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손으로 살아가기-5화 (5/156)

팀명 변경 (2)

* * *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네?”

“…….”

나도 모르게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에이~, 주임님. 얼굴에 티 다 나요. 저한테만 얘기 좀 해주세요.”

곰곰이 생각할수록 당황할 필요가 없어 보였다.

내가 무슨 속임수를 쓴 것도 아닌데.

“할 얘기가 없어. 난 정말 홍지아 씨가 무슨 말 하는지를 모르겠어.”

그녀는 날 가만히 보다가 입을 열었다.

“사람이 하루아침에 달라졌죠. 전문기사 뺨치게 사진을 찍지 않나, 포토샵도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고. 게다가 시티백 운전 솜씨는…….”

홍지아는 그때 생각이 나는지, 살짝 몸서리를 치고 말했다.

“말 그대로 지렸거든요.”

“…….”

“빔 프로젝터는 또 어떻고요. 어떻게 된 게 강 주임님이 뭔가를 하면 다 잘되더라고요? 그것도 말도 안 될 정도로.”

푼수쟁이인 줄만 알았더니, 은근히 눈치가 있구나.

하지만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홍지아 씨가 날 얼마나 알아?”

“네?”

“나에 대해서 얼마나 아냐고.”

“…….”

난 그녀를 빤히 보았다.

“내가 예전에 시티백을 몰거나, 포토샵을 다루는 거 본 적 있어? 아니면 내가 홍지아 씨 사진 찍어준 적 있었나?”

똥손일 때 조심한다고 회사에서 아무것도 안 했던 게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

내 손의 능력들이 이상해 보이면 안 된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느껴져야 한다.

“원래 할 줄 알던 것들이야.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 없어.”

“정말요?”

“그래. 나 원래 이런 사람이야.”

내키지는 않았지만, 차라리 거만하게 나가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근데, 그동안 왜 회사에서 안 드러내셨어요?”

“그냥 기회가 없었던 것도 있고, 생각이 달라진 거지.”

“생각이요?”

“응. 예전엔 월급 타러 회사 나왔다면, 지금은 야망이 생겼거든.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나니, 편하게 살기 싫어지더라.”

“아…….”

어느 정도 진심이 담긴 대답이라, 홍지아는 믿는 눈치였다.

“에이~, 좀 아쉽네.”

홍지아는 피식 웃었고, 나 또한 아무렇지 않은 듯 웃으며 물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한 건데?”

“난 또 강 주임님이 특별한 능력이라도 생긴 줄 알았죠. 살아나신 것 자체가 기적이니까. 죽다 살아났더니 뇌 능력의 100%를 사용하게 되었다는지 뭐 그런 거 있잖아요.”

“홍지아 씨, 넛플릭스 많이 보는구나?”

“호호. 티 많이 나나요?”

휴우―.

어쨌든 이렇게 넘어가는구나.

아무렇지 않은 듯 웃고 있지만,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능력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조절하면서 써야겠다는걸.

“어쨌든! 강 주임님은 전과는 너무 달라져서,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 거라고요. 제가 옆에서 서포트 잘 쳐줄 테니까.”

“…….”

“저 챙겨 주셔야 해요?”

“아까도 그러더니. 당최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나 같은 주임 따위가 챙겨 주긴 뭘 챙겨줘. 내 앞가림하기도 벅찬데.”

“아니요.”

홍지아는 웃으며 도리질을 쳤다.

“강 주임님은 완전 블루칩인데요~, 호호.”

* * *

‘촬영 1팀.’

“자자, 삐뚤어졌잖아~. 조금 더 왼쪽으로.”

난 변 팀장의 지시에 따라, 우리 팀 섹션 천장에 끈으로 된 팻말을 달았다.

아무리 작은 회사지만, 팀명이 바뀌는 경우는 처음이었기 때문에 다른 팀 직원들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 팀명을 왜 바꾼 거야?

― 그러게. 굳이 왜? 명칭만 영업이지 별거 다 시키면서.

― 근데 촬영은 안 해봤던 거 같긴 해.

왠지 모르게 좀 민망하고, 부끄럽긴 했지만 애써 모른 척했다.

“팀장님, 됐죠?”

난 의자 위로 올라가서 팻말을 달은 뒤 아래를 내려다봤다.

“안 됐어~, 인마.”

음? 이건 변 팀장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기분 나쁜 껄렁한 목소리에 난 고개를 돌아보았다.

“태평아, 왔으면 인사를 해야지, 인마.”

“안녕하십니까, 팀장님.”

영업1 팀장, 김민석.

진일상사에서 사장 다음으로 전 직원이 꺼리는 남자.

“짜식아, 내려와서 똑바로 인사 안 해?”

난 의자에서 내려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했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잘 지내셨습니까.”

“그래, 왔으면 빨리빨리 생존 보고를 해야지.”

그는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들겼다.

그나마 나에게는 아주 나쁘게 대하지는 않았는데, 그 이유가 너무 황당해서 그다지 좋지는 않다.

중학교 선배라는 이유.

“형님~, 죽다 살아온 애한테 오자마자 너무 일 시키는 거 아니에요?”

김민석은 44세로 변성준 팀장보다 6살이 어리다.

그는 사장 외에는 그 누구도 직급으로 호칭하지를 않는다.

“에이~, 뭐, 이 정도 가지고 그래. 상태 봐가면서 일 시키고 있으니까, 염려 말라고~, 하하.”

변 팀장은 일부러 큰 소리로 웃었지만, 표정은 굳어서 입만 웃고 있었다.

자신보다 6살이나 어리고 같은 팀장이지만, 김민석을 어려워 한다.

“강 주임! 어제 출근하고 팀장님들한테 복귀신고 안 한 거야? 똑바로 안 할래?”

변 팀장은 갑자기 쌍심지를 켜고 날 바라봤다.

어제 출근하자마자, 제안서 만들고 오후에 외부 미팅 갔는데…… 그럴 정신이 있었나.

“죄송합니다.”

“그래~, 기본을 지켜야지. 응?”

변 팀장은 일부러 김 팀장 들리게 혼내는 어조로 말했고, 김 팀장은 흡족해했다.

“형님~, 너무 그러지 마세요. 괜히 말 꺼냈다가 내가 민망하네. 하하. 오랜만에 출근해서 정신없었나 보죠.”

그리고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

“정신 못 차리면 상사가 알람을 줘야지. 그게 어디 태평이 네 탓이기만 하겠냐. 안 그래?”

그는 내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고, 변 팀장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에휴~, 우리 팀으로 발령 났으면 형이 잘해줬을 텐데~. 어쩌다 진일상사 브레인이. 쯧쯧.”

‘촬영 기사 강태평.’

그는 내 책상에 붙인 팻말을 보고는 큰 소리로 웃었다.

“푸하하. 이거 뭐, 코미디 하는 것도 아니고.”

그는 한참을 배를 잡고 웃었다.

“영업 3팀, 진짜 신기원을 쓰는구나. 하하.”

이렇게 대놓고 개무시해도, 변 팀장은 능글맞게 웃었다.

“하하.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거지. 앞으로 기대하라고.”

“네~, 네~, 곧 있으면 우리 딸 졸업식인데, 부탁해도 되죠?”

“…….”

“아~, 공짜로는 안 되나? 그럼 직원할인이라도 해주세요. 푸하하.”

그래도 변 팀장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알았어~. 사장님 지침 받고 해 줄게~. 근데 아마 공짜로는 안 되겠지?”

그래도 평온함을 유지하는 변 팀장을 보며, 김 팀장은 피식 웃고는 몸을 돌렸다.

“농담을 다큐로 받아들이시네. 갑니다~. 수고하세요~.”

주변에서 대화를 듣느라 멈춰 있던 사람들도 이제 자기 일을 하기 시작했다.

“…….”

김 팀장이 가고 난 후, 나와 홍지아는 멍하니 서 있었다.

괜히 기 빨리는 듯한.

“뭘 그렇게 멍하니 서 있어? 팻말 다 달았으면 일해야지?”

“에휴……. 그냥 지나가시지, 꼭 와서 한마디씩 찌르고 가신다니깐.”

변 팀장은 못마땅한 얼굴로 우릴 돌아봤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일들 해. 기합을 안 넣어서 그런가? ‘촬영 1팀’ 파이팅 한번 외치고 업무 시작할까?”

“아닙니다!”

* * *

제이엠인터내셔날과의 미팅은 3일 뒤로 잡혔고.

판매 전략 구상을 짜기 위해 오후에 촬영 1팀은 회의실로 모였다.

회의실이라고 해봤자 칸만 나눠진 조잡한 곳이지만, 이것도 단 하나뿐이라 자리 잡기가 쉽지 않았다.

“어째 김 팀장님 더 심해진 거 같아?”

아직 변 팀장이 오기 전이라 난 홍지아에게 물었다.

김 팀장이 좀 안하무인이긴 했지만, 그래도 나이 차가 있기 때문에 변 팀장에게 어느 정도 선은 지켰었다.

“강 주임님이 자리를 비운 건 보름 정도지만,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어요.”

“…….”

“전 직원 미팅이 있었는데, 거기서 팀별로 성과 발표를 하고 현저하게 성과가 뒤처지는 영업 3팀에게 사장님께서 얼마나 뭐라 하시던지.”

“흠……. 직원이 한 명 빠진 영향도 있는데. 그런데도 그래?”

“아니, 뭐……. 항상 성과가 좋던 팀이 그 기간에만 안 좋았다면 모르겠는데…… 사실 그게 아니잖아요.”

그건 맞다.

영업 3팀은 항상 바닥이었다.

일 욕심 없는 무소유의 팀장.

대학을 갓 졸업한 홍지아 신입 사원.

존재감이 전혀 없는 강태평 주임.

“어찌나 다른 팀이랑 비교하면서 까시던지. 근데도 우리 팀장님은 웃으시더라고요?”

변성준 팀장.

멘탈 강한 거 하나는 전사 최고의 인재다.

“오더도 사장이 직접 수주해서 갖다 줘야 하냐며, 이번 제이엠 건 성사 안 되면 다 자리 뺄 거라고 얼마나 노발대발하시던지…….”

어제 회식에서 변 팀장이 했던 얘기가 이거구나.

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 그대로 전 직원 앞에서 우리 팀장님이 동네북 되신 거죠. 그에 덩달아 우리 영업 3팀. 아니지, 촬영 1팀도요.”

미안하고, 책임감이 느껴졌다.

팀의 허리인 내가 손대는 게 무서워서 아무것도 안 하려 했고, 굉장히 소극적으로만 일했었다.

그때는 어쩔 수 없었지만.

이젠 다르다.

“미안하다. 이제 다를 거야.”

“그럼요. 알죠. 분명히 다를 거예요.”

홍지아는 눈을 반짝이며, 날 바라보았다.

“이젠 숨기지 말고 마음껏 보여 주세요. 이상하게 보이지 않도록 옆에서 제가 바람 잘 잡을 테니까.”

“…….”

말이 좀 이상하긴 했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필요하기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덜컹.

“아이고~, 미안. 미안. 좀 늦었네. 많이 기다렸지?”

변 팀장이 들어왔다.

직원들 앞에서 김 팀장에게 면박을 당해, 기분이 상하지 않았을까 염려했는데.

겉모습은 아주 평온해 보였다.

“팀장님, 괜찮으세요?”

“뭐? 무슨 일 있어?”

“아닙니다.”

괜히 말 꺼낼 건 아니어서, 난 더 얘기하지 않았다.

변 팀장은 자리에 앉은 후 말했다.

“흠~, 그럼 우리 판매 전략 논의 좀 해볼까? 제이엠이 우리 작품 산다고 했잖아.”

작품. 작품이라.

맞는 표현이긴 한데, 금세 촬영 팀장으로 적응한 건가.

“팔기로 결정한 거지만, 최대한 땡겨 봐야지. 난 사장님이 주신 아이디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거든? 어때?”

어제 사장실에서 얘기했던 육아 앨범 판매 전략 말하는 건가.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런 걸 경험해 본 적이 없으니.”

“저도요.”

“아~, 하긴 그렇겠네.”

난 수첩에 적으며 말했다.

“인터넷으로 사진 전문 업체 컨택해서, 먼저 파악해 보겠습니다. 우선 알아야 하니까요.”

“저는 전화로 물어볼게요. 사진 찍을 거라고 하면 잘 설명해 주시겠죠.”

“아니야. 아니야.”

변 팀장은 고개를 저었다.

“비대면으로는 제대로 판매 전략을 알 수가 없어. 그게 육아 앨범 업체의 무서운 점이거든. 내가 경험해 봐서 알아.”

“…….”

“직접 경험해 봐야 해. 특이 이번 일은.”

변 팀장답지 않게,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둘 다 잘 들어.”

눈빛이 꽤나 날카롭다.

입사 후 변 팀장의 이런 모습은 처음이다.

“오늘부터 두 사람은 부부야.”

“…….”

“임신 확인을 하고, 만삭 사진 촬영 쿠폰을 받은 거라고.”

이게 갑자기 뭔…… 개소리야.

“홍지아, 넌 지금 임신 8주 차야. 오케이?”

하지만 개소리라고 판단하기엔, 표정이 너무 진지했다.

“그리고 업체 상담받으러 직접 방문하는 거야.”

우리는 황당해서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강태평 주임.”

“네?”

그는 갑자기 내 이름을 불렀다.

“이제 제대로 할 거지?”

“…….”

“네 팀장 면 좀 세워주라.”

황당하고 당혹스럽다.

어제 과음한 데다 김 팀장에게 공격받아서 제정신이 아닐 걸지도 모르니까.

“저, 팀장님. 일단…….”

난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정수기 물 한잔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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