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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어. 왜 이러지?”
이름을 말하려다 당황하는 소녀를 보며 빈이 말했다.
“이곳에서는 본래 세계에서 사용하던 이름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탑의 규칙이라는 것에 의해 입밖으로 내뱉을 수 없게 되죠.”
소녀는 화들짝 놀라며 손벽을 쳤다.
“아 맞어. 픽시가 그랫지…. 그, 그러니까 새로 지은 이름이 뭐였더라?”
상당히 덜렁거리는 소녀라고 생각했다. 앞으로 평생 사용할 지도 모르는 이름을 까먹다니, 보아하니 이름도 성의없게 지은 듯 했다.
“새, 생각났다! 모리안이에요. 모리안!”
“앞으로 그 이름을 평생 사용해야 할 겁니다. 방금 전처럼 잊어버리시면 안됩니다.”
“그, 그렇군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벅 고개를 숙이는 모리안을 보며 빈과 리자드 맨들은 죽어버린 남자를 떠올렸다.
“탑의 세계에 온 걸 환영해요 모리안씨. 저는 리사라고 해요. 이쪽은 제 남편 칼. 둘 다 리자드 맨이라는 종족이죠. 알고 계신가요?”
“아, 아뇨. 처음 보는데…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말과는 다르게 모리안은 칼과 리사를 보고 신기해 하지 않았다. 여태 여기까지 걸어오며 많은 이종족들을 보았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빈도 모리안에게 자기소개를 했다. 하프라는 말에 놀라는 기색도 없었다. 어쩌면 이종족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니 놀라지 않는 걸 수도 있었다.
“헤에… 근데 여러분들은 왜 이곳에 모여계셨어요? 저를 환영해주시려고 한 건가요? 우와. 감사합니다.”
“그건….”
다른 이유 때문이라고 말하지 못했다. 당신 이전에 있던 인간 때문에 모였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빈의 심정을 이해한 리사가 먼저 치고 나왔다.
“네. 맞아요. 모리안씨가 이곳에 올 거라고 모만씨가 알려주셨거든요. 마음같아선 환영파티라도 해드리고 싶지만, 이곳은 처음이니 마음을 다잡으셔야겠죠? 저희는 이만 가볼게요.”
마치 모리안을 신경쓴 마냥 리사가 말했다.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칼과 빈이 일어났다.
지금은 자리를 비워야한다. 모리안이라는 인간에게 관심을 갖기 전에 해야할 일이 있어다.
“… 우움. 괜찮은데. 이것 저것 묻고 싶은 게 있지만….”
세명을 보더니 모리안은 셋에게 다른 볼일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알겠어요. 어차피 픽시도 있으니까. 부디 저를 잊지 마시고 내일 또 찾아와주세요! 기다릴 게요.”
처음 이 곳을 왔었던 리오와 다르게 성격이 쾌활한 여자였다. 빈들은 고개를 끄덕이곤 리오의 집이였던, 앞으로는 모리안의 집이 될 곳에서 나왔다.
“우린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가 있지 않나?”
칼이 집을 나오자마자 말했다. 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리오와 있었던 일, 구 오라클을 쓰러뜨릴 수 있었던 계기.
쿠란과 있었던 일을 말해야만 한다.
적어도 리오의 동료였던 이 둘은 알 자격과 권리가 있다.
“빈씨. 저희 집으로 가서 이야기해요.”
리자드 맨의 집으로 갔다. 어느새 성장한 그들의 딸이 다소곳하게 빈을 맞이했다.
“들어가 있으렴. 잠시 할 이야기가 있단다.”
리사가 딸을 방으로 들여보냈다.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들어갔다.
이야기를 할 분위기가 형성되자 빈은 다물고 있던 입을 열기 시작했다.
“우선은… 중요한 이야기부터 하겠습니다.”
숨겨왔던 속내를 털어내듯, 빈은 자신과 리오에게 있어서 발설하면 안 되는 이야기를 먼저 내뱉었다.
"저와 리오는 템플러입니다."
내심 충격적인 사실을 말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칼과 리사는 아무렇지 않은 듯 답했다.
“그건 알고 있었다. 아니, 예상하고 있다고 말해야겠지. 템플러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사실을 리오가 알고 있었고, 너는 꽤나 그를 따랐으니까… 아니. 너 같은 경우는 다르군.”
칼은 몇 년전의 과거를 떠올렸다.
리오가 이제 막 10층을 오를 무렵.
자신은 이전부터 구 오라클에게 습격을 받고 있었다.
그 당시, 이미 마음을 통했던 칼과 리사는 함께 움직이고 있었고….
골렘을 다루는 템플러와 마주쳤었다.
“… 넌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나와 리사는 네가 템플러였던 시절에 만난 적이 있었다. 30층 즈음이었나? 유난히도 골렘생성 말고는 다른 마법을 사용할 줄 모르는 템플러였지. 그때는 뭐라고 해야할까. 솔직히 너무나도 무서웠지.”
오라클. 예언자라는 그 뜻처럼 빈은 어디를 가든 둘을 따라왔고, 머릿속을 훔쳐본 마냥 움직였다.
어울리지 않게 떠오른 계획은 당연하다는 듯이 간파 되었고, 뜻 하지 않은 행운 덕분에 층을 돌파할 수 있었다.
그 당시의 템플러는 정말 무서웠다. 그 때문에 둘에게 자리 잡은 공포의 대명사는 자주 마주쳤던 골렘만을 다루는 마법사였다.
“골렘만을 다루는 마법사. 흔치 않지. 사실 너와 첫 전투를 하면서 바로 누군지 떠올렸다. 하지만 추궁하기도 그렇고 오라클을 처단했던 리오가 데려온 동료인 만큼 믿기로 했지. 그러니 놀랄 필요가 없다.”
리사도 미소를 지으며 빈을 바라보고 있었다. 빈은 한결 편해진 마음으로 이어 말했다.
“그럼 리오에 대해선…?”
리자드 맨은 흔히 알려진 말을 내뱉었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심연을 들여다 본다면,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 볼 것이다.”
리사가 입을 열었다.
“리자드 맨들에게 내려오는 말이에요. 마를 마를 부르고, 악과 깊게 싸우는 자는 악에 감염될지도 모른 다는 말이죠.”
“템플러와 질기게도 싸웠던 리오다. 그 누구도 못했던 정의구현을 이뤄내었지. 하지만 싸운 만큼 스스로 템플러가 된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는 만날 때마다 성격이나 분위기가 변했거든.”
당연하다는 투로 칼은 말했다.
리오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는 걸 인정하는 것처럼.
“그놈이 템플러가 되는 것도 당연하지, 사냥꾼이 사냥감을 포획하기 위해서 사냥감의 입장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그 놈도 똑같았을 거다. 템플러를 사냥하기 위해 템플러의 입장에서 생각했겠지. 그 순간 이미 템플러가 된 것이나 다름없다.”
“아마 … 리오의 지인들이라면 말하지 않아도 모두 알고 있을 거 에요. 그 인간이 템플러라는 건.”
이런 간단한 사실을 리오는 모르고 있었겠지. 그 남자가 숨기고자 했던 사실은 이미 모두가 알고 있었다.
‘당연한 건데…….’
“템플러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걸보면… 역시 새로 만들어진 신생 오라클과 연관 된 건가? 어서 말해주었으면 하는 군.”
빈은 자신과 리오가 템플러였음을 알고 있음에도 믿어주었던 동료들에게 입을 열었다.
구 오라클이 붕괴, 신생 오라클의 일, 리오의 계획.
까마귀의 일.
그리고… 둘이서 해낸 오라클 영수에 대해서.
모든 이야기가 끝났을 때는 아침이 밝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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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오가 탑을 나왔을 때는 동이 트기 전이었다.
시간 상 밤이 되어야만 강해지는 주민들이 탑에서 나오고 있었다.
그들 틈에서 탑을 빠져나오는 리오를 그 누구도 눈치 채지 못했다.
이제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누구보다 생기가 넘쳐나고 열정을 품었던 존재는 썩어가는 시체에 불과했다.
짙은 마력을 띄우며 걷는 마법사의 존재를 모두가 리오라고 인식하지 않았다.
그저 드물지는 어디에나 있을 법한 흑마법사. 리치 한 명으로 보았다.
로브를 뒤집어쓰고 광장으로 나온 리오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동이 트기 시작한 태양을 바라보기 힘들었다. 대신 반대쪽의 달이 친숙하게 보였다.
‘완전히 언데드구나….’
이대로 태양을 마주하는 것도 나쁘진 않았지만, 거부감이 들었다. 수 분내로 어딘가에 숨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들었다.
하지만.
이제 앤서러 리오가 갈 곳은 없다.
쿠란은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이 예의였다.
그녀의 복수를 끝내야한다.
‘그럼… 리치로써 새 출발인가?’
모든 것을 깔끔하게 잊고 다시 시작해야한다.
이제 인간이 아니므로 앤서러도 사용할 수 없다. 인간이기 때문에 가졌던 축복 ‘강탈’도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다른 축복들과 TP같은 것들은 여전했다. 이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그런 고민을 하며 서 있던 리치에게 광대가 나타났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최악의 마법사.”
그답지 않은 정중한 인사를 하며 모습을 드러냈다. 동이 트는 곳을 등진 탓에 제대로 바라보기가 힘들었다.
“최악의 마법사라니, 무슨 농담이지? 나는 알터가 아니고 리오다.”
“아….”
리오의 말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곧 그는 자신의 정체에 어울리는 말투를 내뱉기 시작했다.
“그런가. 아직 모르는 군…. 설마 그런 꼴이 되고서도 모르는 척을 하는 건 아니겠지.”
‘모르는 척이라고…?’
리오의 인상이 굳어졌다. 진혼과 알터, 그리고 자신의 연관관계.
“설마 내가 알터라고 말하고 싶은 건가? 농담이 지나치군. 나는 엄연히 내 기억을 가지고 자라온 인간이다. 이 세계 기준으로 수백년전에 모습을 감춘 마법사하고는 나와 본질적인 연결점이 없어.”
당돌한 리오의 말이었다. 페이스는 웃음과 함께 날카로운 대거를 던졌다.
“윽!”
반사적으로 앤서러를 사용하려던 리오였다. 그러나 이미 인간의 몸이 아닌 신체로는 같은 행위를 해도 아무런 효과가 나타나질 않아다. 교묘한 힘의 원리는 적용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페이스의 비수를 맨 몸으로 받아내었다. 손바닥이 대거에 뚫려있었다.
‘아프지도 않구나.’
새삼스럽게 자신이 언데드가 되었다는 걸 다시 한 번 자각하며 대거를 아무렇지 않게 뽑아내었다.
“이게 무슨 짓이지?”
“너는 알터다. 그 증거는 네 뒤에 있지.”
무슨 말을 하는 걸까 싶어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어느새 떠오른 진혼이 보랏빛을 내며 마력을 리오에게 전달하고 있었다.
진혼에서 뻗어난 수십 개의 마력줄기.
마치 줄과 연결된 인형인 것처럼, 진혼이 자신을 구성하는 중요 부품인 것처럼 느껴졌다.
부정할 수 없는 리치화의 상태였다.
진혼이 전해준 마력은 꾀 뚫린 리오의 손등을 아물게 하고 있었다.
“그것은 알터의 라이프 포스 베슬이다. 그 또한 마지막 층에 이르러 리치가 되었지. 이 말을 듣고도 무슨 뜻인지 모르겠나?”
입술을 깨물었다.
인공신과 온슈타인이 자신을 대했던 태도.
페이스가 자신에게 진혼에 대한 것을 알려준 이유.
“하나의 물체에는 하나의 영혼밖에 들어갈 수밖에 없지. 하지만 너는 지금 하나의 마력구에 두 개의 영혼이라도 들어갔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 그런 건 불가능해. 아무리 알터의 마법을 사용한다고 해도 그건 가능 할 수가 없어. 이곳을 관장하는 탑의 규칙이 가만있을 리가 없지.”
이제는 아파올 리가 없는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자신은 알터를 연구했고, 알터의 마법을 배웠다.
알터의 물건을 얻었고, 알터의 모든 것을 이용하려 했다.
“리치화를 위해 본래 하나였던 영혼이 두 개로 갈라졌다. 하나는 진혼에, 다른 하나는 본래 살던 곳으로 귀환. 그곳에서 되살아난 너는 또 다시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
사람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 다는 말이 떠올랐다.
전생에 알터라는 사람이 탑의 세계로 가게 되었다면,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벗어날 수 없는 울타리에 갇혀 계속해서 탑의 세계로 가게 된다.
환경과, 사회가 바뀌더라도 결국 올 사람은 다시 오게 되어있다.
“그 때문에 너는 전생에 자신이 다루었던 마법을 다시 사용할 수 있었지. 다른 인간이 사용하지 못한 건 의심하지 않았나? 아니, 했어도 그들이 노력하지 않다고 생각했겠지. 무시를 했겠지. 아니다.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 피땀을 흘렸다. 결국 타인의 것을 빼앗기로 했지만.”
페이스의 말에 무엇하나 부정할 수 없었다.
마법사마다 다른 신념이 같을 수가 없다.
사람 마다 다짐과 맹세가 다르고, 같은 것을 보아도 다른 느낌을 받기 마련인데, 같은 마법 신념이 존재할 리가 없다.
상상하라. 그리하면 이루어질 것이다.
리오는 알터의 신념에 따라 너무나도 사용하고 싶었던 마법을 손에 넣었다.
“결국 내가 알터가 아니라면… 알터의 영혼이 담긴 마력구를 사용할 수 없겠지.”
현실은 정반대다
리오는 알터의 반쪽 영혼이다. 지구로 돌아간 정복자의 환생한 본인이다.
“이제 인정하는 건가? 자신이 최악이라 불렸던 마법사임을.”
인정하기 싫었다. 하지만 페이스가 말하는 모든 것들이 자신이 알터임을 뒷받침 하고 있었다.
이미 마음속으로는 인정을 했다. 그러나… 자신은 알터가 아니고 리오다.
한 때 앤서러 리오라고 불렸던, 인간의 힘으로 탑을 올랐던 지구인이다.
머리로는 자각해도 몸으로는 인정할 수 없다.
자신이 알터라는 증거는 있지만, 알터로써의 기억이나 힘 같은 건 무엇 하나 없었다.
“그래. 나는 분명 알터의 환생이겠지. 하지만… 알터가 아니야. 지금의 나는 리오다.”
“큭큭. 그건 그렇군. 알터이기는 하나, 알터가 아니다. 이건 똑바로 해야겠군.”
나누어졌던 두 개의 영혼이 진혼이라는 자리에 모였다. 이제 일어날 일은 융합이다.
자의식은 리오가 가지고 있다. 인격이 변하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거기서 페이스와 리오는 서로 눈을 부딪쳤다.
직감적으로 둘은 같은 생각을 했다.
리오가 알터의 힘과 지식을 갖게 되는 날.
정복자가 본래 세계가 아닌, 탑의 세계로 귀환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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