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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관에서 일하는 리오님이라...’
“빈씨. 그럼 저는 이만.”
빈의 상념을 깨며 이리나가 인사를 했다. 그녀는 교육을 받고 있는 모리안에게 갔다.
한참동안 모리안을 훔쳐보다 빈은 여관에서 나왔다.
만약 리오가 이 광경을 보았다면 무슨 생각을 했을 까.
예전 자신을 겹쳐보았을 까. 인간만의 인간다움을 되찾았을 까.
할 수 만 있다면 모리안을 그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내가 해야 할 일이나 하자.’
추억을 회상하는 괴로움을 접었다.
탑을 공략하고 내려온 빈에게는 해야 할 일이 있다. 리오가 남긴 힘.
악인들을 이용하여 마을의 분위기를 조성하고 템플러와 모험가들 양쪽을 단련시키는 역할이다.
‘내가 탑을 정복하기 위해선, 이렇게 하는 수밖에 없어.’
리오가 남긴 길을 따라한다. 우수한 모험가들을 단련하고 배출해내어 주민들이 탑을 손쉽게 오르게끔, 모두가 귀환을 할 수 있게끔 만드는 것.
빈은 까마귀의 가면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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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하지만 낯선 마을.
그곳에서 마법사가 싸우고 있었다.
온 마을에 불을 질렀다. 누군가를 칼로 찔러 시체를 만들고, 그 시체를 이용해서 다른 시체를 만들어 내었다.
병균이 유전자를 감염시키듯. 순식간에 시체는 불고 불어나 마을을 뒤덮었다.
마족과 이미 죽은 자였던 언데드를 가릴 것 없이, 자신의 마수에 당해 조종을 받기 시작했다.
모형 탑이라는 길드를 짓밟고, 온갖 총판들을 습격했다. 이 마을의 주민들이 단결하지 못하도록 주요 거점을 파괴했다.
내면의 적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마을에 대해서 자세히 아는 사람일수록 적으로 돌아섰을 때 가장 무서운 법이다.
마법사가 한 일은 그런 일이었다. 수천에 이르는 죽은 병사들로 탑의 세계를 초기화했다.
100층의 목표는 이것이었다. 세계의 종말이며 시작.
모든 것을 없애야만 귀환할 수가 있다. 이를 위해서 마을에서 죽지 않는다는 탑의 규칙은 사라졌다.
귀환을 위해서 싸우는 도중, 마을을 지키며 최강의 종족이라 불리우는 일곱 명의 용인들과 싸우는 것은 당연했다.
그들은 마법사를 나무라지 않았다. 귀환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이었기 때문이다.
단지 순순히 죽을 생각은 없었다. 용인들은 자신이 지켜야 할 것을 위해서 싸웠다.
그런 그들의 앞에 나타난 것은, 이미 수백 년 전에 탑의 세계를 지나간 이들이었다.
눈앞의 마법사처럼 마을의 주민들을 죽인 자. 세계를 초기화 시킨 자들.
정복자들이었다.
일곱 명의 용인 앞에 일곱 명의 정복자들이 몸을 일으켰다.
한 쪽 눈을 가리고 있는 자, 말과 함께 화살을 다루는 자.
하얀 도복에 온 몸에 흉터가 가득 한 자, 기괴한 기계장치를 가진 자.
하얀 도포와, 갓을 쓴 선비 같은 자, 짧은 머리에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있는 자.
그리고 허리에 검은 차고 있으나, 결코 뽑지 않는 자가 있었다.
모두 다 마법사의 조상들이었다. 마법사는 땅에 몸을 묻어 시신 한 조각도 남지 않은 자들을 되살려 부리고 있었다.
이 얼마나 인륜을 벗어난 행위인가. 하지만 지금 저들을 다루고 있는 마법사에게 자신은 공감했다.
방법만 있다면 자신도 할 것이다.
머릿속에 자리잡은 도덕심은 세뇌의 결과다. 벗어던지고 자신에게 이로운 일이라면 언제든지 할 수 있다.
그래야만 정복자가 될 수 있다. 눈앞에 있는 일곱 명처럼.
괴물을 쓰러뜨리기 위해선 괴물이 되어야 한다,
“윽...!”
머릿속에 투영되던 영상이 사라졌다. 리오는 몸을 일으키며 사나운 정신을 잠재우려 했다.
그러나 잊혀지지 않았다. 자신이 본 적도 없던 조상들의 얼굴을.
아니, 100층의 영상을.
귀환의 탑의 마지막 층은 자신이 살고 있는 이 마을이었다.
“아직 인간다운 모습이 남아있군요오. 언데드는 수면따위 취하지 않는데...”
걱정스러운 표정을 하며 페이스가 리오의 곁에 다가왔다.
갈 곳이 없는 리오를 데려온 것은 그였다. 알터에게, 아니 리오에게 볼일이 있는 그로써는 최대한 호감을 사야했다.
“인간다운 모습은 사라지질 않을 걸? 본질은 변하지 않는 법이지.”
무의식적으로 물을 찾았다. 그러나 며칠 전에 말라버린 목을 떠올리곤 고개를 저었다.
“괴로운 악몽이라도 꾸셨습니까?”
“그걸 악몽이라고 해야하나.”
고민하는 리오를 보고 페이스는 소리없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에게 있어서 리오의 변화는 환영이었다. 진혼과 동조하여 알터로써의 힘과 기억을 되찾는다면, 자신이 원하는 목적을 쉽게 이룰 수 있을 것이었다.
‘슬슬 말해두는 편이 좋겠죠?’
나중에 부탁을 하는 것보다, 미리 말해두는 편이 좋을 것이다 리오와 알터의 성향은 천천히 시간을 들여 계획을 수립하기 때문이다.
“리오님. 당신이 리치가 된지 일주일이나 되었습니다.”
페이스의 정중한 말투였다. 리오는 그가 자신의 목적을 내뱉으려 한다는 걸 예상했다.
진혼에 대해 알려주고, 생활할 장소를 제공한 것은 분명 이유가 있어서였다.
이전에 알터에게 볼일이 있다는 말도 있었다.
“잡담으로 내 호감을 사려는 행동은 그만 두지, 간단하게 말해라.”
정체를 알고 있음에도 리오의 말투는 더 이상 존대가 아니었다. 인간으로써 모든 걸 버렸기 때문에 생긴 자신감이 아니었다.
지금은 아니지만, 자신은 드래곤보다 뛰어난 정복자다.
탑의 세계에서, 그 누구보다 뛰어난 자다.
그렇기 때문에 페이스도 딱히 리오의 존대에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그럴 만한 자격이 있는 남자이며 페이스 본인이 그것 때문에 트러블을 일으킬 성격도 아니었다.
“알겠습니다아. 리오님이 원하신다면 편안히 숨김없이 말하도록 하죠오.”
페이스는 일단 자신의 목적을 간단명료하게 말하기로 했다.
“저는... 제 몸을 되찾고 싶습니다.”
광대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의 본 모습이 어떤 생명체인지 알고 있는 자들이라면 그의 목표에 대해서 이의를 표할 수 없었다.
페이스는 희생자다.
탑의 세계를 위해서 희생된 드래곤이다.
본인이 만들어낸 자식들로 인해서 육체를 봉인 당했다. 자신의 몸을 되찾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한 마음이었다.
리오는 그의 목적에 대해 어느정도 짐작을 했던 듯. 품속에서 담배를 꺼내 물며 말했다.
“그 여파에 대해서는 알고 있겠지?”
페이스가 몸을 되찾는 걸로 얼마나 난이도가 오를지 짐작할 수 없다.
드래곤 페이스는 오라클을 뛰어넘는 원망을 주민들에게 받을 것이며, 숭배받고 위대하다 여겨졌던 그는 악의 화신이 될 것이다.
“비록 제가 육체를 잃어 드래곤답지 않다는 것은 자각하고 있습니다아. 제가 몸을 되찾는 것으로 일어날 사태에 대해서는 걱정하시지 않으셔도 됩니다아.”
“드라칸이라는 생명체를 만든 위대한 드래곤이니... 하긴 내가 걱정할 건 그런 게 아니군.”
리오는 의미도 없는 담배를 뻐금뻐금 폈다. 더 이상 몸속에 약효가 일어나진 않았지만, 행동만으로도 머릿속이 편안해졌다.
‘도와주어야 하나?
페이스에게는 이런 저런 일로 도움을 받은 게 은근히 있다.
굳이 빚을 갚을 필요는 없지만, 서로 앙금이 되는 일은 없는 게 좋았다.
‘드래곤이 완전 각성하는 것은 이 세상에 재앙을 초래하는 일이다. 그를 돕는 게 옳은 일일까?’
희생 당한 자를 돕는다. 명목상으로는 나쁘지않다. 하지만 그로 인해 벌어질 일은 감당하기 벅찼다.
갑작스런 탑의 난이도 상승.
전체 주민들의 전투력 평균치가 상승한다. 드래곤이 부활할 이후에는 아무리 리오라도 50층을 재도전했을 때, 통과할 수 없게 될지도 몰랐다.
‘다른 주민들도 마찬가지야. 드래곤이 각성하면 좋은 일은 하나도 없다. 하지만...’
템플러와 평범한 모험가.
이 둘에게는 공동의 적이 생겨난다.
드래곤이 각성하는 순간, 템플러는 TP를 갈취하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탑을 오를 수 없게 될 것이다.
모험가들은 언제 습격할지 모르는 템플러를 경계하다간, 탑을 오를 수 없게 된다.
템플러와 모험가는 협력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탑을 오를 수 있게 된다.
수년 전, 리오가 꿈꿨던 일이 이뤄지는 것이다.
뒤떨어지는 모험가가 없이 모든 주민들이 탑을 오른다.
막강한 탑을 오르기 위해 모험가들은 같은 층이라면 서로 공략법을 공유할 것이다.
탑이라는 공동의 적을 목표로 행동할 것이다.
‘템플러라는 시스템이 붕괴될 것이야. 옮지 않다는 걸 알고, 선택을 해보았자 이득이 될 게 없다는 걸 알게 되겠지.’
드래곤의 각성으로 꿈꾸던 일이 이뤄진다면 리오로썬 의욕이 생겼다.
탑의 세계의 변화.
“좋아. 얼마나 도움이 될 진 모르겠지만, 힘이 되어주도록 하지, 당신에겐 빚도 있으니까 말이야.”
당연하다는 듯 페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항상 웃고 있는 광대 분장이 오늘 따라 더 활기가 느껴졌다.
“그럼 너의 몸을 되찾기 위해서 먼저 해야하는 건...”
페이스의 몸에 떠오르는 순간 리오의 인상이 굳었다. 감정의 기복이 일어나 한순간 마력이 방출되었다.
탑의 세계 최강의 종족 드래곤의 육체를 각성시킨 다는 건.
그가 만들어낸 자식들, 자신의 아버지를 봉인하고 있는 드라칸과 싸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안드레이 스승님과...’
그 외의 다른 드라칸들이나, 드라칸의 제자들이 떠올랐다. 그들을 모두 상대 해야한다는 건 너무나도 어렵게 느껴졌다. 사실상 불가능했다.
“누구와 싸워야하는지 깨달으셨습니까아? 후후. 걱정하지 마시죠오. 리오님은... 최악의 마법사이니까요.”
문득 방금 전 꿈에서 보았던 장면이 떠올랐다.
수백 년전 이곳을 정복한 자들.
자신이 정말 알터라면, 그들을 다룰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사실을 숨기듯, 리오는 겉으로는 허세를 부렸다.
“단지 한때 내 스승이었던 자와 싸워야 한다는 게 마음에 걸렸을 뿐이다.”
“스승이라... 그렇군요. 안드레이와 리오님은 그런 관계셨죠오. 뭐, 저를 돕기로 한 이상 싸워야할 겁니다아. 마음을 다잡으시길 빌며, 제 목표와 관련된 자세한 이야기 하나를 하겠습니다아.”
리오는 그의 입에 집중했다. 돕기로 한 이상 전력을 다해야 한다.
자신의 적은 열 손가락안에 들어가는 최강의 종족이다. 시간을 들여 준비를 해야했다.
“아무리 마법을 퍼부어도, 제 몸이 무조건 적으로 깨어나는 때가 있습니다. 사실 그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얼마 남지 않았다. 그 말에 리오는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개벽이군. 개벽이 일어나는 날 당신의 육체는 깨어나는 건가. 정신이 없는 상태로.”
“예에. 개벽이 이루어지는 날, 반드시 용의 성지를 습격해야 합니다아. 드라칸들은 제 몸을 다시 재우려고 안간 힘을 쓸 꺼에요오. 개벽 때는 무조건 적으로 각성 상태가 되지만, 금방 재우는 것도 쉽거든요오.”
상황을 상상해보았다. 깨어난 용을 다시 재우려는 드라칸.
그런 상황에서 만약 습격을 당한다면, 모든 드라칸들이 밖으로 뛰쳐나오진 않을 것이었다.
힘이 반드시 분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디데이는 개벽인가.”
개벽축제 이후에 벌어질 사단이 궁금해졌다.
창문 너머로 리오는 멀리서 보이는 용의 성지를 바라보았다.
개벽이 이루어지는 날.
개벽을 일으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