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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의 탑-182화 (182/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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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의 일은 이제 예상할 수 없다. 주민들의 인식을 바꿀 만큼 바꿨고,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자신이 원한 탑의 세계를 ‘신’도 옹호하였기 때문에 자신을 도왔다.

분명, 그 누구도 인간을 의지하지 않는 세계가 되지 않을 것이었다.

“만족스럽나요오?”

이제는 말투가 어울리지 않게 된, 광대분장의 페이스가 리오의 앞에 나타났다. 지친 기색도 없이 그는 리오의 정면에 양반다리를 하며 앉았다.

예전과 다르게, 리오는 각성한 그에게 존대를 했다.

“할 수 있는 건 모두 했습니다. 비록 제가 원한 탑의 세계가 되지 않더라도 후회는 안할 것 같습니다.”

으쓱 어깨를 들더니, 페이스는 갑작스럽게 저글링을 하기 시작했다. 리오는 그가 저글링하고 있는 물체가 자신의 진혼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정말이요오? 좋아했던 이성에게 차이고, 이제는 함께 할 수 없는 몸조차 되어버리고, 한 때 목표였던 귀환은 이미 전생에서 해버렸어요오. 리오에게 남은 건 아무것도 없는데 후회하지 않겠다고요오?”

리오는 지금까지의 일들을 되돌아본 뒤 말했다.

“조금 후회하는 부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과거의 일을 경험삼아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 겁니다. 남은 것이 없다고 하셨는데. 인간에게는 인생이라는 것이 짧아서요. 비록 리치가 되었지만 아마 이 세계를 살아가는 것에 의의를 두겠습니다.”

그 말을 내뱉고 나서 리오는 곧바로 후회했다.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스스로를 이종족이라 칭했건만, 정신은 여전히 인간적인 부분이 있었다.

아마. 변하지 않겠지.

“뭐, 탑의 세계이니 만큼 리치에서 인간으로 돌아갈 방법이 없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유희를 즐기는 드래곤으로서 리오의 삶은 조금 안타깝네요오.”

유희라는 말에 리오는 웃음을 터트리며 물었다.

“리치로써의 삶도 나쁜 점만 있는 건 아닙니다... 페이스님이야 말로 이번 유희는 만족스러우셨습니까?”

대답을 하지 않고 광대는 웃는다. 하얀 분칠이 더욱 진해진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리오는 아직 자신이 일으킨 사건에 대해 죄값을 받지 않으셨죠오...”

죄값이라니, 군세를 살해하도록 유도한 것은 인정하지만, 그 죄의 원인은 페이스 탓이었다. 죄값을 치루라면 광대도 같이 받아야 한다.

“죄값이라하면...?”

진혼으로 저글링을 하던 페이스는 실수를 한 듯이 보랏빛 구체를 땅에 떨어뜨렸다.

쨍그랑!

몸속에 내재된 마력이 요동친다. 빠져나갈 구멍을 찾는 듯 리오의 몸속에서 날뛰었다. 기어코 눈, 코, 입으로 마력이 유출되었다.

마력을 이용해서 죽은 몸에 정신을 붙드는 리치는, 라이프 포스 베슬에 자신의 마지막 생명력과 영혼을 집어넣는다.

라이프 포스 베슬이 깨지면 리치는 자신의 영혼을 육체에 붙들지 못하고 정신을 잃게 된다. 죽는 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마력이 유출되고 정신을 잃어야 할 리오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

뛰기 시작하는 심장을 느끼며, 리오는 페이스에게 설명을 요구했다.

휘. 휘.

소리나지 않는 휘파람을 불며 페이스는 리오의 시선을 피했다.

철면피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는 리오가 끊임없이 답변을 촉구하자, 페이스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뭐, 그렇고 그런 축복이 있다는 것으로...”

몹시 궁금하긴 했지만, 자세한 수법을 묻는 것은 실례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어차피 마법의 종주인 드래곤으로써의 재능과, 그가 가진 탑의 축복을 이용한 것일 게 뻔했다.

“... 감사합니다.”

인간으로써 돌아온 것이 감개무량하기도 하면서, 리치의 특성을 잃은 것에 대해 아쉬움을 조금 느꼈다.

“감사하다니요... 이것은 죄값이라구요오...”

페이스는 몸을 부들부들 떠는 시늉을 했다. 드래곤으로 진정한 각성을 하였음에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듯 했다.

‘아니, 나도 뭐, 리치가 되었을 때 크게 변하지 않았지...’

변하지 않았지만. 내심은 변화하고 싶었다. 어제의 리오와 오늘의 리오가 다를 수 있게, 지구인 신태준과 탑의 세계 앤서러 리오가 전혀 다른 사람이고 싶었다.

이름만 바뀌었으나 정신은 바뀌지 않았다. 탑의 세계에서는 바꿔야만 했고, 바꿔야만 진정한 탑의 주민이 될수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자신을 바꿔나갈 것이다.

이종족 리오가 되더라도, 그동안 자신을 억압하던 것들을 극복 한 채.

알터이자 앤서러이자 신태준인 리오가 될 것이다.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아직 연합파티의 공략은 끝나지 않았는데요오...”

“끝까지 도울 필요는 없겠죠. 남은 건 저희의 도움이 없어도 해결 할 수 있을 겁니다.”

맞는 말이라는 듯, 페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어떻게 하실 건가요오...

페이스는 리오의 계획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는 모르지만, 그가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는 알고 있었다.

템플러들을 다시 한 곳에 묶고, 탑의 난이도를 상승시켜 공동의 적을 만든다.

연합파티라는 모험가 웨이브가 만들어져, 모험가 모두가 함께 탑에 도전하게끔 한다.

여기서 끝나지 않고, 오로지 남에게 해를 끼치기 위해 존재하던 ‘템플러’라는 축복의 새로운 사용법을 제시했다.

남을 살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돕기 위해서 사용하는 것.

리오가 한 일은 그야말로 새로운 사회 시스템을 만든 것이나 다름 없었다.

이대로 계속해서 정착된다면, 마나석이나 희귀광물 같은 자원들은 이전보다 원활하게 공급 될 것이며, 누구나가 원한다면 고층까지 올라올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주민들 대다수가 모른다.

일반 주민들에게 있어서 리오는 생각없이 드래곤을 도와 난이도 상승현상을 일으킨 대역죄인이며, 삼백 명이 넘었던 모험가 파티, ‘군세’를 몰락시키는데 일조한 오라클의 리더였다.

이대로 가면, 드래곤 페이스가 인간으로 되살린 것이 무용지물이 되어버린다.

마을에서 리오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빛 한 점 들어오지 않고 손가락 하나 까딱 할 수 없는 칠흑의 감옥이었다.

마을에서는 죽지도 않기 때문에, 살아있는 동안 영원히 배고픔에 시달려야 한다.

자신에게 다가올 처참한 미래를 예상하고 있었던지, 리오는 페이스에게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대비는 해두었나요...?”

리오는 고개를 저었다.

“저는 제 욕망을 위해서 남에게 피해주는 일을 저질렀습니다.”

자신으로 인해서 죽은 주민은 한 둘이 아니다.

죄값을 치러야한다. 리오는 자신이 일으킨 사건들의 부작용을 고스란히 받아들일 생각이었다.

“... 아쉽네요오. 함께 탑을 오르고 싶었는데...”

그때였다. 페이스와 리오의 대화를 끊듯, 둘의 형체가 흐릿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곧 눈앞에 익숙한 홀로그램이 나타나며 안 좋기도 하고, 좋기도 한 소식을 전했다.

[‘연합파티’가 60층의 공략에 성공하였습니다. 탑의 축복 : 템플러가 중단되며 대기실로 돌아갑니다. ]

오감이 뒤틀리며 시야가 하얗게 채워진다.

잠깐 깊은 잠에 빠졌던 것처럼 정신이 비몽사몽했다. 눈을 뜨자 리치일 때는 올 수 없었던 흰 방에 자신은 들어와있었다.

“픽시.”

잊지 않고 있던 요정을 부른다. 리오에게 있어서 헤어질 수 없는 단 짝이며, 누구보다 소중한 존재였다. 리치였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가슴의 큰 박동이 느껴졌다. 웃음인지 울음인지 알 수 없는 감정을 터트리곤, 차원의 틈을 깨며 나타난 픽시를 맞이했다.

“픽시. 보고 싶었어.”

아무 말이 날아온 픽시가 리오의 손 위에 앉았다. 껴안아 감정을 터트리고 싶어도, 유리처럼 가녀려서 받치고 있는 손에 힘을 줄 수밖에 없었다.

“저도에요. 리오님... 갑작스럽게 리오님을 지켜볼 수 없게 되더니, 정신을 차리니까 모리안님을 모셔야했다고요.”

“그랬구나... 쿠란과 탑에 들어가기 전에 그렇게 널 불렀는데 안 나타나길래... 무슨 일이 있나 싶었거든. 그런 일이 있었구나...”

“리오가 리치가 되고, 드래곤의 각성을 도왔다는 말을 듣고 제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요? 저였으면 막았을 거 에요!”

픽시의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얼마나 듣고 싶었던, 그리웠던 잔소리였다. 아마 그녀가 리오의 곁에 계속 남아있었더라면, 지금까지 일어난 일의 일부는 실행되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리고, 방향은 크게 바뀌었을 것이다.

투덜투덜 잔소리를 내뱉는 픽시를 두 손으로 모아 감싸곤, 리오는 물었다.

“이제 함께인 거지?”

손안의 무게감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동시에 어깨가 묵직해지며 볼에 물컹한 무언가가 닿았다.

“리오가 죽지 않는 한. 저는 언제나 함께해요.”

“언제나...”

진심으로 리오는 픽시가 자신과 같은 크기로 변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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