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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뒤의 용의 존재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고, 오로지 결계를 베어내는 것만 생각했다. 브레스가 내뿜어지던, 검이 과열되어 열을 뿜든, 상관치 않고 손에 쥔 것을 휘둘렀다.
자신은 살아야한다.
이곳을 빠져나가, 어느 한 마족을 구해야 한다.
자신의 행위로 인해, 변해 간 것들을 책임져야 한다.
이기적으로, 자신을 위해 욕망에 충실하라.
파아아앗!
리오의 검이 결계를 뚫었다. 상쾌한 공기와 함께 마력이 평상시대로 돌아오는 것을 느껴졌다.
그러나
안드레이의 숨결은 리오의 바로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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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궁에서 조금만 앞으로 가면 황실 전체를 감싸는 성벽을 볼수 있었다.
빈은 성벽 상태를 파악하며 적절한 위치에 모험가들을 배치했다. 전문적인 군사훈련을 받지는 못했지만, 이러한 공성전에 대한 경험은 다들 없지 않았다.
‘37층 즈음이었나... 수성으로 3개월을 버텼었지...’
수성에 대해서는 다들 이골이 나있다. 경험은 풍부했다. 각자 자신의 역할에서 무엇을 해야하는지,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안전하게 방어할 수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누구 하나 빠지는 인물 없이.
그러함에도 이번 전투에 두려움을 느끼는 건 역시 자신들이 열세이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좋은 장비와 훌륭한 공성장비가 있더라도, 상대의 머릿수는 자신들의 열배였다.
지는 것을 알면서도 싸워야한다.
자신들이 도망치면 연합파티 전원이 죽는 것이나 다름없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는 대의는 아니었다. 자신들에게 주어진 임무의 막중한 책임감을 가지고 수행하는 것이었다.
또는, 해결될지도 모른 다는 일말의 희망을 품은 채.
빈은 매직 아이템 천리안을 통해 성벽 너머를 바라보았다.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지원병력이 침입할 루트는 단 한 곳 뿐이었다. 경사가 지고 좌우에는 높이 솟은 절벽이 있었다. 아무리 적의 머릿수가 많다고 하더라도, 한 번에 공격할 수 있는 량이 정해져있는 것이었다.
‘칼님이 연합파티의 사기를 북돋아 준 덕분에 이런 저런 정보를 알게 되었군. 시간을 제법 끌 수 있겠어.’
솔직히 말해서, 처음에는 마냥 여기서 죽을 것 같았지만, 성벽에 대해 알아가며 희망을 품었다.
“진군하고 있군.”
지원병력이 성벽을 향해서 다가오고 있었다. 빈은 시작을 알리는 깃발을 위로 들었다.
바람을 맞고 노란 깃발이 펄럭인다. 그것을 보고 모험가들은 행동하기 시작했다.
“모두 위치로! 발리스타와 투석기를 준비를 서둘러라!”
공성병기를 제자리에 두었을 때, 황실입구로 향하는 계단에 지원병력은 도착해 있었다. 황실이라는 배경에서 싸움에도, 지원병력은 지휘자가 나와 거창한 연설을 한 다던가, 성벽을 향해 어떠한 말을 내뱉는가 하는 일은 없었다.
그저, 서로 마주 했을 때를 대비하여 싸울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이성없는 몬스터군단처럼, 지원병력은 어느 지점에서 황실성벽을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탑의 세계라는 특성상, 한 종족으로 이루어진 병력은 아니었다. 말 그대로 몬스터 군단, 이종족 군단이었다. 가지각색의 종족들이 대열을 유지하며 진격한다.
빈이 있던 성벽 위도 마찬가지였다. 각 종족의 특성에 따라 위치를 배분하고 자신 있는 병과를 맡았다.
위치한 곳마다 서로 연계하여 이어질 전투에 대비했다.
모두를 내려다보며 준비가 끝났다고 판단한 빈은 소리쳤다. 이곳을 이끌던 넬기어는 빈에게 지휘권을 넘긴 뒤였다.
“기관을 작동시켜라! 궁수들은 시위를 당겨라!”
성벽 아래에 있던 기관사가 깃발을 흔들었다. 곧 제어실로 들어가더니 성벽 앞의 계단 함정을 작동 시켰다.
쿠르르르릉!
통로를 제한하고 있는 계곡에서 숨겨진 회전 칼날이 나타났다. 길을 좌우로 왔다갔다하며 진격을 방해하는 용도였다.
지원병력의 선두에 있던 이들은 걸음을 멈췄으나, 앞의 상황을 모르는 동료들에 의해서 강제로 앞으로 나아갔다. 그들에게 기다리는 것은 회전하며 돌고 있는 칼날이었다.
가위에 잘리는 마냥 회전 칼날에 의해 이종족 대군은 싹둑 싹둑 썰려나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시체가 엉키다보니 내구력이 다한 회전 칼날이 망가졌다. 기관이 멈추자 빈은 궁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발사!”
화살 비가 성벽 아래로 쏟아진다. 인간이 쏘는 화살이 아닌 만큼, 화살은 서너명을 관통한 이후에나 부르르 떨며 멈추었다. 순식간에 시체의 산이 만들어졌다. 성벽만큼이나 높은 시체의 산을 쌓을 기세였다.
“공성병기는 준비가 끝나는 즉시 발사해라!”
먼저 준비가 끝났던 투석기가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안전장치를 풀었다. 하늘을 향해 치솟던 돌덩어리가 곡선을 그리며 성벽 너머로 떨어졌다.
경사로인 성벽 앞계단을 계속해서 굴러가며 돌덩어리는 진로를 방해했다.
이어서 성벽 위에 있던 발리스타가 발사 되었다. 5미터가 넘는 오우거 한 마리가 막으려 했으나,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생기곤 쓰러졌다. 피가 강이 되어 아래로 흘러내렸다.
“이걸 기다렸다!”
성벽 위에 있던 뱀파이어 한 명이 소리를 질렀다. 성벽 아래에 흐르는 피를 보고 참지 못하겠다는 듯, 아래로 뛰어내렸다.
안개로 변하여, 진격하는 지원병력 틈으로 들어가 그는 수인을 맺었다. 뱀파이어에게 있어서 피의 사용법은 무궁무진했다. 이렇게 시체가 넘쳐나고 피가 강이 된다면, 아무리 많은 대군이 오더라도 죽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하하하! 모두 비산해라!”
피냄세에 취한 듯, 뱀파이어는 손을 번쩍 들었다. 그와 동시에 쓰러져있던 시체와 피들이 들끓어 올라 폭발했다.
쾅쾅쾅!
화포라도 발사된 마냥 성벽 아래가 흔들렸다. 먼지 대신 붉은 안개가 꼈다. 성벽 위에서 보아도 굉장한 피해를 입었을 법한 폭발이었다.
붉은 안개 속을 주시하던 빈은 소리쳤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래. 60층이 여기서 끝날 리가 없었다. 고생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쿵! 쿵! 쿵!
붉은 안개 속을 헤치며 거대한 몸집의 이종족들이 나타났다. 오우거, 트롤은 물론이고 이종교배를 한 거대 짐승, 마도공학으로 이루어진 골렘...
신체가 작은 이들이 그들의 뒤에 숨어서 진격하고 있었다. 방금 전의 뱀파이어는 거인들에게 밟힌 듯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공성병기의 재사용을 서둘러라!”
준비하고 있던 투석기가 발사되었다. 선두에 있던 골렘과 돌덩어리가 부딪치더니, 돌이 산산조각났다. 부딪친 골렘은 잠깐 걸음을 멈췄을 뿐이었다.
이어서 거대한 화살인 발리스타가 발사되었다. 끄트머리의 화살촉 때문인지 발리스타는 골렘에게 꽂혔다. 하지만 큰 피해를 입힌 것 같지는 않았다.
“크오오오!”
비명을 지르며 거대한 오크가 골렘에게 박혀 있던 발리스타를 뽑아 들었다. 뜀박질을 하더니, 성벽을 향해 던졌다.
콰아아앙!
성벽 전체가 진동한다. 성문은 금방이라도 부셔질 듯이 괴이한 모습으로 변했다.
‘저것들을 가까이 오게 해서는 안 돼!’
모두가 똑같은 생각을 한 듯, 빈의 명령이 없었음에도 각자 거인을 쓰러뜨릴 준비를 했다. 마법사는 마법을 준비하고, 공성병기 담당은 장전을 서둘렀다.
어떻게 해서든, 성벽에 다가오기 전에 쓰러뜨려야 한다.
그런 마음을 품은 것은 템플러가 된 칼과 리사도 마찬가지였다. 둘은 시선을 교차하더니 빈에게 말했다.
“전사로서 저들의 접근을 기다리는 건 좀이 쑤시는 군, 어떻게 해서든 저 덩치들을 막아야하니 한 번 힘좀 써보도록 하지.”
“...네? 무슨 말씀이십니까? 설마 성벽을 내려가실...”
빈의 뒷말을 듣지 않고 칼은 뜀박질을 하며 성벽 밖으로 향했다. 리사는 미안하다는 투로 대답하며 뒤따랐다.
“갔다 오지.”
“미안해요 빈. 죽지 않을 테니까 각자 최선을 다해봐요.”
빈이 말릴 틈도 없었다. 칼과 리사는 동시에 성벽 아래로 뛰어들며 거인들을 향해 달려갔다.
두 리자드 맨의 크기는 거인들과 비교할 수조차 없었다. 리오가 올려다보는 칼은 거인의 무릎 정도 밖에 안되었다.
그들 수십 명을 향해서, 칼과 리사는 시미터를 뽑아들었다, 순식간에 무형의 기운이 솟아나 패도의 검을 휘둘렀다.
“크오오오!”
가죽으로 덮댄 오우거의 무릎을 베어낸다. 흰 뼈와 붉은 근육이 보였다. 녹색 피가 리자드 맨에게 묻더니, 닦을 틈도 없이 칼은 이어서 횡으로 베었다.
칼을 붙잡으려고 했던 이종족들의 가슴이 단숨에 베어진다. ‘검기’라는 것이 있는지, 칼이 베어낸 뒤의 인물도 같이 상처가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