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손으로 살아가기-17화 (17/156)

출사객 (2)

* * *

“응? 셔터 스피드를 조절하라고요?”

“네.”

형상이 두껍게 보인다고 투덜대던 남자는 날 이상한 눈으로 바라봤다.

“아까 누구라고 하셨더라?”

“커뮤니티 가입하려고 한번 보러 왔다고.”

“아~, 맞다. 그러셨지.”

남자는 카메라를 이리저리 살피더니.

“셔터 스피드를 통해서 잔상 조절하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긴 하지만.”

그는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다시 덧붙여 말했다.

“라인이 두꺼운데, 셔터 스피드로 조절을 해보라는 얘기는 처음 듣네요.”

― 맞아. 그런 얘기는 못 들어봤는데.

― 손맛으로 그게 가능할까?

그때 무리 속에서 한 남자가 앞으로 나왔다.

“이분 말씀이 전혀 틀리지 않아요. 불꽃 사진 촬영할 때도 그거 때문에 벌브 모드로 촬영하잖아요.”

벌브……. 뭐?!

처음 듣는 단어.

아주 기초적인 용어 말고는 난 아는 게 없다.

지금으로서는 그저 아는 척 고개를 끄덕일 뿐.

“구력 좀 있으신가 봐요? 대낮인데, 셔터 스피드까지 고려해서 찍으라는 얘기를 하시는 거 보면.”

“낮이긴 하지만 날씨가 많이 흐리잖아요.”

오~.

주변 사람들이 내 말에 탄성을 질렀다.

그리고 눈빛을 반짝이며 내게 집중하는데.

아주 불편하다.

이게 뭐 대단한 소리인가?

구름 껴서 날씨가 흐리다는데?

“굉장히 종합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으시네요? 제대로 찍으려면 숲과 나무 모든 걸 볼 줄 알아야 하죠.”

울프컷의 헤어스타일. 옅은 선글라스를 쓰고 있는 남자.

근데 얼굴이 길어서 김병지 선수 같은 느낌이 난다.

그는 내게 악수를 건네었다.

“반갑습니다. ‘세상 끝까지’ 출사 모임 조장 정민철입니다.”

“안녕하세요. 강태평이라고 합니다.”

세상 끝까지.

이름 참…….

나이대는 나랑 비슷해 보이는데.

이런 걸 오타구 감성이라고 하는 건가.

“오늘 첨 오셨다고요?”

“아, 네. 구경 좀 하러 왔습니다.”

“네, 보니까 어떠세요?”

잠시 생각하다가.

그냥 얼버무리듯 대답했다.

“좋네요.”

어떠냐고 물어보는데,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그저 좋다고 하는 수밖에.

“역시. 좋죠?”

“네? 아, 네.”

그리고 날 향해 엄지를 쳐들었다.

뭐가 좋냐고 물어볼 줄 알았는데, 이렇게 받아줄 줄이야.

“형님~, 방금 강태평 씨가 말씀하신 대로 한번 찍어보세요.”

정민철 조장은 방금 선이 굵다며 이것저것 조정하던 사람에게 말했다.

“오케이~.”

그는 벌브 모드로 바꾸고, 셔터 스피드를 올려서 촬영했다.

찰칵!

지금 이 순간 출사객들은 여신을 보고 있지 않았다.

모두 이쪽을 주목하고 있었는데, 카메라에 대한 열정이 높아서일 것이다. 새로운 문제 해결 방법에 다들 관심들이 대단했다.

그는 찍은 화면을 보고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래도 아닌 거 같은데?”

“그래요? 이론상으로는 그게 되어야 하는데.”

정민철 또한 화면을 본 후 날 바라봤다.

“강태평 씨.”

“네?”

“카메라 가져오셨어요?”

“아, 네.”

“셔터 스피드 올려서 찍는 거, 한번 보여 주실 수 있어요?”

아…….

이걸 보여 줘도 되려나.

“잠시만요.”

난 안주머니에서 카메라를 꺼내었다.

― 뭐야? 디카야?

― 에이~, 핸드폰이겠지.

다들 내 카메라를 보고 눈을 의심했다.

내 손바닥만 한 크기의 귀엽고 앙증맞은 카메라.

한 손에 카메라를 들고, 여신이 있는 곳을 보았다.

“저분 찍으면 돼요?”

* * *

“푸하하.”

다들 머리통만 한 카메라를 하나 혹은 두 개씩 이고 있는데.

손바닥만 한 카메라를 보고는 다들 어이없어하며 웃었다.

“아니, 도대체 그걸로 뭘 찍겠다고. 푸하하.”

감천문화마을에서 신종국도 그러더니.

이쪽 세계에서는 장비발이 중요한가?

사진을 보고 비웃는 것도 아니고, 카메라를 보고 비웃다니.

카메라는 어쨌건 사진을 만들어내는 도구 아닌가?

“잘 찍고 있습니다. 이걸로 돈도 벌고 있는데요.”

정민철도 터진 웃음을 가까스로 참으며 내게 간신히 물었다.

“돈을 벌어요?”

“네, 천만 원 벌었는데요.”

“푸하……. 처, 천만 원?!”

그때 변 팀장이 날 향해 눈치를 주었으나, 난 개의치 않았다.

사실이니까.

카메라 하나로 제이씨인터내셔날과 연간 계약을 따낸 건 사실이니까.

“그거야 뭐, 한번 보면 알겠지. 어서 찍어 봐요.”

난 디지털카메라를 들어, 여신을 향해 구도에 잡으려 했다.

“잠깐. 그러지 말고 내 걸로 해봐요.”

형상이 두껍게 나온다고 투덜대던 남자였다.

“수동 카메라거든요. 다루는 솜씨도 궁금해서요.”

“남의 거 만지기 부담스러운데.”

“괜찮아요.”

난 정민철을 바라보았고, 그는 날 향해 어깨를 으쓱했다.

“알겠습니다.”

난 손을 뻗어 그의 카메라를 조심스럽게 받아 들었다.

묵직하고 반들반들하다.

명품의 기운이 느껴졌다. 그리고 관리를 잘 받은 탓인지 구석진 곳에도 먼지 하나 없었다.

“모델님 찍으면 되는 거죠?”

“네.”

앉아서 쉬고 있는 모델을 향해 구도를 잡고, 조리갯값과 ISO를 조절했다.

― 오~, 카메라 다룰 줄은 아네.

― 디카만 쓸 줄 아는 사람은 아니구나.

이렇게 큰 카메라는 처음 만져 본다.

그냥 이렇게 하면 될 것 같아서, 터치해 보는 것일 뿐.

장비 모양이 다를지라도 어쨌건 근본은 비슷하지 않나.

카메라를 얼굴 가까이 들고 자세를 잡자, 옆에서 변 팀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강 대리, 졸라멋있다.”

“조용히 해주세요.”

셔터 모드를 바꾸고, 손끝에 힘을 빼고 가볍게 셔터를 지그시 눌렀다가 뗐다.

찰칵!

강태평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중얼거렸다.

“쓰읍―, 조금 아쉽긴 한데……. 뭐, 그런대로. 한번 보시죠.”

카메라를 주인에게 내밀었고.

그는 피식 웃으면서 화면을 확인했다.

“어?”

화면을 보자마자 그의 동공이 확대되었다.

“다, 당신!”

그리고 강태평을 보다가 화면을 보다가.

번갈아 몇 번을 보면서 계속 ‘어?’, ‘응?’, ‘말도 안 돼!’ 이런 말만 뱉어냈다.

“형님~, 혼자만 보시지 말고, 우리도 한번 보여 주세요.”

정민철이 웃으며 카메라를 받았고.

“컥!”

그는 화면을 보자마자 정지되어 버렸다.

“이게 방금 당신이 찍은 거예요?”

“아니, 모델 보면 몰라요? 바위에 걸터앉아 있잖아요.”

“아니야……, 이건. 앉아 있는 게 아니야.”

정민철은 홀린 듯 중얼거렸고, 뒤에서 구경하던 사람들도 너나 할 거 없이 카메라 화면을 보고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처음 강태평을 보고 비웃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라인도 완벽해졌어. 두껍지도 얇지도 않아. 이거 어떻게 한 거예요?”

남자는 강태평을 향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고, 그는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셔터 스피드를 잘 조절해서 눌렀습니다.”

“그러니까 어떻게요?!”

“흠…….”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강태평은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그냥 적절한 세기로 눌렀다가 떼면 되는 걸,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그냥 뭐…….”

“…….”

“얇지도 두껍지도 않게 잘 조절해서 누르시면 됩니다.”

이 말을 들은 남자는 벙쩌 있었고, 사람들의 이상한 분위기에 모델도 어느새인가 다가와 있었다.

“어머~.”

시꺼먼 남자들 사이에서 날개옷을 입은 여신의 높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게 저에요? 진짜? 어머~, 완전 맘에 들어~.”

사진 속 화면의 모델은.

정말 여신이었다.

그녀가 앉아 있는 건 바위가 아닌, 검은색의 먹구름이었고.

그녀의 옷은 날개였다.

옷 주변에 은은한 잔상이 남아 신비감을 더해 주었고.

그녀의 머리 위의 먹구름은 그녀를 향해 굳게 닫혀 있는 문 같았다.

아빠 말 안 듣고, 남자 따라 지상으로 내려간 선녀를 향해 굳게 닫혀 있는 하늘 문.

“선녀를 찾아주세요~.”

그때 마침, 어디선가 옛 노래가 들려왔다.

* * *

“꺄하하.”

용궁사 아래 바위 위에서.

두 남녀는 카메라를 매개로 하나가 되어 있었다.

여신은 뭐가 그리 만족스러운지, 내가 사진을 찍어줄 때마다 행복해했다.

다른 출사객들도 열심히 찍고 있었지만, 그녀의 시선은 나의 손바닥 디카만을 향해 있었다.

“태평 씨! 지금 포즈 어때요?”

“굿!”

나도 어느 순간부터 카메라의 매력에 빠지고 있는 것 같다.

‘기억하고 싶은 찰나의 순간을 영원히 담아내는 것.’

이 여신님과 나는 아무런 사이도 아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분명 하나가 되어 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만드는 이 사진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자기야! 좀 더 옆으로!”

“네에?”

아, 내가 너무 몰입했구나.

“아, 아닙니다. 좀 더 옆으로 돌아서 보세요.”

“네~.”

여신은 내 말을 너무나 잘 들어주었다.

아까 ‘하늘로 날아가지 못하는 선녀’ 사진을 본 이후부터, 그녀는 내게 완전히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길어질수록…….

― 너무한 거 아니야?

― 저 사람 회원도 아니라며.

― 오늘 구경하러 온 거라고 하던데.

급기야 변 팀장도 나서서 말렸다.

“강 대리.”

“잠깐만요.”

찰칵. 찰칵.

“강 대리! 좀!”

“네?”

“정신 좀 차려. 자네 지금 여기 즐기러 왔나?”

“지금 실력 늘고 있는 게 안 보이십니까?”

“안 보여. 그리고 강 대리 지금 목적성을 상실했어. 오늘 출사객들 만나서 기술 배우려고 한 거였잖아.”

“…….”

“지금 뭐 하는 거야? 모델이 친절하게 대해주니까 빠져 가지고.”

“저……, 팀장님.”

모델? 호감?

그런 거는 지금 내게 전혀 없다.

다만 호소력과 생명력. 사진에 실어야 하는 감정을 배우기에는 지금이 적기였다.

평소 말 한번 붙여보기 어려운 미모의 여신이 내게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셔터에 감정이 절로 실렸다.

“보셔서 아시겠지만, 지금 제가 배워야 할 것은 기술이 아닙니다.”

“응?”

“아까 셔터 스피드 때문에 이분들하고 대화하는 거 보셨잖아요.”

“자기 좀 거만해진 거 아니야?”

난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거만이 아닙니다. 다만…….”

난 변 팀장을 향해 카메라를 들었다.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한 거죠. 타고난 잘난 부분을 받아들이는 것도 사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런 말 하는 거 좀 재수 없긴 하지만, 난 이제 받아들여야 한다.

금손을 가진 사람이 똥손 가진 사람의 마인드를 가져선 안 된다.

“그래야 더 발전할 수 있습니다. 지금 저에게는…… 느끼고 받아들이는 게 중요합니다.”

난 잘났고, 특별하며, 뭐든지 잘할 수 있다는 걸 느끼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더 큰 차이를 만들어 낸다.

“느껴? 느끼면…… 뭐가 달라지는데?”

이런 속마음을 자세하게 설명할 수는 없었다. 그러다간 왕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하지만.

찰칵. 찰칵.

여신은 날 향해 환히 웃고 있었다.

“공모전 대상 탈지도 모르죠.”

“뭐어?!”

변 팀장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바라봤고.

이젠 주변에 있던 출사객들은 사진 찍을 생각은 안 하고, 나와 여신의 행위를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이제 그만!”

어디선가 거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강태평 씨, 이제 충분합니다.”

정민철이었다.

“당신이 가입하고 싶다고 해도 우린 받을 생각이 없으니까, 이제 그만 가주시죠.”

그는 팔짱을 끼고, 고압적인 자세로 날 바라봤다.

멀리서 여신은 아쉬운 표정으로 날 보고 있었다.

“네……, 실례가 많았습니다.”

“지금 가주세요.”

“근데, 이건 조장님께서 찍어보라고 하셔서 시작된…….”

“알겠으니까, 어서 가세요.”

옆에서 변 팀장은 한숨을 쉬었고.

난 내 앙증맞은 디카를 안 주머니에 넣었다.

“그럼, 잘 놀다 갑니다.”

일부러 호기롭게 말하며 돌아섰다.

이렇게…….

나와 변 팀장은 보기 좋게 쫓겨났다.

하지만, 난 눈을 떴다.

부두에서

* * *

늦은 저녁.

오늘은 어디서 잘 것인가.

우리는 길거리를 헤매었다.

서면으로 왔다. 서면의 약간 외곽에서 오래된 모텔만 찾아다녔다.

“내일이 마지막이지?”

“모레 아침에는 올라가야 하니까. 하루를 온전히 보낼 수 있는 건 내일이 마지막이긴 하죠.”

항상 태연하기만 하던 변 팀장도 오늘 저녁부터는 표정이 좀 달라지고 있었다.

회사 일 그리고 성과에 대한 압박은 사람을 어쩔 수 없이 쫓기게 만든다.

특히나 팀장처럼 어느 정도는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에서는…….

“하룻밤에 얼마입니까?”

“3만 원입니더.”

우리는 세 번 만에 모텔을 찾았고, 들어가 짐부터 풀었다.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우리는 이렇게 직접 모텔을 찾아다니며 물어보거나, 전화로 가격을 알아봤다.

모텔 전용 숙박 어플이 있다는 건, 나중에 알았다.

변 팀장도 옛날 사람이라 그런지 그런 건 알지 못했던 것 같다.

“하아~, 피곤하다.”

변 팀장은 옷 입은 채로 침대에 털썩 누웠다.

“강 대리, 지금 몇 시지?”

“8시입니다.”

“흠…….”

변 팀장은 잠시 생각하더니.

“소주 한잔할까?”

“아…….”

피곤하다더니, 소주를 한잔하자고?

내일은 무조건 공모전 출품작을 찍어야 한다.

술 마시는 건 좀 부담이 느껴졌다. 변 팀장이 달리는 스타일이기도 하고.

“오늘은 맨정신에 못 자겠다. 그리고 부산까지 왔는데, 기분 한번 내야지.”

“…….”

그래도 내가 반응이 시큰둥 하자, 그냥 일어나서 나갈 채비를 했다.

“나가자.”

어쩔 수 없이 그를 따라나섰다.

서면의 한 백화점 후문 쪽 길목에 포장마차들이 늘어서 있었다.

변 팀장은 본능에 이끌리듯, 발걸음을 그쪽으로 돌렸다.

“향토색을 느끼려면 이런 곳을 가야지.”

뭔가 맛있는 거 사줄 거라고 약간은 기대했었지만, 역시 변 팀장이었다.

딸 둘 아빠니까 이해한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이소~.”

뽀글 머리 할머니가 우리를 맞이했고, 포장마차 안에 손님은 없었다.

천장에 메뉴판이 달려 있었고, 쇼윈도 안에는 주황색 은은한 조명 아래 다채로운 식재료가 펼쳐져 있었다.

너무 다양해서 고르기가 어려울 정도.

“꼬막 주세요.”

변 팀장은 제일 무난해 보이는 거로 주문했다.

짠!

벌컥!

우리는 안주가 나오기도 전에 술을 들이켰고, 포장마차 특유의 분위기 속에서 술은 잘도 들어갔다.

어느새 각 1병씩 비우고.

취기가 조금씩 오르고 있었다.

“강 대리~.”

변 팀장이 날 향해 느끼하게 웃었다.

“네, 팀장님.”

“장소가 특별해서 그런가? 술기운이 금방 오르네.”

“네, 저도 그렇습니다.”

쭉―.

그리고 변 팀장은 잔을 또 털어 넣었다.

“사는 게 참 쉽지 않다. 그치?”

“네……, 뭐. 다들 그렇게 살지 않습니까.”

“흐흐. 참. 부산 올 때만 해도 좋았는데. 오랜만에 자유라는 생각도 들고 말이야.”

“…….”

“겨우 3일 지났는데, 애들이 너무 보고 싶다.”

“아…….”

“회사에서 만날 얻어맞고 힘들어도 그 힘에 사는 거야.”

변 팀장 입에서 ‘힘들다’라는 표현은 처음 들어 본다.

“때리면 맞고, 피 흘리면 그냥 닦으면 되는 거지……. 뭐, 별거 있어? 하하.”

난 옆에서 지켜봐 왔기 때문에 그의 말이 헛으로 들리지 않았다.

그냥 맷집 좋고, 잘 웃고, 속이 편한 사람이 아닐까 싶었는데.

변 팀장도 남모르게 힘든 부분이 있었나 보다.

“몇 년간 회사 생활을 ‘버틴다’는 마음으로 다녔는데, 자네 덕분에 요즘 약간의 꿈이 생겼어. 버티는 게 아니라,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제가 뭘 했다고요.”

“자네가 돌아온 이후 팀에 변화가 생겼지. 속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사람이 달라졌잖아.”

“…….”

짠.

우리는 잔을 부딪쳤다.

“강 대리.”

“네.”

“자네는 지키고 싶은 사람이 있나?”

그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뭐, 내가 아이들을 생각하는 것처럼.”

“글쎄요, 전 뭐……, 여자 친구도 없고, 형제도 없고……. 고아인 건 아시잖아요?”

“알지.”

지키고 싶은 사람이라.

지금으로선 나 자신밖에 없다.

그래도 굳이 생각을 해보라면.

“그런 사람이 한 명도 없다고?”

“굳이 생각하자면 있기는 합니다만, 낯 간지러워서 얘기는 안 하렵니다.”

“뭐?”

난 변 팀장을 향해 잔을 들고, 씩 웃었다.

“회사는 아니지만, 전 적어도 우리 팀은 가족 같다고 느끼거든요.”

“아~.”

넉살 좋고 사람 좋은 변 팀장.

막내 여동생 같은 푼수 홍지아.

“제가 잘되는 게 팀이 잘 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더 잘하고 싶어요.”

“하하. 그래. 그래.”

변 팀장은 쭉 들이키고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1시간여 정도 술을 더 마시고,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근데 난 문득 궁금하여 물었다.

“저, 팀장님.”

“어.”

“애들 보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얘기도 많이 하시고.”

“그래.”

“근데, 형수님 얘기는 한 번도 안 하시네요. 형수님은 안 보고 싶으세요?”

“하하.”

변 팀장은 억지로 웃더니, 내 어깨를 두들겼다.

“결혼해봐……. 꼭 해야 해.”

* * *

부아앙―.

커다란 경적 소리가 울렸다.

결전의 날.

지난 이틀간 두 남자는 정해진 여건 속에서 노력했다.

카메라에 문외한인 데다가, 공모전이라는 건 참여해 본 적도 없다.

하지만 회사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들이 지금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라는 생각에.

그저 정해진 여건 속에서 최선을 다했다.

변 팀장은 강태평을 바라보았다.

“강 대리, 다시 생각해 봐도 여긴 아닌 거 같은데.”

강태평은 변 팀장의 말에 씩 웃었다.

두 사람의 눈에 펼쳐진 풍경.

수많은 컨테이너가 이리저리 줄지어져 있고, 트레인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다.

어지러울 정도로 혼잡하고,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역동적인 곳.

부산항.

“제 심상이 가장 끌리는 곳이 이곳입니다.”

“멋진 곳이 많은데, 괜찮을까?”

“괜찮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뭐?”

강태평의 눈빛은 진지했다.

“하지만 저로서는 이곳을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곳은 마음이 안 움직일 것 같아서요.”

“흠.”

변 팀장은 코를 찡긋했다.

‘아주 도사처럼 말하네.’

“그럼 뭐……. 일단 어떻게 할까?”

“뷰 포인트를 먼저 봐둬야 할 것 같아요.”

“부산항 전경을 찍을 건가?”

“그것도 염두해 둬야죠. 심상이 움직일 때 찍을 건데, 장소를 미리 물색해 두려 합니다.”

“아……. 그래.”

강태평은 핸드폰 지도를 펼쳐서 주요 지형을 살폈다.

특히 부산항 전체가 보일 만한 곳을 살피었는데.

“7부두 쪽 뒤에 언덕이 있네요.”

강태평은 손으로 한 곳을 가리켰고, 변 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저기면 잘 보이겠네.”

“그럼…… 부두 안으로 들어가 보죠.”

“지금 언덕에 가는 게 아니라?”

“네, 이곳의 감정을 느껴야 합니다. 그래야 카메라에 호소력을 담아내죠.”

“아……. 그래.”

변 팀장은 저만큼 앞서가고 있는 강태평을 황급히 쫓아갔다.

* * *

강태평은 미친놈처럼 부두 이리저리 다니며 사람들을 살피었으며, 변 팀장은 쫓아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마치 먹을거리를 찾아 헤매는 맹수 같았다.

그러는 동안 카메라는 한 번도 들지 않았다.

‘아니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는데, 뭐 하는 거야.’

어느새 늦은 오후가 되어 해가 지려 하고 있었지만, 강태평은 계속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었다.

“강 대리.”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지금 냄새를 쫓고 있어요. 심상과 연결되는 향기, 빛, 풍경. 이제 조금씩 초점이 맞춰지고…….”

“적당히 해라.”

급기야 변 팀장은 짜증을 내었고, 강태평은 입을 다물었다.

“왜 그러는 거야? 뭐가 마음에 안 맞아?”

“네……. 아직 땡기는 게 없어요. 뭔가 딱~ 하고 와야 하는데.”

“와야 하는 게 뭔데?”

“어제 모델과 찍었을 때의 그런 감정이요.”

그 감정이 뭔지 모르기에, 변 팀장은 입을 다물었다.

“감정이고 뭐고, 힘들어서 더 이상은 못 돌아다니겠다. 좀 쉬자.”

변 팀장은 공터에 놓인 플라스틱 우유 박스 위에 걸터앉았다.

그렇게 잠시 쉬고 있는데, 3명의 어르신이 검은 봉지를 들고 나타났다.

“어라? 누가 와 있네?”

어르신은 변 팀장이 걸터앉은 우유 박스를 가리켰고.

“이거 우리 건데요.”

한 어르신이 조심스럽게 말했고, 변 팀장은 곧바로 일어났다.

“아~, 네. 잠시 앉았습니다. 하하. 사용하시죠.”

“네.”

변 팀장은 강태평에게 손짓했다.

“가자. 가서 배를 찍든, 언덕에 올라가서 야경을 찍든. 빨리 끝내고 가자고. 이 정도 했으면 됐어.”

그때 강태평의 눈빛이 빛나고 있었다.

세 명의 노인은 상판을 가져와 깔고, 그 위에 검은 봉지 안에 있는 술안주들을 내려놓고 있었다.

“저…… 어르신.”

“네?”

“혹시 선원들이신가요?”

“맞소. 당신들은 누군교? 여기 사람은 아니재? 말하는 게 아주 달콤하고로.”

하하하.

한 어르신의 말에 다른 어르신들도 웃었다.

“네, 서울 사람입니다. 그냥 구경하러 왔어요.”

“여기 구경할 게 뭐 있다고.”

강태평은 살짝 눈치를 보더니.

“저희도 여기 같이 앉아도 되겠습니까?”

그의 말에 어르신들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고, 한 어르신이 대답했다.

“마, 좋을 대로 하소. 근데 술이 모자랄 텐데.”

“그건 염려 마십시오. 저희가 좀 더 사올 테니까요. 여기 슈퍼가 어디 있습니까?”

“뒤쪽으로 15분 정도 걸어가면 있소.”

“네.”

강태평은 변 팀장에게 말했다.

“팀장님, 죄송하지만 다녀오시죠.”

“뭐? 나 심부름시키는 거야?”

“지금…… 왔습니다.”

“뭐가 와?”

“심상이 왔다고요. 저분들 하고 있다 보면 뭔가 나올 것 같아요.”

“웃기고 있네. 배고프고 다리 아프냐?”

강태평의 얼굴에 웃음기는 전혀 없었다.

“팀장님……, 대상 타야죠.”

“……. 알았어, 갔다 올게.”

변 팀장은 술을 사러 간 후, 난 술판에 껴서 앉았다.

그리고 달리 한 일은 없었다.

어르신들이 하는 얘기에 귀 기울일 뿐.

그들은 살아온 얘기, 풍랑을 겪은 얘기를 하며 점점 취해갔다.

“고마, 에콰도르에서~ 세뇨리따가~ 내 좋다고 안 카나~.”

“딸벌하고 그러고 싶드나~.”

“딸 아이다~. 아가씨다~.”

“니 딸이 20살 차이 나도, 모르는 아저씨한테는 아가씨가?”

“죽을래?”

“그게 내로남불이다 마. 정신 좀 차리라.”

이런저런 얘기를 듣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일반적인 얘기들이 아니라서, 신기했다.

변 팀장도 어느새 합류했다.

“보통 배를 타면 얼마나 타세요?”

“글쎄요~, 요즘은 좀 짧아지긴 했지만, 우리는 한번 타면 5~6년은 탔죠.”

난 그 말이 놀라웠다.

“얘기하시는 거 들어보니 다들 자녀분들도 있으신 거 같은데…… 그렇게 배를 오래 타시면…….”

한 어르신이 씁쓸히 웃으며 대답했다.

“뭐, 초등학교 졸업식 때 한 번 보고~ 고등학교 입학 때쯤 한 번 보고~ 그런 거죠, 뭐.”

“자녀분들이 알아봐요?”

“내는 어른이니까 그대로잖아요. 애들은 절 알아보지요. 제가 애들을 알아보기 어려운 거지. 어릴 때는 빨리 크니까. 외모도 금세 달라지고.”

“아……. 그래도 아빠니까…… 오랜만에 만나면 좋아하죠?”

그들의 말을 들으며 상상이 잘 안 되었다.

난 가족 없이 자라서 친부모의 감정이 어떤 건지 잘 모른다.

“남 같죠. 나는 내 새끼들이 이뻐도. 걔들이 날 봤을 때는 남 같아 보이겠죠. 시간이 만든 공백은 쉽게 회복할 수가 없습니더.”

하지만 차라리 없는 존재라면 포기를 할 텐데.

그리운 사람을 어쩔 수 없이 긴 시간 못 본다면 너무 괴롭지 않을까?

“그 생각하면 미안합니더.”

가족 얘기가 나오자 어르신들은 술은 연거푸 마셨고, 눈가가 촉촉해져서 중얼거렸다.

“할 줄 아는 일이 이것뿐이라서. 내도 어쩔 수가 없었다.”

변 팀장은 어르신의 손을 꼭 잡았다.

“자녀분들이 지금 몇 살이죠?”

“이제 막 스무 살 넘었죠.”

잡은 손을 두드리며 말했다.

“시간이 만든 공백은 또 시간이 해결해 주더라고요. 자녀분들이 더 크면 분명히 이해할 겁니다.”

“…….”

“열심히 사셨잖아요. 어쩔 수 없었고요.”

어르신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서울 사람한테 위로를 다 받는구마. 하하.”

나머지 어르신들도 큰 소리로 웃었다.

어느새 완전히 깜깜한 밤이 되었다. 하지만 불빛으로 부두는 대낮같이 밝았다.

좌판 주변에 모인 사람들.

그들의 깊은 주름과 등 뒤로 보이는 빽빽한 컨테이너와 그 사이로 보이는 먼바다.

띵!

가슴에 느낌이 팍 왔다.

그래! 지금이야.

난 안주머니에서 재빨리 카메라를 꺼내어, 뒤로 멀찌감치 가서 섰다.

“어?”

변 팀장은 눈치를 챘는지 날 보았고.

난 그에게 고개를 저었다.

어르신들은 모르시니까, 티 내지 말라고.

자연스럽게 찍으려면 의식하지 말아야 한다.

구도를 잡고, 내 마음에 담긴 풍경을 모두 렌즈 안에 담았다.

휴우―.

찰칵!

잠시 후, 어르신들께 사진을 보여드렸더니 매우 기뻐했다.

그리고 공모전 얘기를 했는데, 사용하는 것도 흔쾌히 허락해 주셨다.

별이 가득한 부산의 밤.

드디어 마음속 풍경을 한 컷에 담았다.

<제목: 별 헤는 사람들>

왔노라 보았노라 찍었노라

* * *

“제출 다 했나?”

다음 날 아침.

우리는 모텔에서 나갈 채비를 했다.

어쨌건 모든 게 끝난 상황이라 홀가분했다.

“이제 하려고요. 어차피 업로드만 하면 되는 거라.”

“그래, 까먹기 전에 바로 해. 그거까지 하고 나가자고.”

“네.”

부산에서의 4일.

4일이 40일 같았다.

생판 모르는 곳에 와서, 맨땅에 헤딩하고 여기저기 삽질하고 다녔고.

어쨌든 결론을 지었다.

결과야 어떻게 되든, 우리는 할 만큼 했다.

변 팀장도 나와 생각이 비슷한지, 얼굴이 평온해져 있었다.

“어라?”

난 사진을 업로드하려다 말고, 멈춰버렸다.

사색이 된 내 얼굴을 보며 변 팀장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왜…… 설마 사진을 삭제했다거나 그딴 소리 할 건 아니겠지?”

“아니요. 그런 건 아닙니다.”

“아오, 깜짝이야.”

변 팀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왜 호들갑이야. 그냥 빨리 올리면 되지.”

“그게…….”

젠장할. 정말 상상도 못 했다.

“출품작이 최소 3개 이상이어야 한답니다.”

“뭐어?!”

변 팀장은 눈알을 굴리더니.

“그러니까, 사진을 3개 올려야 한다는 거야?”

“네. 같은 사진 말고, 각각 다른 주제로요.”

“헐…….”

변 팀장의 표정이 다시 다급해졌다.

“그냥 지금 대충 2개 찍어서 올리면 안 돼?”

“그렇게 해도 되죠. 상 안 타도 된다면.”

“아오!”

변 팀장은 머리를 쥐어뜯었다.

“어쩐지 마음이 편하다 했어. 아~, 힘들다~, 진짜!”

그는 격양된 소리로 말했다.

“누구야? 이거 응모 방법 알아본 사람 누구냐고!”

“팀장님과 홍지아 씨죠.”

“…….”

변 팀장은 입을 다물어 버렸다.

우리는 각자 생각에 잠겼다.

떨어진 폭탄에 평안했던 분위기는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지금이라도 나가서 찍을까?”

어제 부산항에서 사진 한 장을 건지기 위해 하루 종일 고생했었다.

“자신 있으세요?”

“강 대리는 자신 있어?”

“그건 모릅니다. 심상이 움직여야…….”

“됐다. 됐어.”

변 팀장은 더 말을 들어보려 하지 않았다.

그는 인상을 찌푸리고 턱을 쓰다듬더니…….

“아, 잠깐.”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바라봤다.

“강 대리! 우리 사진 찍은 거 있잖아.”

“무슨 사진이요?”

“아, 왜~ 용궁사에서 여신님이랑 찍은 사진도 있고, 감천문화마을에서 찍은 것도 있고.”

“…….”

“그러면 딱 3개네!”

“설마 그때는 심상이 안 움직였다느니, 그런 개소리 할 건 아니지?”

“아닙니다. 그때는 움직였어요. 찍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피사체와 교감이 있었죠.”

“아주 갈수록 도사같이 말하네.”

변 팀장은 틱틱댔지만, 얼굴은 웃고 있었다.

“그럼 됐잖아~. 그걸로 내자고!”

“팀장님…… 기억 안 나세요?”

“뭐가?”

“감천문화마을 사진은 신종국 씨가 지웠잖아요. 우린 보지도 못했는데.”

“난 봤는데? 보고 얘기하는 건데?”

“네?”

무슨 소리지?

그때 분명히 마을버스 안에서 같이 확인했었고, 사진은 없었다.

혹시 마음이 약해지면, 믿고 싶은 대로 믿는다던……. 뭐, 그런 상황인 건가?

“아~, 내가 얘기 안 했나?”

“…….”

“부산항에서 찍은 사진 보려고 카메라 확인하다 보니까, 휴지통에 있던데?”

“네에?!”

이 디카에 휴지통이 있었나?

조그맣고 볼품없어도, 기본은 하는 녀석이었구나.

“기가 막히게 찍었던데? 신종국 씨가 바로 지울 만해~. 하하.”

참 운 좋게도.

그렇게 우리는 얼떨결에 출품할 수 있는 3개의 작품이 준비되었다.

모텔 안은 다시 평온이 감돌았다.

나는 빠르게 규격에 맞는 픽셀과 사이즈로 수정했고.

응모 사이트에 사진을 업로드했다.

이제 ‘저장’ 버튼만 누르면 된다.

“자~, 준비 끝났습니다.”

휴우―.

난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래! 망설이지 마! 올려버려~.”

“네!”

‘저장’ 버튼~ 클릭!

<출품작1: 새색시의 수줍음>

<출품작2: 선녀는 돌아가고 싶었지만, 하늘 문은 닫혀 버렸네>

<출품작3: 별 헤는 사람들>

* * *

점심 먹은 후 우리는 출발하였고. 큰맘 먹고 KTX를 탔다.

도착하니 약간 늦은 오후였는데, 역시 변 팀장답게 회사 복귀는 없었다.

“강 대리, 절대로 회사는 가면 안 된다.”

그는 헤어지기 전 내게 신신당부를 했다.

“지금 자기만 회사 복귀하는 건 아니야. 일하고 싶더라도, 팀을 위해 바로 집으로 가도록 해.”

“하하, 참나. 알겠습니다. 팀플레이 하겠습니다.”

“그렇지. 팀플레이.”

서울역의 늦은 오후.

4일간 하루 종일 붙어 있었다.

이제 헤어져야 할 시간.

“팀장님,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그는 약간 안쓰러운 미소를 지었다.

“강 대리, 이제 혼자겠네.”

“전 혼자가 편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려는 거 아니야?”

“…….”

그는 내게 악수를 건네었고, 난 그 손을 잡았다.

“고생했어. 그리고 고마워.”

“아닙니다. 제가 감사하죠. 팀장님 고생하셨습니다.”

“그래, 그럼 월요일에 보자고.”

“네, 들어가십시오.”

난 활짝 웃으며 꾸벅 인사를 했다.

그는 손을 흔들며 말했다.

“보기 좋아. 그렇게 많이 웃으라고.”

“…….”

“강 대리, 잘 웃는 사람이었네.”

그렇게 변 팀장은 개찰구 안으로 들어갔고, 곧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

‘내가 잘 웃는다고?’

피식.

난 반대편 개찰구로 들어갔다.

월요일 아침.

평소처럼 30분 일찍 사무실에 도착했다.

“홍지아 씨~.”

홍지아는 도착해 있었고.

그녀는 날 보자마자 한달음에 달려왔다.

“강 대리니임~!”

내 팔을 붙잡고 방방 뛰었다.

“하하. 잘 지냈어~?”

“아우~, 보고 싶어서 혼났어요!”

“그럼 영상 통화라도 하지 그랬어.”

“으이구. 또 오바하신다. 호호.”

오랜만에 보니 참 반가웠다.

매일 보던 사람을 4일 만에 보는 거니까.

“출품은 잘하셨어요?”

“어~, 잘했지.”

“결과는요?”

“글쎄~, 9월 중에 난다고 했는데, 지금이 9월 중순 다 되어 가니까, 곧 나겠지?”

“아항~.”

홍지아는 콧소리를 내며 리액션이 좋았다.

딱 보니까, 사람이 그리웠던 거 같다.

“나도 부산 가고 싶었는데.”

“일로 가지 말고, 다음에 놀러 가~, 남자 친구랑.”

“어머~, 상상만 해도 신나네요~.”

내가 피식 웃자.

“어머, 왜 웃어요? 각 방 쓸 거예요~.”

그녀는 내 팔을 살짝 꼬집으면서 말했다.

“아, 따가워! 누가 뭐래? 각방 쓰든 한 방 쓰든 알아서 해~. 관심 없어.”

“칫.”

책상 정리를 하고, 제이엠과 촬영 일정을 조율하다 보니 어느새 11시가 다 되어 간다.

“오늘 좀 늦으시네요?”

홍지아가 시계를 보며 말했다.

“그러게. 시장조사 갔다가 오셔도 10시 반에는 오셨었는데. 혹시 오늘 연차 쓰셨나? 홍지아 씨 알아?”

“아니요. 연락받은 거 없었어요.”

말이 끝나자마자.

“아이고~, 오랜만에 시장 가니까 볼 게 엄청 많네~. 하하.”

변 팀장이 웃으며 들어왔고, 우리는 일어나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팀장님, 안녕하십니까.”

“오~, 우리 역전의 용사들!”

50대 다운 멘트를 날리며 그는 껄껄 웃었다.

“우리 홍지아 씨 선탠했어?”

“선탠이요?”

“얼굴이 시꺼메졌는데, 다크서클이 아주……. 누가 보면 선글라스 낀 줄 알겠어~. 하하.”

“…….”

“우리 없는 동안 많이 힘들었나 봐?”

홍지아는 입을 삐죽이더니.

“누구 덕분에 힘들었죠. 출장 일정을 미리 알려줬는데도, 계속 강 대리님 언제 오냐고~ 얼마나 쪼아 대던지. 제이엠에서 연간 계약 하고선 아주 뽕을 뽑으려고 해요.”

“하하. 기업이 원래 그런 거지.”

나와 변 팀장은 서로 마주 보며 웃었고, 홍지아는 중얼거렸다.

“두 분 좋아 보이시네요.”

“응?”

“샘나요.”

“아~, 하하.”

변 팀장은 시계를 보고는 황급히 말했다.

“아직 12시 전이지? 강 대리! 빨리 가자. 사장님께 보고해야지?”

“정리 안 하셔도 돼요?”

“정리할 게 뭐가 있어. 왔노라, 보았노라, 찍었노라 하면 되지.”

“…….”

“사장님이 통상 오후에는 컨디션이 안 좋단 말이야. 오전에 보고해야 해. 서둘러.”

아……. 이유가 있었구나.

“알겠습니다.”

난 황급히 변 팀장을 쫓아갔다.

홍지아는 뭔가 생각난 듯 말하려다가, 두 사람이 황급히 사장실로 들어가는 모습에 입을 다물었다.

“너튜브에 종이학 나온 거 알려줘야 하는데.”

* * *

똑똑.

“들어와.”

덜컹.

변 팀장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사장님, 안녕하세요.”

“어~, 변 팀장.”

민 사장은 일어나서 변 팀장과 나를 맞이했다.

“출장 잘 갔다 왔나?”

“네, 덕분에 잘 다녀왔습니다.”

“그래, 고생했네. 앉게.”

우리가 앉자, 민 사장은 물었다.

“차 한잔할 텐가?”

“네, 감사합니다.”

“뭐 마실래?”

“전 커피.”

민 사장은 날 바라봤다.

“강 대리는?”

“저는 녹차 마시겠습니다.”

민 사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나도 커피.”

“…….”

그러고 나서 우리는 가만히 앉아 있었다.

“강 대리, 뭐 해?”

변 팀장이 눈치를 준 이후에.

“아, 맞다. 죄송합니다.”

난 얼른 일어나 차 준비를 했다.

이 조그만 회사에 비서실 따위는 없다. 그렇다고 사장이 차를 타주는 것도 아니고.

회의할 때 짬밥이 가장 낮은 사람이 차를 준비한다.

잠시 후.

“오~, 강 대리! 물 조절 좀 하는데? 커피 왜 이렇게 맛있어?”

그냥 믹스커피인데, 민 사장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가끔 부탁 좀 해도 될까? 진짜 기가 막힌데?”

“그러게요. 저도 마셔본 믹스커피 중에 최고입니다.”

변 팀장은 살짝 내 귓가에 대고 물었다.

“강 대리, 혹시 요리도 좀 하나?”

“요리요?”

요리라……. 해본 적도, 생각해 본 적도 없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이 손이라면…… 그것도 잘할 수 있지 않을까?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하하. 그래, 그래.”

차를 반 정도 마셨을 때쯤.

민 사장은 눈을 살짝 치켜떴다.

“어떻게…… 결과는 나왔나?”

변 팀장은 살짝 긴장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닙니다. 제출은 어제 완료했고요. 결과는 곧 나올 것 같습니다.”

“곧? 곧이 언젠데?”

“9월 중이라고 했으니까, 늦어도 2주 안에는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 그래. 그럼 경비 정산은 결과 보고 하자고?”

“네?”

“그게 조건이었잖아. 잊었어?”

민 사장은 돈 얘기라면 상황 가리지 않고 아무렇지도 않게 잘 말한다.

“네, 알겠습니다. 결과가 빨리 나오길 빌어야겠네요. 하하.”

민 사장은 궁금했는지 이것저것 물었다.

변 팀장은 부산에 도착하여, 감천문화마을, 용궁사, 부산항에서 있었던 일들을 얘기해 주었다.

아주 살을 많이 보태서 얘기했다.

실제로 고생을 좀 하긴 했지만, 이야기를 거의 신파 수준으로 각색하고 있었다.

“제가 출장 여파 때문에 주말 내내 누워 있었습니다. 부항 뜬 것 좀 보여드릴까요?”

“아니, 그럴 필요는 없어. 뭐, 어쨌든…….”

민 사장은 눈썹을 살짝 찡긋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생 좀 한 거 같네. 뭐, 딱히 해줄 건 없고…… 내일 하루 쉴 텐가?”

어라?

잘못 들은 건 아니겠지? 민 사장이?

“연차 쓰라는 말씀입니까?”

변 팀장이 조심스럽게 확인했다.

“아니~, 그냥 하루 쉬라고. 내일 쉬면서 목욕탕이라도 갔다 와.”

나와 변 팀장은 마주 보고 입을 떡 벌렸다.

난 속으로 많이 놀랐다.

변 팀장이 입 터는 걸 보면서 주책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래서 각색이 필요한 거구나. 이런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네.

“네! 사장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민 사장은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허허. 뭐, 그 정도 가지고. 어서 나가봐.”

우리는 90도로 인사하며 방을 나섰고, 뒤에서 민 사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결과 안 좋으면 각오해야 할 거야~.”

덜컹.

휴우―.

우리는 마주 보고 웃기는 했지만, 민 사장의 마지막 말이 맘에 걸렸다.

어쨌든 내일 하루는 쉬는 거로.

그 후로 일주일이 지났고.

변 팀장과 함께 제이엠인터내셔날 촬영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팀장님!”

우리가 오자마자 홍지아는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 변 팀장을 불렀다.

“왜?”

“부산국제사진공모전 결과 발표 났습니다!”

연은 역풍에 잘 난다

* * *

흡!

갑자기 숨이 막히는 것 같다…….

결과 발표가 났다고? 벌써?

홍지아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 있는 거로 봤을 때는 완전 나가리는 아닌 것 같긴 한데.

“휴우―.”

변 팀장도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결과가요…….”

“자, 잠깐!”

변 팀장은 황급히 홍지아의 말을 막았다.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됐어.”

그는 몇 번 심호흡하며 중얼거렸다.

“젠장. 이번 달은 맘 편하게 지내려 했더니, 결과가 이렇게 빨리 나오냐.”

“일주일 지났잖아요. 우리가 막차였나 봐요.”

콩닥. 콩닥.

가슴이 두근거렸다.

우리는 결과에 대해 반은 기대, 반은 포기하는 마음이었다.

내 촬영 능력이 놀라울 정도이긴 하지만, 어쨌든 공모전이라는 건 손기술만으로 되는 건 아니니까.

“홍지아 씨, 지금부터 내가 묻는 말에만 대답해.”

“네.”

이 순간 가장 긴장한 사람은 변 팀장이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우리 팀이…… 수상자 명단에 있어? 없어?”

홍지아는 희미하게 미소지으며 대답했다.

“있습니다.”

“나이스!”

나와 변 팀장은 손을 마주 잡고 방방 뛰었다.

와~, 대박!

수상자 안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신기하고 너무 기뻤다.

설마 했는데, 이게 진짜 되는구나.

― 뭐야? 왜 저래?

― 촬영 1팀, 뭐 좋은 일 있나?

우리의 격렬한 반응에 옆 팀에서도 궁금했는지 수군거렸다.

“좋아, 일단 반은 성공이다. 강 대리, 수고했어.”

“감사합니다. 팀장님도 고생하셨어요.”

근데, 홍지아의 표정이 좀 복잡했다.

기쁜 가운데 약간의 아쉬움이 섞인 듯한 표정.

부산을 같이 가지 못해서일까.

아니면…… 우리가 바라는 결과대로 안 나와서일까.

그녀의 표정이 우리를 불안하게 했다.

“홍지아 씨.”

“네.”

변 팀장은 굳은 표정으로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

“이제 준비됐어.”

나 또한 홍지아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고, 그녀는 입을 열었다.

“수상작은…….”

꿀꺽.

“별 헤는 사람들. 그리고 결과는요…….”

아, 결국 ‘별 헤는 사람들’이 수상했구나. 하긴 나머지 두 작품은 약간 아쉬움이 있었지.

“금상.”

.

.

.

.

아…….

나와 변 팀장은 복잡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금상……. 금상이구나.

금상이면, 2등.

이것도 아주…… 정말 아주 잘한 건데.

“하하하.”

변 팀장은 억지로 크게 웃었다.

“우와~, 금상이라니! 대박!”

하지만 아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애초 목표가 대상이었고, 민 사장과 딜을 한 것도 대상 수상이었다.

“강 대리~, 정말 수고했어!”

“하아……. 네. 감사하긴 한데, 죄송합니다.”

“무슨 소리야~. 죄송하긴 뭐가 죄송해! 금상이 어디야!”

“…….”

“자기 카메라 잡은 지 겨우 한 달 좀 지났다고. 이 정도면 천재 아닌가? 국제 사진 공모전에서 금상 수상이면?”

“…….”

홍지아도 살짝 아쉬운 표정을 짓기는 했지만, 그래도 활짝 웃고 있었다.

“대리님, 수고하셨어요.”

“뭘. 팀이 같이 한 건데.”

그래, 결과는 나왔고.

이것 또한 나쁘지 않으니, 미련 갖지 말자.

“정말 다행입니다. 상 타서. 하하! 혹시 못 탈까 봐 걱정했는데.”

이런 나를 변 팀장이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젠장. 홍지아 씨, 대상작 좀 보자. 하하.”

하지만 아쉬움과 승부욕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 * *

<대상: 부산 하늘의 갈매기>

새파란 바다와 해운대가 보이는 높은 하늘.

넓은 하늘에 갈매기 4마리가 날개를 쭉 펴고 나란히 날고 있다.

하늘과 갈매기의 조화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자유롭고 숭고했다.

이 순간을 담아낸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말 놀라웠다.

“이런 건 어떻게 찍는 걸까? 정말 하늘에서 찍은 거 같은데.”

변 팀장 또한 넋을 잃고 화면만 보고 있었다.

하늘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구도인데, 신기할 따름이었다.

“드론으로 찍은 게 아닐까요?”

“드론?”

“네, 아니면 경비행기에서 찍었을텐데, 그게 더 어렵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요.”

변 팀장은 홍지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홍지아 씨도 공부 좀 했나? 그런 구도까지 생각을 다 하고?”

“공부라기보다는…… 공모전 준비하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된 거죠.”

“그래……. 근데 어쨌든.”

변 팀장이 다음에 어떤 말을 할지 알 것 같았다. 나도 동감하는 부분이라.

“스케일이 다르긴 하네. 이건 뭐, 어쩔 수가 없는 거야.”

“네…….”

“강 대리!”

변 팀장은 내 어깨를 두들겼다.

“같은 조건이었으면 우리가 이겼어. 하늘에서 찍는 사람을 어떻게 이기냐?”

“…….”

“거기다 어째 갈매기도 저렇게 열 맞춰서 하늘을 나냐고. 딱 고 타이밍에.”

“그러게 말입니다. 정말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입니다.”

“그래~, 하늘이 도운 건 이길 수 없는 거야. 우린 사람이잖아. 괜찮아.”

“…….”

그리고 우리는 잠시간 말이 없었다.

‘그래, 금상이 어디야.’

아무리 이렇게 위안을 얻으려 해도, 여러 모로 걱정이 되었다.

금상 수상으로 홍보가 될지.

민 사장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결국…… 촬영 1팀은 여기까지인지.

변 팀장과 홍지아.

변 팀장은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궁리했다.

어떻게든 팀이 살길을 찾으려는 듯, 안쓰러웠다.

“아, 맞다! 금상은 수상 상금이 어떻게 되지?”

변 팀장은 애써 밝은 목소리로 물었고, 홍지아가 대답했다.

“500만 원입니다.”

“오~, 세네~.”

변 팀장은 날 향해 활짝 웃었다.

“출장비 정산은 하고도 남겠다. 그치? 강 대리?”

“네.”

“남은 상금은 자기 다 가져. 아! 물론 우리한테 밥 한 끼는 사줘야 해. 하하.”

난 그 말에 피식 웃었다.

“그런 게 어디 있습니까. 동등하게 나눠야죠. 저 혼자 한 것도 아닌데.”

“무슨 소리야~. 강 대리가 다 한 거나 마찬가지지. 안 그래? 홍지아 씨?”

“…….”

홍지아는 이 말에 고개만 살짝 끄덕일 뿐, 대꾸는 하지 않았다.

“시작하기 전에 약속한 거니까, 이건 다 강 대리가 가져. 괜찮아.”

“…….”

“회사와도 나누고 나면 얼마 되지도 않을 거고 말이야.”

대상을 탔을 경우 성과급 감안하여 전액을 준다고 했었다.

대상을 타지 못했으니, 민 사장 성격에 분명 일부는 회사와 나누자고 할 것이다.

“그건 뭐…… 급한 거 아니니까요. 나중에 받은 다음에 얘기하시죠.”

“그래, 그냥 자기가 다 해. 괜찮아.”

휴우―.

변 팀장은 한숨을 크게 한 번 쉬고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사장님께 보고하러 가볼까?”

“…….”

“이런 일은 빨리 보고하는 게 나아. 안 좋은 일도 아닌데. 망설일 게 뭐 있어.”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다들 일어나.”

“알겠습니다.”

* * *

덜컹.

“안녕하십니까.”

“오~, 변 팀장. 요즘 자주 보네?”

“네.”

“좋은 일로 자주 보면 참 좋겠는데 말이야.”

“…….”

싸늘한 눈빛.

시작부터 약간 위축되어 들어간다.

“하하. 좋은 일로 왔습니다.”

“오호~, 그래?”

민 사장은 우리 세 사람을 돌아보고는 말했다.

“어서 앉지.”

우리는 중앙의 소파에 민 사장과 마주 보고 앉았다.

“결과가 나왔나 보지?”

민 사장도 공모전 결과에 관심이 있었는지 먼저 이렇게 물었다.

“네, 결과가 나왔습니다.”

“오~, 목표대로 된 거야?”

민 사장의 눈빛이 빛났다.

표정을 보아하니, 민 사장도 큰 기대는 안 했던 듯싶다.

하긴, 누구라도 이런 여건에서 큰 기대를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변 팀장은 잠깐 고민을 하다가…….

“의미 있는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의미 있는 성공?”

민 사장은 변 팀장의 말이 아리송했는지 되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자네 시 쓰나?”

“사실이 그렇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말이 있습니다. 가시적인 성과도 목적을 달성했다고 볼 수 있는 거죠.”

“…….”

“윈스터 처칠 선생께서는 말씀하셨죠. 연은 순풍이 아니라, 역풍에 가장 높이 난다고…….”

“뭐?”

이후부터 변 팀장은 말을 쏟아내는데, 눈물겨울 정도였다.

‘대상은 타지 못했고, 금상을 수상했다’라는 말을 꺼내기 위해 사전 작업을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다시 한번 회사 생활 참 힘들다는 걸 느끼는 순간이었다.

“변 팀장, 적당히 하고, 빨리 결론부터 말해~. 공모전 결과 보고하러 온 거 맞잖아?”

“…….”

“그냥 말해! 떨어졌나?”

이제 민 사장이 말 좀 해달라고 사정하고 있었다.

휴우―.

변 팀장은 한숨을 쉬었다.

금상을 수상하고도 이렇게 전전긍긍하다니.

그는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저희 팀이 수상을 하긴 했습니다만…….”

위이잉―.

갑자기 어디선가 핸드폰 진동음이 들렸다.

홍지아의 핸드폰이었다.

“음?”

홍지아는 발신자를 보고는 눈이 커졌다.

“홍지아 씨, 뭐 해. 빨리 안 끊고.”

변 팀장이 주의를 주었지만, 홍지아는 당돌하게도 민 사장을 향해 말했다.

“사장님, 정말 죄송합니다만, 너무 중요한 전화라서요. 잠깐 받으면 안 될까요?”

“그렇게 해.”

표정은 탐탁지 않았지만, 중요한 전화라고 하니 민 사장은 허락해 주었다.

홍지아는 황급히 통화버튼을 누르고 고개를 돌렸다.

“여보세요? 네, 촬영 1팀입니다. 네. 네. 네에?!”

갑자기 그녀는 큰소리를 질렀고, 우리는 깜짝 놀라서 홍지아를 바라봤다.

“어머! 정말요?! 사유는요? 아~, 네네. 대박! 정말 감사합니다! 네~.”

뚝.

이상하다. 뭔가 심상치 않은데.

민 사장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홍지아 씨, 뭐야? 어디 이직하는 거야?”

“아, 아니요. 호호.”

홍지아는 수줍게 웃은 뒤, 변 팀장에게 다가와 귀에 뭔가 소곤거렸다.

“흡!”

변 팀장은 눈을 부릅뜨더니, 부들부들 떨었다.

“하하하!”

그리고 미친 듯이 웃기 시작하는데, 영문을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좀 거부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변 팀장, 왜 이래?”

민 사장은 이제 불쾌해 보였다.

말은 뱅뱅 돌리고, 회의 중에 전화를 받고, 갑자기 미친 듯이 웃지를 않나.

“하하. 아~, 죄송합니다.”

그리고 변 팀장은 벌떡 일어나 거수경례를 하더니, 크게 소리를 질렀다.

“보고 드립니다! 촬영 1팀! 부산국제사진공모전 ‘대상’ 수상하였습니다!”

헐! 대상?!

.

.

.

.

뭐야? 갑자기?!

민 사장도 눈을 부릅떴다.

흰자에 핏발이 생길 정도로 그 또한 깜짝 놀란 모양이었다.

“진짜? 정말로 국제사진공모에서 대상을 탔다고?!”

“네! 맞습니다! 하하!”

변 팀장은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우리가 출품한 작품, <별 헤는 사람들>이 대상을 탔습니다! 와하하!”

변 팀장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좋아했고, 사장실 밖으로 직원들은 몰려들었다.

― 뭐야? 무슨 일 있나?

― 대상을 탔다고?

불투명 유리문 밖으로 사람들 실루엣과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하하!”

이제야 민 사장도 자각이 된 듯, 큰 소리로 웃었다.

“이야~, 진짜 대단하네! 대단해!”

그는 일어나서 변 팀장 어깨를 붙잡고 큰 소리로 웃으며 좋아했다.

“하하! 아니, 진짜 해내네?! 한다고 하더니 정말 해냈어!”

“하하. 사장님! 우리 팀 달라졌습니다!”

“좋아! 아주 좋아~!”

덜컹.

민 사장은 급기야 사장실 문을 열었고.

이미 문 앞에는 이 소란에 전 직원이 모여 있었다.

“모두 주목!”

“…….”

“촬영 1팀이! 국제사진공모전에서 대상을 탔다고 한다! 모두 박수! 하하하.”

우와~.

직원들은 영문을 모르기에 그저 갸우뚱하며 박수를 칠 뿐이었다.

민 사장. 그리고 홍지아와 변 팀장은 방방 뛰며 좋아했다.

나 또한 영문을 모르기에.

분명 금상이라고 했었는데.

눈물까지 찔끔 흘리며 좋아하는 변 팀장에게 난 귓속말로 물었다.

“팀장님 어떻게 된 거예요? 저희 대상 아니잖아요.”

“대상 맞아~, 인마!”

“네?! 어떻게요?”

“하하하.”

변 팀장은 큰 소리로 웃었다.

“아까 대상작 보면서 비현실적이라고 그랬잖아. 그게 사실이란다!”

“네?”

“합성으로 판명돼서 실격됐데~!”

헉…….

어떻게 이런 일이?

그럼 진짜로…… 우리가?!

“티, 팀장님!”

“하하. 맞아~. 우리가 진짜 대상이야!”

우…….

우아아악!

난 목청이 터지도록 괴성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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