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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의 탑-156화 (156/190)

<-- 156 회: 5-27(제 50장 퍼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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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 소란스러워졌다.

개벽 이후로 모두 불만을 속으로 삼키고 있었다. 그것을 강제로 끄집어내듯, 마을에 악의가 넘쳐났다.

마을입구에서부터 이어진 행렬, 도로 한복판을 비워두고 주민들은 곧 다가올 주민을 맞이했다.

덜그덕 덜그덕.

오우거조차 묶는다는 광석의 사슬에 묶인 채 누군가 나타났다. 가슴이 뻥 뚫린 한 명의 인간이었다.

아니, 인간이라는 형체를 유지하고 있는 리치였다. 목과 다리, 허리에 걸린 사슬 때문에 단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는 그를 보고 주민들은 참았던 울분을 내뱉었다.

자신의 사업이 무너진 자, 동료를 잃어버린 자, 삶의 목표를 잃어버린 자...

가지각색의 이유로 한 주민 때문에 삶의 기반을 잃어버린 주민들이 폭동을 일으켰다. 지키고 있던 행렬을 무너뜨리며 포박된 리치에게 돌진했다.

리치를 지키고 있던 경비병은 그들을 나무라지 않았다. 처음에는 막는 시늉을 하더니, 결국 몰려드는 인파에 포기하고 말았다.

어느 경비병은, 최대한 주민들을 막기 위해 애를 썼다. 그러나 곧 들려오는 구타소리에 넋을 놓고 말았다.

이 악의의 흐름은 막을 수 없다.

스스로 만들어낸 흐름이었다. 스스로 종결짓는 리치를 보호할 의지가 나질 않았다. 그는 죄값을 치루는 것이었고, 죄값을 인정하여 죄인이 되었다.

도망치던 생활을 접고, 템플러 수용소에서 자수했다. 리치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정도는 예상했을 것이다. 그러함에도 자수를 했다는 건, 이 정도 일 쯤은 감당해내겠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마냥 두고 볼수는 없었던 지, 경비병은 조금 시간이 흐른 뒤에 주민들을 나무랐다.

한 달에 한 번 있는 장로회의에서 처벌을 어떻게 할지 결정한다는 말을 내뱉었다. 그 말이 빠르게 퍼지고 리치의 곁에서 주민들이 서서히 멀어졌다.

울분을 풀었던 듯, 씩씩거리며 돌아간다. 아직 모두 발산하지 못한 주민은 마지막으로 리치를 향해 주먹을 휘두르곤 몸을 돌렸다.

그들이 모두 돌아갔을 때, 리치의 모습은 처참했다.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던 로브를 갈기발기 찢겼고, 온 몸의 뼈가 부숴진 듯 원래 형체를 제대로 유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를 묶고 있던 사슬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호송하고 있던 리치였음을 눈치 채지 못했을 것이다.

“괜찮소?”

기겁할 만큼이나 처참한 모습에 경비병은 자신도 모르게 물었다. 조금 뒤 리치는 꿈틀거리는 것으로 대답했다.

탑의 규칙상 마을에서 절대 죽지 않는다.

그것이 저주가 되어 리치를 죽을 수 없게 만들었다. 온 몸의 뼈가 부러지더라도 이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조금 측은해진 경비병은 주변에 있던 동료들과 의견을 나누었다.

리치에게 향해질 악의는 이제 시작이었다. 이제 막 마을입구에 들어온 것일 뿐. 이어질 분노표출을 모두 받아들이게 할 순 없었다. 죄값을 치루기도 전에 무너진다면 자수한 것에 의미가 없다.

잠시 뒤, 인근 경비대에 있던 쇠창살이 도착했다. 그곳에 리치를 옮기고 다시 수송대는 출발했다.

“정신을 잃지 마시오. 당신이 행한 일이잖소? 탑의 세계라 사형 따위는 할 수 없겠지만. 이런 식이라도 죄값을 받아야지.”

쇠창살로 옮겨진 리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나 당당한 걸음으로 탑을 향하며,

주민들의 선망을 받던 인간의 몰락.

경비병은 언젠가 그와 함께 올랐던 층을 떠올렸다.

뒤를 맡기기에 충분했던 듬직한 동료. 앤서러 리오는 죽었다.

남아있는 건 욕망에 몸을 맡긴 템플러 리오, 리치 리오일 뿐이다.

제 50장 퍼즐

“간수. 거기 있나?”

리오를 감시하고 있던 간수는 한순간 헛소리를 들었는지 의심했다.

그가 리오의 간수를 자처한지 석 달. 그동안 리치는 단 한 마디도 내뱉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주민들이 면회를 와 악담을 퍼부어도, 리치에게 고통을 줄 수 있는 마법진을 새겨도, 마나를 봉인시켜도 신음 한 번 내지 않았던 리치였다.

한번 쯤 신세를 한탄할 만한데, 리치는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마냥 잠자코 석달을 보냈다.

간수로써, 수감자로써 아무 대화가 없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었지만, 석 달쯤 서로 아무 말 없이 지내다보니 좀이 쑤셨다. 리치의 목소리가 궁금해졌다.

“무슨 일이지?”

쇠창살에 다가갔다. 리치는 온몸을 포박당하고, 눈 마저도 안대로 가려져 있었다.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향해 고개를 살짝 돌리는 것도 불가능했다.

“아아. 있군. 한 가지 부탁을 해도 되겠나? 무리한 건 시키지 않을 테니까.”

“자네와 나에게는 부탁을 나눌 의리는 없다고 본다만. 일단 들어보기라도 하지.”

리치에게는 드라칸들이 건 저주가 걸려있다. 마법을 사용할 수도 없는 것은 물론이고 움직일 수도 없다. 그 때문에 간수는 리치가 이 저주를 풀어달라고 하는 애원을 할 것이라 추측했다.

‘석달 정도나 아무것도 못한 채 있었으니, 정신력이 고갈날 법하지, 오히려 인간 태생으로 이정도까지 버텼다는 것이 놀랍다.’

간수는 리치의 대답에 따라 따끔한 질타를 하기로 했다.

그러나 들려온 것은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퍼즐이 필요해. 특별한 퍼즐이 아니고, 그냥 시중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퍼즐. 이 정도는 구해줄 수 있겠지?”

“여흥인가? 자네에게는 그런 것 조차 허락되지 않네. 죄인이면 죄인답게 있는 것이 어떠한가?”

리치에게 묶여있던 사슬이 조금 흔들렸다. 고개를 흔드는 것 같았다.

“아니, 나에게 필요한 게 아니야. 아는 주민들에게 보낼 것이거든. 간수씨는 그냥 퍼즐 종류를 불문하고 구해서, 내가 말하는 주민들에게 보내주기만 하면 되. 이 정도는 들어줄 수 있잖아? 이 꼴이 된 내가 이제와서 탈출 할 거라 생각하는 건가?”

“흠.”

간수는 신음을 흘렸다. 리치의 행동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수 없었기 때문이다.

혼자 결정할 수 없었던 그는 결국 간수장에게 의견을 구하기로 했다.

대답이 들려오는 것은 금방이었다. 거부하겠다는 말이었다.

“자네에게 살아있는 것 이외의 행동은 사치라는 군.”

간수자의 말에 리치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다 5분 즈음이 흐른 후.

“간수는 이 감옥과 나에게 걸린 저주들에 대해 생각해 본적이 있나?”

또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간수는 이제는 귀를 닫아버릴 심산으로 입을 열지 않았다.

리치는 간수가 듣고 있다고 생각하는 듯. 혼잣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탑의 세계는 타 차원에서 쫓겨난 이들이 살아가는 곳이지. 일종의 격리구역이기도 해. 이런 세상에서 감옥은 존재할 수가 없어. 왜냐하면, 쫓겨난 이들에게 이 세계마저도 살기 싫어지면, 갈 곳이 없어지니까. 남은 건 죽음뿐이지.”

간수는 그 말에 잊고 있던 사실을 떠올렸다. 사실, 리치가 잡히기 전까지 탑의 세계에 간수라는 직업은 없었다.

또한 경비대의 유치장은 존재했다. 그러나 감옥이라는 곳은 존재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해서, 범죄자를 수용할 장소를 만들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탑의 세계의 신. 흔히 말하는 ‘탑’은 주민들을 위해 세계에 세심이 관여했다.

자원이 부족하면 낮은 층에서도 대량을 얻을 수 있게끔 했다. 단, 난이도가 높은 탓에 현재 마을 상황을 해결할 수 없었을 뿐이다.

누군가 의도치않게 마을에서 경제적 피해를 입는다면, 반드시 잃어버린 것에 상응하는 댓가를 돌려주고는 했다.

옮지 않은 것은 고치고, 꼬여있는 선은 스스로 풀었다. 완벽하게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없지만, 만들려고 노력을 했다.

그 탓이었다. 수감자를 감옥에 넣으려고 하면, 수감자는 이 세상이 싫어질 터였다.

그 때문에 탑은 감옥을 없앴다. 유치장에 오래 갇혀 있는 범법자들을 어떻게 해서든 탈출 시켰다.

어떻게 해서든 범죄를 재발하게 만들고, 잃어버린 것은 어떻게 해서든 채워주는 순환구조.

탑의 세계는 살기좋은 세상이었다.

“탑은 어떻게 해서든 주민의 편의를 봐주지. 악인도, 선인도 도와줘. 그런데 말이지. 지금 탑은 나를 돕지 않아. 감옥을 허용하지 않는 탑이 나를 가두기 위해 감옥을 유지 시키고 있어. 본래라면 하루 만에 사라질 건데... 드라칸들이 건 저주도 그래. 아무리 강력한 저주라고 해도, 여기는 마을이고 주민의 생활리듬을 위해 탑은 없애줄 거야.”

간수는 한숨을 터트렸다. 드디어 터져나오는 리치의 신세한탄이었다. 어째서 신은 자신을 돕지 않는가. 무료함이 싹 사라지며 짜증이 터져나오려 했다.

“신도 자네에게 벌을 주고 싶나 보군.”

리치를 묶고 있던 사슬이 소리를 내었다. 등이 덜썩이는 걸 보아 웃는 것 같았다.

“그럴 리가. 내 생각은 이래. 내가 오라클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오라클이 나의 명령에 의해 성지를 붕괴시킬 수 있었던 것도, 드래곤이 각성한 것도 모두 탑이 손을 댄 것이라고. 그리고 지금 내가 이렇게 갇혀 있는 것도 탑의 의지겠지. 단순히 나에게 벌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세계를 좀더 살기 좋게 하기 위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가?”

리오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 움직였다. 계획이 있었고 그 생각은 신이라면 알고 있을 것이었다.

지금 자신이 감옥에 갇혀있는 것도 계획의 일부다. 그렇다면, 탑은 자신의 계획에 손을 거들어 준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해온 일은 충동적으로 일으킨 게 아니야. 모두 순서가 있었고 예상된 결과가 있었지. 성지의 붕괴로 드래곤이 각성하는 것도 내 의도다. 그 다음에 펼쳐질 미래도 나는 알고 있었어. 자원고갈로 인해서 이렇게 될 거라고는 차마 예상치 못했지만.”

“그렇다면 계획이 실패한 것이 아닌가. 이런 꼴이 될 것을 예상치 못했기 때문에 리치 리오는 이곳에 있는 것이다. 주민들의 악의를 받아내기 위한 존재로써 탑은 감옥을 없애지 않은 것이다.”

“그건 아니라고 자부하겠어. 내 계획은 내가 이 꼴이 되는 걸 예상치 못했지만, 진행은 여전히 되고 있거든.”

모험가들의 조직화.

템플러들의 마을귀환.

서로 받아들일 수 없지만, 리오라는 존재가 몸을 던짐으로써 서로의 과거는 잊는다.

템플러들은 리오를 제물로 받쳐 마을로 귀환할 의지를 내보이고, 모험가와 주민들은 그들의 성의를 보고 받아들이기로 결정한다.

오라클이라는 템플러 조직은 사라지고, 연합파티에 합류되어 결국 탑의 모험가는 하나가 된다.

어중이 떠중이 템플러들은 연합파티를 상대로 침입할 수가 없게 되고, 결국 탑의 세계에서 모험가를 막아설 템플러는 사라지게 된다.

템플러는 애초에 부족한 탑의 밸런스를 메꾸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

드래곤의 부활로 템플러가 메꿀 만한 곳은 사라졌다. 존재의의가 사라진 만큼 드래곤이 각성한 날부터 사라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리오는 여기까지 예상했다.

모든 모험가들이 하나가 되어 파티 웨이브를 형성하고 다 함께 탑을 오르는 것.

유일한 정복자라는 인간의 도움없이 탑을 오르는 것.

3년 전. 아르토를 죽이기 전부터 원했던 일이었다.

그 꿈의 결말이 코앞에 다가와 있었다.

“내 마력을 걸고 약속하지, 지금 이 마을은 내 계획대로 움직이고 있어. 이 상황을 해결하려면 퍼즐이 필요해. 부탁을 들어주겠나?”

“그 말을 내가 무엇을 보고 믿지?”

“인간 리오가 마을주민에게 피해를 준적이 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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