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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 간섭하여 탑의 세계를 조율한다. 옳지 않은 것을 바로 잡고, 좀 더 효율적으로 세계가 돌아 갈 수 있게끔 한다.
부담스럽다기 보다, 자신의 남은 인생이 타의에 의해 움직이게 될 것이라는 것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인간을 통해서 조율이라니,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리오는 더 이상 탑을 오르고 싶지도 않았다.
“다른 인간을 알아봐. 모리안을 이용하든, 새로운 인간을 영입하든. 적어도 나는 네 뜻대로 움직이지 않겠다. 설사 아무리 네가 전지전능하다고 하더라도. 나는 내가 하는 일의 의미를 두고 움직일 거다.”
자신의 행동의미를 알고 움직인다면, 그것이 탑에게 간섭을 받고 있는지 알게 된다.
탑의 간섭을 거부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였을 때, 리오는 ‘간섭’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어째서, 힘 있는 다른 종족이 아닌 인간을 선택한 것일까.
드래곤이나 드라칸을 이용했다면 손쉬운 조율이 가능 했을 것이다.
단순히 인간이 특별할 만큼 나약해서? 앤서러라는 무술을 사용해서?
‘아냐. 간섭은...’
탑의 간섭이라는 건 핑계다. 간섭이 아니라 희생양이다.
나약한 인간이 탑의 간섭을 받아 탑을 오른다.
진실을 모르는 이종족들은 열등감을 느끼며 탑을 오르고 자신을 증명한다.
탑의 세계의 시스템을 돌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이 인간이다.
인간은 탑의 간섭을 받아 정상으로 향하고.
결국 정복한다.
그 와중에 일어나는 조율도 이야기거리가 될 테지만, 결국 탑의 간섭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가장 큰 ‘조율’은 하나였다.
탑의 세계 100층.
그곳은 다른 차원이나 특별한 세계가 아닌, 탑의 세계 그 자체였다.
정복하기 위해서는 탑의 주민들을 일정량 이상 죽여야 한다.
그것은 다시 말 하자면 청소였다. 고인 물을 빼내는 듯한 작업.
탑의 세계에 체류 중인 주민들을 청소하고, 새로운 시대를 연다.
기존의 주민을 바꾸는 것보다 새로운 주민을 받아들이는 것이 더욱 쉽다.
탑이 원한 ‘조율’이란, 리오의 ‘정복’이었다.
“... 인간만이 탑을 정복할 수 있었던 것은, 네 탓이었나.”
“그들의 노력도 분명 존재했습니다.”
신이 간섭을 하는 이상, 이제 리오에게 선택권한은 없다.
얌전히 간섭을 받아들이고 ‘조율’에 참여하는 것 뿐이었다. 여타 다른 인간들이 그래왔듯. 똑같이.
하지만 리오는 잠자코 100층을 돌파할 생각이 없었다.
귀환을 하는 것은 리오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리오는 이 세계에 자리 잡기로 마음 먹었고, 인간이라는 이종족이 되기를 원했다.
“하나 분명히 말해두지. 나는 귀환을 하지 않을 거야. 너의 조율에 동참은 하겠지만. 100층을 돌파하지는 않겠다. 이것은 확실하게 말해두지.”
탑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수초 간 리오를 가만히 노려보더니, 입을 열었다.
“모든 것을 탑의 세계를 위해.”
그 말을 끝으로 탑은 그림자도 없이 사라졌다.
그가 남긴 말들을 다시 한 번 떠올리며 리오는 자신이 만든 돌의자에 앉았다.
“탑의 칼날인가...”
이 결정을 다시 생각해보았다. 다행인지 후회는 없었다.
결국 자신이 행할 행동은 이곳을 좀 더 살기 좋게 만드는 것일 뿐.
이전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이것만큼은 탑에게도 간섭받지 않은 앤서러 리오의 의지였다.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앤서러 리오는 탑의 세계를 조율하며 신의 간섭을 받는 진정한 탑의 칼날이 되었다.
제 57화 정복자의 마음
지인들이 준비해준 환영식을 치르고, 리오는 빈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내일 따로 할 일이 있나요? 개인적인 볼일이 있는데...”
“한동안은 쉴 생각입니다. 아무래도 리사씨의 둘째 문제도 있어서... 개벽 이후에나 탑을 오를 것 같습니다만.”
“그럼 내일 하루... 아니, 한 동안 시간을 주실 수 있을까요?”
리오는 덧붙일 설명을 주저했다.
“그... 한 번 다녀올 생각입니다.”
“귀환권을...?”
리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구의 모습이나 자신의 가족들 얼굴이 기억도 안날 정도였다. 이미 돌아가고 싶지 않은 장소가 되었지만, 기억의 공백이 생긴 것 같아 불편했다.
“일일 귀환권의 사용이라면 큰 문제는 없겠지요. 단지 제 앞에서 사용해주시면 될 겁니다.”
“예.”
다음 날, 리오는 날이 밝고 귀환할 준비를 시작했다.
일정 TP를 소모해서 24시간 동안 지구로 다녀올 수 있는 축복.
귀환권을 사용하며 리오는 24시간 동안의 일정을 계획해 보았다.
‘일단 바로 가족들을 찾아볼까. 어떻게 지내는지 알아봐야지.’
지켜보던 빈이 말했다.
“며칠이나 다녀오실 생각이십니까?”
일일귀환권이지만, 반복해서 사용한다면 TP의 여유가 있는 한 무한정 사용할 수 있었다. 리오는 빈의 물음에 크게 고민하지 않고 대답했다.
“그렇게까지 오래있을 생각은 없어요. 최대한 볼일을 빨리 마치고 돌아올게요.”
빈이 고개를 끄덕인다. 귀환권을 사용하자 숨어있던 픽시가 지구로 향하는 포탈을 열었다.
“다녀오겠습니다.”
청록색으로 빛나는 포탈에 몸을 실었다. 공중에 떠 있는 기분을 느끼며 벗어날 수 없는 수마가 느껴졌다.
한숨 자고난 개운함을 느끼며 리오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지구의 낯선 골목에 있었다.
10층 정도 되는 빌딩이 양 옆에 늘어서 있다. 해를 가리는 골목은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아무도 모를 법한, 음습한 곳이었다.
“아아. 분명 여기서 탑의 세계로 돌아갔었지.”
마지막으로 귀환권을 사용했을 때, 이 장소에서 탑의 세계로 돌아갔다는 것을 떠올렸다.
장소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자 그때 있었던 일들이 환영처럼 머릿속에 그려졌다.
‘... 분명 지구에 있는 또 다른 신태준의 아내였던가. 여자친구였던가. 그 여자가 납치당하는 걸 구해주었지.’
탑의 세계의 1년은 지구에서의 2년.
지구인으로써의 신태준의 나이는 이제 중년을 바라보는 37세였다.
늙어버린 자신을 보고 싶기도 했지만, 리오는 보고 싶었던 부모님의 얼굴을 이제 포기하기로 했다.
‘돌아가셨겠지.’
터져나오려는 슬픔을 참았다. 이곳으로 왔던 가장 큰 목적하나가 사라진 것을 깨닫고 회의감이 들었다.
‘아냐. 나에겐 아직 할 일이 있어.’
마음을 추스르고 리오는 픽시를 불렀다.
차원의 틈을 깨며 나나탄 픽시는 리오의 어깨에 앉아 물었다.
“무슨 일이세요?”
“부탁하고 싶은 게 있는데. 신태준이라는 사람이랑 만나고 싶어.”
“그건... 마법을 사용하시겠다는 말씀이신가요?”
“응. 이곳에서 마법을 사용하면 그만큼 지구에서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드는 규칙이었나? 상관없어. 귀환권을 여러 번 사용 할 정도의 TP는 충분하니까.”
리오의 의지를 확인한 픽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어요. 귀환권을 일일이 다시 사용하는 것보다 마법을 사용할 때마다 TP가 줄어드는 쪽으로 할게요.”
“땡큐.”
리오의 눈앞에 TP가 감소했다는 메시지가 나타났다. 픽시는 리오의 TP를 이용해서 추적마법을 사용했다.
“추적하려는 대상이 누구죠?”
“... 나.”
자기자신을 추적한다. 픽시는 그 말의 깊은 뜻을 알아채고 지구에 남아있던 37살의 ‘신태준’에게 추적마법을 걸었다.
잠시 뒤 리오의 눈앞에 불투명한 하얀 끈이 나타났다.
‘가볼까.’
리오는 끈을 뒤쫓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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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즈음에 위치한 단독주택.
200평 남짓의 땅을 차지하고 있는 한 집은, 성벽과도 같은 울타리가 집을 둘러써고 있었고, 아름답고 기품이 넘치는 곳이라고 하기보단, 싸늘한 냉엄함이 느껴졌다.
대한민국 대기업 계열사의 사장이 된 37살의 신태준은 그곳에서 살고 있었다.
반지하의 골방에서 전전긍긍하며 살던 때가 엊그제 같았는데, 또 하나의 신태준과 가족들이 여기서 산다는 걸 깨닫자 부러움이 샘솟았다.
가족들과 함께 살기 좋은 탑의 세계에서 생활하고 싶었다. 그것을 지구에서 이룬 또 하나의 신태준에게는 질투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 정말 나랑 같은 신태준이 맞기는 한 건가.’
자신과 동일인물이 맞을지 확인 해볼 기회였다. 신태준의 주택을 서성거리던 리오는 감시 카메라의 위치를 확인했다.
‘이 즈음이 사각일려나.’
섣부르게 카메라를 망가뜨린다면 경비회사가 출동할 가능성이 있었다. 가능한 주변을 건들지 않고 안으로 침입하기로 했다.
주위를 한 번 둘러보고, 감시 카메라의 사각지대에서 리오는 뜀박질을 했다.
집을 둘러싸는 울타리가 아무리 높다고 해도, 탑의 세계의 리오를 막을 수는 없었다. 인간의 한계에 달한 신체능력은 울타리를 밟고 밟아 뛰어넘을 수 있게 해주었다.
털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