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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신도 아닌데 모두 예상할 수 있었을 까요. 시작과 결말은 예상 했지만, 이렇게 자원고갈이나 어떤 상황이 펼쳐질 지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임기응변이셨습니까.”
낮은 탄식을 내뱉으며 부디 이 일이 잘 끝나기를 기원했다.
빈이 리오의 곁을 떠났다. 그녀와 마찬가지로 자리를 옮길 예정이던 리오는 다가오는 이를 보고 멈췄다.
“오늘은 나를 찾아내는 자가 많군. 추격자들도 여태 날 잡지 못했는데...”
인격이 변한 것처럼, 빈을 대할 때와는 다른 말투였다. 다가온 주민은 리오에게 있어서 반가운 인물은 아니었다.
“그래. 나를 향한 경외심이 무럭 무럭자라던가? 신처럼 여겨지던가?”
흑마법사 온슈타인.
진혼을 보관하고 있던 인물이었으며 알터를 숭상하고 신으로 만들려던 인물이었다.
신으로 만드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신이 되는 대상을 믿고 움직이면 된다.
문제는 지구의 민속신앙과 비슷하다는 점이었다. 천지를 뒤흔들고 세상을 재구성할 그야말로 신의 기적은 주어지지 않는다. 단지 신자는 신을 믿음으로써 새로운 힘을 부여받는 것이다.
그것이 사실은 자신의 숨겨져 있던 재능임에도 모른 채.
하지만 눈앞의 마법사. 온슈타인은 신을 믿음으로써 생기는 힘이 어떠한 것인지는 자세히 파악하고 있을 것이었다. 그 힘은 누가 주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내면에 있던 힘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리오를, 알터를 신으로 모시고자 했다.
그 결과가 어떠할지 리오는 개인적으로 궁금했다.
“어떻지?”
“내 기억을 지우는 것으로 귀공을 신으로 여기는 것은 가능했지만. 굳이 그러고 싶지 않구려.”
“결과적으로 날 신앙의 대상으로 보지 못했다는 거군. 당연한 일이라고 나는 생각했는데... 당신. 날 신앙의 대상으로 여기면서, 단 한 번도 나에게 존댓말을 한 적이 없거든. 무의식적으로 날 신으로 인정하지 못한 거야. 그렇지?”
온슈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인공신에 관한 건 사실 부가적인 일에 불과했소. 가능성을 염두한 일일뿐이라오. 오히려 귀공에게 원했던 것은 진혼의 완성과 최악의 마법사의 마법이오.”
자기위안을 하는 것 같았다. 리오는 그에게 가지던 적대감을 억눌렀다. 더 이상 큰 볼일은 없을 것이었다.
“그래서. 소감은?”
“드라칸을 압도하는 마법. 훌륭했소. 이 온슈타인이 목표로 하고 싶은 흑마법이었소. 신으로써 경외심을 갖을 수는 없었지만. 마법사로써 존경을 품을 정도였소.”
따지고 보면 리오가 알터로써 각성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진혼을 넘긴 이유가 컸다. 새삼스럽게 깨닫고 고마움이 느껴졌다.
그에게 적당한 조언을 내뱉었다.
“나 같은 마법사에게 중요한 건 짜맞추는 술식이나 강력한 힘이 아니지, 명확하게 그릴 수 있는 이미지다. 먼저 마법현상을 머릿속에 그린다면, 술식이나 힘은 뒤따라오기 마련이다.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로군.”
최악의 마법사의 조언에 온슈타인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로지 마법을 위해서 몸을 언데드로 바꾼 마법사. 리치인 그에게는 이런 조언은 최고의 선물이었다.
“이 정도면 진혼에 대한 감사는 되겠지. 당신이라면 언젠가 나를 모방 정도는 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할 말이 끝난 리오는 떠날 채비를 했다. 펼쳐둔 결계마법이 경고음을 날렸기 때문이었다.
성지를 무너뜨린 후, 드래곤의 각성을 도운 리오를 쫓는 추격자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과 마주치는 건 피곤했다. 가능한 만남을 회피하려 했다.
“다음에 또 만날 수 있겠소?”
“당분간은 힘들 것 같은데. 여유있게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없어.”
빈에게서 마을 상황을 들었으니 가만히 도망만 치고 다닐 순 없었다.
온슈타인도 리오의 사정을 아는 만큼, 더 이상 붙잡지 않고 몸을 돌렸다. 그가 마법으로 떠날 채비를 하는 걸 보며, 리오는 부탁 하나를 하기로 했다.
“제자 하나 거둘 생각 없나?”
“제자 말이오? 추천할 만한 인물이 있는 모양이오?”
“모리안.”
마을 주민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이름이었다. 리오가 리치가 되어버렸으니, 사실상 그녀는 유일한 인간이었다.
“인간제자라... 흥미가 생겼소 그 아이가 원한다면 제자로 거둬보도록 하겠소.”
“잘 부탁하지.”
그 말을 끝으로 온슈타인은 마법을 시전했다. 공간이동 마법인 텔레포트였다.
리오는 순식간에 마을로 돌아간 그가 조금은 부러웠다. 템플러 신분이며 사단을 일으킨 자신은 더 이상 마을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정체를 숨기는 것도 무리였다.
그 때문에 자신은 앞으로 이 일이 정리가 되는 날까지 도망다녀야 한다.
아니, 개벽이 일어난지 한 달이나 지났으니 이제 이 생활도 마무리 지어야 했다.
'내가 일으킨 사단이야. 어서 끝내는 편이 좋겠지.‘
리오는 발걸음을 마을로 향했다.
자신이 생활했던 마을이 아니라, 또 하나의 마을로 향했다.
템플러들의 둥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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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은 불가능을 만들어 두지 않는다.
그 말을 믿고 탑을 오른 지 한 달이었다.
드래곤의 각성도, 마을의 폭동도 신경쓰지 않는 쿠란은 무미건조하게 세이렌의 목을 찢었다.
그녀는 바다 한가운데에 있었다. 해적이 되어 배를 약탈하고 심해의 마수 크라켄을 쓰러뜨리는 것이 목표였다.
크라켄을 만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세이렌과 접점을 가져야만 했고, 쿠란은 배로 몰려드는 세이렌을 처치하고 있었다.
“조금 지치는 걸.”
개벽이 이루어졌다고는 하나, 탑의 난이도가 오른 이상 의미가 없었다. 잠깐의 전투로 기진맥진해진 쿠란은 철퍼덕 누웠다.
역시, 파티가 필요하다. 홀몸으로 탑을 오르는 건 무척이나 힘들었다.
‘이런 걸... 그렇게 오래 했다는 말이지.’
탑을 다시 오를 생각은 아니었지만, 리오가 홀 몸으로 50층이나 올랐다는 걸 깨닫자 괜히 호승심이 났다. 그 남자보다 자신이 못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다시 탑을 오를 의욕이 났다.
‘오늘도 이쯤 할까. 괜히 욕심내서 할 필요는 없으니까.’
안전이 제일 중요하다는 리오의 말을 떠올리며 쿠란은 탑에서 탈출할 준비를 했다.
원래 탑에서 나가는 건 일정한 조건이 갖춰줘야 하지만, 그녀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탑을 나갈 수 있는 축복이 있었다. 이것만큼은 리오가 부럽다고 할 정도의 희귀한 축복이었다.
탑의 대기실로 돌아온 쿠란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대기실에는 본래 수많은 종족들이 모여있어야 하건만, 난이도 탓인지 모험가들이 보이질 않았다.
‘한 명도 없는 건 너무한데.’
파티도 없고, 주변의 지인들도 줄어든 것 같아 쓸쓸해졌다. 외로움을 느끼며 그녀는 탑밖으로 향했다.
머릿속을 뒤흔드는 감각이 자신을 스치고 수초 뒤, 귓가에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왔다. 탑에서 나온 자신을 이름을 부르는 상인 몇이 보였다.
금세 벌떼같이 달려들어 쿠란이 탑에서 얻어온 자원들을 사려했다.
이제는 슬슬 익숙해질만도 하건만, 쿠란은 가벼운 현기증을 느끼며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가벼운 마법이라도 사용해서 쫓아낼까 하려던 때.
중무장을 걸친 이종족 여럿이 상인들을 헤치며 나타났다. 오우거나 트롤 같은 거인들이 흉흉한 바스타드 소드를 들이밀며 쿠란 주위를 에워쌌다.
“뭐, 뭐야! 당신네들!”
“또 한바탕 해보자는 거야!”
어떻게 해서든 마나석과 같은 자원을 확보하려는 상인들이었다. 오우거나 트롤들 사이로 들어오려 했다.
그리고 사정없이 휘둘러지는 대검에 맞았다.
보통 대검들은 날이 세워져있지 않다. 검이기는 하나, 대검이기 때문에 상대를 베어내는 용도가 아니라 둔기처럼 뭉게버리는 용도가 대부분이었다.
다행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싶을 정도로, 상인 여럿이 대검의 날에 맞았음에도 큰 상처 없이 정신을 잃었다. 골절상은 입은 것 같지만 탑의 규칙이 있는 이상 정신을 차릴 때 쯤이면 모두 재생되어 있을 것이었다.
‘뭐, 나랑은 상관없나.’
상인들이나 자신을 에워싼 거인들과는 안면이 없었다. 솔직히 거인들이 자신을 이렇게 도와줄 이유가 무엇일까 고민을 해보았지만, 알 수가 없었다.
기어코 이 상황에 신경을 끄기로 했다. 거인들을 헤치며 나가려는 순간, 또 한명의 오우거가 나타나며 쿠란의 앞을 가로막았다.
“내 이름은 도날이라고 해. 개인적인 볼일이 있는데, 시간 좀 빌릴 수 있을까?”
‘도날?’
오우거 도날이라면 쿠란도 들어본 적이 있었다. 리오와 같은 드라칸의 제자이며, 리오와 한번 대판 싸웠다던 오우거.
80층 언저리를 오르고 있으며, 리오와 같은 종족을 초월한 강함을 가졌다는 주민으로 유명했다.
무슨 용무로 자신을 만나러 온지는 알수 없었다. 흥미도 없었다. 그를 무시할 생각으로 가벼운 농담을 내뱉었다.
“수컷 오우거에게는 흥미가 없는 걸.”
“상당히 매몰찬 거절이네.”
오우거답지 않게 매우 슬픈 표정을 지으며 그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역시 탑의 세계랄까, 주민들 하나 하나가 그 종족에 어울리지 않았다. 물론 자신도.
“그러지 말고 한 시간만 내어줬으면 해. 이 마을과 관련 된 이야기니까.”
귀찮은 느낌이 들었다. 쿠란은 손바닥을 휘휘 저었다.
“싫어 싫어. 나 가서 쉴 거야. 내 몸 간수하기도 힘든데 마을에 관련된 이야기라니, 괜히 그런 걸로 신경 쓰고 싶지 않아.”
피곤하다는 기색을 보이며 흐느적 흐느적 걸음을 옮겼다. 누가봐도 모험에 지친 모험가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도날은 생각에 잠기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곧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피곤한 거야? 달달한 거 사줄게.”
덜컥.
걸어가던 쿠란의 발걸음을 멈춰섰다. 고개를 삐그덕 뒤로 돌린 그녀는 밝은 미소를 띄우며 고개를 끄덕였다.
“리오와 달리 여성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있는 걸. 대단해. 역시 리오의 호적수라고 불린 오우거네!”
“...그런 이유로 호적수였던 건 아닌데.”
불편한 표정을 내보이며 도날은 쿠란의 곁에 섰다.
당장 먹을 걸 사줄 거라고 생각했던 쿠란은 그가 어디론가 자신을 이끄는 걸 보고 불안함 마음이 들었다.
“날 유괴할 셈? 나 그렇게 가치있는 여자 아닌데.”
“...약속한 건 이야기가 끝난 후에 사줄 테니까 후우. 리오도 참 이런 여자가 어디가 좋다고 그런 고생을 한 건지.”
타인의 입에서 리오의 이야기가 나오자 불편해졌다. 그를 대변하듯 쿠란은 말했다.
“이런 여자라 그런 고생을 한 게 아닐까?”
딱히 할말이 없던 듯. 도날은 혀를 차더니 아무말 없어졌다.
대화가 단절되고, 쿠란은 그가 자신을 어디로 이끄는지 알아차렸다. 멀리서 보이는 높디 높은 인공탑.
성지는 아니었다. 시장과 가까운 위치의 인공탑이라고 하면, 길드 밖에 없었다.
“길드? 흐음.”
그녀의 예상대로 도날은 길드로 이끌었다.
어째서 길드로 이끈 건지 의아해 할 때, 도날이 말했다.
“길드는 주민들 간의 공통점이 있으면 아지트가 생성 되는 걸 알고 있어? 마족이면 마족 길드, 인간이면 인간 길드, 드라칸의 제자들이면, 제자들의 길드... 공통점만 있다면 그것으로 조건을 한정하여 길드 아지트를 생성할 수 있지. 우리가 갈 길드는 모험가야.”
“모험가 길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