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손으로 살아가기-6화 (6/156)

아이좋아 (1)

* * *

“캬~, 물맛 좋다!”

“어머~, 대박.”

내가 건네준 정수기 물을 마시며 두 사람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어제 회식 때도 그렇고. 이상하게 강 주임이 따라 준 물은 기가 막히네.”

“하하. 그래요?”

“그렇다니까~.”

변 팀장은 벌컥벌컥 물을 마셨고, 홍지아는 물맛을 천천히 음미했다.

“강 주임님~, 물에 뭐 탔어요?”

“응?”

“점심 먹은 지 얼마 안 돼서 좀 졸렸었는데, 잠까지 달아나는 거 같은데요?”

“에이~, 물에 타긴 뭘 타. 그냥 물맛이잖아.”

“이상하네……. 페퍼민트 향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나 또한 정수기 물을 마시면서 생각했다.

금손을 얻은 이후, 이제 편의점에서 음료수는 안 사 마신다.

정수기 물이 최고다.

“아오~, 머리 획획 돌아간다. 그럼 회의 마저 해볼까? 그러니까 두 사람이 어떻게 부부인 척하냐면~.”

“잠깐만요.”

난 변 팀장의 말을 막았다.

“진심이세요? 정말로 홍지아 씨랑 부부 행세를 해서 촬영업체를 방문해 보라고요?”

“그럼 농담인 줄 알았어?”

정수기 물을 마시고도 똑같은 소리를 하는 걸 보니, 정말 헛소리가 아니구나.

“두 사람은 결혼해 본 적 없잖아.”

“…….”

변 팀장은 우리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혹시 있나?”

“전 없습니다.”

“어머! 당연히 저도 없어요!”

변 팀장은 씩 웃고는 말을 이어갔다.

“하하. 그래. 보통 신혼부부는 팔짱도 끼고 붙어 다닌단 말이야. 더욱이 막 임신 확인을 했을 때는 남편이 좀 조심스럽게 아내를 대하거든.”

“…….”

“굳이 말까지 너무 사랑스럽게 할 필요까지는 없는데, 방문할 때 팔짱 끼고 들어가고, 남편이 아내를 조심스럽게 부축해주는 등의 액션을 조금씩 보여주고. 뭐, 그 정도면 돼.”

이걸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

홍지아도 표정이 멍했다.

어쨌든 이 또한 일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하니, 안 하기도 그렇고.

“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수도 있어. 그냥 인터넷으로 알아보거나 전화 통화 해보면 될 텐데? 삽질 아닌가? 이럴 수 있는데.”

변 팀장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이런 얼굴은 입사 이래 처음이었다.

“약간 바가지 같은데, 안 할 수도 없는…… 그런 기묘한 게 있단 말이야. 이건 그 상황에서 직접 경험해 보지 않으면 몰라.”

난 홍지아를 보았고, 때마침 그녀도 날 돌아보았다.

본의 아니게 눈이 마주쳤고, 곧바로 우린 서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내가 회사 생활 꽤 오래 했잖아? 우리 회사에서 사장님 다음일걸?”

“…….”

“회사 생활을 아주 성공적으로 했다고 볼 수는 없지만, 버티는 건 하나는 자신 있거든. 적당히 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 줄 아나?”

변 팀장은 평소답지 않게 속내 얘기를 꺼내었다.

“내가 욕심은 없지만, 적어도 내 자리와 팀원은 지켜야지. 그래야 회사 생활을 이어가지. 그런 측면에서 이번 일은 무조건 잘되어야 해. 눈에 띌 정도로.”

그는 이내 평소와 같은 푸근한 얼굴로 활짝 웃었다.

“좀 불편하긴 하겠지만, 내 말 믿고 한번 해보자고. 응?”

흠……. 뭔가 생각이 있구나.

그가 이렇게까지 의욕을 보이거나, 안을 제시한 적은 없었다.

지금은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알겠습니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좀 어색하기는 하겠지만, 배우들은 일 때문에 키스 신, 베드 신도 하는데.

부부 행세 정도야, 뭐…….

난 홍지아를 향해 멋쩍게 웃었다.

“홍지아 씨, 잘 부탁할게.”

“뭘 부탁해요. 저 잠깐 화장실 좀.”

홍지아는 얼굴이 살짝 붉어져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야, 민망하게.”

난 머리를 긁적였고, 변 팀장은 웃었다.

“좀 거시기하겠지, 처녀가 유부녀행세 하는 건.”

“흠…….”

변 팀장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업체 잘 선정해서 갔다 오라고. 난 시장 조사 좀 다녀올 테니까.”

“…….”

“이왕이면 리뷰가 많은 곳으로 해. 그런 곳이 장사 수완이 좋을 가능성이 커.”

그리고 너무나 쿨하게 가버렸다.

* * *

[아이좋아 스튜디오]

다음날 오후.

홍지아와 함께 결국 외근을 나왔다.

전날 오후 내내 수소문해서 찾아낸 곳이다.

“여기야?”

“네, 우리 회사 가까운 곳에서는 가장 유명한 곳 같더라고요.”

“흠……. 그래.”

아이좋아……. 간판 이름만 봐도 어떤 스튜디오인지 느낌이 확 온다.

“…….”

스튜디오는 건물 2층에 있었다.

그냥 올라가면 되는데 이상하게 망설여졌다.

곁눈질로 홍지아를 살짝 보았는데, 그녀 또한 생각이 복잡해 보였다.

“홍지아 씨, 이제 들어갈까? 날도 쌀쌀한데.”

“…….”

“그냥 시장 조사잖아. 그렇게 생각해. 효과적으로 시장 조사 한다는.”

“시장 조사…….”

우리에게 ‘시장 조사’란 변 팀장이 놀러 나갈 때 쓰는 용어로 인식되어 있지만.

지금은 진짜 시장 조사다.

“강 주임님.”

“응?”

“저 아직 연애를 한 번도 안 해봤거든요.”

“아……, 그래?”

무슨 소리를 하려고. 이 얘기는 왜 꺼낼까.

“제가 강 주임님한테 관심 있어서가 아니라, 이성과 밀접해서 다녀본 적이 없어서 그러니까요. 만약 좀 어색하더라도 이해해 주세요. 아니면, 강 주임님이 리드를 해주시던가요.”

“리드?”

단어 선택이 좀 애매한데.

내 나이 서른하나. 여자를 만나본 적은 당연히 있기는 하지만.

만남이 일주일 이상 지속된 적도 없고, 손 한번 잡아본 기억도 거의 없다.

“그, 그래. 걱정하지 마. 내가 잘해 줄게.”

“그리고!”

홍지아는 입술을 꽉 깨물고 말했다.

“강 주임님 제 스타일 아니에요.”

“뭐라고?”

“미리 말씀드리는 거예요. 혹시라도 제가 떨면 어색해서 그런 거니까. 오해하지 말라고요.”

“헐. 무슨 그렇다고 말을 그렇게 노골적으로 하냐?”

“저 키 큰 사람 좋아해요.”

나도 모르게 욱했다.

“야! 너도 내 스타일 아니야! 안 궁금해~.”

“훗. 그럼 가요.”

키 178이 작은 건가?

그래, 최홍X 같은 사람 만나서 연애해라.

뚜벅. 뚜벅.

2층이기에 우리는 그냥 계단으로 올라갔다.

[아이좋아 스튜디오]

‘당신의 아이는 특별하답니다. 특별한 아이의 소중한 순간. 우리가 지켜드릴게요. 아이좋아~.’

현관문 앞에 알록달록한 글씨로 쓰여 있는 인사말이 참…….

“깜찍하네요.”

“난 끔찍한데.”

휴우―.

홍지아는 크게 심호흡을 한 번 했다.

“내 생애 첫 팔짱이 강 주임님이 될 줄이야.”

“너, 이랬다고 나 보고 책임져라, 어쩌라 하면 안 돼.”

“웃기시네…… 요.”

“뭐, 어째?”

이게 아주 그냥, 한 마디도 안 진다.

꾹.

홍지아의 팔이 내 팔 사이로 훅 들어왔다.

“야야. 너무 밀착하지 마.”

“왜 이래요. 아마추어같이.”

“…….”

“일하는 중이니까. 집중해요. 특히, 호칭 조심할 것. 알겠지, 자기야?”

“뭐?”

쓰읍―.

혀를 차며 홍지아가 날 노려봤다.

“흠! 알았어, 자기야.”

어째 내가 리드를 당하는 거 같은데.

그래도 내가 선배고, 짧긴 하지만 연애경험도 있는데, 그럴 수는 없지.

툭.

내 팔짱을 끼고 있는 홍지아의 손을 내 왼손으로 자연스럽게 덮으며 씩 웃었다.

“어머.”

“그럼 우리 들어갈까?”

“네…….”

덜컹.

문을 열고 들어가니, 완전 신세계였다.

― 오로로~, 까꿍!

― 우리 공주님~, 여기 보세요!

― 어머,~ 어머니 소녀 같으시다~.

외부에서 봤을 때는 그냥 사무실 같아 보였는데, 내부는 작은 규모의 놀이동산 같았다.

나무 둥치, 다양한 사이즈의 곰 인형, 2인용 그네, 원형 침대 등등 다양한 세트로 구성되어 있었고.

백일 사진, 돌 사진, 만삭 사진, 여러 팀이 공존하며 촬영을 진행하고 있었다.

사진사가 한두 명이 아니었다.

꽤나 큰 규모의 스튜디오.

이렇게 손님이 많으니, 리뷰가 많겠지.

“어서 오세요~.”

한 젊은 여 직원이 생글거리는 미소와 함께 다가왔다.

“엇.”

모르는 사람이 다가오니, 난 반사적으로 팔짱을 풀려 했고.

그 순간 홍지아가 팔에 힘을 꽉 주며 밀착했다.

“안녕하세요~. 저희 사진 찍으러 왔어요.”

“아, 네. 호호. 어디 소개로 오셨어요?”

“네?”

무슨 사진을 찍으러 왔냐고 물어볼 줄 알았는데, 어디 소개로 왔냐고 물어보다니.

홍지아는 순간 당황했다.

“산부인과 소개로 왔죠. 하하.”

재빨리 내가 자연스럽게 웃으며 대꾸했고, 그 여성은 웃으며 말했다.

“알죠~. 어느 산부인과 소개로 오셨는지 물어보는 건데~, 호호.”

“아…….”

이렇게 디테일하게 들어올 줄은 생각 못 했는데.

내가 머뭇거리자,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아, 그냥 쿠폰을 보여 주세요. 그거 보면 알죠.”

“…….”

우리가 너무 허술했구나.

갑자기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뭔가 나쁜 짓 하려다가 들킨 것 같은 기분.

“쿠폰을 안 가져왔어요~.”

홍지아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자기야, 우리 병원 이름이 뭐였더라? 갑자기 기억이 안 나네?”

“응? 그러게 말이야. 오늘 너무 긴장하고 갔어서.”

짝짝짝.

여성은 호들갑스럽게 박수를 치며 웃었다.

“어머~, 오늘 병원에서 임신 확인하고 바로 오신 거구나?”

“네? 아, 네.”

“어제 잠도 잘 못 주무셨겠어요~. 임신 축하드려요~.”

“감사합니다…….”

감사 인사를 해야 하는 거겠지.

“긴장하면 그러실 수 있어요. 혹시 사시는 곳이…….”

아무래도 스튜디오와 가까운 곳으로 말해야겠지.

“신림동입니다.”

“음~, 그럼 평화병원 아니에요?”

“…….”

나와 홍지아는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동시에.

“아~, 맞다!”

“이제 기억이 나네요. 호호. 어떻게 사는 곳만 듣고. 대단하신데요?”

직원은 득의만면한 미소를 지으며 안내했다.

“척하면 딱이죠. 호호. 이리로 들어오세요.”

우리는 안내에 따라 접견실로 들어갔다.

휴우―.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 *

우리 둘은 직원을 마주 보고 앉았고.

그녀는 잠시 우리를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확실히~ 신혼이시라 다르네요. 참 다정하고 보기 좋아 보여요.”

종이 한 장도 안 들어갈 정도로 꽉 낀 팔짱을 보며 말했다.

긴장해서일까? 팔에 너무 힘이 들어가 있다. 이게 팔짱인지, 헤드록인지.

“근데, 보통은 만삭 때 방문하시는데. 어떻게 이렇게 일찍 방문하셨대요?”

이건 예상했던 질문이다.

난 외운대로 자신있게 말했다.

“만삭 때 방문하면 제 아리따운 아내의 처녀 적 모습이 이미 사라진 뒤겠지요. 그리고 배 속에 8주간 자란 제 아이도 분명한 생명인 것입니다. 아이를 품은 가장 아름다운 시절의 아내 모습을 사진에 담고 싶어서 오늘 이곳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어머~, 너무~ 멋지시다.”

“감사합니다. 자기야, 사랑해?”

난 홍지아의 손을 두들기며 대답했다.

직원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원래는~ 저희가 만삭 사진부터 찍어드리거든요? 오늘 이렇게 방문을 하셨으니까…… 만삭 사진에 포함하는 거로 해서 촬영해 드릴게요.”

“오~, 감사합니다.”

만삭 사진부터 촬영하는 건 알고 있었다.

오늘 사진 촬영비는 따로 낸다고 생각하고 법카를 가지고 왔었다.

예상치 못한 호의에 꾸벅 인사하며 감사를 표했다.

“자~, 그럼 두 분 준비하실래요? 외투는 벗으셔서 여기에 두시고, 밖으로 나오시면 돼요.”

덜컹.

그녀는 살짝 미소 짓고는 먼저 접견실을 나갔다.

“휴우―, 이게 뭐라고 엄청 긴장되네요.”

홍지아는 긴장이 풀리는지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중얼거렸다.

“아까 임기응변 좋았어. 산부인과를 물어볼 줄은 몰랐네.”

[어서 나오세요~.]

밖에서 직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홍지아 씨, 조금만 더 힘내자. 시작이 반이야.”

“네, 주임님.”

난 먼저 외투를 벗고 기다리는데, 홍지아가 낑낑대고 있었다.

“뭐 해?’

“잠깐만요. 지퍼가 너무 뻑뻑해서요.”

[나오세요~.]

“아오. 미치겠네. 그냥 입고 찍어야 하나.”

홍지아는 점퍼의 지퍼를 잡고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내가 좀 도와줄까?”

“소용없어요. 이거 원래 좀 이래요. 산 지 오래돼서. 새로 하나 사든가 해야지.”

잠깐. 옛날 생각이 났다.

그때는 내가 손만 되면 멀쩡한 지퍼도 안 내려갔었지.

하지만 지금은…….

“혹시 모르잖아. 내가 한번 볼게.”

홍지아 앞에 서서, 지퍼를 잡았다.

그 순간.

부욱―!

“어머…….”

내가 손대자마자.

홍지아의 점퍼는 순식간에 오픈되었다.

# 지퍼

Before: 가장 중요한 타이밍에…… 내려가지 않았었다.

After: 자동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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