러지에서 떨어질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트로트를 들으면서 흥겹게 가고 있던 버스 안의 사람들.

나 이외의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죽었다.

죽음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죽으면 아무 소용 없다.

고민하고 뜸 들이며 망설이지 말고, 그냥 빨리 행동하는 게 낫다.

언제 하늘나라 갈지 모르니까.

“여보세요?”

[하하. 강태평 씨! 생각보다 빨리 연락 주셨네요!]

영상을 보고 결심이 든 그 날 오후, 난 망설이지 않고 바로 전화했다.

[출연 결심이 드셔서 전화 주신 거죠?]

“네, 일단 그렇긴 한데요. 그건 제가 방문해서 얘기 들어보고 최종 결정하려 합니다.”

이건 망설이는 게 아니라, 신중한 것이다. 쓰읍.

[아~, 네, 그래요. 편한 대로 하세요. 언제 방문 가능하신가요?]

“아무래도 회사원이다 보니, 주말이 편합니다.”

[그럼 내일?]

내일은 일요일이다.

어차피 방구석에 혼자 있고, 만날 사람도 없고 시간은 많다.

“전 오늘이나 내일 아무 때나 상관없습니다. 네모튜브 문 여는 시간에 갈게요.”

[하하. 그럼~ 저희가 내일 오후 2시에 라이브 방송이 있거든요? 음……. 1시쯤 와주시면 괜찮을 것 같은데. 어떠세요?]

“혹시…… 그 방송에 저 출연시키실 건 아니죠?”

[하하. 걱정 마세요. 구경만 하고 가시면 돼요. 저희는 절대로 출연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아, 물론 제안을 드릴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받아들일지는 강태평 씨가 결정하시는 거니까요.]

왠지, 내일 방문하면 뭔가 일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어쨌든 출연 생각이 있어서 만나자고 하는 거니까.

그냥 가능성은 열어놓으려 한다.

“그럼 내일 뵐게요.”

“넵~, 주소는 메시지로 보내 드릴게요~.”

다음 날 오후.

“흐읍~ 휴우~.”

주말에 바깥 공기를 쐬는 건 참 오랜만이다.

날씨도 좋고, 상쾌했다.

정장이 아닌 옷을 너무 오랜만에 입었더니 약간 어색하다.

난 주로 촬영일을 하지만, 영업 사원처럼 항상 정장 차림으로 다녔다.

‘일은 좀 못 해도 괜찮아. 하지만 기본 예의는 항상 갖춰야 해.’

변 팀장은 고객을 만날 때의 차림새와 마음가짐만큼은 철저히 강조했었다. 예의가 영업의 기본이라며.

작업하기에 정장이 불편해서 몇 번 말해본 적이 있었지만, 사람 좋은 변 팀장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엄격했다.

네모 씨의 사무실은 종각역 근처에 있었다.

종각역에서 걸어서 8분 정도 거리.

난 역 출구에서 나와 지도를 확인 후, 걸어가려 했다.

“총각~.”

응?

날 부르는 건가?

주위를 돌아보니, 한 할머니가 지하철 출구 옆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좀 사 가~. 좋은 거야.”

할머니 앞에는 시금치, 명이나물 등 각종 야채가 있었다.

출구 옆에서 이런 풍경을 보는 게 아주 생소한 건 아니지만…….

종각역과는 뭔가 좀 안 어울렸다.

“저 지금 집 가는 길이 아니라서요.”

저걸 사서 들고 가기도 뭐하고, 집에서 음식도 안 해 먹기에 나에게 필요가 없었다.

“그러지 말고, 구경이라도 좀 해봐.”

“네?”

“구경하는 사람이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올 수도 있거든.”

“아…….”

시계를 봤더니, 아직 좀 여유가 있었다.

“에이~, 그러죠, 뭐.”

야채가 놓인 바닥 앞에 난 쪼그려 앉았다.

“이건 뭐예요?”

“숙주.”

“이건요?”

“두릅.”

난 10여 분 정도 그러고 앉아서 할머니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할머니. 제가 별로 도움이 못 되어 드리는 거 같네요.”

“아니요. 도움 됐어.”

“저 이제 가봐야 해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싶어 하는 그런 봉사 마인드를 가진 사람은 아니다.

다만, 외로워 보이는 사람은 모른 척하기 어렵다.

많은 사람 중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사람.

함께 있지만 외딴 섬 같은 사람.

그런 사람이 만약 날 필요로 한다면, 그건 도저히 외면할 수 없다.

“그래, 고맙네.”

“네, 많이 파세요.”

가려고 하는데, 할머니의 말이 날 붙잡았다.

“자네 말이야.”

그녀는 시선을 야채에 두고, 갑자기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잘하고 있어.”

“네?”

“그 어떤 의심도 하지 마. 자네는 잘하고 있으니까.”

뭉클.

생각지도 못한 위안에 갑자기 뭔가 뭉클해졌다.

“그리고 책임감을 갖는 건 좋은데, 너무 부담 갖지는 말게나.”

“…….”

“어차피 죽으면 끝이잖아. 자네는 잘 알 텐데?”

그리고 할머니는 날 향해 윙크하는데, 순간 소름이 돋았다.

뭐, 뭐지?!

난 놀라서 눈을 부릅뜨고 할머니를 보았는데, 날 향해 손을 휘저었다.

“어서 가게나. 중요한 일을 해야지.”

* * *

그 할머니는 뭐였을까?

뭔가를 아는 것처럼 말하는 것 같기도 하고…….

걸어가면서 할머니가 해준 말들이 내내 생각났다.

에이~, 별거 아니겠지.

그냥 부탁 들어줬다고 덕담 몇 마디 해주신 거겠지.

어느덧 도착했다.

높은 빌딩 숲 사이에 좀 오래되어 보이는 건물.

그 건물 4층에 ‘네모튜브’ 사무실이 있었다.

딩동!

지금 시각은 1시.

약속 시간에 정확하게 맞춰서 왔다.

조금 기다리니, 안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강태평 씨, 오셨나요?]

기다리고 있었구나.

“네~, 맞습니다.”

덜컹.

문이 열리고, 김병지 헤어스타일에 색안경을 낀 네모 씨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서 오세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하.”

“하하, 네, 안녕하세요.”

휴우~, 살짝 긴장된다.

난 애써 웃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찾아오는 데 힘드시진 않았나요?”

“네~, 지도 어플 보고 찾아왔으니까요.”

“하하. 그렇군요.”

네모튜브 사무실을 살펴보았다.

조명 판 2개와 카메라 2개.

텅 빈 공간 중앙에 파란색의 책상.

이게 다였다.

100만 유튜브라고 해서 뭔가 좀 거창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단출했다.

“저희 직원이 두 명 더 있는데요. 아직 안 왔습니다.”

“아, 네. 사무실이 아주 깔끔하네요.”

내 말에 네모 씨는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 썰렁하죠? 방문하시는 분마다 그렇게 말씀들 하세요.”

네모 씨는 활짝 웃으며 손으로 가리켰다.

“이쪽에 앉으시죠. 커피 드시겠어요?”

“아, 네, 좋습니다.”

잠시 후.

네모 씨는 커피를 내왔고, 꽤 고급스러운 향이 났다.

“저희 영상은 보셨나요?”

“네, 어제 봤습니다.”

네모 씨는 턱을 괴고 물었다.

“어떠셨어요?”

“손만 나오길래 맘에 들었습니다.”

“하하.”

네모 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익명성을 중시하는군요.”

“네, 아무래도 제가 회사원이다 보니, 공개적으로 이 일을 할 수는 없으니까요.”

“아하~, 네. 겸업을 고려하신다는 거죠.”

“뭐,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저한테 컨택을 하신 이유도 아직 잘 납득이 안 되거든요. 일단 와달라고 하셔서 오긴 했지만…….”

네모 씨는 고개를 저었다.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신의 학을 강태평 씨께서 만드신 게 분명하다면 무조건 잘됩니다.”

“그래요?”

“네.”

그의 말을 들으면서, 지금 뭘 원하는지 눈치를 챘다.

신의 학? 그 종이학은 내가 만든 게 분명하지만, 이들이 직접 보진 못했다.

네모 씨는 내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종이학 접기 부탁 좀 드려봐도 될까요?”

“…….”

“아, 물론 촬영하거나 하진 않을 겁니다. 그냥 계약하기 전에 확인 단계라고 보시면 됩니다.”

난 책상 위에 있는 A4 크기의 광고지를 집어 들었다.

“이거 필요 없으시죠?”

“네?”

“이걸로 해볼게요.”

“아, 아니요. 제가 색종이 좋은 거 가져다드릴게요. 광고지는 정사각형도 아니고.”

“테스트인데, 뭐, 어때요. 상관없습니다.”

“…….”

이미 난 접고 있었다.

종이학을 어떻게 접었더라.

기억이 잘나지 않았지만, 막상 손이 움직이기 시작하니 고민은 필요가 없었다.

머리는 기억 못 해도, 손이 기억했다.

“이렇게 했던 거 같은데.”

이렇게 접고, 요렇게 접고, 이렇게 꺾고. 돌리고. 찍고.

내 손은 화려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오…….”

네모 씨는 그저 감탄하며 바라볼 뿐이었다.

* * *

‘아니, 어떻게 저런 식으로 접을 수 있지?’

강태평이 종이학을 접는 방식은 정도가 아니었다.

왼쪽으로 접어야 할 때, 오른쪽으로 접었고.

두 번 접어야 할 때, 접지 않고 그냥 자국만 유지한 채 꺾기만 했다.

생전 처음 보는 종이학 접는 방식…….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꿀꺽.

“아……. 촬영하고 싶다.”

“네?”

“아, 아닙니다. 계속하세요.”

네모 씨는 자신도 모르게 속에 있는 말이 나오고 말았다.

그는 혼자 보기 아쉬웠다.

이 놀라운 광경을 기록에 남겨서 100만 구독자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넋 놓고 바라본 지 얼마 안 되어.

어느덧 강태평의 손은 멈춰져 있었다.

“다 만들었습니다.”

“…….”

그 학이었다.

분명 이정권이 유리관 안에 보관하고 있던 그 학.

신의 학.

.

.

.

.

“오……, 주여.”

네모 씨의 손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할렐루야까지 나오려던 걸 간신히 참았다.

‘미쳤어. 진짜 미쳤어. 어떻게 종이접기를 이렇게 할 수 있냐고.’

한 분야만 파고 있는 사람으로서.

네모 씨는 격한 감정에 휩싸이고 있었다.

몇 년간 네모튜브를 운영해 왔지만, 이런 건 본 적이 없었다.

“우세요?”

강태평은 어이없다는 듯 네모 씨를 바라봤다.

“아, 아닙니다.”

휴우―.

네모 씨는 깊게 심호흡을 하며, 가슴을 진정시켰다.

덜컹.

그때 문 여는 소리가 들렸고, 통통한 남자가 들어왔다.

“저 왔습니다~.”

정카였다.

그는 들어오자마자 강태평을 발견하고 한달음에 다가왔다.

“오셨군요~. 하하. 잘 오셨습니다~.”

“안녕하세요.”

강태평도 웃으며 그의 인사를 받았다.

“어? 근데, 이건…… 신의 학?”

광고 전단지로 만들어서 알록달록하긴 했지만, 이건 분명 신의 학이었다.

“강태평 씨가 만드신 건가요?”

“아, 네. 방금 제가 만들었어요.”

정카는 네모 씨를 보았다.

“접는 거 봤어?”

“보다니……. 그건 적절한 표현이 아니야.”

“뭐?”

네모 씨는 은혜받은 얼굴로 강태평을 바라보며 홀린 듯 중얼거렸다.

“영접했지.”

“…….”

“끝났어. 종이접기의 끝을 보여 주셨어.”

이 반응이 부담스러운 듯 강태평은 살짝 고개를 돌렸다.

“혹시 종이접기를 배우신 적이 있으신가요?”

네모 씨의 물음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없습니다.”

“그때도…… 이런 식으로 접었나요?”

아마 제이엠에서 종이학 접었던 걸 얘기하는 것 같다.

“솔직히 잘 기억 안 나요. 그냥 느낌 가는 대로 접었어요.”

“오……. 느낌 가는 대로라니.”

강태평의 말에 두 사람은 동시에 탄성을 자아냈다.

“정카, 프리스타일 종이접기 들어본 적 있어?”

“없지.”

꿀꺽.

네모 씨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이건 완전 초대박이야. 한시가 아까워. 생각할 틈을 주어선 안 돼.’

“저…… 강태평 씨.”

“네?”

“오늘 촬영 일정 있다고 했잖아요.”

“네…….”

“혹시 괜찮으시면, 바로 출연이 가능할까요?”

“네에? 오늘요?”

강태평은 당황하며 난색을 보였다.

“그건 좀 곤란한데요. 저도 생각할 시간이…….”

네모 씨는 그의 말을 끊고 던졌다.

“출연료 두 배로 드릴게요!”

“…….”

강태평도 놀라고, 그 옆에 있던 정카도 놀란 모양이었다.

“네모 씨, 너무 과한 거 아니야?”

정카가 옆에서 작게 말했지만, 네모 씨는 무시하고 말을 이어갔다.

“어때요?”

강태평도 고민이 좀 되는지…… 잠시 생각하다가.

“근데 전 아직 활동명도 없고…… 아무 준비가 안 되어 있는데.”

“활동명이요? 하하.”

네모 씨는 큰소리로 웃었다.

“그건 고민 안 하셔도 됩니다. 이미 정해져 있는데요.”

“네?”

네모 씨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크게 말했다.

“네모의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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