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4 회: 5-25 -->
쿠란은 직감적으로 이 마을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자신을 불렀다는 걸 깨달았다.
이 상황에서 탑을 오르는 모험가는 적다. 조금이라도 있는 모험가들을 규합해서 어떻게든 하려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모험가들이 오라클과 같은 조직을 만들었다고 들었어. 특별한 단체명 없이 단순히 모험가가 모인 모험가 조직. 그래서 모험가 길드인가.’
모여서 무슨 일을 하려는 건지 궁금해졌다. 리오처럼 타인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할 생각은 없었지만, 그녀 또한 현재 마을의 분위기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개선을 할 수 있다면, 힘을 보탤 생각이 들었다.
“여. 왔나. 정말로 데리고 왔군.”
도날과 면식이 있는 듯. 모험가 길드 아지트에 입장하자 누군가 아는 채를 해왔다.
“인사해. 내 친구인 라르칸이야.”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쿠란은 내부를 둘러보았다. 회의를 나누는 듯한 원형 탁자 하나가 놓여있었다. 초대된 인원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뜻이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나를 데리고 온거지?’
좀더 주변을 살폈다. 그제야 낯이 익은 모험가 보였다.
‘슈미트, 넬, 고르아... 모두 하나 같이 파티리더 잖아.’
이름 있는 모험가들만 모인 것은 아니었다. 이 아지트로 들어오기 위한 최소조건은 ‘탑의 모험가.’, ‘파티의 리더.’ 인 것 같았다.
‘파티의 리더들을 모아서 무얼 하려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누군가 아지트로 들어왔다.
인기척을 느끼고 무의식적으로 얼굴을 돌렸을 때, 쿠란의 눈매가 찌푸려졌다.
템플러 빈의 등장이었다.
“모험가 길드가 아니었나? 아. 하긴 조건만 충족되면 반푼이 마족 템플러도 들어올 순 있겠지.”
노골적으로 악의를 드러내는 쿠란이었다. 도날은 다소 당황했다.
“자세한 건 잠시 뒤에 알려주겠지만, 지금 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템플러의 힘도 필요해. 개인적인 감정은 접어뒀으면 좋겠는데.”
“오랜만에 뵙습니다 쿠란님. 모리안을 통해서 요즘 이야기는 듣고 있었습니다.”
“하. 뻔뻔하게도 말하는 구나.”
빈과 할말이 없다는 듯. 고개를 돌리고 쿠란은 원형탁자의 빈 자리에 앉았다.
굳은 얼굴로 보고 있던 도날은 박수를 치며 이곳에 모인 모험가들의 시선을 주목 시켰다.
“자. 이제 얼추 다 모인 듯 하니 시작하도록 하죠. 이번 모임의 목적에 대해서는 편지로 전해드렸습니다만. 다시 한번 구두로 이야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아지트에 있던 모험가들이 모두 탁자에 앉았다. 이 모임을 주관한 것은 도날이듯, 자연스럽게 그가 모임을 진행했다.
“모두 현재 마을의 상황에 대해서는 알고 계실 겁니다. 긴 이야기가 필요 없죠. 난이도 상승으로 인한 자원공급의 어려움. 그것으로 인해 현재 마을 분위기가 상당히 안 좋습니다. 저희가 오늘 모인 것은 이 일을 최대한 빠른 시일내에 해결 보기 위함입니다.”
모험가가 탑을 오르지 못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문제.
이 문제는 분명히 해결이 될 것이다. 시간이 흘러 언젠가 모험가들이 난이도에 적응이 된다면 예전과 같은 나날을 보낼 수 있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때가 언제가 될지 알 수 없다.
그 전까지는 지금과 같은 나날을 보내야한다. 최대한 해결을 보는 편이 서로의 불편함을 빨리 해소 할 수 있었다.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이 상황을 해결을 보기 위해서는. 저희는 단합해야 합니다. 홀몸으로 탑을 오르는 것보다 파티를 이루고 여럿이서 머리를 맞대어 올라가는 편이 쉽고 빠르다는 걸 모두 알고 계실 겁니다. 파티를 이루면 자원공급도 원활해지겠죠.”
쿠란은 그 말에 반박하고 싶었지만 참기로 했다. 지휘관이 우수하다면 확실히 도날의 말은 맞았다.
자신은 지휘관으로써 역량이 부족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그의 말에 틀린 점은 없었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들을 모으고 한 가지 제안을 하려고 합니다.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은 한 파티의 리더이시거나, 리더이셨던 분들입니다. 여러분들 모두가 연합하여 하나의 파티를 만드는 편이 어떨까 싶습니다.”
좌중이 소란스러워졌다. 그의 말은 맞기는 하나, 그것은 제 2의 군세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파티를 만들면 탑을 오르는 것이 수월해진다. 자원공급을 원활해진다. 모험가는 탑을 오른다. 이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므로 문제되는 것은 없다고 봅니다만. 이견이 있으십니까?”
누군가 탁자에 손을 부딪치며 일어섰다.
“하나의 파티를 만든다고? 모험가들은 여러 층에 분산되어있다. 이 상황에서 하나의 파티를 결성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본다.”
도날은 구체적인 계획을 준비해온 듯. 입을 열었다.
“구체적인 의견입니다만, 일정 구간마다 단 하나의 파티를 만들어 함께 쭉 올라가는 시스템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예를 들면 10층에서 모여서, 20층, 30층, 같이 쭉 올라가는 거라고 해야할까요. 중간에 낙오되는 분들은 다음 파티가 올라오는 걸 기다리고... 이런 식의 순환구조라면 이전보다 탑이 오르는 게 쉬울 것 같습니다.”
“흠. 나쁘지 않군. 문제는 역시 처음인가...”
도날은 간단한 마법을 시전했다. 마을입구 주변을 비추는 수정구가 나타났다.
“저층, 중층 구간은 사실 이 계획을 실행하기가 쉽습니다. 마침 연초라, 새로운 주민들이 몰려들어오고 있습니다. 1층부터 시작하는 파티를 결성하여, 옛 군세처럼 수백명이 몰려서 올라가면 될 것 같습니다. 문제는 고층 구간이죠. 저층에서 시작된 웨이브를 기다릴지, 아니면 죽을 것을 다들 각오하시고 일정한 층에서 만나야합니다.”
희망이 샘솟는 이들과 달리, 높은 층에 있던 이들은 한탄이 섞인 숨을 내쉬었다.
이러나 저러나, 죽을 위기가 이전보다 큰 것은 여전했다.
하지만, 신참 모험가들의 파티 웨이브가 시작된다면, 자원문제는 해결된다. 기다리면 다시 위로 올라갈 수 있다는 희망은 생겨났다.
그때, 빈이 가장 중요한 질문을 내뱉었다. 이곳에 모인 이들이 입밖으로 꺼내지 않고 있던 부분이었다.
“다른 건 둘 째치고, 만약 파티연합을 맺게되면 최종적으로 한 곳에 파티는 하나의 파티가 되고 맙니다. 지휘자를 정하는데 애를 먹을 것 같습니다만. 결국 말만 하나의 파티지, 개별 된 무리로서 행동한다면 큰 위험을 초래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도날은 빈의 질문에 입을 다물었다.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갑작스럽게 쿠란을 바라보았다.
“연합파티의 리더는 그 누구보다 뛰어난 전투력이 아니라, 적재적소에 파티원을 배치할 수 있는 지휘력이 필요합니다. 그런 건 파티의 리더가 얼마나 많은 업적을 갱신했는가. 그것으로 판별하겠습니다.”
“업적으로 리더를 정한다 이 말인가. 중저층 구간은 처음부터 함께하니 금방 정해지겠지만, 우리 같은 상위층 모험가가 문제로군.”
서로 비슷한 층에 있던 리더들이 시선을 부딪쳤다. 서로 눈치를 보며 누가 리더로 적합할지 생각하는 듯 했다.
“애초에 이 모임을 만든 도날이라면 리더로써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나 당사자인 도날이 고개를 저었다.
“저는 연합파티의 리더로써 적합하지 않습니다. 아, 참고로 방금 전에 리더의 역량을 업적으로 판단한다고 했는데, 그것보다 더 판단하기 쉬운 기준이 사실 있습니다.”
그것은 간단명료했다. 리더로써의 경험.
하지만 이곳에 모인 모두에게는 리더로써의 경험이 풍부했다.
단, 그것은 고작 몇 명인 소규모 파티의 리더로써의 경험이었다.
수백 명을 지휘해본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지금 이 자리에는 수백 명을 지휘해본 두 분이 계십니다. 능력의 절대적인 기준. 경험을 축적하신 분들이죠. 두분이야 말로 연합파티의 리더로써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자연스럽게 모험가들의 시선이 둘에게 모였다.
오라클의 영수로써 수백 명을 지휘했던 템플러 빈.
종족도감으로 불릴 정도로 많고, 다양한 종족들을 지휘했던 쿠란.
이 둘은 연합파티의 리더로써 자격이 충분했다.
슬그머니 리더 자리에 욕심을 내려던 이들은 고개를 숙였다.
“어떠십니까? 자세한 것들은 천천히 정해나가야 하겠습니다만. 일단 말이 나온 김에 여쭙도록 하죠. 두 분은 56층에 계신 걸로 압니다. 그 주변에서 파티를 한데 모아 위로 향하시겠습니까?”
빈과 쿠란의 시선이 부딪쳤다.
@
모리안은 탑의 입구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상인들처럼 자원을 구입하려는 목적이 아니었다.
자원고갈로 인해 이리나의 여관도 형편이 좋지는 않았다. 그 때문에 정리해고 명단에 있었던 그녀는 결국 백조가 되고 말았다.
이 상황은 딱히 그녀에게만 한정된 것은 아니었다. 시세가 오른 마나석 같은 자원들 덕분에 일자리가 없는 주민들이 넘쳐났다.
다시 일자리를 찾아야 했건만, 고용해주는 곳은 없었다. 결국 대부분의 주민들에게 남은 수단은 탑을 오르는 것뿐이었다.
그녀가 탑의 입구에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일이 이렇게 되기 전까지는 탑을 오를 생각이 없었지만, 막상 궁핍한 생활이 코앞에 닥쳐오니 어쩔 수 없었다.
자신에게 닥친 경제적인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선, 탑을 올라야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솔직히 자신감은 없었다. 앤서러 리오라는 남자가 탑을 올랐던 것처럼 분명 자신도 오를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기대만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길드 아지트로 가보라는 말 덕분에 앤서러도 나름 체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함에도 자신감이 생기지 않는 건, 역시 분위기 탓이었다.
자신보다 용맹무쌍한 모험가들도 탑을 오르는 것을 주저하고 있다. 그런데 자신이 아무리 그 남자와 같은 힘을 가졌다고 해서 오를수 있을까.
심지어 그 남자 조차도 현재 상황에서 탑을 오르지 않고 있다.
‘그만 둘까. 그러고 보니 무기총판 쪽에서 연락이 왔었는데.’
무기총판은 리오와 연이 깊은 곳이라고 들었다. 그곳에서 자신을 부른다는 건 그 남자와 같은 역할과 일을 수행해야 한다는 말과 같았다. 리오의 꽁무니를 쫓는 것 같아 썩 의욕이 나질 않았다.
무기총판의 일도 하고 싶지 않고, 탑도 오를 자신감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모리안은 현재 상황을 관망하기로 했다. 듣자하니 모험가들 일부가 연합을 맺는 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일정 구간마다 하나의 거대 파티를 만들어, 다 함께 오르는 것.
‘파티 웨이브인가. 분명 나쁘지 않은 이야기이긴 한데...’
파티 웨이브 계획이 실현되면, 이 자원문제는 필연적으로 해결 될 것이었다. 지금은 실직자가 넘쳐나 탑을 오르고자 하는 주민들이 작년보다 많기 때문이다.
파티 웨이브에 대해 생각하며 이 세계에 대한 희망을 다시 품을 때 였다. 광장에 있는 게시판에 포고자 한 명이 나타났다. 악어와 인간이 반쯤 섞인 수인이었다.
거대한 악어의 입을 향해 주민들의 시선이 모였다.
“모두 주목해주시길 바라오. 현재 이 마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몇가지 묘안을 가지고 왔소.”
시끌벅적했던 광장이 잠시 나마 조용해졌다.
“현재 탑의 모험가들 중, 파티를 가진 자들이 연합을 맺기로 했소. 수십 개의 파티가 하나로 뭉치는 경사적인 일이오. 이렇게 뭉친 건 다름 아닌 모두 탑을 안전하게, 서로 힘을 합쳐 오르기 위함이오.”
포고자는 자신을 보는 주민들이 모두 볼수 있게끔 양피지 하나를 펼쳤다. 곧 뒤에 있던 하수인이 게시판에 똑같은 것을 붙여놓았다.
“강제적인 의미는 없소. 혼자 탑을 오르겠다면 말리지 않겠소. 단지 이렇게 힘을 합치는 편이 여러모로 좋다는 말이오. 여기 이 공고문은 현재 행간에 떠도는 파티 웨이브 계획의 청사진이니 모두 참고 하길 바라오.”
게시판에 붙여진 공고문에 주민들이 다가갔다. 길게 쓰인 계획서의 내용은 소문과 다를 바가 없었다.
“본격적으로 움직이는 건가.”
“나쁘지 않은 계획이군.”
“제 2의 군세라...”
탑의 일정 층마다 주민들이 모여 파티를 이룬다. 아직 탑을 오르지 않은 주민이라면 1층부터 시작하여 모두가 쓰러질 때 까지 같이 오르게 된다.
중간에 낙오되는 주민은 이후에 올라오는 또 하나의 파티 웨이브에 참여하게 된다.
말로만 들어서는 나쁘지 않은 계획이었다. 그러나 좀 더 심도 있게 계획을 보자면 문제가 있었다.
‘동료가 한 두명이 아니야. 수백 명이 될텐데, 이 모두를 믿고 탑을 올라야 하는 거잖아.’
이 계획에는 템플러라도 믿고 함께 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