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명 변경 (1)
* * *
“아오, 1분만 빨리 나갔어도.”
변 팀장은 투덜거리며 사장실로 먼저 들어갔고, 나와 홍지아도 그 뒤를 따랐다.
민 사장은 우리 세사람을 물끄러미 보다가.
“거기 앉어.”
사장실 중앙에 있는 짙은 갈색의 가죽 소파.
이 방에서는 항상 퀴퀴한 냄새가 난다.
별로 들어올 일이 없기도 하지만, 들어오고 싶지도 않다.
“흠…….”
민 사장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변 팀장, 혹시 연락 받았나?”
“제이엠인터내셔날 말씀입니까?”
“그래.”
변 팀장은 탐탁지 않은 듯 ‘쩝’ 소리를 내더니 대꾸했다.
“네 받기는 했습니다만.”
“…….”
“거래가 성사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민 사장은 뭔소리냐는 듯 눈이 커졌다.
“무슨 소리야? 좀 전에 김성수 부장이 잘 부탁한다며 전화 왔는데?”
변 팀장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아무래도 장난을 치는 것 같던데요?”
“뭐?”
변 팀장은 핸드폰을 건네어 제이엠인터내셔날에서 온 메시지를 보여주었다.
[오늘 제안서 잘 봤습니다. 거래를 했으면 하는데, 촬영하신 제품 사진만 구매했으면 합니다.]
“허, 참나.”
민 사장은 메시지 내용을 보고 콧방귀를 뀌었고, 그 모습을 본 변 팀장은 옳다 싶었는지 열심히 입을 놀렸다.
“아니, 제안서를 보고 아닌 것 같으면 말면 되지. 우리 같은 종합상사에게 사진만 팔라뇨. 우리가 무슨 사진사입니까.”
“그러니까.”
“그러니까요~. 아~, 이 사람들이 진짜. 큰 회사면 다야? 무시를 해도 정도껏 해야지.”
“그러니까! 팔아야지!”
“……네?”
진일상사의 민경원 사장.
돈 되는 건 다 한다.
그가 우리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바이어가 원하면 영혼까지 팔아라. 비즈니스일 뿐이야.’
“종합상사가 가리는 게 어딨어? 바이어가 원하면 팔면 되는 거지. 사진 못 팔 이유 있어?”
“…….”
“우리 직원이 찍은 거라며? 강태평! 맞지?”
“아, 네. 제가 찍은 거긴 합니다.”
“우리의 노동력이 담긴 우리 상품인데, 못 팔 이유가 뭐가 있냐고~, 변 팀장!”
변 팀장은 이리저리 눈알을 돌렸다.
“왜 못 판다는 건데? 자존심 때문에? 자존심? 그게 뭔데?”
“…….”
“비즈니스 할 때 제일 멍청한 짓이 쓸데없는 자존심 내세우는 거야. 자존심은 성과로 보여 주는 거라고.”
변 팀장은 이제 태세 파악을 하고 순순히 수긍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성과 is 돈. 잊지 마.”
“네.”
그리고 민 사장은 생각에 잠겼고, 우리는 앉은 채로 가만히 기다렸다.
“좋아.”
민 사장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생각이 정리되었을 때 나오는 표정인데.
보통 민 사장이 이런 표정을 지을 때면, 직원들은 불안해한다.
“영업 3팀 개편할 거니까, 잘 들어.”
“…….”
“이제부터 영업 3팀은 촬영 1팀이 된다.”
촬영 1팀…….
뭐어?!
“자네들 아메바 조직이라고 들어봤나? 우리처럼 작은 회사의 강점이라고. 상황에 따라서 역할과 조직이 바뀔 수 있는 게.”
촬영 팀장: 변성준
촬영 기사: 강태평
보조 기사: 홍지아
이렇게 직무별 이름을 호명한 뒤, 민 사장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변 팀장.”
“네.”
“촬영 1팀의 핵심은 강태평 주임이야. 팀장으로서 서포트 잘하라고.”
“알겠습니다.”
“그럼 이번에 사진을 어떻게 해서 효과적으로 팔 건지 전략 짜서 보고하도록 해.”
“…….”
민 사장은 검지로 머리를 두들기다가 뭔가 생각난 듯 빠르게 말했다.
“아, 한 가지 아이디어를 주자면, 육아 앨범을 어떻게 파는지 벤치 마킹 해보라고. 만삭 사진 찍으러 갔다가 결국엔 육아 앨범 계약하고 오는 거 있잖아. 그런 판매전략.”
“아~, 뭔지 알 것 같습니다. 그 방법을 생각해 봐야 겠네요. 역시 사장님, 대단하십니다.”
변 팀장은 무릎을 탁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강 주임.”
“네.”
민 사장이 지그시 날 바라보는데.
입사한지 몇 년이 지났지만, 이런 눈빛은 처음이었다.
이뻐 죽겠다는 눈빛인데.
부담스러워서 더 이상 눈을 마주볼 수가 없었다.
난 조용히 눈을 깔았다.
그는 내 어깨를 두들겼다.
“강 주임. 잘 부탁하네. 기대하겠네.”
“…….”
뭐라 대꾸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 * *
지글. 지글.
삼겹살을 구우며 우리는 초반부터 빡시게 달렸다.
난 이상하게 오늘은 좀 달리고 싶었다.
오랜만의 술자리이기도 했고, 회식이라는 것 자체가 거의 입사 후 처음이라 긴장이 되기도 했다.
변 팀장과 홍지아는 스트레스 때문에 달리는 것 같고.
서로 이유는 다르지만, 어쨌든 술병은 빠른 속도로 비워지고 있었다.
“달라 보여. 아주~ 달라 보여!”
변 팀장은 혀가 꼬부라져서는 날 향해 삿대질했다.
“그동안 자신을 숨겼던 거야? 아니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강 주임.”
“……. 사진 찍을 일이 없었잖아요.”
난 변 팀장이 무슨 의도로 이 말을 하는지 알지만, 금손을 얻었다고 설명할 수는 없었다.
“그럼 원래 사진을 그렇게 잘 찍었다는 거야?”
“뭐…… 그랬나 보죠.”
“그랬나 보죠가 뭐야?”
그래도 거짓말하기는 싫어서 난 얼버무리듯 대답했다.
“아니, 3년을 회사 다녔어도 그렇게 존재감이 없던 사람이. 하루 만에 이럴 수가 있나?”
“자신과 맞는 일을 찾으면 누구나 천재가 될 수 있다는 말이 있잖아요.”
얼굴이 벌게진 홍지아가 웃으며 말했다.
“사람들 모두는 분명 무언가에 천재라고. 그걸 못 찾은 사람들이 애매하게 살아가는 거라고.”
변 팀장은 이상한 눈빛으로 홍지아를 바라봤고, 나 또한 의아했다.
평소 푼수쟁이 말투가 아닌데?
“너 술 취했구나?”
변 팀장은 피식 웃으며 말했고, 홍지아는 시니컬하게 대꾸했다.
“취해야 정상으로 보이는 세상.”
뭐야……. 좀 이상해.
“세상에 취한 건가. 내가 취한 건가.”
변 팀장은 한숨을 쉬었다.
“강 주임, 홍지아 씨 보내야겠다. 어째 초반부터 너무 달린다 싶었어.”
“원래 이래요?”
“술 같이 안 마셔봤으니 모르지? 조금 더 있으면 정치 얘기할 거야. 지금 빨리 보내는 게 좋아.”
아……. 정치 얘기는 싫다.
난 재빨리 콜택시를 불렀다.
“이제 강 주임님의 세상이 온 것인가?”
초점을 잃은 눈으로 홍지아는 날 보았다.
“사진 잘 찍어서 진일상사 사장되실 거예요?”
“…….”
“찍새 재능충이셨다니. 참 대~단 하십니다. 아니, 난 뭐야? 어떻게 영업 사원을 하루아침에 촬영 기사로 발령내냐고요. 이게 말이 되는 회사예요?”
택시가 왜 이렇게 안 오지.
“회사가 코딱지만 하면 인정이라도 있어야지. 사장은 돈독만 올라서 직원 경력은 고려도 안 하고!”
“홍지아 씨.”
변 팀장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그럼 내일부터 안 나오면 돼.”
홍지아는 눈을 멀뚱멀뚱하더니, 고개를 푹 숙이며 인사했다.
“팀장님! 내일 뵙겠습니다!”
“응, 들어가.”
* * *
“촬영 팀장님.”
“촬영은 빼고 불러.”
“네, 팀장님.”
난 변 팀장의 빈 잔을 채워 주었다.
“너무 많이 마시는 거 아니에요?”
이래서 내일 출근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는 멈추지 않고 마셨다.
“뭐, 안 좋은 일 있으세요?”
“아니, 좋아서 그래. 강 주임 돌아와서.”
술에 취한 그는 내가 없는 동안의 회사 상황을 얘기해주었다.
영업 1, 2팀은 계속 성과를 내고 있는 것에 비해, 우리 영업 3팀은 계속 제자리걸음이었다.
아무런 오더도 따오질 못하니, 사장이 나서서 제이엠인터내셔날을 연결시킨 거라고.
“내가 팀장으로서 면목이 없다. 근데, 홍지아 하나 데리고 뭘 하겠냐. 안 그래?”
홍지아만의 문제는 아닌 듯싶지만, 일단 잠자코 들었다.
“일도 없는데 사무실에 멍하니 앉아 있기가 민망해서 일부러 시장조사를 많이 다닌 거라고.”
“…….”
“사실 이 오더도 수주 못 하면 영업 3팀은 분해되는 거였어.”
“그럼 우리 팀원은요?”
“1, 2팀에 분산되어 들어가거나, 아니면 새로운 직군이 생겼겠지. 청소팀이나 사옥관리팀 같은 거.”
그는 내 어깨를 잡고 웃었다.
“내가 촬영 팀장이 되고, 홍지아가 보조 기사가 되었지만. 어쨌든 자네가 우리 팀 살린 거야.”
우욱.
그는 말하다 말고, 속이 안 좋은지 갑자기 화장실로 뛰어갔다.
변 팀장을 기다리며, 가만히 생각했다.
천재 한 명이 여러 사람을 먹여 살린다는 게 이런 걸 두고 한 말이구나.
영업 1, 2팀?
뭐, 얼마나 많은 오더를 진행하는지 모르겠지만.
내 손으로 능력 발휘하면 금방 따라잡을 수 있지 않을까?
“아이고~, 속 안 좋아.”
변 팀장은 얼굴이 죽쳐져서 다가왔다.
“물 한 잔 드릴까요?”
“괜찮아. 내가 따라 마실게.”
“아니요. 제가 드려야 해요.”
난 종업원을 불렀다.
“여기 정수기 있습니까?”
“정수기요? 네, 있기는 합니다만, 물통에 따라 놓은 게 있어요. 그거 드릴게요.”
“아니요. 제가 따라야 합니다.”
변 팀장이 무능하긴 하지만, 어쨌든 착한 사람이고 팀원 한 명 데리고 고생이 많았다.
병원에서의 검증단계에서 확인했던 능력. 발휘 좀 해볼까.
좋은 물 한 잔 드려야지.
난 종업원을 따라가서, 정수기 버튼을 누르고 물을 따라왔다.
“팀장님?”
“응.”
“드세요. 다 드셔야 효과 있습니다.”
“무슨 효과?”
“일단 드셔 보세요.”
꿀꺽. 꿀꺽.
변 팀장은 컵 안에 든 물을 순식간에 다 마셨다.
“우와~, 물맛 뭐야? 대박!”
“하하. 속 좀 어떠세요?”
“응?”
변 팀장은 얼굴까지 밝아져 있었다.
“뭐야? 물에 약 탔어?”
“네? 아, 뭐…… 숙취해소제 조금.”
아무래도 내 손의 능력을 사용하면서, 적절한 거짓말은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우와~, 이 사람 센스 보게? 아직도 문득 생소하다니까? 진짜 강태평 주임 맞아? 하하.”
그는 잔에 술을 가득 채우고 소리쳤다.
“자! 다시 달려 보자고!”
* * *
다음 날 아침.
난 출근 시간 보다 한 시간 정도 일찍 도착했다.
어제 하루 오랜만에 겪어본 회사 생활이…… 너무 재밌었다.
빨리 출근하고 싶어서 아침이 기다려졌었다.
똥손일 때는 회사의 엑스트라였지만, 지금은 금방이라도 주연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뭔가 흥이 났다.
“어라?”
홍지아가 와 있었다.
“엇? 강 주임님, 안녕하세요~. 다행히 일찍 출근하셨네요?”
“어, 홍지아 씨, 왜 이렇게 일찍 왔어?”
근데…… 잠깐만.
다행히? 날 기다렸나?
“무슨 일 있어?”
“아니요. 강 주임님이랑 얘기할 게 있어서요. 어제 회식 자리에서 기회를 보려 했는데, 제가 일찍 들어가는 바람에.”
“아……. 그래. 근데 내가 일찍 올 줄은 어떻게 알았대?”
“몰랐어요. 그냥 일찍 오시기를 바란 거죠.”
홍지아는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전 직원 10명의 진일상사에는 아직 출근한 사람은 우리 말곤 없었다.
“왜, 왜 이래?”
눈빛이 좀 야릇한 게 이상하다.
“강 주임님…….”
홍지아는 더 가까이 다가왔고, 난 무의식적으로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뭐 있죠?”
“…….”
“아무리 봐도 이상해요. 사진만 잘 찍으시는 게 아니잖아요. 뭐 있는 거죠?”
“무슨 소리야? 갑자기?”
꿀꺽.
“저한테만 솔직하게 말해보세요.”
“왜, 왜 그러는 건데?”
당황하여 나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다.
“그냥…… 강 주임님의 조력자가 되고 싶어서요.”
“…….”
홍지아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