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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오를 위해서 쿠란은 계획에 동참하기로 했다.
이 희생, 잊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 찾아올 그의 따뜻한 봄을 기원하며 쿠란은 입을 열었다.
“전원, 전투준비. 목표는... 리치 리오. 탑의 세계의 안녕을 위해. 상대의 라이프 포스 베슬을 파괴해라!”
분위기가 급변하며 모험가들의 태세가 변했다. 수백 명의 살기가 리오에게 향해지며 공기가 무거워졌다. 넘실거리던 먼지들이 바닥에 가라앉았다.
“그래. 내가 원한 게 이거야!”
눈앞에 위기가 닥쳤음에도, 자신이 원한 결과였다. 목표를 달성한 만큼, 리오의 입에서 웃음이 퍼지는 것은 당연했다. 타인이 보기에는 그저 미친 마법사에 불과했다.
리오는 리치가 되며 떠나간 요정을 떠올렸다.
이제는 가이드를 할 수 없는 손바닥만 한 픽시.
볼을 깨물어주고 싶은 귀여움과 아름다움을 겸비한 픽시는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지금의 자신을 보면 무슨 말을 할까.
‘픽시. 지금의 나는 다른 인간들과 하등 다를 게 없어 보이겠지?’
리오의 웃음이 깊어졌다. 미소를 유지한 채로 한참동안 그들을 부정해왔고, 증오했던 이들을 소환했다.
아무리 대단한 성인이라고 해도, 결국 여기선 타락할 수밖에 없다. 성인이더라도 욕심을 품고 살고자 하는 의지를 품는다.
리오나, 다른 인간들이 해온 일도 마찬가지였다. 목표의 크기는 몹시 다르지만, 결국 살아가는데 목표를 세우고, 그것에 충실히 행동했던 것에 불과했다.
자신의 꿈을 위해서 행동하는 삶을, 남이 질타 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리오는 이제 아무리 더러운 수를 쓰더라도 귀환이라는 이상을 이뤄낸 정복자들에게 존경을 품었다.
‘제가 원한 탑의 세계를 위해... 부탁드리겠습니다.’
리오의 속마음이 전해진 마냥, 검은 안개가 불어난다. 평상시 뽑던 여덞 명의 인원을 넘었다. 수십에 달하는 정복자들이 나타나, 위용을 뿜었다. 모두 리오가 전생에서 인연을 이었던 이들이었다.
그 중에는, 리오의 지배술에 몸을 허락한 최초의 앤서러 김체건도 있었다.
“돌격해라! 상대는 앤서러의 고수들. 앤서러가 통하지 않는 무형의 기술들을 사용하라! 화살을 비처럼 쏘아라!”
보이지 않는 진동계의 마법이 앤서러들을 가격한다. 앤서러로 막을 수 없는 빛과 같은 속도의 전격이 쏟아진다.
앤서러로 막을 수 있는 량을 넘어선 대량의 화살들이 쏘아진다.
리오는 이성을 잃고 날뛰는 아르토를 제어했다. 본능적으로 중력을 이용해서 위기를 벗어나려는 것이었다. 앤서러만을 어떻게든 사용해서 막아내는 걸 강요했다.
연합파티의 첫타, 이타, 삼타가 앤서러들에게 맞았다. 일부 쓰러진 자들이 있었으나 난전에 능한 몇 이들이 구름을 헤치고 연합파티 속으로 몸을 뛰어들었다.
‘무얼 하는 거지?’
앤서러들이 격렬한 공격성이나 철벽같은 방어막을 보이지 않는다.
쏘아진 진동계의 마법이나, 화살들은 되돌려지지 않고 어디론가 날아가 있었다. 그 탓에 무너진 궁들이 몇 보였다.
주변의 궁들이 대파되었을 무렵, 가장 뒤에 있던 리오가 이동하기 시작했다. 전장을 이탈하듯 오른 쪽으로 이동했다.
‘그 쪽에는 수색하고 파티원들이!’
리오의 위기에 신음을 흘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리오를 걱정하는 건 이 일이 끝난 다음이었다.
기어코 수색하던 동료들과 리오가 마주쳤다. 당황하는 기색없이 동료들은 각자의 기술을 선보였다.
위기에 봉착했던 리오였으나, 정복자들이 앤서러에 대한 약점을 드러낸 탓에 이미 고역을 수십번 겪었던 리오였다. 능숙하게 대처를 하고는 그들의 공격을 모조리 죄 없는 궁을 향해 날렸다.
언뜻 보기에는 지형지물을 이용한 전술처럼 보였다. 쿠란의 눈에는 리오가 의도적으로 궁을 부시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고개를 돌려 한참 격돌 중인 다른 앤서러들을 보았다. 마찬가지였다. 공격을 되받아치면 될 것을, 의도적으로 지형지물을 파괴하고 있었다.
“쿠란!”
“쿠란님!”
낯익은 목소리에 쿠란은 뒤에서 찾아온 동료들을 보았다. 환영궁에 있었던 이들이었다.
“생각보다 빨리 오셨네요.”
“드라칸님께서 도와주셨다.”
칼의 대답에 쿠란은 근처에 있는 용인의 기척을 느꼈다. 한 두명이 연합파티를 도우러 온 것이 아니었다. 방관자였던 그들이 이렇게 움직이는 것도 리오 탓이라고 생각하니, 그가 정말 대단하게 느껴졌다.
‘원하는 대로 탑의 세계를 제어하고 있어...’
그런 그가 무슨 의도로 지형지물을 파괴 하고 있는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할 즈음 쿠란은 하늘에서 메테오 레인을 떨어뜨리는 드래곤 페이스의 존재에 대해 의구심을 품었다.
‘드래곤이 단순히 유성을 낙하실킬 리가 없어. 숨어있는 적을 요격하고 있으신 걸까? 아니면...’
의도적으로 유성의 피해를 격감시키고 있다. 모험가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끔, 단지 지형지물을 파괴하듯.
주변을 둘러보자 어느새 주변궁들이 초토화되어 있었다. 아름다운 궁들은 흔적도 없어지고, 점차 황실이 허허벌판으로 변했다.
‘지형지물의 파괴?’
그제야 쿠란은 리오와 페이스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아차렸다. 그들이 정말 연합파티를 돕돕고 있는 것이라면, 그 행동에는 탑의 공략과 연관되어 있는 것이었다.
‘이곳은 황실이야! 우리의 목표는 황실을 제압하여 손안에 넣는 것이고! 하지만 실질적으로 우리는 이곳에서 생활하지 않지, 황실에 피해를 입힐수록 타격을 받는 건 우리가 아니라... 이 곳에서 생활하는 황족, 귀족들이야!’
정말이지, 예상 외의 방법으로 탑을 공략한다고 생각하며 쿠란은 리오에게 파괴력이 큰 마법을 사용했다. 당연하지만. 앤서러로 막아낸 리오는 아무 피해를 받지 않았다.
쿠란의 파괴력이 큰 마법을 이용해서 주변의 궁들을 파괴한 뒤, 리오는 놀란 눈치를 보이며 쿠란과 시선을 교차했다.
말을 할순 없었지만, 쿠란은 입모양으로 감사의사를 전했다.
그것으로 쿠란이 60층의 공략법을 깨달았다고 판단했는지, 리오는 뒤로 후퇴하기 시작했다. 수십 명의 템플러들도 동시에 검은 안개로 변하며 자취를 감췄다.
“뒤 쫓지 마라. 우리의 힘을 알았으니 다시 방해하러 오진 않을 것이다.”
그 말을 내뱉은 직후였다.
어디선가 돌풍이 몰아치더니 아무런 피해를 받지 않은 궁이 드러났다.
“투명화... 아니, 공간차단의 결계 속에서 숨어 있었던 던가...”
쿠란은 공략의 마지막을 알리는 신호탄을 날렸다.
하늘 찌를 듯한 구조의 탑이 궁을 둘러싸고 있었다. 아름다울 만큼이나. 화려한 조각이 새겨진 궁벽은 파괴시키기 아까웠다. 하지만 근처에 있던 거인.
오우거나 트롤들은 거침없이 단련된 철퇴를 휘둘렀다. 일종의 결계인 듯, 궁을 둘러싸고 있는 네 개의 탑은 쉽게 무너지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이어지는 연합파티 전원의 공격을 버티는 것은 아주 잠깐이었다. 앞서 있던 리자드 맨 소드 마스터 부부의 검이 휘둘러지는 순간. 결계가 파괴되며 거인들의 무기가 탑을 분질렀다.
그때서야 궁에 숨어 있던 탑의 피조물들이 반격에 다서기 시작했다.
화포가 빗발치듯 쏘아진다. 궁으로 향하는 길을 없애고 근처에 불을 질렀다.
“우리를 막을 수 없다!”
“돌격해라! 연합파티는 물러서지 않는다!”
순식간에 근처의 불이 꺼진다. 기름 범벅이었던 땅이 뒤집어졌다. 작은 규모의 어스 퀘이크였다.
굳게 닫혀있던 성문이 거인들의 발길질에 구겨진다. 무한에 가까운 내구성은 연합파티에 속한 거인들의 힘에는 속속 무책이었다.
콰앙!
기어코 문이 분질러져 날아갔다. 연합파티는 떠밀려 내려오는 물 마냥 궁 안으로 침입했다. 지원병력이 도착하지 못한 탓에 황실기사단이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연합파티는 탑의 피조물들을 도륙하며 안으로 나아갔다. 황궁에 숨겨진 함정, 매복되어 있던 적.
템플러로써 침입한 드라칸과 리오의 동료들이 힘을 썼다. 소드 마스터로써의 재능과 용인의 마법이 합쳐지니, 막을 수 있는 건 없었다.
기어코 황제의 앞에 도달한 쿠란은 마지막 명령을 내렸다.
“60층을 공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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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전투에 취한 연합군의 함성이 들려왔다. 드래곤 피어마냥 황실 전체를 흔드는 포효였다.
수류를 통해 또 다시 먼 궁으로 이동한 리오는 무너진 벽면에 몸을 기대었다.
리치로서 몸은 지치지 않았지만, 정신적으로 피곤했다.
“... 끝났다.”
임기응변으로 진행되었지만, 자신이 원했던 바는 모두 이루었다. 이후의 일은 이제 모른다.
연합파티라는 시스템이 계속해서 정착될지, 템플러라는 축복이 남에게 해를 끼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도움을 주기 위해서 존재하는 축복이 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