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의 탑-151화 (151/190)

<-- 151 회: 5-22 -->

그들이 모두 5년 전, 드라칸의 제자가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각자의 종족특성을 살려 수준높은 전투를 보이는 드라칸의 제자들.

제자들의 합류에 오라클이 다시 밀리기 시작했다. 제자들 또한 탑을 오르는 모험가이며 최상층에 근접해 있었다. 아무나 상대할 수 있을 정도의 어줍잖은 실력이 아니었다.

‘주민들이 모이기 시작했어. 이렇게 밀리는 꼴을 보여주어선 안돼!’

수백 명이 모인 오라클이 고작 마법사 몇에게 밀린단 말인가. 아무리 힘을 모아도 최강의 종족을 넘어설 수 없다는 말인가. 빈은 이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자신에게 가면을 맡긴 그 남자처럼, 종족의 한계를 뛰어넘어 보이고 싶었다. 인간을 우러러 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

‘아직 오라클은 끝나지 않았어.’

화염이 지나간 자리가 얼어붙고, 뇌격이 떨어졌다. 오라클들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이어지는 공격은 지옥을 연상 캐 했다. 끊임없는 고통. 주제를 모르고 날뛴 결과.

천벌을 받는 듯한 광경에 빈은 주먹을 쥐었다.

“욕망에 충실해라! 그것은 죄가 없다! 이 세계에 우리가 원하는 것을 갈취해라!”

끊어져가는 의욕을 되살리는 말이었다. 드라칸 중 한 명이 빈을 지휘관이라 추측하고 바라보았다.

말없는 시선을 교환했다. 무엇을 위해서 이곳을 습격했는지 그들로써는 알 수 없다. 태어날 때부터 재능을 가지고 부족함없이 자란 그들은 템플러의 마음을 알 수 없다.

남의 것과 자신의 것을 비교하고, 채울 수 없는 골을 파악한 자만이 이러한 짓을 할 수 있다.

빈이 리오의 뜻을 잇는 건 다른 이유가 있기 때문이 아니다.

단순히 연정을 품어 그의 뜻을 이뤄주고 자 한 일이 아니다.

이것은, 단순히 템플러 빈이 원했던 욕망의 표현이다.

자신의 욕망과 리오의 뜻이 일치했을 뿐이다.

“당신...”

곁에 있던 페이스가 신음을 삼켰다. 까마귀를 연기했지만 무엇보다도 욕망에 충실했던 건 그녀다.

하지만 템플러들의 사정을 드라칸이 이해할 리가 없다. 자신의 부모를 봉인하는 족속들이 남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빈이라도 예외없이 용인의 철퇴가 떨어졌다.

피할 수도 없는 벼락이 내리쳤다. 싸늘한 얼음덩이가 빈의 머리에 부딪쳤다.

까마귀로써의 가면이 벗겨졌다.

“...”

비명을 여유도 없다는 듯. 빈은 이를 악물고 용인의 공격들을 받아들였다. 냉철한 정신은 계속해서 골렘을 조작했다.

기어코 골렘이 성지의 문에 닿았다.

“이, 이런.”

설마 골렘을 조작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이들은 당황했다. 그리고 무너져 내린 골렘의 몸에서 수십의 오라클이 나오는 걸 보고 신음을 내뱉었다.

“들어가면 안된다!”

드라칸의 제자중 한 명이 입구를 막으려 했다. 그러나 아직 빈이 정신을 잃지 않았다.

골렘에 대해서라면 스폐셜리스트인 그녀는 순식간에 아이스 골렘을 생성, 제자들과 용인들을 공격했다.

“더 이상 자비를 베풀지 않겠다!”

온몸에 방전현상을 일으키며 용인 한 명이 빈을 향해 전격을 쏘려 했다.

“이... 큭!”

빈을 막아선 페이스를 보며 용인을 놀라더니 고개를 돌렸다. 기어코 전격을 골렘을 향해서 쏴댔다.

“페이스... 씨?”

“당신은 할 일을 다했습니다. 여기까지면 충분합니다.”

“아직 저희는...”

무언가 항변을 하려는 순간, 막강한 마력이 빈의 몸을 감쌌다. 아니, 하나의 육신이 그녀를 감싼 것이었다. 마력으로 유지되고 있는 육체이기 때문에 그렇게 느낀 것이었다.

차가운 망자의 육체.

“제 자리를 돌려주시겠습니까?”

익숙한 목소리였다. 정체가 누구인지 의심할 필요도 없었다. 빈은 안도감과 한숨을 내쉬며 너털 웃음을 터트렸다.

“기다렸습니다. 저의 영수님.”

빈은 땅바닥에 떨어진 자신의 가면을 주워들었다. 이제부터는 더 이상 누군가를 연기할 필요가 없다.

지금부터는 진정한 오라클의 주인이 자신을 이끌 것이다.

리오는 빈에게 까마귀 가면을 건네받으며 자신의 얼굴에 썼다.

주민들이 바라보는 앞에서, 용인들의 앞에서 자신의 신분을 노출했다.

신생 오라클의 영수.

템플러 리오임을 입증했다.

“리더가 누구이든 간에 뜻은 변하지 않는다. 나는 템플러 리오로써 욕망에 충실할 것이다.”

당황하는 템플러들의 입이 다물어졌다. 그렇다면 자신들이 해야할 일은 변하지 않는다.

내려진 명령이 누구에게 내려졌던 간에, 뜻이 일치한다면 행동한다.

애초에 신뢰로 움직였던 것이 아니었다. 까마귀라는 존재를 인정했기에 움직였다.

오히려, 지금에 와서 자신을 이끄는 리더의 정체를 알게 되어 힘이 났다.

앤서러 리오라고 불린 이와 함께라면, 그 어떤 불가능도 가능 할 것이다.

리오는 용의 성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오라클의 영수가 다시 명한다. 성지를 무너뜨려라.”

노호와도 같은 외침이 울려퍼졌다. 갑작스럽게 변한 템플러들의 기세에 당황한 용인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건... 후우.”

“무너뜨리는 것에 의미가 있는 건가. 아니면 다른 목적인 건가. 종잡을 수 없는 건 인간의 내력이군.”

리오가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싸우기 시작하는 템플러들 사이에서 누군가의 시선을 느꼈다.

4년 전.

리오가 안드레이의 제자가 되었을 때 싸웠던 오우거 도날이었다.

순박한 청년 같았던 인상은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80층을 올랐다고 들은 것 같은데.’

드라칸의 제자들은 서로 힘을 합쳐 탑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이 무려 4년 전의 일이었고, 지금에 이르러선 탑의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까진 가본 이들이었다.

“서로 얼마나 변했는지 확인 해볼까.”

리오의 중얼거림이 들렸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단지, 멀리 있던 도날이 본능적으로 리오를 막아서려 했다.

4년 전 그때와 같이, 양팔에 폭풍을 머금고는 주먹을 휘둘렀다.

“그때는 잔머리를 굴릴 줄 아는 마법사였는데... 지금은 영악해졌잖아?”

리오를 향했던 도날의 양 팔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또 한 명의 인간이 나타나 앤서러를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네가 아무리 앤서러를 사용하더라도 내 주먹은 막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거야 원 다른 인간을 소환 해내다니. 너무 한 거 아니야?”

팔을 잃었음에도 미소를 짓고 있는 도날이었다. 그를 보며 리오는 말했다.

“과거, 탑을 정복했던 인간이다. 네 스승조차 이 남자를 막지는 못했지.”

도날은 한쪽 팔이 날아간 인간을 보며 물었다.

“그럼 나. 역시 4년 전보다 성장한 걸까?”

“팔 한쪽을 날려버렸으니 뭐. 그렇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다행이네. 4년 전과 달라진 게 없는 줄 알았는데...”

이런 상황에서도 자신의 성장을 기뻐하는 도날이었다. 리오는 그를 내버려두고 성지 안쪽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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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이를 만날 목적으로 수십 번은 오고 간 길.

익숙할 수밖에 없었다. 리오는 무의식적으로 안드레이의 방으로 향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스승에게 예의를 차리려는 것이더냐?”

“스승님...”

자신을 더 이상 제자로 보지 않는 투의 말이었다. 딱히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스승님은 알고 계셨습니까? 제가 정복자 알터의 환생이라는 걸.”

“혹시나 하는 생각은 했었다. 하지만 마법에 대한 재능이 거의 없다시피 하고, 알터하고는 닮은 점이 한 구석도 없었기 때문에 무시했지.”

안드레이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모든 걸 솔직히 말하마. 너에게 알터의 마법서를 건네주기 전 까지는 예상하지 못했었다. 그의 마법이론을 토대로 마법을 처음 사용했을 때, 눈치 챘지. 어쩌면. 그의 환생일지도 모른다고.”

마법사에게는 이미지메이킹이 중요하다.

마법을 상상해야 한다. 하지만 리오는 마법을 상상하지 않고, 마법을 사용하는 자신을 상상했다.

이러한 생각은 탑의 세계에서 단 한명 뿐이었다.

생각이 같을 수는 있지만, 남의 마법서를 토대로 마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면, 우연 일리가 없었다.

그 당시부터 안드레이는 리오가 알터의 환생임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시군요. 그래서... 저의 첫 개벽축제에서 그런 말씀을 하신 거군요,”

본래 안드레이와의 관계는 개벽축제까지였다.

그러나 안드레이는 모종의 거래를 통해서 관계를 지속하기를 원했다. 인간이 탑을 오를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알고 싶어했다.

단순히 축복 같은 힘이 아니라, 인간만이 가지는 생각을 알고 싶어했다.

리오로써는 잃을 게 없고 이득만 챙기기 때문에 그때의 그 거래에 응했다.

탑의 세계를 살아오는 5년간.

리오는 안드레이가 건넨 목걸이를 항상차고 다녔고, 그에게 목줄이 잡혀 감시를 항상 당해왔다.

모만이 축복을 이용해 들여다 보는 것과는 이야기가 조금 달랐다. 모만은 단순히 인간에 대한 호기심이었고, 안드레이는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지난 5년간. 저를 감시한 보람은 있으셨습니까?”

이미 리오의 품에는 안드레이가 건넸던 선물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가 리오에게 남긴 것은 마법에 대한 지식뿐이다.

그것도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자연계 백마법.

하지만 안드레이에게는 리오가 남긴 것이 있다.

감시의 결과.

“그건 지금 확인해봐야 하지 않을까 한다.”

그 말을 끝으로 리오는 눈을 감았다.

드라칸 안드레이는

지난 5년간. 자신을 감시했다.

명목상 인간을 알기 위해서였다지만. 사실은 다른 이유였던 것이다.

지금은 페이스를 위해서 드라칸과 적대를 하고 있지만, 언젠가 리오가 100층에 오르게 된다면, 다른 정복자들처럼 싸우게 될 것이다.

감시는 그때를 대비한 것이다.

제자의 행동패턴, 생각, 마법의 순환, 축복의 유무를 파악하기 위해.

‘처음부터 그런 것이었나.’

배신감을 느끼며 리오는 눈을 부릅떴다. 스승을 공격한다는 망설임은 사라졌다.

리오의 옷소매에서 검은 구름이 내뿜어졌다. 금세 성지 내부를 가득채웠다.

“나는 네 스승이다. 진정 스승을 공격할 셈이더냐?”

자신의 인간성을 두들기는 것이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끔 내뱉는 옛 스승의 말에 리오는 대답을 들려주었다.

검은 창이 구름을 헤치며 안드레이에게 향했다.

쾅!

“후회는 없는 것이더냐? 인간임을 포기하고 이성을 잃은 것은 아니더냐? 전생의 기억을 보게 되고 너 자신을 잃은 것은 아니더냐?”

리오의 마법을 간단히 상쇄시키며 안드레이는 계속해서 말했다. 리오가 자기자신을 돌아보게끔 만드려는 것이었다.

‘무의미한 말입니다 스승님.’

자신을 돌아보는 건 이미 충분히 했다. 자신을 믿어주었던 지인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도, 스승과 싸우는 것도 모두 선택의 결과였다.

리오는 암흑 창을 다시 쏘아보내었다. 아까와 달리 피할 수 없는 수십 자루의 암흑 창이었다.

망설임 없이 자신을 공격하는 리오를 보고 안드레이는 놀랐다. 도대체 무슨 결심을 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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