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손으로 살아가기-7화 (7/156)

아이좋아 (2)

* * *

“아직도 거울 봐? 그냥 대충하지.”

홍지아는 외투를 벗은 뒤에도 한참을 거울을 보며 살폈다.

“좀 기다려주세요.”

“아니, 지금 사진 찍으러 온 게 아니잖아.”

“…….”

뭔가 더 말하려다가 관두었다.

똑똑.

급기야 직원은 문을 두들겼다.

[오래 걸리세요?]

“얼마나 걸려?”

홍지아는 머리를 좀 더 정리하고는 말했다.

“다 됐어요. 이제 나가면 돼요.”

덜컹.

“죄송합니다. 좀 오래 걸렸죠.”

“호호. 괜찮습니당~. 그러실 수 있죠. 소중한 순간을 담는 중요한 촬영인데, 꼼꼼히 보셔야죠.”

방 안에 10분도 안 있었던 거 같은데, 세 번을 재촉했다.

행동과 말이 앞뒤가 안 맞는 것 같긴 했지만, 어쨌든 늦게 나왔으니 잠자코 있었다.

“소개해 드릴게요~. 오늘 촬영을 맡아 주실 감독님이세요.”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머리를 뒤로 묶은 한 남성이 살짝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촬영 감독. 촬영 감독이라…….

감독이라고 하기에는 다른 스태프는 없는 거 같은데.

아……. 현장에서는 보통 기사가 아니라 감독이라고 부르는가 보다.

촬영 감독 강태평.

나도 직군 명칭을 바꿔 달라고 해볼까. 이게 훨씬 괜찮은 거 같은데.

“아, 네. 안녕하세요.”

여 직원은 활짝 웃으며 말했다.

“감독님 따라가시면 됩니다. 오늘은 한 장면 찍는 거니까, 오래 안 걸리실 거예요.”

“아, 네.”

“그럼~ 즐거운 촬영하시고요~. 이따 끝나고 뵐게요~”

직원이 사라진 뒤.

“두 분~, 결혼하신 지 얼마나 되셨죠?”

촬영 감독은 한 손에 카메라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

또 예상치 못한 질문에 당황했고, 홍지아는 머뭇거렸다.

“음?”

촬영 감독은 물끄러미 우리를 지켜봤고, 난 더듬거리다가 소리치듯 대꾸했다.

“한 달 됐어요! 한 달! 완전 따끈따끈한 신혼입니다~. 하하.”

“호호.”

홍지아도 어색하게 따라 웃었다.

“우와~, 그럼 속도위반?”

“아…….”

아뿔싸. 그게 그렇게 되는구나.

홍지아는 날 향해 눈을 흘겼고, 순간 이마에 땀이 맺혔다.

“두 분~ 대~단하시네요. 임신 안 돼서 고생하는 부부들 많던데~.”

“아……. 대단할 것까지야.”

“신부님께서 최고의 선물을 갖고 시집오셨네요. 시부모님께서 참~ 좋아하시겠어요.”

민망해서 뒤질 것 같다.

“뭐, 비결이 있나요?”

그냥 사진이나 찍지, 뭘 자꾸 이것저것 물어볼까?

호의를 갖고 친절하게 물어보는데, 대답을 안 하기도 그렇고 하기도 그렇고.

홍지아는 얼굴이 빨개져 있었다.

난 이 상황이 빨리 벗어나길 바라는 마음에, 대충 얼버무렸다.

“하하. 그냥~ 뭐. 사랑이 깊어서 그런 거죠~.”

“아하~, 깊어서.”

아……. 젠장할.

이걸 이상하게 받아치네.

“그럼~ 두 분의 깊은 사랑~ 사진으로 한번 담아볼까요?”

“알겠으니까. 빨리하시죠.”

촬영 감독은 환하게 웃으며 한 곳을 가리켰다.

“두 분~ 저쪽에 서서 포즈 잡아보세요~.”

* * *

“미안하다.”

“손에 힘 빼요.”

“어떻게 해. 시키는 대로 제대로 해야 빨리 끝나지.”

“끙.”

“조금만 참아. 나도 불편하거든?”

연한 회색 배경의 벽을 등지고 서서, 난 홍지아를 백 허그 하고 있었다.

홍지아는 자신의 아래 배 위에 손으로 하트 모양을 하고 있었고, 난 두 손으로 홍지아의 배를 감쌌다.

“하하. 두 분, 왜 이렇게 땀을 흘리세요? 덥나요?”

“아닙니다. 빨리 찍어주세요.”

하아…….

갑자기 욕이 절로 나올 것 같다.

이건 그냥 찍는 게 아니잖아. 너무 곤욕스럽다.

“두 분~, 웃으세요~. 배 속에 아이를 생각하면서 행복한 상상 해보세요~.”

“하~ 하~.”

“호~ 호~.”

나와 홍지아는 어색하지만 열심히 웃었다.

찰칵. 찰칵.

“아빠~, 입만 웃지 마시고요~. 웨딩 촬영할 때처럼~ 자연스럽게~.”

“하하…….”

찰칵. 찰칵.

“음~, 포즈 좀 바꿔볼까요?”

꿀꺽.

포즈 바꿀 때마다 겁난다.

이게 벌써 몇 번째인지.

적당히 좀 했으면 좋겠는데.

“이번엔~ 두 분 마주 보시고요~. 엄마는 양손으로 배를 감싸고~. 아빠는 엄마의 이마에 키스해주세요~.”

“젠장, 뭘 하라고요?”

“네?”

촬영 감독은 카메라를 내려놓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 아닙니다. 잘 못 들어서 물어본 거예요.”

“방금 욕 들은 거 같은데~ 기분 이상하네요. 허허.”

“죄송합니다. 말 버릇입니다.”

키스? 키스를 하라고?!

나와 홍지아는 얼어붙었다.

차마 포즈를 취할 수가 없었다.

“두 분 뭐 하세요?”

“저…… 이건 안 하면 안 될까요?”

“네? 왜요?”

결국 안 되겠어서, 난 촬영 감독을 설득해 보려 했다.

“제가 오늘은 키스할 수가 없습니다.”

카메라 감독은 이해를 못 하겠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양치를 안 했거든요.”

“아~, 하하.”

카메라 감독은 황당하다는 듯 배꼽을 잡고 웃었다.

“입 꾹 다물고 이마에 살짝 갖다 대시기만 하면 돼요~. 하하. 무슨 양치 걱정을 하셔~.”

꿀꺽.

난 홍지아를 바라보았다.

“주임님, 그냥 빨리해요.”

“하아~, 회사 생활 힘들다.”

결국 우리는 포즈를 잡았고.

“자아~, 엄마는 두 눈 감으시고~ 행복한 표정을 지어주세요~. 배 속에 아기 있다~.”

“…….”

“아빠는 살짝 미소 지으면서 지금 엄마 이마에 키스해 주세요~.”

쪽.

찰칵. 찰칵.

“오케이~, 됐습니다~. 좋네요!”

그의 오케이 사인과 함께 우리는 바로 떨어졌다.

홍지아의 얼굴이 빨개져 있었다.

“음~.”

촬영 감독은 카메라의 LCD 화면을 몇 번을 돌려보았다.

“이 정도면 어느 정도 나온 거 같은데요?”

아! 다행이다.

“네~, 수고하셨습니다!”

그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생색내듯 말했다.

“필요한 사진은 끝났지만~, 이렇게만 끝나면 아쉽잖아요~. 제가 두 분 테마 사진 좀 더 찍어드릴게요. 서비스로~.”

아, 안 돼.

“어, 어머.”

갑자기 홍지아는 머리를 만지며 휘청였다.

“응? 갑자기 왜 그래?”

“아유. 좀.”

그녀는 날 향해 눈짓을 보냈고, 그제야 난 눈치를 챘다.

“감독님~, 아내가 좀 피곤한가 봅니다. 임신 초기라서 조심해야 할 것 같은데요.”

“아~.”

“아쉽지만, 저희는 여기까지만 찍겠습니다.”

“어이쿠. 그럼요. 그럼요. 당연히 쉬셔야죠.”

그는 안내실을 가리켰다.

“두 분 아까 계셨던 곳 있죠? 거기 좀 앉아 계시면 직원이 곧 올 거예요.”

“네~ 알겠습니다.”

촬영 감독은 씩 웃었다.

“두 분~ 수고하셨어요. 다시 한번 임신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감독님도 수고하셨어요.”

* * *

후우― 후우―.

직원을 기다리는 동안.

안내실 안은 어색한 숨소리만 가득했다.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민망하고, 부끄럽고, 황당하고.

그건 홍지아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그렇게 한동안 침묵을 유지하다가.

“홍지아 씨, 진짜 어지럽거나 어디 안 좋은 건 아니지?”

“네.”

“수고했어.”

“주임님도요.”

“그래, 우리 큰일 했다.”

“…….”

그리고 또 어색한 침묵이 흐리고 있는데.

똑똑.

[들어가도 될까요?]

“네~.”

덜컹.

처음에 우리를 안내했던 여 직원이 활짝 웃으며 들어왔다.

“즐거운 시간 보내셨어요?”

“아, 네. 뭐.”

“어머~, 표정이 왜 그래요?”

내가 떨떠름하게 대답하자, 여 직원은 놀라며 물었다.

“행복해서 그렇습니다. 너무 행복해서.”

“호호.”

그녀는 안내실 안에 있는 스크린을 키면서 말했다.

“우선~ 오늘 찍으신 사진 보실 건데요. 보정되기 전의 원본 사진이에요. 이 중에 마음에 드시는 걸 골라주시면~ 저희가 액자로 만들어 드릴 겁니다~.”

“네.”

“그럼~ 감상해 볼까요?”

[그대를 만나고오~.]

갑자기 느끼한 발라드가 흘러나오고.

영상이 나오기 시작했다.

“어라?”

사진을 영상으로 편집한 거였다.

겨우 10~15분 정도 기다린 거 같은데, 언제 이런 걸?

[그대를 안고서어~]

손발이 살짝 오그라들고 있어서.

힐끔.

옆에 앉은 홍지아를 바라봤다.

[다행이다~]

의외로 홍지아는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난 당장이라도 이 방을 뛰쳐나가고 싶은 기분인데.

달짝지근한 발라드와 영상 속 행복해 보이는 두 사람.

기분이 약간 이상했다.

영상은 4분 정도 이어졌고.

난 숨을 참는 기분으로 기다렸다.

[그대의 머릿결을 만질 수가 있어서…….]

.

.

.

.

짝짝짝.

“와~, 너무 멋지네요.”

영상이 끝나자 직원은 함박웃음과 함께 박수를 쳤고, 우리도 박수를 따라쳤다.

직원의 눈빛이 살짝 변하고 있었다.

“어떻게. 맘에 드는 사진은 있으시던가요?”

“…….”

사진은 잘 나온 거 같다.

보정을 하지 않았는데도 조명을 잘 써서인지 피부도 좋아 보이고.

사진 찍을 때는 어색해서 포즈나 표정이 이상할 줄 알았는데.

막상 사진으로 나온 것들은 꽤나 자연스러웠다.

정말 신혼부부 같았다.

“네~, 사진 좋네요. 맘에 드는 거 당연히 있죠.”

“호호. 다행이네요. 그러면~.”

여 직원은 책자를 하나 꺼내었다.

“저희가~ 평화산부인과 소개받고 오는 분들에게만 특별히 할인 행사를 하거든요. 간단히 소개해 드릴게요.”

“네?”

“아이 태어나면 백일 사진, 돌 사진 등 어차피 하실 거잖아요? 그걸 하나로 묶어서 저희가 패키지로 진행하고 있거든요.”

드디어 본론이.

그냥 훅 들어오는구나.

“네, 들어볼게요.”

난 집중하기 위해 고쳐 앉았고, 홍지아 또한 정신을 차리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일단 저희는 3가지 패키지로 구성이 되어 있는데요~.”

촬영 횟수, 액자 사이즈에 따른 3가지 패키지를 보여 주었는데.

가장 싼 패키지 가격이 80만 원이었다…….

“저희가~ 기념일을 미리 기록해 두고, 촬영 스케줄을 잡아 드릴 거고요. 아이의 컨디션에 따라서 일정은 언제든 조절할 수 있어요. 손님의 아름다운 순간을 간직하는 것에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겁니다.”

만삭 사진 쿠폰은 선물이 아니라, 미끼였다.

직원의 설명은 물 흐르듯 했다.

육아 앨범은 당연히 한다는 전제하에, 어느 패키지를 할 것이냐를 결정하는 분위기였다.

“어떻게? 결정하셨어요?”

“아, 아니. 여기까지 생각을 안 해봐서요. 갑자기 말씀을 하시니.”

“호호. 그러실 수 있죠.”

직원은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자리 비워 드릴 테니까, 두 분 천천히 얘기 나눠보실래요?”

지금 결정을 하라고?

“돈 80만 원이 쉽게 결정할 문제는 아니어서요. 집에 가서 천천히 상의해보고 연락을 드리면 안 될까요?”

“호호. 네~, 그러셔도 되긴 하는데.”

그녀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지금 결정하셔야만 20% 할인이 들어가요.”

“네에?!”

“첫 방문 손님에게만 적용되는 이벤트거든요.”

나도 모르게 맘이 급해져서 살짝 말을 더듬거렸다.

“아, 아니. 오늘 중에 결정해도 안 돼요?”

“네~, 이 자리에서 지금 결정하셔야만 가능합니다.”

이상하다.

이상하게 쫄리는 기분.

난 홍지아를 바라봤다.

그녀 역시 적잖이 당황한 얼굴이었다.

잠시 고민했다.

어차피 오늘은 조사하러 나온 거다.

“아, 그럼 오늘 찍은 거까지만 가져가고 나중에 연락 드리는 걸로 할게요. 할인은…… 아쉽지만 어쩔 수 없죠.”

“뭐, 그러셔도 되긴 하는데.”

직원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원본 사진은 못 드립니다. 찍으신 것 중에 하나만 액자로 드리는 거예요.”

“아…….”

철저하구나.

하지만 퀄리티 참고를 위해 사진 원본이 필요하다.

“그럼 오늘 찍은 사진 원본만 살 수 있을까요?”

“그럼요~. 40만 원입니다.”

으잉?

“사, 사십만 원이요?!”

“네~, 근데 패키지 계약하시면 그냥 드리는 거고요.”

“…….”

패키지…… 계약해야 하나?

20% 할인되면 64만 원인데.

이상하게 고민되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