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행 (1)
* * *
“자, 잠깐만요.”
이 사람들 너무 급하다.
급한 이유는 알겠는데, 이게 될 일인가?
“접수 마감이 일주일 남았는데, 그걸 지원하자고요?”
“왜? 서두르면 충분히 될 텐데.”
변 팀장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꾸했다.
“부산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고, 뭘 찍을지 생각도 안 해봤는데……. 고작 일주일 만에.”
난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라고 여겨졌다.
사진 찍는 기술과 좋은 사진을 찍는 건 다르다고 생각했다.
“대리님! 비즈니스라고 생각하세요!”
“뭐?”
“안 되는 상황에서도 여건을 만들어내는 게 비즈니스잖아요. 어떻게 시간과 자본이 항상 내 편일 수 있겠어요.”
“그렇지. 홍지아 씨 말 잘한다.”
옆에서 변 팀장이 맞장구를 쳤다.
난 할 말을 잃고 멍하니 홍지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대리님은 혼자가 아니잖아요. 우리가 옆에서 도울 거니까요.”
요즘…… 보면 볼수록 참 적극적이네.
원래 이런 친구였나.
“그래. 그래. 강 대리, 우리 할 수 있어.”
변 팀장은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안 되면 어때~. 다른 공모전도 많은데, 다시 도전하면 되지. 아니면 새로운 전략을 구상하던가. 너무 부담 갖지 않아도 돼.”
홍지아가 싱긋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접수비도 없어요.”
흠…….
그래, 미리부터 당황할 필요 없지.
접수비도 없고, 이거 공모전 수상 안 된다고 해서 큰일 나는 건 아니니까.
“강 대리~, 사진 찍는 건 찰나의 순간이잖아. 일단 한번 해보자고.”
그래, 어쨌든 하면 되긴 하는데.
이걸 해내려면 어쨌건 필수조건이 있다.
“그런데…… 부산은 가야 하지 않아요?”
“…….”
“부산이 주제인데, 부산을 찍으려면 가야 할 거 같은데.”
“당연하지.”
“어떻게 가시려고요?”
“어떻게 가긴. 출장으로 가야지.”
변 팀장은 너무 쉽게 대답했다.
출장도 목적이 있어야 가는데, 공모전 참가하겠다며 출장 승인을 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출장…… 갈 수 있을까요?”
“응, 나만 믿어.”
너무 자신 있게 말하는 모습이 어째 불안하다.
“어쨌든 가면 되는 거잖아.”
* * *
“뭐? 부산 출장?”
“네.”
사장실.
변 팀장은 비장한 표정으로 우리 모두를 데리고 사장실 안으로 들어왔다.
출장 승인을 받는데, 모두가 들어갈 필요는 없는데, 이것도 전략이라면서…….
“갑자기 웬 부산?”
민 사장의 표정은 탐탁지 않았다.
그가 우리 팀을 예의 주시하고 있는 걸 알고 있다.
꿀꺽.
조용한 사장실.
어디선가 침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변 팀장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우리 촬영 1팀은 제이엠인터내셔날과의 계약 이후, 아직 단 한 건의 거래도 해내지 못했습니다. 어떻게든 오더 수주를 해보려고 노력했으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절대 저희가 놀았던 건 아닙니다.”
“흠……, 계속해 봐.”
변 팀장의 자아비판과 사정 얘기는 계속됐다.
“사장님도 보셔서 아시겠지만, 강 대리는 촬영 기술에 있어서 출중한 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바이어들이 테스트조차 해보려 하질 않으니…….”
“흠…….”
“물론! 저희도 부족함이 있었습니다. 촬영팀이라는 게 생소하기도 했고, 이쪽 업계의 생태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그냥 영업 뛰듯이 오더를 따내려고 했고, 그러다 보니 삽질도 여러 번 했습니다. 하지만…… 아는 게 없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한동안 변 팀장은 이런 시답잖은 얘기를 이어갔고, 민 사장의 표정이 지루해져 가고 있었다.
상대방이 때릴 얘기들을 미리 다 말해 버리니…….
“아~, 그래. 알았어. 고생한 건 알겠어. 이제 그 얘기는 그만하고. 그래서 왜 부산인데?”
그때 변 팀장의 눈빛이 빛났다.
이제 민 사장이 진짜 들을 준비가 된 것이다.
처음부터 목적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면, 아마 반감을 갖고 들었을 것이다.
“저희 공모전 참가합니다.”
“뭐? 공모?”
헐. 뭐야.
난 황당해서 변 팀장을 바라봤다.
어떻게든 가면 된다고 자신하더니……, 이런 거였어?
“변 팀장? 뭐해? 빨리 제대로 얘기해 봐.”
민 사장은 인상을 찡그리고 되물었다.
꿀꺽.
변 팀장은 얼굴은 웃고 있지만, 이마에 땀은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팀 개편 이후…… 저희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
변 팀장은 우리 팀이 왜 공모전을 참가하려고 하는지 상세히 설명을 해주었다.
여러 군데 업체 컨택을 했으나, 문은 열리지 않았고……. 현재로서는 시장에서 신생 촬영 1팀이 영역을 넓히기가 어렵다는 얘기까지.
솔직해도 너무 솔직했다.
하지만 진정성이 있어서일까?
처음엔 인상을 찡그리고 있던 민 사장의 표정이 조금씩 풀리고 있었다.
“배수의 진이라고 생각하고, 저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생각해낸 겁니다.”
“흠…….”
민 사장은 이마를 두들기며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곧 손이 멈췄다.
“대상 상금이 얼마라고?”
“일천만 원입니다.”
“상금은 어떻게 할 거야?”
“그거야 물론…….”
난 변 팀장을 바라봤다.
여기서 그걸 내 몫이라고 말한다면 민 사장이 허락하지 않을 텐데.
“회사 업무로서 참가하는 것이니, 적절한 비중으로 나눠야겠죠.”
“그래?”
“네, 하지만…….”
변 팀장은 주먹을 꽉 쥐었다.
“대상을 타면 회사 매출을 일으키는 큰 홍보를 하게 되는 건데. 당연히 성과급을 주시겠죠?”
이 말에 민 사장의 눈썹이 꿈틀댔다.
“그러니까, 두 번 계산하지 않게. 상금 전부를 촬영 1팀이 받는 거로 하면 간단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난 변 팀장을 바라봤다.
얼굴은 좀 경직되어 있지만, 눈빛에는 추호의 흔들림도 없었다.
“하하하.”
민 사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큰 소리로 웃었다.
“변 팀장 제법인데?”
“감사합니다.”
“흠……, 그래. 그렇단 말이지.”
민 사장은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계산하는 듯했다.
어느 정도 생각이 정리되었는지, 변 팀장을 쏘아보았다.
“자신 있어?”
변 팀장은 망설임이 없었다.
“네, 자신 있습니다. 성과를 달성하기 전까지는 돌아오지 않을 각오로…….”
민 사장은 그의 말을 끊었다.
“아니야. 돌아와야 해. 출장 기간 오래 못 줘.”
그리고 민 사장은 슬쩍 물었다.
“며칠 일정이지?”
“6일이며, 전 직원 다 함께 가야 합니다.”
“잠깐…….”
민 사장은 잠시 생각하더니.
“홍지아 씨는 여성이니까. 숙소를 두 개 잡아야 하잖아.”
“당연하죠.”
“겨우 사진 몇 장 찍으러 가는데, 홍지아 씨가 꼭 필요한가?”
“네?”
“수익 창출의 기본은 비용 절약이야. 알지?”
“아…….”
변 팀장은 당황했고, 민 사장은 개의치 않고 말했다.
“홍지아 씨는 두고, 변 팀장과 강 대리만 간다.”
“하, 하지만…….”
변 팀장은 황급히 말을 끊으려 했으나, 민 사장은 기회를 주지 않았다.
“식비는 5,000원 이하, 무조건 대중교통으로 다녀.”
“…….”
“숙박비는 3만 원까지야. 물론 둘이 합쳐서.”
“아니, 요즘 3만 원짜리 숙소가…….”
“있어.”
민 사장은 틈을 주지 않았다.
“내가 얼마 전에 2만 5천 원짜리 모텔에서 자봤어. 지방에서 평일 숙박이면 3만 원 이하로 충분히 가능해.”
“…….”
민 사장이 경험이 있다고 하니, 변 팀장은 더 할 말이 없었다.
“출장 기간은 4일이야. 그 이상은 안 돼.”
“…….”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변 팀장은 그저 넋 놓고 있을 뿐이었다.
“마지막으로…….”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출장 성과 달성 못 하면, 경비 정산은 없다. 이건 내가 보내는 출장이 아니니까. 자기들이 제안해서 마지 못 해 허락하는 거지.”
“…….”
“한 푼이 아쉬운 상황에서 출장 4일이 장난이야? 말 다 끝났으니 나가 봐.”
민 사장은 말을 마치고는 돌아앉았고.
변 팀장의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혀 있었다.
‘그냥 지금이라도 관둘까.’
내게 작게 소곤거렸다.
그는 후회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주사위는 던져졌는걸.
* * *
휑―.
부산역 광장.
아직 늦여름에 가까운 날씨인데, 바람이 차갑게 느껴졌다.
항상 셋이 같이 다녔었는데, 지금은 변 팀장과 둘 뿐.
부담감을 한가득 안고, 아무 연고도 없는 부산에 결국 오고 말았다.
“강 대리……, 우리 이제 어떡하지.”
“그걸 저한테 물어보시면 어떡합니까.”
변 팀장은 넋이 나가 있었다.
이렇게 질러 놓고서 본인이 정신을 못 차리면 어쩌자는 건가.
“강 대리……, 일단.”
“네?”
“배고프다.”
역 앞의 돼지국밥집.
변 팀장은 필사적으로 국을 퍼먹었다.
불안한 마음을 국밥으로 달래려는 듯.
“천천히 드세요.”
“…….”
어느 정도 배가 차는지, 변 팀장은 다시 미소를 지었다.
“아오~, 배 차니까 머리가 좀 돌아가네.”
“다행입니다. 전 걱정되는데.”
“걱정할 게 뭐 있어~. 그리고 만에 하나 성과 못 내면 어때. 끽 해봐야 출장비 20만 원도 안 쓸 거같은데. 여행 왔다고 생각하지, 뭐~. 오랜만에 가족들이랑 떨어지니까 좋구만. 하하!”
원래 이렇게 긍정적인 사람이었나?
하긴, 아무리 후배들이 치고 올라와도 웃어넘기고, 갖은 핍박에도 버티는 걸 보면…….
“일단…… 우리 협회부터 가보자. 거기 가면 수상작들 걸어 놓았겠지.”
“그건 인터넷으로 봐도 되는데요.”
“현장에서 보는 것과 다르지. 예상 밖의 정보를 얻을지도 모르고.”
변 팀장…… 의외로 적극적이네.
“다 먹었지?”
말을 마친 변 팀장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호기롭게 길을 나섰지만.
우린 아무 데도 못 가고 길가의 벤치에 앉아 있었다.
“아니, 왜 부산국제사진공모전인데, 사무국은 서울에 있는 거야?”
“…….”
변 팀장과 홍지아.
두 사람만 믿고 난 촬영하는 것만 고민했었다.
지금은 내심 후회하고 있다.
“사무국이 왜 충정로에 있냐고.”
혹시 변 팀장도 똥손이 아닐까?
난 핸드폰으로 공모전 사이트에 들어가 서칭해 보고 말했다.
“주최 부산광역시, 동방일보사. 동방일보사 본사는 서울에 있잖아요.”
“부산광역시는 부산에 있잖아.”
“통상 이런 경우 어느 곳이 돈주머니가 되겠습니까. 사이트 맨 아래에 사무국 주소도 적혀 있네요.”
“아……, 젠장. 이런 건 왜 꼭 작은 글씨로 구석진 곳에 있는 거야.”
변 팀장은 머리를 헝클며 괴로워했다.
난 잠시 못마땅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어차피 벌어진 상황이니, 그를 두둔하려 했다.
“사이트 자세히 보니까, 사무국 가봐야 수상작을 볼 수 있는 건 아닌 거 같아요. 수상작이야 인터넷으로 봐도 충분하니까. 그건 더 생각하지 말고, 앞으로 할 일을…….”
“신종국.”
“네?”
신종국? 갑자기 뭐지?
변 팀장은 고개를 숙인 채 읊조리듯 중얼거렸다.
“작년도 은상 수상자. 부산시 사하구에 거주 중.”
“…….”
난 잠시 그의 말을 생각하다가 물었다.
“뭐예요?”
“홍지아 씨가 인상착의랑 주소, 메시지 보냈네.”
변 팀장은 빙그레 웃으며 날 바라봤다.
“경험자 얘기 들어보는 게 가장 효과적이지 않겠나?”
작년도 수상자를 만나 본다?
“그중에서도 경험이 많은 사람이 좋겠지. 신종국 씨는 10~14회까지 5년 동안 은상만 수상한 사람이야.”
“아니……, 언제 그런 걸.”
변 팀장은 씩 웃었다.
“팀으로 움직여서 팀으로 성과 낸다. 서포트하려면 이 정도는 해야지.”
솔직히 좀 놀랐다.
언제 이런 생각을 했을까.
삽질만 하는 건 아니구나.
“그럼 약속이 되어 있는 거예요?”
“아니. 아마 올해도 출품했을 텐데, 쉽게 경쟁자를 만나주려고 하겠나.”
변 팀장은 네 박사 지도에 주소를 찍어본 후 날 바라봤다.
“일단 가보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