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손으로 살아가기-8화 (8/156)

낚시질이 아니야 (1)

* * *

“저 나가 있을 테니까~ 천천히 생각해 보시고~ 불러주세요.”

직원은 내 표정을 살피더니, 시간을 더 주겠다고 했다.

이 여유…… 왠지 불안하다.

쾅!

그녀가 나간 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아~, 이걸 어쩌지. 근데 홍지아 씨 왜 말이 없어?”

“뭐……, 할 말이 없네요.”

“와~, 이거 정신을 쏙 빼놓네.”

이곳에 온 후부터 지금까지 일련의 과정들을 생각해 봤다.

모든 게 다 계산된 게 아닐까?

심지어 지금 시간을 준다는 것까지도?

뭔가 잘 짜인 패턴의 흐름 속에 던져진 기분.

무엇보다도…… 지금 느끼는 내 감정이 이상했다.

패키지 계약을 안 하면 안 될 것 같고.

지금이 마지막 찬스인 것 같고.

지금 결정 안 하면 후회할 것 같고.

“이상해. 주객이 전도된 것 같은.”

“주임님도 그래요?”

마치 우리가 ‘아이좋아 스튜디오’에 촬영해 달라고, 패키지 계약해 달라고 사정하고 있는 기분이다.

“아무래도 이곳을 빨리 빠져나가야 할 거 같아. 안 그러면 낚일 듯.”

“네……. 근데 사진은 어떡해요?”

“무슨 사진?”

“오늘 찍은 원본 사진이요.”

원본 사진은 따로 구매해야 하고, 패키지 계약 안 하면 무려 40만 원이나 줘야 한다고 했었다.

“그냥 가자. 아무리 법카라도 그 정도까지 돈 들여서 구매할 건 아닌 거 같아. 너무 비싸.”

“…….”

“어쨌든 액자 하나는 보내주기로 했으니까. 그걸로 퀄리티 참고하지, 뭐.”

난 서둘러 옷을 챙겼다.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야 할 것 같았다.

“뭐 해? 또 지퍼 문제야? 안 잠겨?”

“…….”

평소답지 않게 홍지아의 표정이 어두웠다.

“이리와 봐. 지퍼 내가 잠가 줄게. 좀 사라 사! 뭐, 이런 걸 입고 다니냐.”

홍지아의 외투를 들어 입히려 하자, 그녀는 거칠게 외투를 뺏어갔다.

“치. 잠기는 건 아무 문제 없거든요!”

덜컹.

그리고 먼저 안내실 밖으로 나가버렸다.

“뭐야?”

나가보니, 직원이 카운터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 결정하셨나 보네요.”

그녀는 생글거리며 웃고 있었다.

“일단 오늘은 그냥 가시는 거로?”

역시 눈치가 빨랐다.

어쨌든 그녀는 우리에게 친절했었기에 난 최대한 예의 바르게 대답했다.

“네~, 아무래도 천천히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아요.”

“아~, 네. 그럼 할인은…….”

난 어깨를 으쓱하고는 답했다.

“어쩔 수 없죠, 뭐.”

여전히 생글거리며 웃고 있지만, 분위기는 확 달라졌다.

웃는 얼굴에서 찬바람이 쌩쌩 부는.

“그럼 아까 원본 사진 물어보셨던 거는요?”

“네, 따로 구매는 안 하려고요. 너무 비싸서……. 어차피 패키지에 포함된 거라고 하셨잖아요.”

“아……, 그럼 액자 하나만 하시는 거로?”

“네…….”

왜 이렇게 미안한 기분이 들까.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내가 사진 찍어 달란 것도 아니었는데.

촬영 감독이 너무 열심히 했다.

액자 사진 하나 찍으러 왔는데, 왜 쓸데없이 그렇게 열심히 하셔서는…… 사람 미안하게.

“그럼~ 생각해 보시고~ 연락 주세요~.”

잠시 얼굴이 굳었던 여 직원은 금세 평온을 되찾았다.

말투에서 전혀 미련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먹잇감 하나 놓쳤고, 다음 사냥에 집중하겠다는 초연함.

덜컹.

직원은 인사도 듣지 않고 문을 닫았다.

* * *

“여어~, 강 주임. 좋은 아침~.”

다음 날.

회사에 도착하니 웬일로 변 팀장이 출근해 있었다.

정시 출근은 잘 안 하시는 분이 이른 아침에 웬일로.

“안녕하십니까.”

“응~, 어제 잘 갔다 왔어?”

“네, 홍지아 씨 도착하면 정리해서 보고 드리겠습니다.”

“응~, 괜찮아. 천천히 해~. 어제 외근하느라 일도 밀렸을 텐데.”

“…….”

사실, 일이랄 게 없다.

팀은 촬영 1팀인데, 촬영 일정이 없으니.

눈만 끔뻑끔뻑하니까, 변 팀장이 윙크하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바쁜 척해. 바쁜 척.”

“아, 네.”

책상에 앉아서 타자 연습하고 있는데.

“안녕하세요.”

홍지아가 도착했다.

“어~, 왔구만.”

난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럼 지금 보고 드리겠습니다.”

“에헤이~, 왜 이렇게 급해. 홍지아 씨도 자리 정리할 시간은 줘야지.”

책상 위에 아무것도 없는데, 정리할 필요가…….

그래서 그냥 자리에 앉으려는데, 변 팀장은 갑자기 큰 목소리로 말했다.

“자자! 촬영 1팀! 바로 회의 시작하자고!”

“네?”

뭐야, 갑자기.

이랬다가 저랬다가.

“아, 엉덩이들이 왜 이렇게 무거워?! 빨리 회의실로 집합!”

“아, 알겠습니다.”

나와 홍지아는 등 떠밀리듯 회의실로 들어갔다.

덜컹.

회의실로 들어온 후.

변 팀장은 창을 통해 바깥을 몰래 관찰했다.

“나이스 타이밍.”

“팀장님, 뭐 하세요?”

“하하. 방금 사장님이 우리가 바쁘게 회의실 들어가는 거 딱 보셨거든.”

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오늘 이거 때문에 시장조사 스킵하고 왔는데, 성공했군. 으하하.”

“…….”

나와 홍지아는 할 말을 잃고, 변 팀장을 바라봤다.

“성과가 나면 더 좋겠지만, 일단 열심히 하는 모습이라도 보여야지. 안 그러냐?”

“네……, 많이 배웁니다.”

내 대답에 변 팀장은 피식 웃었다.

“두 사람 커피 한잔할래? 내가 사 갖고 올게.”

“금방 오실 거죠? 갔다가 두 시간 뒤에 오실 거 아니죠?”

“무슨 소리야. 아메리카노?”

홍지아는 고개를 끄덕였고.

나 또한 웃으며 대꾸했다.

“네, 감사합니다.”

커피를 사러 어디까지 갔다 온 건지, 변 팀장은 1시간 뒤에 돌아왔다.

“자, 그럼 어제 시장 조사한 얘기 좀 들어볼까?”

난 홍지아를 바라봤다.

“…….”

시선을 살짝 아래로 두고,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어쨌든 내가 선임이니까, 대표로 내가 얘기할까.

“홍지아 씨, 내가 보고 드릴게.”

“네, 주임님.”

“변 팀장님, 어제 아이좋아 스튜디오라는 곳을 다녀왔습니다. 판매 전략을 제대로 알기 위해 신혼부부 행세를 했고요.”

“흠, 그래. 수고했네.”

그리고 난 어제 있었던 일을 순서대로 보고 하였다.

들어가서 안내를 받고, 사진 촬영, 패키지 제안까지.

변 팀장은 내가 말하는 동안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과 비슷하구만. 크게 달라진 게 없어.”

“아, 변 팀장님은 경험해 보셨다고 했죠.”

“그럼~, 난 애가 둘이잖아.”

그렇게 일단 보고를 끝마쳤다.

“홍지아 씨는 어땠어? 뭘 느꼈나? 확실히 현장에 가보니까 생각했던 것과 다르지 않았어?”

홍지아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팀장님 말씀이 맞았어요. 확실히 달랐습니다.”

“뭐가 달랐을까?”

“음……, 뭐랄까. 정말 계약을 안 하기 어렵게 하는 분위기가 있더라고요. 그리고…… 꿈이 생겼어요.”

“꿈?”

“결혼하고 싶어졌어요.”

“…….”

갑자기 뭐야.

요즘 푼수기가 잠잠하다 했다.

“흠. 그래, 그럼 홍지아 씨는 빨리 남자 친구 먼저 만들도록 하고.”

그는 날 바라봤다.

“강 주임은 정리 좀 했지? 혹시 자기도 결론은 결혼하고 싶다 이런 거 아니지?”

“네, 아직 결혼 생각은 없습니다. 흠……, 이게 맞을지 모르겠지만, 아이좋아 스튜디오의 행동 양상을 보면서 몇 가지 포인트를 정리해 봤습니다.”

#아이좋아 스튜디오 영업전략

1) 사진 먼저 찍고 시작한다.

2) 상대방이 미안해할 정도로 열심히 촬영한다.

3) 좋은 퀄리티의 결과물을 보여 준다.

4) 묶음 계약으로 경쟁력 있는 가격을 제시한다. 단건 계약과는 완전히 차별되게.

5) 결정은 그 자리에서 하게 한다. 시간을 주지 않는다.

화이트보드에 다 적은 뒤, 난 변 팀장을 돌아봤다.

“저는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오호, 그래. 내 기억에도 그랬던 거 같아. 근데 한 가지가 빠진 거 같은데?”

“한 가지요?”

“그래. 사진을 촬영할 때 계약할 당사자로 하여금 사진에 애정이 깃들도록 해야 해. 그 사진을 사고 싶은 마음이 들 수밖에 없게끔.”

“그게 좋은 결과물과 일맥상통하는 내용 아닙니까.”

변 팀장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달라. 촬영하는 과정 속에서 감정이 들어가는 걸 말하는 거야. 자기들도 떠올려 봐. 촬영 과정 자체가 재밌고 의미 있지 않았어?”

그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 봤다.

곤욕스럽긴 했지만, 좀 재밌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 물론 부부행세를 한 거였으니까, 그 부분까지 제대로 느꼈을지 모르겠지만…….”

“팀장님 말씀이 맞아요.”

옆에서 잠자코 듣던 홍지아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 거라고요. 그 사진 촬영이 뭐라고.”

내가 황당해서 바라보자.

“아무래도 여자다 보니…… 제가 더 감정이입이 되었을 뿐이에요. 전 팀장님 말씀 이해해요.”

“홍지아 씨…….”

“오해하지 마세요. 강 주임님한테는 관심 없어요.”

“아이 씨, 진짜. 누가 뭐래? 그런 말 하는 게 더 이상해!”

변 팀장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자, 그럼 적용을 해봐야지.”

“…….”

“제이엠인터내셔날에서는 제안서에 있는 사진 판매 요청을 했지만, 우린 그것만 팔아서는 안 된다고.”

그렇다. 그건 마치 아이좋아 스튜디오에서 만삭 사진만 찍어서 판매하려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들의 구매 의도를 미끼 삼아서, 작은 계약을 큰 계약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게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이다.”

“맞습니다, 팀장님.”

단건 계약을 패키지 계약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를 실행시키기 위해서, ‘아이좋아 스튜디오’의 전략을 참고할 것이다.

“강 주임, 그럼 뭐 먼저 해야 할까?”

음……, 시작은.

“우리가 원하는 시간과 장소로 끌어들여야 합니다.”

* * *

[네, 제이엠인터내셔날 상품기획실 이정권 대리입니다.]

[이 대리님, 안녕하세요. 진일상사 강태평 주임이라고 합니다.]

[아~, 강 주임님 안녕하세요.]

이정권 대리.

일전에 제이엠인터내셔날 미팅 시에 빔 프로젝터로 고생했었고, 내가 도움을 줬었다.

[지난주 요청하신 제품 사진 구매 계약 건 때문에 연락 드렸습니다.]

[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견적서 보내셨나요?]

[아니요.]

당연히 보내지 않았다.

우리는 그 사진만 판매할 계획이 아니기 때문에.

[왜요?]

[미팅 후 드렸으면 해서요.]

[네? 저희가 뭘 구매할지는 알려드렸고, 그냥 견적서만 보내시면 되는데.]

스피커 폰을 통해 옆에서 듣고 있던 변 팀장이 사인을 보냈다.

[저희 팀이 이번에 개편했습니다. 촬영 1팀으로요.]

[아, 네……. 네?!]

수화기 너머로도 꽤나 황당해하는 게 느껴졌다.

하긴 우리도 처음엔 그런 반응이었으니까.

[개편된 기념으로 저희가 작은 서비스를 준비했거든요.]

[갑자기 무슨…….]

꿀꺽.

난 침을 삼키고 침착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지금 모자 제품 사진을 구매하시려는 거잖아요. 다른 제품 사진 원하시는 거 있으면 저희가 첫 거래 서비스로 촬영해 드리겠습니다.]

[아…….]

이정권 대리는 잠시 말이 없었다.

우리가 어떤 의도로 이러는지 가늠하려는 듯했다.

‘아이좋아 스튜디오’에서 배운 것.

많이 생각할 시간을 주면 안 된다.

[말씀드린 그대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미팅 장소와 시간은 저희가 알려 드릴 테니까요. 제품만 가지고 오세요.]

난 그렇게 못을 박았다.

[…….]

잠시 후.

이정권 대리는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어디로 가면 될까요?]

나이스!

촬영 1팀.

우리 세 사람은 숨죽인 채 주먹을 불끈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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