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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칼과 리사, 빈 또한 뒤를 돌았다. 반란군이 도망쳤던 장소였다.
"... 이건."
마나와 반대속성인 마력을 가진 리오는 가슴 언저리가 따끔따금 해지는 것을 느꼈다.
저 멀리서, 거대한 마나가 응집되고 있었다. 마치, 드라칸이나 광대 분장을 즐겨 했던 페이스를 눈앞에 둔 것 같았다.
숨이 턱턱 막히는 듯, 기사단원 몇이 헛기침 소리를 내었다. 리자드 맨 부부가 쥐고 있던 시미터에 무형의 기운이 일어났다.
리오의 눈이 가늘어졌다. 저 멀리 느껴지는 무형의 기운을 알아보려고 하자, 탑의 축복 : 탐색이 발동 되었다.
[X서클, 대마법, 토 속성, 시전자 10인, 마나공유, 범위지정, 방어 불가능]
'... 대마법?'
토 속성의 대마법, 시전자가 다수이며 마나를 공유하고 범위를 지정하는 방어 불가능의 마법.
그런 마법은, 리오의 기억 속에 단 하나 밖에 없었다.
템플러에게도 당해 본적이 있었던 그 마법의 위력을 모를 리가 없었다. 리오는 동료들에게 소리쳤다.
"모두 뭉쳐!"
리오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때문인지, 리자드 맨들과 빈은 금방 리오에게 달라붙었다.
머릿속에서 흙으로 이루어진 구체를 상상했다. 동시에 바닥에서 흙이 치솟아 리오와 동료들을 둘러쌓다.
수초 뒤. 리오가 만든 어스 실드를 두들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반이 무너지거나 치솟는 것이었다.
“...이건! 어스 퀘이크 입니까?”
흙의 구체 안에서 들리는 소음으로, 빈은 반란군이 사용한 마법을 추측해내었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 리오는 이어서 찾아올 충격에 대비했다.
“큭!”
어스 실드가 하늘로 날아간다. 어스 퀘이크가 만들어낸 땅의 폭발에 버티지 못한 것이었다. 실드가 깨지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어스 실드 안에 있던 리오 일행들은 데구르르 굴러가는 어스 실드 덕에 몸이 뒤엉켰고, 비명을 질렀다.
“의도치 않았지만, 덕분에 폭발범위에서 멀리 떨어졌군요.”
어스 실드 안에서 굴러다닌 덕분에 어스 퀘이크의 폭발범위에서 리오 일행들은 멀리 떨어졌다. 조심스럽게 실드에서 나온 리오는 주변을 살폈다.
‘나래궁의 반대쪽으로 온 모양이군.’
실드에서 동료들도 마저 빠져나오자, 리오의 등 뒤에서 진혼이 나타났다. 검은 줄기 수십가닥을 리오와 연결 하곤, 꿈틀 거리며 마력을 전달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빈이 입을 열었다.
“리치의 라이프 포스 베슬에 대한 이야기는 익히 들었습니다만... 어스 퀘이크를 방어 해낼 정도의 어스 실드라니... 마력은 충분하신 겁니까?”
“일반 적인 리치의 마력으로는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제 진혼은 수십, 수백 년 가량을 마력만 축적했으니까요. 비유를 하자면 드래곤 하트 정도는 될겁니다.”
칼은 놀란 얼굴로 말했다.
“그렇다고 해도 너무 무리하지 마라. 너는 드래곤이 아니니까.”
“예.”
리오는 지도를 살폈다. 황실군에 속한 연합파티가 어디까지 왔는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예상보다 빨리 도착했군. 무언가 눈치 챈 건가.’
진혼이 리오의 몸에 마력을 충전하는 걸 기다린 후, 리오는 다시 나래궁을 돌파하기로 했다.
어스 퀘이크 덕분에 나래궁은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무너졌기 때문에, 정면 돌파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지도를 주시하며 나래궁을 돌아가던 리오는 기어코 황실군과 반란군이 부딪치기 직전이라는 걸 알았다.
‘제길, 이대로는...’
리오가 피하고 싶었던 전개가 되고 만다.
황실군과 반란군이 싸워 한쪽이 승리를 쟁취하는 것도 분명 60층의 공략법이기는 하지만, 리오가 원하는 건 그 결과가 아니었다.
알터의 기억으로는, 이 방법 말고도 또 한 가지의 공략법이 있었다.
“리오. 전투가 벌어지기 직전이다.”
“막아야만 해.”
멀리서 반란군이 전투태세를 갖추는 것이 보였다.
활시위를 당기고, 검집에서 무기를 꺼낸다. 마법사들은 지팡이를 굳게 쥐며 황실군을 향해 겨누었다.
리오가 신음을 참는 순간,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시위가 놓아졌다. 마나가 소용돌이 치며 황실군을 향해 쏘아졌다.
“안 돼!”
전투가 벌어지는 건 두고 볼 수 없다. 리오는 자신이 가능한 마법들 중, 반란군의 공격을 막을 수 있는 방도가 있는지 생각해보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전쟁 규모의 공격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아니, 나는 불가능하지만...’
우물쭈물 거리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머릿속에 퍼뜩 떠오른 인간을 소환하기로 했다. 그 라면, 저 공격을 모조리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긴 호흡을 한 번에 내뱉으며, 리오는 수인을 맺었다.
“템플러 아르토 소환.”
몸에 내재되어 있던 마력이 한순간에 방출되며 어느 존재의 시간을 되감았다. 태양을 가리던 구름이 순식간에 반란군 앞으로 빨려 들어가, 검은 안개로 뒤바뀌었다. 이어서 찾아오는 살기에 리오는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예전이었다면 당신의 살기에 위축 되었겠지만... 지금은 아니야.’
살기는 상대를 살해하겠다는 의지의 발현. 이미 죽음을 경험하고, 죽어있는 리오에게는 무의미한 힘이었다. 오히려 아르토가 내뿜는 살기를 물리치고, 자신이 가진 살기를 내뿜었다.
인간 리오에게는 없던 힘.
리오가 살기를 방출하는 순간, 곁에 있던 빈과 리자드 맨들은 살갗이 따가워지는 걸 느꼈다.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이른 리자드 맨 들도 거부할 수 없는 죽음의 의지였다.
죽음을 경험해본 자가 아니라면, 내뿜을 수 없는 기운.
단숨에 이성을 잃은 아르토조차 위축되며, 그 사이를 틈타 리오는 정신지배술을 걸었다.
‘저번처럼 망나니 같이 뛰노는 걸 두고보진 않겠다.‘
리오에게만 보이는 목줄이 아르토의 목에 채워졌다. 리오는 지배술이 완벽히 걸린 것을 확인하고 즉각 명령을 내렸다.
‘중력을 조작해서 반란군의 공격을 막아내라!’
아르토는 비명을 지르며 명령을 거부하려 했으나, 영혼에 내려지는 리오의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키야아아아!”
하늘로 향해 손을 내뻗는다. 세상을 움켜쥐듯, 주먹을 쥐고 시간을 거슬러 되살아난 인간은 쥔 주먹을 땅을 향해 내리쳤다.
쾅!
물리법칙의 변화. 힘의 크기와 방향인 벡터가 변화하듯, 바람처럼 날아가던 화살은 땅을 향해 곤두박칠 쳤다. 소용돌이 치던 화염폭풍은 산소를 태우지 못하고 산화되었다. 돌진하던 전사들은 몸을 가누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과거 이 세계를 정복했던 축복의 힘.
아르토의 전용 축복, 중력조작이었다.
“이건... 대단한 친구를 뒀군.”
지켜보던 칼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범위를 벗어났음에도 느껴지는 중력의 힘을 느낀 것이었다. 빈은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저곳에서는 골렘을 만들 수 없겠습니다.”
“애초에 저 곳에 뛰어들어서 싸울 생각은 없었습니다.”
필요한 것은 싸움의 중재였다. 임기응변으로 아르토를 소환했지만, 이 상황에 적합한 인물이었다.
‘아르토를 이용해서 공동의 적을 만드는 거야. 가능한 탑의 피조물은 없애고... 저 장소에 연합파티만 남게하면...’
곧바로 아르토에게 명령을 내렸다. 이성을 잃은 그가 본능적으로 반발했으나, 리오와 연결된 목줄이 움직임을 강제했다.
“크아아아악!”
인외의 비명을 지른 후, 아르토가 내뿜는 살기에 버티지 못한 반란군 한 명이 활시위를 재차 당겼다.
‘방어를!’
화살은 번개처럼 날아와 눈깜짝 할 사이에 아르토에게 닿았다. 그러나 이미 대비를 하고 있던 아르토는 익숙한 몸놀림을 내보이며 화살을 되돌렸다.
“크악!”
예상치 못한 결과였던지, 궁수는 자신이 쏘아낸 화살을 맞고 주저앉았다.
‘방어를 앤서러로 하게 한 건 실수였나. 정체에 대해서 눈치채겠군.’
술렁이기 시작하는 양쪽의 세력. 리오는 자신의 이름과 앤서러가 그들에게서 들리자 한숨을 내뱉었다.
“리오님...”
리오의 생각을 어느 정도 읽은 듯, 빈이 굳은 얼굴로 물었다.
“또 다시 필요악이 되실 겁니까?”
이 싸움을 말리기 위해선 그들이 공동체제를 유지할만한 필요악이 필요하다. 반란군과 황실군에 속한 연합파티의 공통된 목적은 ‘60층의 돌파’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방해하는 막강한 존재가 있다면, 서로 힘을 합칠 수밖에 없다.
칼은 빈의 말을 통해서 앞일을 추측한 듯, 시미터를 꺼내들며 말했다.
“이번에는 우리도 함께 간다. 너만 감당할 필요는 없다.”
“저희는 하나로 묶인 파티잖아요?”
리사의 말에 리오는 주저하던 마음을 다잡았다. 혼자서 양측 세력의 적이 되려고 했던 마음을 접었다.
“... 힘든 길일 겁니다.”
리오는 동료들의 손을 붙잡았다. 이동하겠다는 의사를 보인 후, 진혼을 꺼내며 반란군과 황실군 사이로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