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모튜브 (1)
* * *
뭐지……, 이 사람들.
갑자기 남의 회사에 와서 왜 날 찾는 거지.
마이크와 카메라를 들고 있는 걸 봐서는, 제품 사진 찍고자 찾아온 바이어는 아닌 것 같은데.
“강태평 씨 안 계십니까?”
순간 고민이 되었다.
말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강태평 대리! 변 팀장님 언제 들어오셔?”
그때 영업 2팀의 송 과장이 내 고민을 해결해 주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얘기를 안 하고 나가셔서요.”
“알았어~. 전화해 봐야겠네.”
두 남자는 날 보고 웃었다.
“와~, 운도 좋지. 제대로 찾아왔네요. 하하.”
카메라를 든 남자가 물었다.
“근데, 왜 본인인 걸 얘기를 안 하세요? 저희가 수상해 보이나요?”
그렇다. 수상해 보인다.
“아, 아니요. 누구신지 먼저 확인하고 말씀드리려고 했죠.”
마이크를 든 남자가 웃었다.
“하하. 뭐예요. 우리 들어오자마자 소개했잖아요. 네모튜브에서 나왔다고.”
“그게 뭔데요?”
마이크를 든 남자는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하하. 와~, 정카야~. 우리 갈 길이 아직 멀었나 보다. 구독자 수 100만 넘어서 웬만하면 다들 알아보실 줄 알았는데.”
“그러게. 네모 씨 열심히 해야겠어~.”
네모 씨? 정카? 네모튜브?
뭔가 느낌이 올 듯 알쏭달쏭했다.
“네, 제가 잘 모릅니다. 알아듣게 설명을 좀 부탁드립니다.”
마이크를 든 남자가 웃으며 소개했다.
“너튜브 100만 구독 채널 진행자, ‘네모튜브’의 네모라고 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절 네모 씨라고 부릅니다.”
아……. 너튜브 하시는 분들이구나.
“전 촬영 담당 정카입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그래 너튜브 하는 건 알겠는데.
여기는 왜 왔고, 나를 왜 찾은 걸까?
“저 찾아오셨다고 했죠?”
“네.”
“너튜브 하시는 분들이 저를 왜?”
네모 씨는 잠시 생각하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우리 채널을 처음 들어보셨으니까, 뭐 하는 줄도 모르시겠구나. 혹시 종이접기 좋아하십니까?”
“종이접기요?”
생뚱맞게 무슨 소리야.
“아니요? 안 좋아하는데요?”
“어? 그래요? 이상하네.”
네모 씨와 정카는 서로 마주 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혹시 본인들이 종이 접은 걸 촬영해달라고 온 건가? 홍보 때문에?
“종이접기 촬영 때문에 오신 건가요?”
“아닙니다. 촬영은 정카가 하면 되고요. 그렇게 중요한 부분도 아닙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왜 나를 만나러 온 건지.
촬영할 것도 아니고. 종이접기 너튜브 채널이…… 왜 나를?
“저희는…… 종이접기 달인을 만나러 온 거죠.”
“달인이요?”
“네.”
난 멀뚱멀뚱 그들을 바라봤다.
“종이학의 달인. 강태평 씨요.”
* * *
종이학?!
종이학의 달인?!
난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었다.
뭐라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제가 종이학 달인이에요?”
황당해서 이런 바보 같은 질문이 나갔다.
“하하. 그걸 우리한테 물어보시면 어떡해요.”
내가 왜 종이학의 달인이지.
왜 달인일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모르겠다.
“제가 뭘 했습니까? 도저히 영문을 모르겠네요. 전 요즘 사진 찍는 거 말고는 한 게 없거든요.”
네모 씨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뭔지 알겠습니다. 종이접기 자체를 즐기시는 분은 아니군요.”
“네, 종이접기 안 즐깁니다. 한 적도 없고요.”
“한 적은 있을걸요? 학 접은 적 있지 않으세요?”
학……. 종이학.
아~.
그래. 한 번 있다.
제이엠인터내셔날에서 소품 준비한다고 해서 도와준 적이 있었다.
빨리 찍고 퇴근하고 싶어서 그때 열심히 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네……. 최근에 있기는 했네요. 딱 한 번.”
“하하하.”
네모 씨와 정카는 큰 소리로 웃었다.
“와~, 이쪽 세계에서는 난리가 났는데, 강태평 씨는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말씀하시네요. 하하.”
“…….”
정카는 웃으며 입을 열었다.
“강태평 씨의 만든 학을 우리는 그냥 종이학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 그럼요?”
“신의 학이죠. 신의 학.”
“신? God 말하는 거예요?”
“네. 종이에 생명을 불어넣었다고 해서, 신의 학이라고 불려요.”
이…… 무슨.
미친 소리인가 싶다가도.
두 사람의 표정이 너무 진지했다.
“이정권 씨가 우리 네모튜브의 열혈 구독자시거든요.”
이정권? 이정권이라면 혹시…….
“이정권 대리님 말씀하시는 건가요? 제이엠인터내셔날?”
“하하. 네, 맞습니다.”
아……. 그분이 이런 취미가 있었구나.
외모는 익사이팅 스포츠 좋아하게 생겼는데.
“그분이 남긴 댓글을 보고, 종이학을 받아봤죠. 두꺼운 유리관에 넣어 보관하고 계시더라고요.”
“…….”
“저희도 처음 봤을 때 눈을 의심했습니다. 이건 도대체가…….”
네모 씨는 꿈꾸는 듯, 허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한껏 올려진 날개. 곧게 뻗은 다리. 그리고 종이의 질감은 어찌나 그리 매끈하던지……. 저도 모르게 쓰다듬고 있더군요.”
“학 다리를요?”
“네…….”
옆에 있던 정카가 침을 꿀꺽 삼켰다.
“전 그날 밤 자꾸 그 학이 생각나서 잠을 못 이뤘어요.”
정신병자들이 아닐까.
이 감성…… 이해하기 힘들다.
이들에 비하면 용궁사에서 만났던 출사객들은 양반이었다.
“무엇보다도 학이…… 웃고 있었어요.”
풉.
급기야 웃음이 나오려 했는데, 이 사람들이 너무 진지해서 참을 수밖에 없었다.
“학의 얼굴을 만드셨더라고요. 살짝 종이에 주름이 가게 해서.”
“아……. 그러면 안 됩니까? 학도 눈코 입이 있으니까. 그냥 그렇게 해봤을 뿐인데. 제가 종이접기를 안 해봐서요.”
도리도리.
네모 씨는 이 말에 세차게 도리질을 쳤다.
“그것이 바로 특별함이죠. 디테일이 살아 있는 작품. 생명력을 불어넣은 것이죠.”
“아……. 네.”
“저 또한 그 학을 마주 보고 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많이 웃으셨나요?”
“네……. 좀.”
네모 씨와 정카는 마주 보고 서로 빙그레 웃었다.
근데, 정카…… 얼굴은 왜 빨개지는 건데.
“그래서 뭐, 오늘 저 인터뷰하러 오신 건가요?”
“아니요.”
네모 씨는 얼굴에 미소를 거두고, 입술을 깨물었다.
“제안을 드리러 왔습니다.”
“제안이요?”
아……. 왠지 듣기 전부터 부담스럽다.
“들어야 하는 거죠?”
“네, 말 그대로 제안이니까요. 들어보시고 결정하시면 됩니다.”
“네, 빨리 말씀하세요.”
이 사람들과 대화하느라, 벌써 30분이 지났다. 지금 하고 있는 리터칭을 마쳐야 하고, 오후에는 촬영 스케줄이 2개나 잡혀 있다.
“네모튜브에 출연을 요청드리는 바입니다.”
“아. 네. 거절하겠습니다.”
예상했던 제안이라, 난 바로 거절했다.
얼굴 팔리고 싶지 않고, 소꿉장난에 놀아줄 시간도 없다.
촬영 스케줄만 해도 한 트럭이다.
“출연료는 1회당 50만 원입니다.”
“아, 글쎄 안 한다니까……. 네?!”
50만 원?!
네모 씨는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출연하신 영상에서 들어오는 협찬이나, 후원은 100% 강태평 씨 몫으로 드리겠습니다.”
“…….”
“예상컨대, 출연료의 배 이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아……. 갑자기 혼란스럽다.
종이접기가…… 이렇게 돈 되는 일이었나?
나도 모르게 동공에 지진이 나고 있다.
네모 씨와 정카는 이런 날 무심히 바라보았다.
“당황스러우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며칠 생각해보시고 연락 주시면 됩니다.”
“…….”
네모 씨는 품에서 명함을 꺼내었다.
“자, 여기 제 명함입니다. 저도 강태평 씨 명함 하나 받을 수 있을까요?”
“아, 네.”
나도 얼떨결에 명함을 꺼내어 두 사람에게 건네었다.
명함을 받아든 네모 씨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일 얘기는 그만하고요. 우리 차나 한잔하면서 신의 학에 대해…….”
“아이고~, 바쁘다~.”
그때 변 팀장이 사무실에 들어왔다.
“응? 누구셔?”
그는 내 맞은편에 앉은 네모 씨와 정카를 경계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네모 씨는 잠깐 눈치를 보다가 일어섰다.
“오늘은 이만 가보겠습니다. 나중에 또 얘기 나누시죠.”
그들은 나와 변 팀장에게 살짝 목례를 하고 나가버렸다.
* * *
“누구야?”
변 팀장은 두 사람의 뒤를 보며 물었지만.
“…….”
난 그의 말이 잘 들리지 않았다.
지금 만난 두 사람.
네모튜브?
그들의 말대로라면 엄청난 기회일 수도 있는데.
하지만 왠지 사기꾼 같기도 하고.
그냥 좀…… 여러모로 혼란스러웠다.
빨리 포토샵 마치고, 사진 찍으러 가야 하는데……. 이럴 시간 없는데.
“강 대리!”
“아, 네! 팀장님.”
“내 말 안 들려?”
“죄송합니다.”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지?”
“아무 일 없습니다.”
“저 사람들은 누구냐고. 묻잖아.”
변 팀장은 촉이 빠른 사람이다.
그들에게 들은 얘기를 그대로 해줘야 할지, 말아야 할지.
순간, 고민이 되었다.
“응?”
그래, 일단은…….
“저도 잘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뭐, 이런저런 제안을 하는데, 저희 업종이랑은 상관없는 일이라서요.”
“뭐 하는 사람들인데?”
“종이 접는답니다.”
“뭐어?!”
변 팀장은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요즘 많이 바빠? 갑자기 웬 헛소리야. 똑바로 말해. 종이 접는다는 게 무슨 뜻이야?”
“말 그대로입니다. 종이 접는 사람들입니다.”
“에헤이. 말장난하지 말라니까.”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학, 개구리, 비행기 뭐 이런 거 있잖아요. 그런 거 접는 사람들이랍니다.”
“어른들이?”
“네…….”
“어이가 없네. 근데 여길 왜 찾아와? 아~, 사진 찍어달라고 찾아온 거구나?”
“…….”
“그럼 쉽게 바이어라고 설명하면 되지. 왜 스무고개를 하고 그러나. 하하.”
이 말에 난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아직 상황도 불명확하고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팀에 불필요한 혼란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더군다나 내 마음속 한구석에…….
한 단어가 자꾸 떠올랐다.
부업.
네모튜브에서 제안하는 것들이 사실이라면 괜찮은 부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부업을 하려면 회사에 알리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변 팀장이 편하고 잘해줘도, 팀장은 팀장이다.
“강 대리! 몇 시에 나가나?”
“1시간 뒤에는 출발해야 합니다.”
“뭐 찍으러 가?”
“이번에 인물 사진입니다.”
“인물?”
“네, 돌잔치 갑니다.”
촬영 1팀은 가리는 거 없었다.
가급적이면 제품 사진을 찍으려 했지만, 사례비가 현저히 많은 경우에는 가리지 않았다.
“어디로 가는 거지?”
“그랜드 워커 호텔입니다.”
“확실히 부잣집이라 다르구만. 돌잔치를 최고급 호텔에서 하다니.”
“그러니까 저희를 부르는 거죠.”
변 팀장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아이한테는 참 좋은 추억이 되겠구만. 국제사진공모전 대상 수상자가 돌사진 찍어주고.”
“네, 좋은 추억 남겨주는 저는 참 복 받은 사람입니다.”
변 팀장은 이 말에 껄껄 웃었다.
“이야~, 강 대리도 좀 변했네. 아주 긍정적인 사람이 되었어? 하하.”
“하하. 그 팀장에 그 팀원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잠시 노가리 까다가 이제 좀 리터칭에 집중하려 하는데.
“다녀왔습니다~.”
“어~, 홍지아 씨 왔어?”
그녀는 변 팀장의 말에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넵! 오더 수주 2개 해 왔습니당!”
“어이쿠~, 요즘 홍지아 씨가 오더 복부인이야. 하하. 뭘 그렇게 꿀떡꿀떡 잘 따오는 거야?”
“호호. 강 대리님 유명세 덕분이죠, 뭐~.”
난 그녀의 말에 피식 웃고는 화면에 집중했다.
“아, 맞다!”
홍지아는 내 옆으로 다가왔다.
“강 대리님!”
“응?”
그녀는 생글거리며 아무렇지도 않게 물었다.
“혹시 오늘 네모튜브에서 안 왔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