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효과 (1)
* * *
김성수 부장의 표정이 싸늘해져 있었다.
“패키지요?”
목소리가 날카로웠지만, 난 개의치 않고 멘트를 이어갔다.
“네, 저희 팀 개설 이벤트로 패키지를 준비했습니다.”
“잠깐.”
김성수 부장의 목소리가 살짝 커졌다.
“설마 이런 의도로 우리를 부른 거요? 영업하려면 정정당당하게 할 것이지, 이게 뭡니까?”
‘아이좋아 스튜디오’와 상황이 다른 점.
우리는 제 발로 찾아갔던 거고.
이들은 우리가 불러서 온 것이다.
반발심은 어느 정도 예상했었다.
그때 변 팀장이 나섰다.
“자자. 김 부장님~, 오해하시면 안 됩니다. 우리가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홍보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단순히 그것에만 목적이 있는 건 아닙니다.”
변 팀장의 눈은 초승달이 되어 있었다.
“부담 갖지 마시고, 제품 인화 사진만 가져가셔도 됩니다. 퀄리티 보셔서 아시겠지만, 그것만 해도 어느 정도 활용가치가 있으실 겁니다.”
“…….”
“그것만 가져가셔도 그 어떤 서운함도 갖지 않겠습니다. 왜냐면 저희가 모신 거니까요. 와 주신 것만 해도 감사하거든요~.”
“흠!”
김성수 부장이 헛기침하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지만, 더 얘기하진 않았다.
그리고 나는.
헉― 헉―.
약간 거친 숨소리를 내며, 카메라를 계속 들고 있던 손을 털었고.
“아우, 더워.”
홍지아는 이마의 땀을 훔쳤다.
이정권 대리는 이런 우리 모습을 보며 머쓱해 했다.
촬영하는 동안 최선을 다한 건 사실이기에.
그들이 직접 눈으로 봤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밖으로 안내해 드릴까요?”
헉― 헉―.
휴우―.
나와 홍지아는 더 크게 액션을 했다.
이정권 대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부장님, 어차피 온 건데 얘기나 한번 들어보는 게 어떻습니까.”
“…….”
김성수 부장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고, 이정권 대리가 어서 하라는 듯 손짓을 하며 말했다.
“간단하게 얘기해 주세요. 시간이 꽤 많이 지났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강 주임?”
“네, 팀장님.”
휴우―.
이제 중요한 타이밍이다.
난 크게 심호흡을 한번 하고 입을 열었다.
“상품 기획에 있어서 아무래도 제품 촬영을 하시는 경우가 많을 겁니다. 매 시즌을 준비하실 때마다 상품설명서나 온라인에 올릴 제품 사진이 필요하시겠죠.”
“…….”
“촬영 비용이 만만치 않으실 겁니다. 그래서 그 비용을 아끼기 위해서 제품을 모으고 시간을 잡느라 에너지 소모도 많으실 거고요.”
김성수 부장은 흥미롭다는 듯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
“또한 단발성 상품의 경우 몇 개 되지도 않는 것 때문에 촬영을 잡기가 곤란했을 겁니다. 그렇다고 퀄리티 떨어지는 제품 사진을 사용할 수도 없고.”
“잘 아시네요?”
“네, 공부 좀 했습니다. 하하.”
상대방이 필요한 걸 알아야, 말이 먹힌다. 며칠 동안 우리는 인맥을 총동원하여 제품 사진 촬영 시 에러 사항에 대해서 조사했었다.
물론 인맥 동원하는 데 있어서는 내 역할은 거의 없었다.
“뻔한 얘기는 그만하시고, 그래서 하고 싶은 얘기가 뭡니까?”
“네, 그래서 저희가 제안 드릴 패키지는…….”
꿀꺽.
변 팀장은 굳은 얼굴로 날 바라보고 있었고.
난 김성수 부장의 눈을 지그시 응시하며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촬영 1팀 연간 자유이용권입니다.”
“뭐요?”
“자유이용권?”
두 남자는 눈을 끔뻑거렸다.
“이해하시기 쉽도록 그렇게 명명하였습니다.”
“하하. 재밌네요. 그럼 팔찌도 주시나요?”
이 말에 김성수 부장은 이정권 대리를 째려보았고, 그는 입을 다물었다.
“1년 계약을 하시면, 원하시는 시간과 장소에 언제든 나타나서 촬영해 드리겠습니다.”
“아…….”
“아, 물론 제품 사진에 한해서입니다. 사내 행사, 연례회 등도 가능하나, 그건 다른 패키지로 구성…….”
“아, 아니요. 그건 됐어요.”
김성수 부장은 손을 들어 내 설명을 막았다.
“비용은요?”
“이천만 원입니다.”
“이, 이천만 원?!”
“생각해 보십시오. 제품 사진 한번 찍으실 때마다, 스튜디오 대여 및 인건비가 얼마나 듭니까?”
“…….”
“아무 때나 어느 장소에서 건 이용 가능하다는 걸 고려해 보십시오. 지금 거래하는 곳과 연간 기준으로 견적 비교를 해보신다면 절대 비싸지 않은 금액일 거라고 자부합니다.”
김 부장은 낮은 신음 소리를 내더니.
“흠……, 그래도 이천만 원은 너무 높네요. 회사에서는 목돈이 한 번에 투입되는 걸 별로 선호하지 않거든.”
“그래서!”
이제 회심의 판매 전략을 구사할 때다.
“오늘 이 자리에서 계약하시면!”
제발 먹혀야 할 텐데.
“50% 할인해 드립니다! 오늘 찍은 원본 파일까지 몽땅 다 해서 드릴게요~.”
김성수 부장과 이정권 대리.
내 마지막 제안을 들은 이후.
그들의 감정이 얼굴에 드러난다.
딱 며칠 전 홍지아와 내가 ‘아이좋아 스튜디오’에서 짓던 그 표정이다.
쫄리고 있구나.
김성수 부장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잠깐.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데.”
변 팀장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럼요~, 자리 비켜 드릴게요~. 생각해 보시고 결정되면 불러주세요~.”
우리는 두 사람을 안내실에 두고 문을 닫았다.
덜컹.
* * *
진일상사 일행이 나간 후, 김 부장은 불쾌한 내색을 감추지 않았다.
“이것들이 바쁜 사람 불러 놓고…… 수작질이야.”
“역시, 비즈니스에서 이유 없는 호의는 없는 것 같습니다.”
휴우―.
그러면 그냥 박차고 자리를 뜨면 되는 일이었지만.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한숨만 내쉬었다.
“이 대리.”
“네.”
“이 제안 나쁘지 않은 거지?”
“네, 비용만 따져 봤을 때는…… 나쁘지는 않은데, 아주 좋지도 않습니다.”
“왜지?”
“연간 천만 원이면 현재 저희가 제품 촬영 비용에 연간 들이는 비용과 얼추 비슷하거나 약간 높은 수준입니다.”
“흠…….”
“하지만 강 주임이 말한 것처럼 시간, 공간, 제품의 제약이 있었죠. 한번 자리를 만들 때마다 돈이 꽤 들었으니까요.”
“그랬겠지.”
“네, 그런 부분까지 생각한다면 조건이 나쁘지는 않습니다.”
김 부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더 다양하게 제품 사진을 확보할 수 있으니 상품 홍보 효과가 올라갈 수도 있고.”
“맞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김 부장은 정지된 모니터 화면의 사진을 바라봤다.
“사진의 퀄리티인데.”
“…….”
이정권 대리는 김 부장의 말에 의아해했다.
“퀄리티요?”
“그래. 강 주임은 사실 전문가가 아니잖아. 난 퀄리티에 기복이 있을까 봐 염려가 돼. 이제 겨우 두 번 본 거고.”
그럴수록 이정권 대리는 더 의아해했다.
“지금 한 시간 동안 직접 찍는 걸 보셨는데, 그런 의심이 드세요?”
“이 대리, 쉽게 신뢰하면 안 돼. 몇 년을 함께 일해 온 협력사도 뒤통수치는 게 다반사야.”
“아…….”
염려되는 부분은 있지만, 어쨌든 마음이 기울고 있었다.
“김 부장님, 그럼 마지막으로 사진 영상 한 번만 더 보고 결정하시는 게 어떨까요?”
“흠……, 그래.”
픽.
약 5분간의 영상.
순식간에 두 사람은 빠져들었다.
다시 봐도 강태평의 사진은 예술 그 자체였다.
“이 대리, 더 생각할 필요 없겠다.”
“네, 김 부장님. 호출하겠습니다.”
* * *
“아휴~, 왜렇게 오래 걸리냐. 자기들도 오래 걸렸었어?”
변 팀장의 말에 난 고개를 갸우뚱하며 대답했다.
“좀 고민이 되긴 했었죠. 생각지도 못해 본 걸 제안하는데…… 부담은 되면서도 솔깃하니까.”
“근데 내가 생각해 봐도 좀 황당하긴 하겠다.”
변 팀장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영업팀이 갑자기 촬영팀이 되어서는 천만 원짜리 계약하자고 덤비는 꼴이라니…….”
“…….”
“어쨌든 우린 최선을 다했잖아. 잘 안 되면, 뭐……. 돌잔치 뛰러 다니고 하면 되니까. 강 주임 실력이면 어디서든 써먹을 곳은 있겠지.”
난 이에 대해선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럴 바에는 혼자 프리랜서로 뛰지, 뭐 하러 회사에 있나.
덜컹.
문 열리는 소리에 우리는 깜짝 놀랐다.
이정권 대리가 우리를 향해 손짓했다.
“오래 기다리셨죠? 들어오세요.”
“네!”
안내실에서 우리는 마주 보고 앉았다.
서로 말이 없었고, 조용한 공간 속에 침 삼키는 소리만 들렸다.
변 팀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생각해 보셨어요? 어떠한 결정을 내리셔도 괜찮습니다.”
“흠…….”
김 부장은 무거운 신음 소리를 뱉더니.
“제안하신 패키지 계약 건, 받아들이겠습니다.”
“…….”
어? 어라? 진짜?
기대했던 바이긴 하지만, 믿기지 않았다.
진짜 하겠다고?
“아……, 가, 감사합니다.”
변 팀장도 얼떨떨한지, 더듬거리며 말했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김 부장은 단호한 얼굴로 말했다.
“결제 조건은 말씀 안 하셨는데, 저희가 제안을 드리겠습니다.”
“아……, 결제 조건.”
변 팀장은 약간 당황한 눈치였다.
그러고 보니 그 생각은 못 했었다.
“네, 일단 들어보겠습니다. 말씀하시죠.”
“30대70으로 하시죠.”
“30대70이요?”
“네. 선금 30% 드리고, 70%는 계약 종료 시 드렸으면 합니다.”
“…….”
“저희는 이 거래 자체가 꽤 많은 리스크를 안고 가는 겁니다. 제안 드리는 게 과하다고 보진 않습니다.”
김 부장은 이에 대해선 물러설 생각이 없어 보였다.
상대방 입장에서는 이해는 간다.
변 팀장은 잠시 고민하더니.
“이해합니다. 하지만 저희 팀은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고, 촬영 준비를 하려면 아무래도 비용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 조건은 어렵습니다.”
“아, 그래요?”
김 부장은 거래를 관두려는 듯, 표정을 풀고 주변 정리를 했다.
변 팀장은 재빨리 소리쳤다.
“50대50이면 가능합니다!”
“…….”
변 팀장은 김 부장의 눈을 응시했고.
김 부장 또한 흔들림 없이 그 눈빛을 받았다.
그 상태로 대치하다가.
김 부장이 손을 내밀었다.
“그렇게 하죠.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하하!”
변 팀장은 김 부장의 내민 손을 꽉 잡으며 큰소리로 웃었다.
홍지아는 활짝 웃었고, 난 책상 밑으로 주먹을 불끈 쥐고 마음 속으로 소리를 질렀다.
“홍지아 씨, 계약서 좀 줄래?”
“네~, 여기 있습니다.”
변 팀장은 준비한 계약서를 내밀었다.
“하하. 진짜. 철저하시네. 이거 완전히 우리가 걸려든 거 같은데요?”
김 부장은 사인을 하면서 웃었다.
“후회하지 않게 해드리겠습니다! 잘 모시겠습니다.”
변 팀장은 계약서를 번쩍 들고 웃었다.
* * *
다음 날 아침.
“야! 변 팀장!”
민 사장은 출근하자 마자, 빠른 걸음으로 우리를 향해 걸어왔다.
“안녕하십니까.”
“변 팀장은?”
변 팀장은 여느 때처럼 아직 출근하지 않았다.
“오늘 시장 조사 갔다가 오신다고 했습니다.”
“하여간 그놈의 시장 조사. 하하.”
민 사장은 말은 이러면서, 큰소리로 웃고 있었다.
“강 주임! 어제 한 건 했다며?”
“네? 아, 네.”
벌써 얘기를 들었나?
“아니, 그런 일 있으면 바로 바로 보고를 해야지. 내가 바이어 통해서 들어야 해?”
입이 귀에 걸려 있는 민 사장.
그가 우리 팀을 향해 이렇게 환하게 웃는 건 정말 오랜만에 보는 것 같다.
아니 처음 일지도. 기억이 안 난다.
“죄송합니다. 팀장님이 오늘 정리해서 보고 드린다고 하셨습니다.”
“그래. 그래. 이따가 변 팀장 오면 다 같이 바로 사장실로 들어와. 알겠지?”
“네, 알겠습니다.”
민 사장답지 않은 스윗한 말투.
손발이 오그라들 것 같다.
그는 사장실로 들어 가려다가 우리를 돌아보고 살짝 미소 지었다.
“강 주임, 좀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