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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플러 또한 탑을 오르는 모험가. 탑을 오르고 싶다면 웨이브에 참여해야 했다.
그리고 현재 상황으로써는, 전투에 스폐셜리스트인 템플러들의 협조가 반드시 필요했다.
‘신분이 드러난 템플러들을... 마을 주민들이 믿을 수 있을까.’
반대로 생각해도 마찬가지였다. 템플러들은 자신들을 쫓아내고 배척하는 주민들을 믿을 수 있을까.
언제 버려져도 문제 없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서로의 신뢰가 있어야지만 이뤄질 수 있는 파티를, 수백 명 규모로 하고 있었다. 모리안은 이 계획이 이루어지더라도 탑을 오르는데 상당한 문제가 생길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더 큰 문제가 남아 있었다.
“이봐. 55층 연합파티의 리더를 봐. 그 년이라고.”
어느 주민의 말에 모리안은 지휘관에 관한 항목을 보았다.
50층 이하의 연합파티장은 개벽 이전에 갱신한 업적의 수로 선출한다. 1층부터 시작되는 파티는 적성검사를 통해 선출한다.
51층 이후의 모험가들은 55층에서 모인다. 55층에서 결성될 연합파티의 지휘관은 템플러로 유명한 빈으로 이미 정해져있었다.
“하, 템플러 따위를 믿고 탑을 올라야 하다니.”
“템플러와 함께 하는 것도 두려운데, 심지어 지휘하는 자조차 템플러라니, 나는 이 파티에 끼지 않겠어.”
주민들의 반발이 일어났다. 모두 계획의 청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빈씨가...’
모리안은 자신을 도와주었던 빈이 템플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놀라지 않았다.
그 당시에는 탑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고, 처음부터 빈이 스스로 템플러라고 신분을 밝혔기 때문에 무엇을 하는 주민들인지 잡히질 않았다.
그러나 개벽 이후, 주민들이 템플러들을 향해 발산하는 악감정을 보고 빈에 대해 얼핏 이해할 수 밖에 없었다.
빈은 악인이다.
그녀와 함께한 리오도 악인이다. 그러한 자들이 이끄는 무리가 정상적일 리가 없었다.
제갈공명이 아군의 희생을 이용하여 전쟁에서 승리하였듯, 그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승리하되, 승리가 아닌 전투를 지를 것이다.
모리안은 파티 웨이브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
‘역시 다른 일을 찾아보자. 괜히 위험하게 한 일을 할 필요는 없어.’
광장에서 몸을 돌렸다. 그래도 고수입이 보장된 탑을 포기할 수는 없었던지, 그녀의 몸은 자연스럽게 길드 아지트로 향했다.
인적이 드문 골목으로 들어가, 지름길로 향할 때, 그녀는 골목길을 막고 있는 인영을 바라보았다.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체구가 어딘가 익숙했다. 개벽 전에 만났던 리오일까 싶었지만, 소매에서 보이는 앙상한 손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그 남자는 리치이기는 해도 신체가 썩어있지는 않았다.
“잠시만 비켜주시겠어요?”
“당신에게 볼일이 있소. 모리안양”
리치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꺼름칙 했다. 온 몸에서 소름이 돋을 정도로 듣기 좋은 목소리가 아니었다.
무의식적으로 겁을 먹고 그녀는 몸을 움츠렸다. 탑의 규칙상 죽지는 않는다지만, 그 외에 고문이라던가 실험 같은 것은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리치의 행동에 따라 바로 도망갈 채비를 하며 되물었다.
“보, 볼일? 무, 무슨 일이시죠?”
“겁먹지 않으셔도 되오. 본인은 알터, 아... 이렇게 말하면 모르겠구려. 리오라는 리치의 부탁을 받고 모리안양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려고 하오.”
익숙한 이름이 나오자 그녀의 몸에 멤돌던 긴장감이 사라졌다.
“리오의 부탁?... 어떤 제안이시죠?”
“모리안양을 흑마법사로 만들어 달라는 부탁이 있었소. 때 마침 제자가 필요했던 터라 거부할 필요가 없었소. 모리안양은 어떻게 생각하오?”
“흑마법사...”
거부감이 들기는 했지만, 리오와 같은 마법계통에 속하는 것이었다. 흑마법을 배운다면 탑을 오르는게 쉬워질 것이었다.
지구에서 꿈만 꾸던 진정한 마법사가 되는 것. 이 부분도 흑마법사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이는데 한몫했다.
흥분된 몸으로 고개를 끄덕이려 할 때, 모리안은 자기자신에게 물어보았다.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걱정없이 사는 삶을 원했던 자신이, 탑을 오른다?
지금은 단지 경제적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 앤서러를 배우고 탑을 오르려는 의지를 품었던 것 뿐이었다.
흑마법사의 제자가 된다면, 본격적으로 탑을 오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이 원했던 평범한 삶과는 멀어지는 것 같았다.
“망설이는 것이오? 걱정마시오. 나는 모리안양을 억압할 생각이 없소. 스승과 제자의 관계도 원하지 않소. 단지 마법을 가르치는 것뿐이지. 그 외에는 관심이 없소. 모리안양이 탑을 오르든, 오르지 않든 마법을 취미로 삼든. 크게 신경쓰지 않을 것이오. 이러한 조건이라면 망설일 필요는 없다고 보오.”
그녀에게 있어서 매력적인 제안이었지만, 모리안은 쉽게 고개를 끄덕이지 못했다.
힘에는 책임이 따른다. 힘을 가진다면 선택권이 많아진다.
힘을 가진 자신이, 힘을 가지지 않았던 때로 돌아갈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평범한 삶을 살았던 리오가 탑에만 고집하게 된 것처럼, 자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힘을 가지는 것이 두려운 것이오?”
“... 네.”
“마법과도 같은 힘을 가지게 된다면 얻는 이득에 대해서는 왈가불가하지 않겠소. 하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하게 말해주겠소.”
흑마법사는 그녀에게 있어서 가장 의욕을 끌어내는 말을 내뱉었다.
“모리안양도 인간이지, 모리안양도 앤서러를 배울 테고, 마법을 배우게 될 것이오. 그렇게 된다면 다른 인간들처럼, 탑의 세계에 이름을 남길 가능성이 높아지오.”
그 말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자신도, 이 세계를 앞서간 선지자들처럼 될수 있다.
앤서러 리오와 대등한 업적을 남길 수 있다.
언제나 비교되는 대상을 압도하고 싶은 욕망이 생겨났다. 무슨 일을 하든 뒤 따라오는 리오의 벽을 앞지를 수 있다.
모리안은 마음을 다잡았다. 자신은 무엇을 하든 리오 이상의 행위를 해낼 것이다.
“알겠어요. 당신의 제자가 될 게요.”
그리고 수일 뒤.
모리안이 1층의 업적을 갱신하는 메시지가 탑의 세계 전역에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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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오는 어느새 어엿한 마을 풍채를 보이는 ‘또 하나의 마을’에 도착했다.
템플러 수용소라고 불리기도 하는 그곳은, 마을과 달리 여전한 분위기였다.
원래 자원이 부족했고, 맨 바닥에서 개척한 곳인 만큼, 탑의 난이도가 오르든 말든 크게 상관이 없기 때문이었다.
수용소에 들어가는 순간, 리오를 향해 싸늘한 살기들이 쏘아졌다.
이곳의 템플러들에게 있어서 리오는 철천지원수였다. 마을에서 쫓겨나게 만들고, 주민들의 원망을 받게 만든 원흉이었다.
당연한 반응이라고 생각하며 리오는 발걸음을 수용소의 중앙으로 옮겼다. 리치가 되어버린 만큼, 살기에 대해서는 면역에 가까웠다.
누군가를 죽이려고 하는 기운은, 이미 죽어있는 대상에게는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그 모습을 보고 수용소의 템플러들이 조소를 흘렸다. 인간 앤서러 리오는 이제 더 이상 없다.
리치 앤서러만이 존재하며, 그들을 막아섰던 인간의 체술 ‘맞받아치는 칼 앤서러’는 사용할 수 없음을 뜻했다.
몇 이들이 날카로운 비수를 꺼내며 리오에게 다가갔다. 탑의 규칙이 있음에도 무기를 휘두르는 것은, 그만큼이나 리오에게 악감정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 개자식! 이곳에는 또 무슨 볼일이냐!”
원망어린 포효였다. 리오를 향해 짧은 나이프를 휘둘렀다.
그러나 그 나이프가 닿는 일은 없었다. 앤서러를 사용할 수 없는 리오이긴 해도, 앤서러를 사용하는 이들이 리오의 곁에 있었다.
검은 구름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일곱 명의 인간들. 리오에게 모여들었던 템플러들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일곱 명의 인간이 내뿜는 학살자의 기운에 압도당한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상대가 자신보다 위라는 것을 인정했다.
“너무 겁먹지 말라고, 당신네들 선배니까. 큰일이 없다면 해코지 하는 일은 없을 거야.”
정복자들은 리오의 주변을 둘러쌓다. 그리고 그 위를 덮듯 순식간에 모인 이 마을의 주민들이 둘러쌓다.
수용소의 대부분 템플러들이 모였다고 판단한 리오는 입을 열기 시작했다.
“너희에게 볼일이 있다. 힘을 좀 빌려줬으면 좋겠는데.”
어느 템플러가 말했다. 회색 피부를 가진 엘프였다.
“어이, 누구한테 도움을 청하는 것이냐? 신생 오라클의 영수라고 아주 위아래가 없군.”
“도움이라니, 웃기는 소리군. 내가 생각이 없어서 너희에게 도움을 청하겠나? 이건 명령도 아니고 부탁도 아니다. 제안이지. 날 도와라.”
“잡소리 집어치워! 우리가 널 도울 것 같나? 빌어먹을 자식. 뻔뻔하군!”
템플러들의 기세가 흉흉해졌다.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았다.
그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리오는 소환했던 정복자들을 없앴다.
“너희에게 귀와 눈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마을 상황에 대해서는 알고 있겠지. 내 제안은 그것과 관련되어 있다. 덧붙여 잘만하면 너희의 신세도 조금 나아질지도 모르지... 가령 마을로 돌아간다던가.”
흉흉한 기세가 사그라들었다. 템플러들이 잡고 있는 무기는 아직 놓여지지 않았다.
“또 달콤한 이야기로 무슨 사단을 일으키려고 하는 군? 네가 만든 신생 오라클에 대해서 들었다. 그 같잖은 혀로 대중을 이용한다지?”
“나에 대해서 어떤 이야기를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말해주지. 드래곤을 각성시킨 것도, 마을의 상황도 모두 내 계획의 일부다. 그리고 그 계획은 너희가 마을로 돌아오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리오는 고개를 숙여 땅을 바라보았다.
본래 살던 세계가 죽을 만큼 싫어서 탑의 세계로 온 자들을, 자신이 불행하게 만들었다.
솔직히 말해서 죄책감이 있었다. 그 때문에 템플러들이 다시 마을로 돌아올 기회를 주고 싶었다.
“가석방이 없는 수용소에서 생활하는 것이 재미있나? 너희에게 희망을 주겠다.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면, 마을로 돌아갈 기회를 주겠다.”
템플러들이 소란스러워졌다. 리오의 말은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뭘 믿고 널 돕지?”
어느 템플러가 물었다. 템플러로써는 리오를 돕고 싶지 않다.
하지만 탑의 세계를 살아가는 주민으로써는 리오가 준 기회를 사로잡고 싶었다.
“날 돕기는 하나, 날 믿지는 마라. 믿을 건 돌아가는 상황이다.”
리오는 현재 마을상황에 대해서 말했다. 가급적 많은 모험가가 많은 상황이며 템플러를 받아야하는 여론과 그렇지 않다는 여론에 대해서 말했다.
“마을로 돌아가기 위해선, 너희의 노력이 중요하다. 각서라도 쓰던, 스스로 금제를 걸던 템플러로써의 생활을 버려야한다. 현재 마을에 남아있는 템플러들은 이미 그럴 예정일테지. TP를 아무리 갈취해도 탑은 어렵다. 연합파티가 만들어지게 되면 소규모 파티는 없다시피 된다. 연합파티를 상대로 침입할 템플러들은 없겠지. 즉. 너희로써는 탑의 축복 템플러를 버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우리가 축복을 버리고 그 연합파티라는 곳에 참여했다고 치지. 하지만 주민들이 우리를 순순히 받아들일까? 동료가 된 일반 모험가들이 우리를 믿을까? 괜히 파티의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크다.”
“거기서 너희의 도움이 필요하다.”
리오는 양손을 내밀며 말했다.
“나를 제물로 받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