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의 탑-184화 (184/190)

<-- 184 회: 6-27 -->

“본 재판식은 각 종족의 최고장로들과 각 상단의 최고 책임자, 탑에게 허가 받은 공공시설의 관리자, 각 층의 연합파티를 이끄는 간부 및 리더들이 참여하였소. 이번 재판식은 이들 전체가 재판장이며 결정에 따라 앤서러 리오의 처우가 결정 될 것이오.”

고개를 돌려 재판장으로 호명된 주민들을 바라보았다. 몇 낯이 익은 얼굴들이 보였다. 드라칸은 물론, 리오가 처음에 신세를 졌던 무기총판의 조렌, 명장 케일과 정령왕 베로드. 그 외에도 언젠가 개인적의 의뢰로 만났던 이들이 있었다.

과연, 저들은 개인적인 감정에 영향을 받고 자신을 구원해줄 것인가. 자신에게 그런 질문을 해보았지만 결과는 당연할 만큼 부정적이었다.

어쩌면, 자신은 구원 받는 것을 거부하고 있을 지도 몰랐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재판은 이미 시작되었다.

“죄인 앤서러 리오는 템플러들의 집단. 신생 오라클의 리더임을 인정하는 가?”

목소리를 내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목에서 걸걸한 소리가 나왔다.

“... 예.”

“죄인 앤서러 리오는 신생 오라클에서 직접 침입할 대상을 지목하였고, 그 대상이 마족 쿠란이 이끌던 ‘군세’임을 인정하는 가?”

쿠란이 찔렀던 가슴이 아파왔다. 리오는 지금 이 대화를 듣고 있을 쿠란에게 다시 한번 사죄를 하며 말했다.

“인정합니다.”

“죄인 앤서러 리오는 55층에서 고전하던 ‘군세’를 쓰러뜨리기 위해, 템플러들을 직접 지휘하여 군세를 쓰러뜨렸음을 인정하는가?”

“오로지 저 혼자 일으키고, 저 혼자서 지휘했습니다.”

빈이 리오를 도와 군세를 몰락시킨 혐의가 있을 지도 모르기 때문에, 리오는 혼자 했다는 것을 강하게 말했다.

그 점을 물어보려고 했던 듯, 진행자는 다음으로 물어보려던 것을 속으로 삼켰다.

“음... 죄인 앤서러 리오는 60층에 침입하여 연합파티를 방해하고, 공략하는데 심한 방해공작을 펼쳤던 것을 인정하는 가?”

드래곤을 각성 시킨 죄는 거론되지 않았다는 걸 보아, 그것을 죄로 이을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엄연히 말해서 드래곤의 각성은 의미만 보면 나쁜 짓을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이것 마저도 죄로 지칭한다면 드래곤을 함께 포박해야 했다.

사실상 그것은 불가능했다.

“예. 모두 저의 죄입니다.”

리오가 순순히 죄를 인정하자 재판소가 시끄러워졌다. 누군가는 욕짓거리를 내뱉고, 누군가는 낮게 탄식했다.

이제 돌이킬 수 없다. 앤서러 리오라는 인간은 감옥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다.

재판이 진행되며 리오의 변호인이 항변할 시간이 다가왔다. 변호인은 리오가 모르는 인물이었고, 이 재판의 결말이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는 걸 다시 한번 자각했다.

‘...난 그래도 희망을 품었던 건가.’

이룰 수 없는 미래를 눈앞에 둔다. 희망고문과도 같은 재판이었다. 포기하고 있었으면서 아쉬움을 느끼는 자신에게 한심함을 느꼈다.

결과만 보면 분명 좋은 일을 했겠지만, 과정은 피로 물들어있다. 죄값을 치러야 리오는 자신이 앞으로 살아가더라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죄를 인정했다.

그런 생각을 할 때 즈음, 리오의 변호인이 재판소의 중앙으로 나와 발언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앞서 있던 과정에서 앤서러 리오는 죄를 인정하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가 벌인 행동의 의미를 생각해주셨으면 하는 바입니다.”

변호인의 입에서 리오가 놀란 만큼의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아마 변호인은 리오의 지인들을 통해서 사건의 내막을 들은 모양이었다. 무엇을 위해서 ‘군세’를 무너뜨렸고, 드래곤을 각성시킨 것에는 어떠한 의도가 있었는지, 60층에 침입한 것은 어떠한 목적이 있었는지...

자신이 한 행동들이었지만, 리오는 타인을 통해서 듣고 있자니, 말도 안 돼는 소설 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주민들은 자의로 움직이는 듯 하지만, 실상은 리오의 손바닥 위에서 춤추는 꼴이었다.

모든 것은 예견되어 있다.

하지만 리오의 모든 것을 변호인이 말해도, 자신이 믿어왔던 의지와 행동유념이 타인에 의해 조작된 거라는 것을 믿을 리가 없었다.

증거가 없다.

리오가 최종적으로 탑의 세계를 위해서 움직였다는 사실에 대한 근본적인 증거가 없었다.

그 사실을 모두가 공감하고 있을 때, 변호인은 낯선 물건을 제시했다.

탑의 세계에 존재하지 않은 인쇄양식으로 만들어졌으며, 기괴한 형상의 그림이 그려진 노트.

그것은 지구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것이었다.

‘저건...!’

아르토의 일기장은 아니었다. 리오또한 저런 공책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리오 외의 지구인이 가지고 있던 책이라고 봐야했다.

‘모리안...’

무슨 술수를 쓴 것일까. 탑 외의 물건으로 무엇을 증명하려고 하는 것일까. 리오는 이어질 변호인의 말을 기다렸다.

“재판장님들에게 제출한 그 노트를 봐주십시오. 그것은 앤서러 리오가 드라칸의 제자가 된 이후부터 작성한 일기장입니다. 그 옆의 노트들도 봐주십시오.”

복사된 일기장이 꺼내어진다. 변호인의 뒷 모습을 통해 리오는 또 하나의 일기장을 보았다. 그것은 자신의 것이 아닌, 아르토의 것이었다. 그 외에도 낯선 노트들이 계속해서 꺼내어졌다. 모두 리오의 것이 아니었다. 아마 정복자들의 일기장일 것이었다.

“이것들 모두, 그동안 탑의 세계를 오다간 인간들이 작성한 일기장입니다. 발견된 것은 15권, 모두 복사하고 인간들의 언어를 분석하여 해석한 것들입니다.”

제판장들이 인간의 일기장을 꺼내어 읽는다. 리오는 거의 오랜 만에, 큰 목소리로 비명을 내질렀다.

“이, 읽지마!”

비명이 탑의 입구, 제판소에 울려퍼진다. 주민들이 침묵했고, 제판장들은 일기장을 꺼내어 읽기 시작했다.

저 일기장이 진짜인지는 둘 째치고, 좋은 이야기가 있을 리가 없었다.

변호인은 일기장의 내용을 알고 있던지, 수 분 뒤 입을 열었다.

“거기에 있는 모든 서적이 가짜가 아니라는 건 오랜 시간 탑의 세계를 살아오신 재판장님이라면 알고 계실 겁니다.”

각 종족의 최고장로나, 마을의 공공시설 관리자로 임명된 자들은 오랜 시간 탑의 세계를 살아왔다.

정복자들 여럿을 봐왔고, 그들이 어떤 인생을 살며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모두 세세하게 알고 있었다.

그 탓에, 일기장의 내용이 진짜라는 건 인정했다. 그 내용이 아무리 더러운 일로 점칠 되어 있어도, 그들의 일기장이라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재판장 중 한 명이 말했다. 오크장로였다. 오크는 리오로 인해 가장 많이 죽어간 종족이기도 했다.

“이 일기장으로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이오? 이것은 단순히 인간들에게 있어서 하루의 일과를 정리한다는 습관이 있다는 걸 증명하는 것 밖에 안되오.”

“제가 말하고 싶은 건 그것입니다. 재판장님. 앤서러 리오는 하루 일과를 정리하는 습관을 가지고, 그 날 있었던 일, 그날 다짐했던 일들을 모두 그곳에 적어두었습니다.”

재판장들은 리오의 일기장을 서둘러 읽었다. 당연하지만 리오는 일기장을 적은 기억이 없었다.

가짜였다.

“흐음... 변호인이 말한 리오의 의도와 계획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적혀있군...”

“큭큭. 이 모든 것들이 탑의 세계를 위해서라고?”

어느 쪽을 믿느냐였다. 리오의 일기장을 믿던지 아니면 리오가 인정한 죄를 믿던지.

둘 중에 하나를 골라 리오는 심판된다.

변호인이 입을 열었다.

“앤서러 리오의 평판에 대해서는 다들 알고 계실 겁니다. 주어진 정보로 논리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고, 인간의 몸으로 주어진 선택권에서 최선을 다한다. 그러한 앤서러 리오가 아무 생각도 없이,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 템플러의 리더가 되고, 탑의 세계에 해를 끼친다? 말도 안 됩니다.”

“그것은 단순히 억측이오. 앤서러 리오의 마음이 변화해 악독한 템플러가 되었을 수도 있소. 실제로 그의 동족들은 모두 잔혹한 이들이었지. 하루 일과를 정리하는 것이 인간의 습관이라면, 구제할 수 없는 템플러가 되는 것도 습관이오.”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변호인은 리오를 손짓했다. 그 순간 탑의 축복이라도 사용한 듯, 리오의 신원정보 일부가 공개되었다.

리오의 앞에 나타난 홀로그램. 그곳에는 리오가 가진 축복들과 입수한 내역, TP의 사용 기록, 최근 정보들이 줄줄이 쓰여 있었다.

리오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자신의 변호인을 바라보았다. 누구인가. 누가 자신을 이렇게 돕는단 말인가. 모험가이며 이런 희귀한 탑의 축복 겸비한 인물은 리오의 기억 속에 결코 없었다.

“그가 악독한 마음을 품지 않은 템플러라는 사실은 여기에 있습니다 제판장님. 그리고 이 재판을 보고 계신 모든 주민님들. 앤서러 리오는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 지금까지의 일을 저질렀 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제 이름을 걸고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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