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손으로 살아가기-2화 (2/156)

뭔가 이상하다 (1)

* * *

그녀의 표정은 심각했다.

무슨 못 볼걸 본 사람처럼 작업 중인 사진만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홍지아 씨, 내가 한번 얘기하려고 했는데.”

병원에 있으면서 포토샵 학원에 다녔다니.

내가 아무리 무사했다고 하지만, 그래도 절벽에서 떨어져서 죽다 살아난 사람인데 그걸 말이라고.

아무래도 직장 선배로서 한마디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말을 할 때 말이야. 좀…….”

“너무 아름다워요.”

홍지아는 다시 해맑은 얼굴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응?”

“모자가 너무 아름다워요. 대박이에요. 사진 자체도 잘 찍으셨지만, 어쩜 이렇게 포토샵을 잘 다루세요?”

“…….”

“실력이 너무 뛰어나셔서, 말이 헛나왔어요. 헤헤.”

그리고 혀를 쭉 내밀었다.

와~, 얘 봐라?

어린 친구가, 눈치가 장난 아니네?

회사 생활 좀 했다는 건가?

이 친구도 입사한 지가 1년이 넘었지.

그러면서 홍지아는 내 어깨를 주물렀다.

“으쌰. 으쌰. 강 주임님, 파이팅!”

피식. 내가 귀여워서 참는다.

“회의실 예약해 놓고, 바이어 다과 준비해. 꼼꼼하게 살펴야 해.”

“우리가 방문하는 건데요?”

“아 그래? 제이엠인터내셔날 사무실이 어디지?”

“서초동이요.”

우리 사무실이 가산동이니까, 못해도 40분 전에는 출발해야겠네.

아오―, 그럼 시간이 더 빠듯하잖아.

“이제부터 말 시키지 마. 집중해야 하니까. 나 포토샵 하는 동안 홍지아 씨는 제품 스펙이랑 단가표 정리해. 보정 끝나는 대로 PPT에 한 번에 합치게.”

“넵! 알겠습니당!”

난 다시 컴퓨터 화면에 집중했다.

극적으로 살아나 십여 일 만에 출근한 회사.

출근하자마자, 이러고 있다.

피식.

정신은 좀 없지만, 근데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날 필요로 하는 자리니까.

그리고 마음껏 일해도 되니까.

조심하지 않고.

* * *

빵빵―.

3시 30분.

수요일 오후 차가 꽉 막혀서 꼼짝달싹하지 않는다.

띠링―.

홍지아는 핸드폰을 열어 메시지를 확인 후 한숨을 쉬었다.

“왜?”

그녀는 내게 메시지를 보여 주었다.

[왜들 안 와? 30분 전인데!]

“사장님이에요.”

“사장님? 사장님이 왜?”

“이 오더 사장님이 따왔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직접 미팅 참여하신대요.”

“아……, 그래?”

좀 이상한데?

사장이 원래 좀 부지런한 스타일이긴 한데, 실무 미팅에 일일이 다 참석하는 타입은 아니었는데.

“거의 다 오긴 했는데…… 차가 꼼짝을 안 하네요.”

차만 안 막히면 10분 거리인데.

강남대로는 양방향 차가 꽉 막혀서 전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차라리 따릉이로 갈까.

“홍지아 씨, 혹시 자전거 탈 줄 알아?”

“자전거요? 아니요! 못 타요!”

“못 타는 거야? 안 타겠다는 거야?”

“진짜 탈 줄 몰라요.”

하아……, 따릉이는 1인용인데.

그냥 떼어 놓고 혼자 갈까.

“죄송해요. 제가 미리 준비를 좀 했더라면…….”

이대로면 미팅 시간에 늦는다.

제안서를 만드느라, 더 여유 있게 출발할 수가 없었다.

“지나간 얘기는 하지 말자. 생각을 해보자고. 지금 방법이 없을지.”

“에휴―, 차 막히는 데 무슨 방법이요. 기도하는 수밖에.”

그리고 홍지아는 정말로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차가 막히고.

자전거는 1인용이라 둘이 함께 탈 수가 없고.

그렇다면.

차창 밖에 철가방이 놓여 있는 시티백이 보였다.

시티백.

난 내 손을 바라보았다.

“기사님, 죄송한데, 차 세워 주세요.”

“네? 여기서요?”

“저희가 너무 급한 일이 있어서.”

난 급하게 차를 내려서 방금 시티백이 있던 중국집으로 내달렸다.

홍지아도 영문도 모른 채 그저 헐레벌떡 날 뒤쫓아 왔다.

“주임님! 갑자기 어디 가요!”

내가 중국집에 들어가자.

“이 판국에 자장면을?! 포기?!”

내가 중국집에 들어가서 두리번거리자.

“주임님, 그냥 여기 앉아요. 자리 다 비어 있는데.”

“아무도 안 계세요?! 사장님!”

난 빈 홀에서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3시 40분.

그 새에 10분이 또 지났다.

“사장~니임~!”

“죄송합니다~ 저희 지금 브레이크 타임입니다.”

젊은 청년이 주방 쪽에서 나왔다.

“저희가 지금 정말 급해서 그런데요.”

“…….”

“오토바이 좀 잠깐 빌릴 수 있을까요? 5시 전에 돌려드릴 수 있습니다.”

“오토바이요? 앞에 있는 시티백 말하는 거예요?”

청년은 어이없는 얼굴로 날 바라봤다.

“아니, 아저씨. 오토바이 운전은 할 줄 알아요?”

“원동기 면허증 있어요.”

“헛, 그래요? 원동기랑 안 어울리시는데.”

청년은 의아한 눈길로 날 바라봤다.

예전에 배달 알바 시장에 들어가기 위해, 죽을 고비를 넘겨 원동기 면허를 취득했었다. 그 당시 나로서는 목숨을 건 도전이었다.

천운이 따라서 열 번 만에 원동기 면허를 취득하기는 했지만.

실제로 활용은 못 해봤다.

면허증만 있다고 해서 들어갈 수 있는 시장이 아니었다.

“어쨌든 오토바이 운전은 해봤다는 거네요?”

“…….”

난 무응답으로 대답했다. 면허시험 볼 때 해보긴 한거니까.

“시티백을 끌고 저 꽉 막힌 도로를 뚫기 쉽지 않을텐데.”

“네, 어렵겠죠. 근데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청년은 불안한 눈길로 날 바라봤다.

이걸로 설명이 안 되겠지.

하지만, 왠지 잘할 수 있을 것 같고, 바로 앉아서 손잡이만 댕기면 될 것 같다.

약간 무섭긴 하지만…… 만약 안 되면 바로 관두지, 뭐.

“빌려주세요.”

“…….”

“사례는 두둑이 할 테니까.”

이 말에 청년의 시큰둥했던 표정이 달라졌다.

“얼마나요?”

“1시간에 2만 원. 어때요?”

“콜.”

부릉― 부릉―.

흰색과 빨간색 조합의 시티백에 앉아서 엑셀을 당겨 보았다.

“오랜만이라 잘 기억이 안나서 그러는데, 작동방법 한번만 알려줄래요?”

“정말 기억 안 나서 그러는 거 맞죠?”

“…….”

청년은 미심쩍은 눈길로 알려주었다.

“왼발 아래쪽에 있는 게 기어예요. 앞으로 밟으면 올라가고, 뒤꿈치 쪽으로 밟으면 내려가고.”

“네.”

부릉― 부릉―.

“주임님, 무서워요.”

뒤에 앉은 홍지아가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꿀꺽.

휴우- 심호흡을 하고. 난 손잡이를 잡았다.

막상 손이 닿으니, 안심이 된다.

내 몸과 시티백은 바로 하나가 되었다. 느낌이 왔다.

“강 주임님, 꼭 이렇게까지 해야 돼요?”

“꽉 잡아. 달릴 거니까.”

부릉― 부릉―.

찰칵.

기아를 올리고.

엑셀을 힘껏 당겼다!

부아앙―!

“꺄악―.”

시티백은 앞바퀴를 허공으로 들며, 앞으로 튀어 나갔다.

부아앙―.

앞바퀴를 들고 튀어 나가듯 출발한 시티백은 꽉 막힌 도로 여기저기를 파고들었다.

“우와―.”

춤을 추듯 차 사이를 뚫고 가는 시티백.

뒤에서 이를 지켜보던 중국집 청년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배달 경력 수년째인 그가 보기에도 이건 보통 운전 실력이 아니었다.

“뭐야? 오랜만이라며?”

부앙― 부앙― 부아앙―.

“미쳤다, 진짜.”

# 시티백

Before: 면허는 있지만, 무서워서 못 만졌다.

After: 앞바퀴 든다.

* * *

끼이익―.

3시 50분.

정확히 10분 만에 도착했다.

주차장으로 들어가려는데.

“잠깐만요.”

주차장 관리인이 막았다.

“네?”

“배달 오토바이는 이쪽으로 들어오면 안 됩니다. 뒤쪽으로 돌아가세요.”

“아, 저희는 배달이 아닙니다. 진일상사에서 왔는데요. 4시 미팅입니다.”

관리인은 서류철을 살피고는.

“4시 미팅, 진일상사라……. 있네요. 근데, 진짜 진일상사 맞아요?”

관리인은 마뜩잖은 표정으로 시티백과 우리를 번갈아 봤다.

‘다래성.’

오토바이 앞면에 중국집 이름이 새겨 있었다.

오해할만 하지.

“홍지아 씨! 명함 좀 꺼내서 보여드려.”

“우엑. 우웨엑…….”

홍지아는 뒤에서 헛구역질하고 있었다.

그런 거 꺼내어 보여줄 정신이 아닌 듯했다.

“에휴. 어떻게 도움이…….”

난 지갑을 꺼내었다.

명함이 있어야 할 텐데.

외부 미팅이면 챙겨와야 하는 게 당연한데, 그럴 정신이 없었다.

주섬. 주섬.

아, 다행히 있다.

“제 명함입니다.”

‘진일상사 영업 3팀 강태평 주임.’

“흠. 맞네요. 들어가세요.”

“감사합니다.”

“거, 취향 독특하시네.”

관리인은 여전히 시티백을 유심히 살폈고, 난 웃으며 말했다.

“하하. 차 막힐 때는 이만한 게 없죠.”

회의실 앞.

헉. 헉.

우리는 정신없이 뛰어왔다.

“사장님!”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사장과 변 팀장이 보였다.

“어라?”

사장은 날 보고 의아해 했다.

“뭐야? 강태평 주임도 오는 거였어?”

옆에 있던 변 팀장은 살며시 웃었다.

“그럼요. 우리 영업 3팀 아닙니까.”

“그래? 근데 왜 얘기 안 했어?”

“그럼, 홍지아 씨 오는 것도 얘기해야 합니까?”

“뭐?”

“너무 당연한 걸 왜 얘기 안 했냐고 물으시니…….”

사장은 황당하여 변 팀장을 바라봤다.

“우리는 한 팀이니까요.”

“하아……, 그만하자.”

난 사장에게 큰 소리로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사장은 날 향해 묘한 표정을 지었다.

“오랜만이네.”

“네, 사장님. 잘 지내셨죠?”

사장은 활짝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들기며 반겼다.

“하하. 그래. 그래. 얼굴 좋아 보이네. 내가 조만간 위로주 한잔 살게.”

“뭐, 그러시죠.”

그리고 사장은 날 뚫어지게 바라봤다.

“이상한데?”

“네?”

“강 주임, 분위기가 좀 달라졌어.”

사장이다 보니 사람 상대를 많이 해봐서일까?

대번에 내 변화를 알아봤다.

겉모습은 똑같지만 난 많이 달라졌다. 마음 상태가 완전 바뀌었으니.

더 이상 조심하지도 않고, 눈치 보지도 않는다.

그는 그렇게 잠시 날 뚫어지게 바라봤다.

“아니, 조금이 아니야. 많이 달라졌어. 무슨 일이 있었나?”

“호호. 오늘 사무실에서도 직원들이 다들 그랬어요. 죽다 살아나서 그런 것 같다고.”

홍지아는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입을 털고 있었다.

더 쓸데없는 소리 하기 전에.

“저, 사장님. 시간이 다 된 것 같은데요.”

3시 55분.

“아, 그래. 그래. 어서 들어가지.”

“네.”

* * *

제이엠인터내셔날 회의실.

대기업 회의실답게 아주 널찍했다.

깔끔하고 고급스러운 인테리어가 되어 있는데, 우리 회사의 창고 같은 회의실과는 완전 달랐다.

“죄송합니다. 차가 막혀서 좀 늦었습니다.”

“그래도 늦지 않게 도착하셨네요.”

제이엠에서는 3명의 직원이 기다리고 있었고, 우리는 서로 명함을 주고받으며 인사를 나눴다.

“김성수 부장이라고 합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신사는 명함을 내밀었다. 세명 중 직급이 가장 높은 사람이었다.

나 또한 그에게 명함을 건네며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강태평 주임이라고 합니다.”

“하하. 이름이 아주 멋지시네.”

“감사합니다.”

제이엠의 젊은 남 직원이 빔 프로젝터 전원을 켰다.

“USB에 준비해 오셨나요?”

“아니요. 노트북이에요.”

“네, 여기 연결하시면 됩니다.”

홍지아는 노트북을 꺼내어, 빔 프로젝터 케이블을 꽂았다.

“짧은 시간에 준비하시느라 고생 많으셨겠네요.”

김성수 부장이 웃으며 말하자, 우리 사장은 평소보다 한층 높은 톤의 목소리로 대꾸했다.

“하하. 바이어님께서 하라면 해야죠. 하하.”

“필요하시면 시간을 더 드린다고 했었는데.”

“저희는 오더에 목말라 있습니다. 하하. 언제든 의뢰만 해주십시오. 하하.”

얼마나 비벼대는지, 손바닥 지문 다 없어지겠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는 동안.

홍지아와 제이엠 직원은 낑낑대고 있었다.

“하아~, 화질이 진짜. 혹시 다른 빔 프로젝터는 없나요?”

홍지아는 화면에 띄운 제안서를 보며 말했다.

글씨는 뭉개져 보이고, 사진도 제대로 보이지가 않는다.

“빔 프로젝터가 다 예약되서, 옛날 걸 가져왔더니…….”

제이엠 직원은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어떻게든 화면 조정을 해보려 여기저기 손을 대어봤지만, 큰 차이가 없었다.

4시 10분.

그러는 동안 10분이 더 지났다.

제안서가 제대로 보이지가 않으니, 발표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애매한 상황이었다.

“이봐, 약속된 미팅인데, 미리미리 예약했어야지. 시작하기 전에 점검을 좀 하고.”

결국 김성수 부장이 한소리 했고, 제이엠 직원은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죄송합니다.”

김성수 부장은 고개를 살짝 숙이며 우리에게 말했다.

“혹시, 구두로 발표 가능하실까요? 제가 30분에 또 미팅이 있어서.”

“저…….”

난 살며시 손을 들었다.

“리모컨 한번 줘보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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