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손으로 살아가기-13화 (13/156)

그냥 보여 주면 돼 (2)

* * *

“진짜…… 미쳤다.”

신발 디자인실의 여자 세 명은 하던 걸 멈추고, 그저 내가 만든 종이학을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난 그 자리에 우두커니 있다가.

“저…… 바쁘다고 안 하셨어요? 저희도 근무 시간이 있는데.”

온 김에 끝까지 마치고 돌아갈 생각이었지만, 그렇다고 남의 회사에서 야근까지 하고 싶지는 않다.

“어머, 죄송해요.”

여 직원들은 정신 차리고 다시 종이학을 접기 시작했다.

나도 다시 종이학을 접으려 하는데, 이정권 대리의 눈빛이 종이학에 꽂혀 있었다.

“이거…… 제가 가지면 안 될까요?”

욕망에 이글거리는 눈빛.

탐욕에 가득 찬 얼굴.

“뭘요? 종이학을요?”

전미연 차장이 인상을 썼다.

“아……, 네! 지금 갖겠다는 건 아니고요. 촬영 끝나고.”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싸늘한 눈빛을 받자, 그제야 정신이 든 듯 이정권 대리는 종이학에서 시선을 떼었다.

“아……,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빨리 끝내게 종이학 접는 거나 도와줘요.”

“돕고는 싶은데, 접을 줄을 모릅니다.”

우리는 다시 종이학 접기에 집중했다.

사르륵. 사르륵.

퀄리티도 퀄리티지만, 차이가 나는 건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우와……, 손이 안 보여.”

남들 한 개 만들 때, 난 3개를 만들었다.

빠르게 종이학 접는 모습에 사람들은 자기 것에 집중하지 못했고.

20여 분 정도 지났을 때쯤.

“자~, 이제 다 된 거 같은데요?”

금세 스무 개를 다 만들었고,

그중 15개를 내가 만들었다.

수군. 수군.

― 뭐 하시던 분이야?

― 유아교육과 출신인가?

전미연 차장은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김영민 아저씨보다도 한 수 위인 거 같은데. 원래 전문이셨어요?”

“김영민 아저씨? 그게 누구예요?”

김영민? 처음 들어보는데.

“아……, 강 대리님 세대는 모를 수도 있겠네. 저 어릴 적에 ‘색종이 아저씨’라고 있어요.”

그리고는 손을 모으고 작게 소리쳤다.

“코딱지들아, 모여라~. 몰라요?”

뭐? 코딱지?

“네……, 처음 듣습니다.”

“내 또래 사람들은 다 알 정도로 유명인인데.”

색종이 접기로 유명해질 수 있다고?

“뭐, 방송 출연도 하고 그러셨나요?”

“‘모여라, 딩동딩동’에서 거의 10여 년간 고정으로 계셨죠. 지금도 너튜브 같은 거 하고 계신 거로 아는데.”

“아……, 색종이 접기를 하셔서, 돈 좀 버셨겠네요.”

“꽤 벌었을걸요.”

“…….”

요즘은 뭐 하나 제대로 특기 살리면 돈이 되는 세상이다.

김영민. 나중에 한번 검색해 봐야지.

“차장님, 준비 끝났습니다.”

여 직원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니, 종이학들이 신발 위와 주변에 앙증맞게 놓여 있었다.

“어머~, 귀엽다.”

전미연 차장은 만족스러운지, 연신 웃었고.

“그러게요. 아이디어 좋으신데요?”

내가 봐도 키즈 운동화가 종이학 덕분에 더 깜찍하고 이뻐 보였다.

“그럼~ 부탁드릴게요.”

“넵! 알겠습니다, 홍지아 씨?”

“네!”

홍지아는 운동화를 살짝 만지작거렸다.

거의 변화는 없었지만, 그렇게라도 보조 티를 내야, 우리가 좀 더 전문적으로 보인다.

“오케이. 이제 나와 볼래?”

“네!”

난 냅다~ 셔터를 눌러댔다.

찰칵! 찰칵! 찰칵!

“끝났습니다.”

3방으로 끝내 버렸다.

“자, 보시죠.”

LCD 화면을 보고서, 사람들은 일제히 박수를 쳤다.

― 고마워요~

― 완전 맘에 들어요. 호호.

“하하. 유어 웰컴입니다.”

“네~, 수고하셨어요.”

가방에 카메라를 넣은 후, 내가 접은 종이학을 잠깐 바라보았다.

가져갈까?

흠…….

에이~, 처음이니까 그냥 두고 가자.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

간다고 인사를 해도 못 듣는다.

뭔가 다들 정신이 없어 보였다.

덜컹.

강태평이 나간 뒤.

“나이스!”

이정권 대리는 강태평이 접은 종이학을 마구 챙겼다.

“하하. 대박~.”

그는 손에 든 종이학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뭐 하는 거예요?”

전미연 차장이 눈살을 찌푸리며 손을 내밀었다.

“어서 내놔요.”

“네?”

“그거 우리 거잖아요. 촬영 찍느라 우리가 접은 건데.”

“저, 강태평 씨가 접은 것만 집었는데요?”

“…….”

전미연 차장은 이정권 대리가 손에 움켜쥔 종이학들을 바라보았다.

“어쨌든 우리 자산입니다. 우리 팀 촬영 소품이에요.”

“아니, 무슨 겨우 종이학을 가지고…….”

“겨우 종이학이니까, 어서 내려놓으세요.”

이정권 대리는 종이학에 홀려서 쉽게 내려놓지 못했다.

꿀꺽.

“저……, 차장님.”

“말씀하세요.”

이정권 대리는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럼 저 딱 하나만 가져가면 안 될까요?”

“…….”

“저, 정말 너~무 맘에 들어서 그렇습니다. 딱 하나만요. 네? 정 안 되면 구매할 용의도 있습니다.”

“참나…….”

전미연 차장은 이정권 대리의 이런 태도가 어이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주기가 꺼려졌다.

“치. 알았어요. 그럼 하나만이에요.”

“감사합니다!”

* * *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났고.

우리 팀은 원탁에 모여 대책 회의를 하고 있었다.

그간 제이엠인터내셔날에서 촬영 건으로 방문하는 거 말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

제이엠과 계약을 맺고 특진도 하고, 초반에는 팀 분위기 좋았었다.

하지만 기간 계약을 한 것이기 때문에, 사진 촬영을 해봐야 추가 매출이 뜨는 것도 아니고.

그냥저냥…… 시간만 흘렀다.

촬영 1팀은 다시 파리가 날리기 시작했다.

“에휴…….”

변 팀장의 한숨 소리.

아직 제이엠과의 계약 여파가 남아 있어서, 민 사장이 우리 팀을 가만두고 있지만.

분명히 다음 주쯤이면 압박이 들어올 게 분명했다.

“오더를 따와야 하는데, 쉽지가 않네.”

그동안 아무것도 안 했던 건 아니다.

일단 제품 사진을 원하는 회사들을 많이 알지도 못했고.

겨우 수소문해서 찾아가 영업을 해봐도, 경력이 일천한 ‘촬영 1팀’을 쓰려고 하지 않았다.

더욱이 이미 확고한 거래처가 있어서 기회조차 가지기 힘들었다.

어떻게 보면, 실력을 떠나서 제이엠과 계약한 것 자체가 천운이었다.

“강 대리님이랑 촬영 한 번만 하면 바로 마음이 달라질 텐데…….”

홍지아의 말에, 난 내 손을 바라봤다.

아무리 좋은 연장이 있으면 뭐 하나.

보여줄 기회가 없는데.

“그러게 말이다. 제이엠과 같은 큰 회사와 거래를 하고 있다는 데도…… 기회를 안 주네.”

변 팀장은 날 바라봤다.

“강 대리, 뭐 좋은 생각 없어?”

“글쎄요.”

“글쎄요가 아니야~.”

변 팀장의 얼굴은 심각했다.

“뭐라도 쥐어 짜봐. 이러다가 진짜 큰일 나. 팀 해체되거나, 또 바뀐다고.”

홍지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바뀌어요? 또 뭐로요?”

“청소 1팀. 관리 1팀……. 뭐, 이런 거로.”

“…….”

우리는 그 말에 웃지 못했다.

민경원 사장이라면 그러고도 남을 위인이어서.

“그나마 홍지아 씨가 머리가 가장 말랑말랑하잖아.”

“네?”

“회사 생활 한 지 얼마 안 됐잖아. 학생 때 과제 같은 거 많이 해봤을 거 아니야. 뭐든지 좋으니까, 떠오르는 거 있으면 아무거나 말해 봐.”

“딱히 없는데.”

홍지아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지금 딱히 좋은 아이디어가 없는 거잖아요. 우리 팀 홍보는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이럴 때는 전단지입니다.”

“뭐?”

“회사 앞에 찾아가서 전단지 뿌리는 거죠. 은행원들도 상품 팔 때 그렇게 하잖아요.”

“…….”

은행 상품이야 일반인들이 고객이 되는 거고.

제품 사진은 구매 고객이 한정되어 있다.

“아니면, 텔레마케팅…….”

머리가 너무 말랑말랑 하구나.

변 팀장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방금 했던 말 취소할게. 생각나는 대로 말하지 말고, 홍지아 씨는 고민 좀 해서 얘기하도록 해.”

“네…….”

우리가 하려는 촬영 비즈니스의 대상은 불특정 다수가 아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우리 팀은 경력이 짧고.

대부분 바이어들은 노미 된 업체가 있다.

기회조차 주려고 하지 않는다.

“어이쿠~, 뭐, 아침부터 이렇게 심각하신가?”

영업1 팀장이 빙글거리면서 다가왔다.

“뭘 심각해~. 그냥 회의하는 거지.”

“에이~, 형님. 보면 알죠~. 하하.”

그는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첫 끝발이 개 끝발이었어요? 어째 특진도 하고 잘 풀리는 거 같더니만……. 하하.”

“아니야~, 잘되고 있어. 걱정은 고마운데 자기 볼일 봐~.”

변 팀장은 평소에 김 팀장에게 항상 상냥하게 대했지만, 지금은 쫓기는 마음 때문인지 시니컬하게 대꾸했다.

“에이~, 형님. 이러면 서운해요. 도와 드릴 거 없나 하고 와 본 건데.”

그는 내 어깨를 주무르며 말했다.

“강 대리가 그렇게 사진 실력이 좋다며? 제이엠 상품기획실에서는 소문이 자자하다고 하던데.”

“아, 네. 뭐. 좋게 봐 주시고 계십니다.”

그래 봐야 이미 금액은 정해져 있고.

덕분에 영양가 없이 열심히 불려 다니고 있다.

아무래도 계약을 잘못 한 게 아닐까 싶다.

그나마 다행인 건 1년 계약.

1년 뒤에 계약을 수정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아니, 그렇게 실력이 좋다면서 왜 이렇게 오더가 없어? 응? 제이엠 전속 촬영 기사야? 하하.”

“…….”

아……, 역시 1 팀장답다. 아픈 곳만 콕콕 찌른다.

우리 팀은 표정이 썩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실력이 좋으면, 공모전 같은 데라도 나가보지 그래? 하하. 그 정도까지 전문가는 아닌가?”

아…….

김 팀장의 이 말과 동시에 촬영 1팀 세 사람은 동시에 눈이 커졌다.

아마도 같은 생각을 떠오른 듯싶었다.

변 팀장은 피식 웃었다.

“진짜 도와주러 온 거 맞네.”

“네?”

“고마워, 김 팀장. 촬영 1팀! 잠깐 나가지.”

변 팀장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고, 우린 그를 따라 나갔다.

“알겠습니다.”

* * *

문벅스.

변 팀장은 커피를 가져와 우리 세 사람 앞에 놓았다.

“둘 다 나랑 똑같은 생각한 거 맞지?”

“네, 그러니까 따라 나왔죠.”

홍지아는 씩 웃으며 대답했다.

나도 같은 생각이긴 하지만, 좀 부담이 느껴져서 호쾌하게 대답하지는 못했다.

“우리가 뚫을 수 없다면, 바이어들이 오게끔 만들면 되잖아.”

“…….”

“촬영 1팀에게 가장 부족한 건 경험과 인지도니까. 권위 있는 공모전에서 수상한다면 모든 걸 역전시킬 수 있을 거 같은데.”

“맞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두 사람은 신나서 서로 맞장구치며 말했다.

“강 대리는 어떻게 생각해?”

내가 잠자코 있자, 변 팀장이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물었다.

“근데…… 전 제품 사진만 촬영해 봤잖아요. 공모전은 사진만 잘 찍는다고 되는 게 아닐 거 같은데.”

“그럼?”

“잘은 모르겠지만, 전문가들인데 다들 사진은 잘 찍겠죠. 어떤 대상을 어떤 형식으로 담아내느냐 뭐 이런 게 중요할 것 같은데.”

홍지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 있어요.”

그리고 씩 웃었다.

“그러니까, 팀이 있는 거죠. 저랑 변 팀장님이 공모전에 대해 충분히 사전 조사해서 알려드릴게요.”

“오~, 홍지아 씨~, 적극적인데? 좋아~.”

변 팀장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답이 뻔히 보이는 일이니까요. 방향만 잘 잡으면 우린 반드시 좋은 성적 낼 거예요.”

“오~, 자신감 장난 아닌데?”

홍지아는 확신에 찬 얼굴로 날 바라봤다.

“강 대리님은…….”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힘주어 한 자 한 자 말했다.

“그냥 보여주면 되거든요.”

기회를 만들어 낸다.

* * *

‘예술가는 감성 충전이 필요해. 바람 좀 쐬고 와.’

‘강 대리님, 공모전 준비는 저희가 해 놓을 테니, 머리 좀 식히고 오세요.’

팀원들의 배려 아닌 배려로.

난 이틀간의 휴가 같은 출장이 주어졌다.

촬영 1팀은 얼떨결에 공모전 준비하는 거로 결론이 맺어졌고.

변 팀장과 홍지아는 내게 팀의 운명이 걸렸다며 시간 배려를 해 주었다.

사실 속초에서 돌아온 뒤, 정말 정신없이 달리기만 했고.

5년간 해왔던 회사 생활보다, 최근 1달이 더 많은 성과를 냈던 것 같다.

“어디 갈 데도 없고, 혼자서는 별로 다니고 싶지도 않고.”

팀원들의 배려가 고맙긴 하지만, 딱히 갈 곳도 없다.

특히 바람 쐰다고 고속버스 타고 멀리 가는 건 절대 싫다.

속초의 추억…… 아마 당분간은 영향이 있겠지.

그래서 난 결국 집에서 노는 중이다.

방구석에 앉아서 TV만 보다가…….

“오랜만에 한번 가볼까.”

아셀라 보육원.

“어머니, 안녕하세요.”

“어~, 태평이 왔구나.”

자애로운 미소와 함께 수녀님이 날 반겼다.

“잘 지내셨어요?”

“그럼~, 잘 지냈지. 태평이 너도 건강하지?”

“그럼요~. 보시다시피.”

난 어릴 적 부모를 잃었고, 이곳 아셀라 보육원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김성애 수녀님.

난 이분을 어머니라고 부르고 있다.

“저 사고 났던 거 아세요?”

“그럼 알지. TV에도 나왔었잖니.”

“근데 왜 연락 한번을…….”

“괜찮을 거라고 믿었단다.”

“네?”

수녀님은 웃으며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태평이는 항상 괜찮을 거야. 주님께서 지켜주시니까.”

“아……, 네…….”

또 신앙적인 얘기구나.

어릴 적에는 항상 듣던 말인데, 오랜만에 들으니 생소하게 느껴진다.

“항상 널 위해 기도한단다. 이 엄마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아.”

“감사하긴 한데, 조금은 서운한데요? 그래도 걱정 좀 해주시지.”

“호호. 너 성당에는 꾸준히 나가고 있지?”

“…….”

나간 지 오래됐다. 혼날 것 같아서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뭔가 다 알고 있다는 듯 가만히 날 바라보다가.

“따라오거라. 온 김에 엄마 일 좀 도와다오.”

“네.”

수녀님을 도와서 보육원 구석구석을 청소했다.

갑자기 대청소 일정이 잡힌 건지, 이건 단순한 청소 수준이 아니었다.

보육원 전체를 뒤집어엎었다.

“어머니! 오늘 대청소 날이에요?”

“호호. 그렇게 됐네.”

수녀님은 인력과 물자 활용을 원래 잘했었다.

항상 제한적이고 부족한 상태였기 때문에, 전력 외의 노동력과 물자가 생기면 뽕을 뽑으셨다.

“아~, 내가 잠시 잊었었네. 늦은 시간에 올걸…….”

“호호. 뭐 하니? 어서 쓸지 않고.”

난 빨리 끝낼 생각에, 빗자루로 보육원 내부를 열심히 쓸다가 뭔가를 발견했다.

“어머니.”

“응?”

“아니, 왜 청소기를 놔두고.”

한쪽에 커다란 청소기가 하나 놓여 있었다.

“아~, 작년에 기증받은 건데, 흡입력이 약해서 사용 안 해. 줘도 뭔 이런 걸 줘서……. 그렇다고 버리기는 아깝고.”

난 빗자루를 내려놓았다.

손바닥에 물집이 잡히려 했었다.

“제가 좀 써봐도 되죠?”

“응? 네가 청소기를?”

수녀님은 순간 꺼려 했다.

무엇이든 내 손만 닿으면 멀쩡한 것도 이상해진다는 걸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흠…….”

그녀는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어머니, 괜찮아요. 저 예전 같지 않아요.”

“글쎄다…….”

“그리고 어차피 청소기 성능도 시원치 않다면서요. 사용 안 하실 정도로.”

“뭐……, 그렇긴 하지.”

수녀님은 잠시 망설이다가.

“그래 써라.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 싶으면 바로 쏜 떼야 해.”

“하하. 알겠어요.”

저벅. 저벅.

난 청소기를 향해 걸어갔고, 수녀님은 불안한 눈빛으로 이를 지켜봤다.

덥썩.

난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청소기를 잡았다.

‘수녀님, 저 이제 똥손 강태평이 아닙니다.’

청소기 중앙에 빨간 버튼이 보였다.

“이게 전원이죠?”

“응……, 조심해라.”

조심하라는 말은 나를 향해서 하는 말이 아님을 알고 있다.

난 피식 웃고는 전원 버튼을 눌렀다.

딸깍.

위애애애앵―.

“어머!”

청소기는 야수가 울부짖듯 맹렬하게 울어 댔다.

모든 걸 빨아들이려 했다.

위애애애앵―.

수녀님은 놀란 눈으로 날 바라봤고, 난 씩 웃으며 그녀를 바라봤다.

# 청소기

Before: 빗자루만도 못했었다.

After: 야수의 울부짖음. 모든 걸 빨아들인다.

난 순식간에 보육원 실내 청소를 끝마쳐 버렸다.

그리고 청소기를 세워 놓자, 수녀님이 다가왔다.

“태평아.”

“네, 어머니.”

“이게 무슨 일이니?”

따뜻한 손. 그녀가 내 손을 어루만지며 미소 짓고 있었다.

나에 대해 모든 걸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

“저도 잘 모르겠어요.”

“…….”

수녀님은 그저 내 손을 쓰다듬기만 했다.

더 말은 안 했지만, 내 손이 달라졌다는 걸 느끼신 듯했다.

“감사 기도는 올렸니?”

“아직이요.”

“꼭 하거라.”

“네.”

수녀님은 내 눈을 바라보았다.

“부족한 것에 원망하지 않고, 가진 것에는 감사한다면…… 더 큰 복을 주실 거야.”

“네, 노력은 해볼게요.”

난 성인이 아니다.

이런 말에 확답은 할 수 없었다.

“그래. 우리 태평이, 앞으로 좋은 일 많이 하면 되겠구나.”

“네, 우선 저부터 좀 잘 살고요.”

“호호!”

내 솔직한 말에 수녀님은 큰 소리로 웃었다.

수녀님이지만, 내게는 엄마다.

그래서 이런 솔직한 얘기도 할 수 있었다.

“그래! 우리 태평이! 잘 살아 보자!”

* * *

“좋은 아침입니다~.”

진일상사.

아침 8시 30분.

출근 시간보다 30분 정도 일찍 도착했지만, 팀원들은 이미 다 와 있었다.

“어~, 강 대리 왔어?”

“대리님, 안녕하세요.”

“팀장님, 오늘도 일찍 오셨네요.”

1주일 전부터 변 팀장은 더 이상 지각을 하지 않는다.

민 사장이 점점 도끼 눈으로 우리 팀을 예의주시하고 있기 때문에.

“강 대리, ‘오늘도’라는 말은 빼.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다.”

“하하. 네, 기다리는 분은 아직 안 오셨어요?”

“그러게. 빨리 오셔야 할 텐데.”

변 팀장은 출근한 이후부터는 사장님만 오기를 기다린다.

아침 일찍 출근한 모습 보여주기 위해.

“어쨌든, 뭐, 푹 잘 쉬었어?”

“아. 네, 잘 쉬었습니다.”

보육원에서 몸을 많이 쓰기는 했지만, 어쨌든 잘 쉬었다.

수녀님을 만나 얘기를 하니 힐링되기도 했고. 일상으로 회복한 후 처음으로 여유 있는 시간을 가졌었다.

“엇?”

변 팀장은 갑자기 눈이 동그래져서 갑자기 일어났다.

“안녕하십니까!”

“음, 좋은 아침.”

쾅.

민 사장은 손만 살짝 들어 답례하고는 사장실로 들어갔다.

“오케이. 오늘 할 일 반은 한 거야. 하하. 그럼 업무 좀 보고 이따 점심 먹고 미팅 좀 하자.”

“네? 그냥 지금 바로 하시죠.”

촬영 일정이 없으니 시간이 남아 돈다.

“시장 조사 갔다 올게.”

변 팀장은 나가버렸다.

피식.

나와 홍지아는 서로 마주 보고 웃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변 팀장은 점심때까지 돌아오지 않았고, 오후 2시 무렵에야 나타났다.

“아이고~, 요즘 장사가 잘 안 되네. 응? 손님들이 많아야 시장 조사가 되는데.”

변 팀장은 얼굴이 뽀얘져 있었다.

어디를 갔다 왔기에.

킁킁.

“어디서 목욕탕 냄새나는 거 같은데.”

홍지아가 중얼거렸고, 변 팀장은 흠칫 놀랐다.

“쓸데없는 디테일에 강할 필요 없어, 홍지아 씨.”

“…….”

“시장 조사는 꼭 오프라인으로만 할 수 있는 건 아니거든.”

변 팀장은 씩 웃으며 날 바라봤다.

“강 대리, 우리 좀 볼까?”

“네.”

회의실.

변 팀장과 홍지아는 심각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무슨 일 있어요?”

“흠…….”

변 팀장은 깊은 신음 소리를 내었고, 그 옆에 있던 홍지아가 입을 열었다.

“아쉬워서 그래요.”

“뭐가?”

“세계적으로 가장 권위 있는 사진 공모전은 올해 끝났더라고요.”

“세계적?”

이 사람들이 진짜. 사람을 과대평가해도 유분수지.

공모전에 참가하는 게 목표가 아니라, 수상을 하는 게 중요하다.

홍보가 목적이기 때문에.

그러려면 수상이 가능한 공모전에 참가해야 한다.

“가장 임팩트 강한 거로 결과를 내야 효과가 제대로 있을 텐데.”

“맞아요.”

두 사람은 내가 참가만 하면 수상할 거라고 굳게 믿고 있는 듯했다.

“우리가 이틀간 다른 업무 다 제쳐두고 공모전 써칭만 했거든?”

“맞아요, 대리님. 저랑 팀장님이랑 엄청 고심했다고요.”

변 팀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갔다.

“지금 참가할 수 있어야 하고, 결과가 최대한 빨리 나와야 하며, 사진 업계에서 누구나 알아줄 만한 공모전.”

눈빛이 아주 진지하다.

난 변 팀장이 이렇게 눈빛을 빛낼 때는 뭔가 좀 불안하다.

“그, 그게 뭔데요? 그런 공모전이 있어요?”

“하하! 결국 찾아냈지.”

“호호.”

홍지아는 웃으며 노트북 화면을 돌렸다.

[제15회 부산 국제 사진 공모전]

가. 응모 자격: 부산을 사랑하는 국/내외 누구나

나. 주제: 부산

다. 출품 규격 및 응모 방법

촬영한 사진은 긴 쪽이 3200px 이하가 되게 줄여서 등록.

.

.

.

꿀꺽.

부산. 부산이라.

한 번도 안 가봤는데.

“부산을 아세요?”

난 당황하여 이런 질문이 먼저 나왔다.

“알지. 우리나라 제2의 도시.”

“부산에는 부산항이 있죠.”

“…….”

주제가 부산인데, 부산을 아는 사람이 없다.

변 팀장은 웃으며 내 어깨를 토닥였다.

“괜찮아~. 지금부터 알아가면 돼. 처음부터 잘 아는 사람이 어딨어. 그리고 꼭 잘 알아야만 사진을 잘 찍나? 하하.”

어이가 없어서 그를 멍하니 바라보니, 변 팀장은 머쓱한 표정을 짓고는 노트북을 가리켰다.

“끝까지 읽어 봐봐.”

[바. 시상 내역: 대상(1명) 상장과 상금 1,000만 원]

대상 상금이 1천만 원?!

“하하. 대박이지?”

“와……. 꽤 세긴 하네요.”

하지만 잠시 생각해 보니, 어차피 회사 이름으로 공모하는 건데.

상금은 나와 상관없어 보였다.

변 팀장은 내 표정을 살피고는 피식 웃었다.

“대상 타면 상금은 강 대리 거야.”

“네?!”

“공모작 출품을 강 대리 이름으로 진행할까 해. 회사에서 시킨 일도 아닌데, 상금까지 갖다 바치는 건 좀 아니잖아.”

“…….”

“홍보만 되게 해줘도 회사에 이득이지.”

이 말에 홍지아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뭔가 할 말이 있어 보였는데, 입술만 달싹 일뿐 말은 하지 않았다.

“그래도 상금 타면 우리 맛있는 거 사줄 거지? 소고기 한번 쏴~.”

“하하. 그건 그때 가서 얘기하죠. 전혀 모른 척하진 않겠습니다.”

“그래. 그건 자네 뜻대로 하라고. 우린 기대하고 열심히 도울 테니까~.”

휴우―.

파리 날리고 있는 진일상사의 ‘촬영 1팀’.

어떻게든 오더를 만들어내야 했고, 우린 이런 방법까지 생각해냈다.

지금으로서는 더 좋은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강 대리, 근데 아까 내가 했던 말 기억하지? 공모전 선정하는 데 있어서, 시간도 고려했다고. 우린 결과를 빨리 내야 하니까.”

“아, 네.”

변 팀장은 쭈뼛거리는 손으로 노트북 화면의 스크롤을 내렸다.

“일정 좀…… 봐봐.”

[작품 접수: 4월 1일~9월 8일]

응?!

[작품 심사 및 발표 : 9월 중(자세한 일정은 공식 홈페이지 공지…….)]

난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 아니. 도대체 이걸…….”

변 팀장은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부산……. 잘 알지도 못하는데.

황당해서 말도 안 나온다.

“서두르자.”

변 팀장은 자리에서 일어났고, 홍지아도 굳은 표정으로 따라 일어섰다.

“접수 마감 일주일 남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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