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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56층에 도전할 자격을 얻는다면, 이렇게 하루를 보내는 것도 끝이었다. 그전에 해야할 일이 있었다.
“쿠란. 함께 탑을 올라가보자.”
“탑을?”
쿠란도 한 파티의 리더였던 만큼, 리오의 말을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서로에 대해서 아직 잘 모르는 만큼, 직접 전투에 뛰어들어 알아나가는 과정이 필요했다.
“그러네. 우린 같이 전투를 해본 게 정말 오래 전 일이니까…. 오늘은 아쉽지만 어쩔 수 없네.”
쿠란의 손에서 진혼이 떨어졌다. 아공간으로 집어넣은 리오는 나갈 채비를 하라며 독촉했다.
수십 분뒤. 각자 준비를 마친 둘은 탑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56층을 오를 생각은 아니겠고. 어딜 가볼 생각이야?”
“우리 둘의 호흡을 맞출만한 곳이라면… 40층 일려나.”
즉각 40층을 떠올린 쿠란은 비명을 질렀다. 수백명을 아우르며 탑을 올랐던 그녀에게 있어서 앞자리가 바뀌는 층은 지옥과도 같았다.
“40층? 미친 거 아니야 리오? 너무 자만했어! 거긴 너무 어렵다고. 차라리 몇층이든 좋으니까 뒷 자리가 바뀌는 층에 가보는 편이….”
“아니, 그럴 필요 없어. 쿠란은 혼자 탑을 올라본 적이 없어서 체감이 안되겠지만. 파티의 인원이 적으면 난이도가 어느 정도 내려가. 쿠란이 겪었던 어려움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
리오의 말에 신용이 가질 않는 듯. 쿠란은 걱정스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기어코 탑에 도착한 리오는 익숙한 얼굴을 몇에게 인사를 했다.
그 중에는 얼마 전에 만났던 정보상인 칸나도 있었다. 탑을 오를 생각은 아닌 듯, 가벼운 옷차림이었다.
“여기는 어쩐 일이야 칸나?”
리오의 말에 화들짝 놀라며 칸나가 뒤를 돌아보았다. 뻣뻣한 움직임이 무서운 것이라도 본 듯 했다.
“으, 응. 잠깐 일 때문에…. 아 맞어. 리오가 부탁했던 일은 잘 처리했어. 모만씨가 고맙다고 전해달라 하시더라.”
의외로 쿠란을 보고 먼저 인사를 건네지 않는 칸나였다.
‘왜 그러지? 쿠란을 좋아하지 않았던가?’
리오는 그녀의 뻣뻣함이 쿠란과 관계되어 있다고 판단했다. 그녀의 눈빛이 쿠란을 보고 흔들린 것이다.
“아, 안녕 쿠란.”
어색한 분위기로 인사를 건네는 칸나. 쿠란은 언제나와 같이 마족같지 않은 미소를 지었다.
“응. 안녕 칸나. 저번에는 고마웠어.”
“저번…? 둘이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리오의 물음에 칸나가 몸을 움찔거렸다. 쿠란은 그걸 덮듯 가벼운 말투로 말했다.
“여자들만의 일이 있어 리오. 살짝 거짓말을 치자면 너 때문에 싸웠다고 해야할까?”
“뭐냐. 그런 거였나…. 후 이놈의 인기란.”
그제야 몸의 경직이 풀린 칸나가 한 마디 툭 내뱉었다.
“재수없어 리오.”
평상시의 칸나로 돌아와있었다. 리오는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역시 칸나는 그런 말투가 좋아.”
“말투가 좋다니… 매도당하는 게 좋은 거야? 좀 위험한데…….”
“그, 그 정도까지는 아닌데… 하여튼. 기운 차리니까 보기 좋네. 우린 이만 가볼게. 장사 열심히 해.”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허리 반쯤 오는 칸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곧 실수를 깨달았지만, 딱히 기분 나빠하지 않는 칸나의 얼굴을 보고 어색하지 않게끔 행동했다.
“저, 저기…….”
머리에서 손을 내리자 칸나가 우물주물거렸다.
할 말이라도 있는 건가 싶어 가만히 기다렸다.
“조심히 올라가… 특히나 등 뒤의 적을.”
“등 뒤의 적이라니… 정보상인이 그런 말을 하니까 괜히 56층과 관련된 일인가 싶잖아. 일단 기억해둘게.”
갑작스럽게 칸나의 몸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오한이라도 있는 건가 싶을 정도로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설마, 모험가의 앞에서, 탑의 앞에서 살기에 당하고 있을 줄은 리오로써는 상상하지도 못했다.
“그, 그리고… 이, 이거 돌려줄게.”
내밀어진 금화 물텅이.
리오가 정보차단을 요구하며 만들어둔 빚이었다. 그녀는 그것을 다시 돌려주는 것이 시사하는 의미는 단 하나였다.
정보를 차단할 수 없었다.
가슴이 아리는 통증이 느껴졌다. 리오의 눈이 가늘어졌다.
“굳이 돌려줄 필요는 없어. 탑의 세계에 온 이유가 금전 때문이라 많이 벌어두었거든.”
이 말은 ‘다시 한 번, 정보차단은 불가능 한 건가?’ 라는 의미였다.
리오의 정체를 알고 있는 자들 중에서 정보를 노출시킬 만한 자는 없다.
페이스는 그럴 필요가 없고, 빈은 배신 할 리가 없다.
다만. 정보상인 칸나만이 언제든지 리오의 정체에 대해 말할 수 있었다.
그걸 막기 위해 큰 금액을 건넨 것이었다.
“… 아, 아니 됬어. 그냥 마음만 받아두도록 하, 할게.”
자신이 입을 열 수밖에 없는 상황에 빠져 있다.
리오는 그렇게 받아들이고 한숨을 내뱉었다.
“그럼 그건 그냥 생필품으로 바꿔서 모만씨에게 보내줘.”
“응. 조, 조심해서 가. 그리고 꼭 뒤를 보고 다녀!”
“너도 조심해. 오늘 따라 왜 이렇게 몸을 떨어? 어서 들어가서 쉬어.”
마지막 인사를 하고 리오는 탑으로 향했다.
그러던 도중 곁에 있던 쿠란이 여태 대화를 하면서 인사 말곤 단 한마디도 안했다는 걸 깨달았다.
평소라면 이것저것 캐물으며 둘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궁금해할 터였다.
‘칸나와 좀 크게 싸운 건가? 단 한 마디도 안하다니…. 뭐 입을 다물고 있으니까 더 예뻐 보이긴 하네.’
리오와 함께 탑을 오르던 쿠란은 갑작스럽게 뒤를 돌았다.
칸나를 바라보더니 목소리 없이 입을 열었다 닫았다. 그녀들 끼리의 암호라도 주고 받는 듯 했다.
“무슨 이야기를 한 거야?”
쿠란은 리오에게 미소를 지으며 팔짱을 껴왔다.
“그냥. 여자들끼리의 이야기지… 흐음. 많이 궁금한 것 같으니 굳이 말해주자면… 내가 점찍은 리오에게 집적대지마. 이런 비슷한 이야기를 했지.”
리오의 입에서 너털웃음이 터져나왔다.
“너랑 내가 벌써 그런 사이가 되었던가?”
“으응? 너무하는 거 아니야 리오? 나는 벌써 널 죽일 정도로 사랑하고 있는데…….”
나는 훨씬 전부터 그랬어.
그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리오는 꿈틀거리는 감정의 기복을 느끼곤 심호흡을 했다.
아직은.
자신의 속내를 말해줄 때가 아니었다.
불과 며칠 전만해도 자신은 그녀의 수하들을 죽게끔 만들었다.
그들이 흘린 피의 냄세가 사라질 무렵.
앤서러 리오의 흔적이 그녀에게 지워지지 않을 정도가 된 다면.
입을 열 것이다.
@
“탑으로 들어간 뒤 개인적인 볼일이 있어. 대기실은 따로 사용할게.”
“응.”
파티를 맺고 둘은 탑에 들어섰다.
각자 개인 대기실로 이동되었고, 리오는 익숙한 하얀 방이 자신을 반기자 입을 열었다.
“픽시.”
55층을 통과하고 리오는 보상과 TP상점의 이변을 확인하지 않았다.
고층으로 올라온 결과. 층을 통과할 때마다 TP상점의 상품이 변하고는 했다. 귀한 축복을 얻기 위해서는 상점을 자주 확인해보는 것이 중요했다.
“… 픽시?”
픽시를 부르고서 수 초. 여전히 대기실에 누군가 나타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살짝 짜증이 생겨난 리오는 다시 한 번 크게 말했다.
"픽시. 나오지 않는다면 선물은 없어.“
리오가 가끔 사오는 간식거리는 픽시에게 큰 기쁨을 주었다.
그러나 선물을 거론해도 여전히 대기실은 변화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도 이런 일이…….’
아르토와 싸웠을 적. 인간 한 명에게 내려지는 축복과 픽시 때문에 리오는 한동안 그녀를 볼수 없게 되었다.
‘그때랑 똑같아. 픽시가 나타나질 않다니,’
다행이도 축복은 여전히 자유롭게 사용 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