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질이 아니야 (2)
* * *
스터디룸.
16인실과 4인실.
우리는 두개의 룸을 잡았다.
16인실은 촬영장, 4인실은 안내실.
대여료는 별로 높지 않았다.
마땅한 장소가 떠오르지 않아서, 고민 끝에 찾은 공간은 스터디룸.
가운데에 하얀색 긴 테이블이 놓여 있었고, 공간도 널찍했다.
사진 촬영하는 데 있어서, 구도 잡는데 어려울 것 같지는 않았다.
“홍지아 씨. 굿 아이디어야. 가성비 좋아.”
“호호. 저 엊그제까지 대학생이었다고요.”
홍지아는 변 팀장의 칭찬에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우리 셋팅 좀 해볼까?”
약간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기 위해, 꽃 화분, 양키캔들 등 자잘한 데코레이션을 가지고 왔다.
스터디 룸의 깔끔함을 유지하면서, 특별함이 살짝 보이도록.
30분 정도가 지나고, 세팅은 곧 완료되었다.
“제이엠 직원들 오려면 얼마나 남았나?”
“한 20분 정도면 도착할 것 같습니다.”
“그래. 각자 맡은 역할 머릿속으로 다시 한번 그려봐. 실수 없도록.”
“알겠습니다.”
똑똑.
“네~, 들어오세요!”
덜컹.
제이엠인터내셔날 상품기획 팀장 김성수 부장과 이정권 대리.
그들은 16인실 내부를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와~, 주소 따라서 찾아오면서도 잘못 온 게 아닐까 걱정했는데.”
김성수 부장은 16인실의 스터디 룸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아니, 그냥 회의실이 없으면 저희 회사로 오시면 될 텐데. 무슨 이런 곳을 잡으셨어요.”
“하하. 어서 오십시오, 김 부장님.”
변 팀장은 허리를 깍듯이 숙였다.
“촬영 1팀 임시 스튜디오입니다.”
“아~.”
김 부장은 그제야 내부 데코레이션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임대하신 거예요? 스터디 룸이 임대도 되나 보죠?”
“아……. 네, 뭐. 시장에서 안 되는 게 어디 있습니까? 으하하.”
엄밀히 말하면 임대가 아니라 대여지만.
변 팀장은 김 부장의 말을 얼버무리며 넘겼다.
“하하. 네, 지하에 있어서 빛은 잘 안 들어 오지만, 그래도 깔끔하니 나쁘지 않네요.”
“네~, 하하.”
변 팀장은 김 부장의 말에 엄지를 내밀며 웃었다.
그리고 잠시간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며 김 부장의 말을 맞춰주었다.
아주 자연스러웠고, 그 과정을 통해 약간은 어색했던 분위기가 누그러지고 있었다.
확실히 20년 차 영업 맨이라. 다르긴 하다.
“아니, 근데 어쩌다가 촬영 팀장이 되신 거예요?”
“아~, 그게요.”
변 팀장은 천역덕스럽게 대답했다.
“우리 진일상사가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에 좀 관심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강태평 주임도 그걸 고려하고 채용한 거였고요. 그동안 이 친구 역량을 쌓기 위해 꾸준히 관리해 왔습니다.”
“…….”
“이번에 제이엠인터내셔날에 제출했던 제안서 있는 사진. 사실 그게 시험한 거였거든요. 고객께서 상품으로서 가치를 인정해 주시길래,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해도 되겠다고 판단한 거죠. 그날 바로 사장님께서 의사결정 하신 겁니다.”
“아~, 그렇군요. 어쩐지 사진이 심상치 않더라.”
김 부장은 말도 안 되는 변 팀장의 말을 믿는 눈치였다.
엔터테인먼트 진출? 촬영 기술을 고려한 채용?
처음 듣는 얘기다.
어쩌면 저렇게 자연스럽고 그럴듯하게 말을 할까.
변 팀장은 홍지아에게 신호를 주었다.
“홍지아 씨? 안내해 드려.”
“네.”
홍지아는 이정권 대리 옆에 있는 캐리어를 잡으며 말했다.
“오늘 촬영할 샘플 가져오신 건가요?”
“아, 네.”
“이건 여기 두시고요. 부장님과 대리님은 옆에 안내실에 가방이랑 외투 두시고 다시 촬영장으로 오시면 됩니다.”
“촬영장으로요? 여기서 샘플 촬영하는 걸 꼭 봐야 하는 건가요?”
이정권 대리의 물음에 홍지아는 상냥한 미소와 함께 대꾸했다.
“네에~, 저희는 고객님 의도를 최대한 맞춰드리고 싶거든요. 제품의 구도나 원하는 분위기를 그때그때 반영해 드리고 싶어서요.”
“아……, 네.”
이정권 대리는 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얼굴이었다.
“이 대리, 진일상사에서 열심히 준비하셨으니 그냥 따르자고.”
“네, 부장님. 알겠습니다.”
두 남자는 촬영장인 스터디 룸 16인실을 나갔다.
* * *
“강 주임, 홍지아 씨.”
우리는 제이엠인터내셔날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고, 변 팀장이 말했다.
“이제 두 사람한테 달렸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네, 알고 있습니다.”
“그래, 화이팅이야.”
변 팀장의 얼굴은 비장했다.
“이번이 촬영 1팀의 시작이지만…… 어쩌면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어.”
“…….”
“이번에 잘하지 못하면 우리 이별하게 될 거야. 난 이런 직감은 기가 막히거든. 집중해서 잘하자.”
감성을 끌어 올려야 하는 시점에, 너무 과하게 비장하다.
똑똑.
“네~, 들어오세요.”
김성수 부장과 이정권 대리가 들어왔다.
홍지아는 회의실 끝에 있는 의자를 가리켰다.
“두 분 그쪽에 앉으시면 됩니다. 촬영 보시면서 요구 사항 있으면 언제든 말씀해 주세요.”
“네.”
이정권 대리가 캐리어에 담아 온 제품은 가방, 장갑, 양말 등의 용품들이었다.
“이번 신상 제품들이거든요. 저희가 메인 제품은 대부분 촬영을 끝냈는데, 일부 나중에 개발된 상품들이 있거든요. 몇 개 안 되지만…… 그거 부탁드리고자 가져왔습니다.”
제품은 10개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하나에 서너 컷씩 찍어 봐야 10분도 걸리지 않을 듯했다.
지금 열심히 해서 이 사람들이 미안하게끔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궁리를 하며, 먼저 양말을 탁자 위에 올렸다.
찰칵! 찰칵!
양말 주변을 360도로 돌면서 촬영했다.
찰칵! 찰칵!
다양한 각도로 수십 방을 찍었다.
“어휴. 양말 하나 찍는데 뭐 이렇게까지.”
이정권 대리가 불편해하는 낌새를 보였고, 난 이때다 싶어서 홍지아에게 말했다.
“홍지아 씨.”
“네.”
“양말 신어 봐.”
온몸으로 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상황에 완전히 충실해야 한다.
“네?”
사전에 얘기된 게 아니었기에, 홍지아는 황당한 얼굴로 날 바라봤다.
“바이어 제품의 가치를 보여줄 수 있는 건 다해야지. 사진에 모두 드러나도록.”
“……네.”
난 눈짓으로 홍지아에게 신호를 보냈고, 그녀는 마지못해 주섬주섬 신발을 벗었다.
양말을 신은 홍지아는 치마를 발목까지만 살짝 올렸고.
찰칵! 찰칵!
이번에도 난 다양한 각도로 사진을 찍었다.
“흠!”
약간 민망했는지, 김성수 부장이 헛기침했다.
그다음 제품들도 마찬가지.
다양하게 찍고, 홍지아가 착용하고 찍고.
찍고 또 찍고.
메모리가 남지 않도록, 정말 사정없이 찍었다.
“근데, 카메라가 너무 옛날 거 아니에요?”
한참을 찍고 있는데, 이정권 대리가 말했다.
“화소가 부족할 텐데.”
내가 들고 있는 카메라는 5년 된 일반 디지털 카메라였다.
사실 이 카메라보다 홍지아 씨가 들고 있는 피치폰 11의 사진 기능이 더 좋을 수 있다.
하지만 바이어 모셔 놓고, 핸드폰으로 제품 촬영할 수는 없지 않은가.
찰칵! 찰칵!
“이거 보기와는 다릅니다. 좋은 겁니다.”
“음……, 그래요?”
“결과물로 보여드릴게요.”
5년된 디지털 카메라지만, 내 손에 있는 동안은 최신형 DSLR 카메라다.
특히 사진 촬영은 여러 번 검증했던 터라, 내 금손의 능력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어느덧 1시간 소요.
겨우 10개의 제품이지만 열정을 다했고, 마지막 제품 촬영만 남겨두고 있었다.
“아……. 가방의 굴곡진 부분이 잘 안 담아지네.”
플래쉬를 켜봤으나, 그걸로 부족했다.
가방 굴곡에 그늘이 진 부분.
다른 조명이 더 필요했다.
“에이~, 됐어요. 그렇게까지 꼼꼼하게 안 찍으셔도 돼요.”
이정권 대리는 지루한지 빨리 끝내고 싶어 했다.
음…….
혹시, 효과가 있지 않을까?
난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어 ‘손전등’을 클릭했다.
팟!
― 엇, 눈부셔.
― 우와~ 핸드폰 뭐야?
높게 든 핸드폰 플래시는 온 방 안을 환하게 밝히고도 남을 정도로 눈부셨다.
김성수 부장은 내 핸드폰을 보더니.
“그냥 은하수 폰인데? 리폼한 건가요?”
“네? 아……, 네, 그렇습니다. 촬영할 때 활용하려고요.”
가방의 어느 굴곡도 그림자로 가려지는 부분은 없었다.
찰칵! 찰칵!
# 핸드폰 손전등
Before: 손 닿으면 베터리 조루라서, 켜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After: 태양을 품은 핸드폰.
* * *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덜컹.
홍지아는 두 남자를 안내실에 두고 나왔다.
“휴우~.”
어쨌든 일단락이 되었다.
나와 홍지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변 팀장은 우리 두 사람의 어깨를 두드리며 웃었다.
“수고들 했어. 둘이 궁합이 잘 맞는구만.”
홍지아는 날 뾰로통하게 바라봤다.
“갑자기 왜 양말을 신겨요?”
“미안. 필요한 일이었어.”
변 팀장은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들겼다.
“잘했어~. 현장에선 즉흥적인 것도 필요하지. 홍지아 씨도 서포트 잘해줬고.”
난 홍지아를 향해 씩 웃었고, 그녀도 곧 표정을 풀고 웃었다.
“자~. 그럼 강 기사님? 사진 좀 볼까?”
카메라를 모니터에 연결시켜서, 사진을 확인했다.
“우와…….”
변 팀장은 탄성을 질렀고.
꿀꺽.
나 또한 너무 놀라웠다.
“진짜구나. 솔직히 난 제안서에 있는 사진이 강 주임이 찍은 거라고…… 안 믿겼는데.”
그땐 얼떨결에 한 거였고, 이번엔 제대로 했다.
기대하고 했던 터라, 지금의 사진 퀄리티가 그때보다도 더 충격적으로 느껴졌다.
“제이엠인터내셔날……. 깜짝 놀라겠는데? 하하.”
변 팀장은 호탕하게 웃었다.
안내실.
김성수 부장과 이정권 대리.
“대박…….”
그들은 그저 입 벌리고 멍하니 보고 있었다.
BGM과 함께 모니터에 채워진 영상.
‘아이좋아 스튜디오’에서 본 그대로 따라 했다.
그때는 대단하게 봤었는데, 자동 편집 프로그램을 활용하니 사진 동영상은 금세 만들어졌다.
“아니, 어떻게…… 그 허접한 카메라로……. 흡!”
이정권 대리는 무의식중에 나온 말을 황급히 멈추었다.
어느덧 영상은 끝났고.
“…….”
안내실 안은 정적만이 감돌았다.
대단한 작품을 감상하고 난 뒤의 고요함.
짝짝짝.
김성수 부장이 박수를 치며 정적을 깼다.
“이야~. 강 주임님 진짜 대단하네.”
그는 감탄한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
“변 팀장님! 인재 육성을 제대로 하셨는데요? 전문 사진가보다 더 잘 찍는 거 같은데?”
“김 부장님.”
변 팀장은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강 주임은 그냥 전문 사진가입니다.”
“…….”
“네, 촬영 기사 강태평입니다. 내부적으로 엄청난 검증 과정을 거쳤습니다. 의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오……. 그래요.”
김 부장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오늘 온 보람이 있네요. 이런 서비스를 제공해 주시다니. 대만족입니다. 하하.”
“하하. 네. 인화본은 3일 내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이정권은 웃으며 대답했다.
“네? 그냥 사진 파일 보내주시면 됩니다. 뭐, 인화까지야.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변 팀장은 내게 눈짓을 보냈고.
난 한껏 미소 지으며 상냥한 목소리로 답변했다.
“서비스는 인화본이고요. 원본 파일은 구매용입니다.”
“……네?”
“구매를 원하시면 안내를 해 드릴건데요…….”
김성수 부장의 눈빛이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패키지 계약을 하시면 원본 파일도 그대로 드리겠습니다.”
“패키지 계약?”
김성수 부장은 눈살을 찌푸렸지만, 난 당황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진일상사 촬영 1팀이 제이엠인터내셔날을 위해 특별히 준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