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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의 탑-134화 (134/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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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버리고 새출발 하려는 의도로 파악한 리오는 토를 달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짐을 버린 건 그녀의 각오를 드러내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유유자적 시장을 돌아다니는 건 오랜만인 것 같아. 맨날 대장간이나 무기총판만을 왔다갔다 했었는데… 이런 것도 나쁘진 않은 걸."

옷가지들을 사며 쿠란은 헤맑은 미소를 지었다. 검은 머리에 어울리지 않은 깨끗하고 순수한 웃음이었다.

'인간과 다를게 없군.'

아무리 싸움에 미친 종족이라고 해도 일상생활은 인간과 다를 게 없다. 타인과 교류하며 사회를 이루는 건 모두 마찬가지였다.

똑같이 무언가를 얻어 기뻐하고, 잃을 때는 속상해한다. 인간과 다른 점은 외형뿐이었다.

알고 있었던 사실이었지만, 자신이 관심을 품는 지인이 그러한 모습을 보이자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인간과 마족은 한 장 차이다.

“리오. 이건 어때?”

어느 옷가게 앞을 지나갔을 때 였다. 쿠란은 통통 튀는 걸음으로 옷가지 앞에 서 리오에게 하나를 보여주었다.

“그건 남자 옷인데.”

“알아. 리오한테 선물하려는 생각이었는데?”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 리오는 놀란 듯 입을 열었다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건 엘프나 비슷한 유사인종들의 옷일 거야. 보통 내 체형에 맞는 옷은 팔지 않아.”

“흐음. 아쉽네. 리오한테 딱 어울릴 거 같았는데….”

“딱히 내걸 봐둘 필요는 없어. 내 옷은 충분히 있으니까.”

쿠란은 질린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리오에게 다가와 상의를 꼬집었다.

“분명 우중충한 단색계통의 옷이겠지? 리오라면 외형에 신경쓰지 않고 실용성만 따질테니까.”

틀린 말은 아니었기 때문에 리오는 고개를 돌렸다.

“시꺼. 내가 뭘 입든 무슨 상관이야….”

“이제 리오랑은 남도 아닌 걸? 한 지붕 아래서 사는데 내 남자의 옷차림 정도는 봐주고 싶어.”

그 말에 주변에 있던 주민들의 시선이 리오에게 모였다. 멀리서 멀뚱멀뚱 보고 있던 옷가게의 주인도 눈이 커졌다.

말보다 빠른 게 소문이라고, 순식간에 주민들이 속닥거리며 마을전역에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리오는 한숨을 내쉬며 쿠란을 붙잡고 다른 곳을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내 옷 정도는 나중에 사는 걸로 하고… 가자. 오늘은 네걸 사러 온 거니까.”

주민들의 속닥거림이 한층 소란스러워졌다. 이미 어쩔 수도 없는 흐름이었다.

“군세의 쿠란과 앤서러 리오가 그런 관계라며…?”

“저기 봐. 리오가 손을 꼭 잡고 가고 있네.”

“누가 고백을 했을까? 여태 배우자 생각은 없었던 리오를 어떻게 꼬셔낸 거지? 으읏. 내가 저 옆에 있고 싶었는데!”

인간인 리오에게도 주민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리오에게 이끌리던 쿠란은 기어코 웃음을 참지 못하더니 박장대소를 하기 시작했다.

‘나와 이런 소문이 나는 게… 기분 나쁘진 않은 건가?’

그렇다면 다행이었다. 어쩌면 쿠란도 마음속으로… 자신을 신경쓰고 있지 않을까.

내심 그런 생각을 하며 리오는 낯이 익은 잡화점으로 이동했다.

꽉 닫힌 문을 열었다. 종소리가 나며 카운터에서 낮잠을 자고 있던 이가 고개를 들었다.

“어, 어서오세요오 으으…."

흐느적거리며 리오의 허리만한 호빗이 모습을 드러냈다. 금발금안에 주근깨가 있는 여성이었다.

“으으… 리오잖아. 졸리니까 적당히 사고 싶은 거 골라서 가져가….”

리오에게 이끌려온 쿠란은 잡화점의 주인과 면식이 있는 듯, 다가가 껴안았다.

“칸나아아아! 그동안 잘 지냈어?”

“으, 응? 누… 누구? 쿠란?”

칸나는 잠결에서 깨어나며 쿠란을 마주 안으며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으허허헝. 쿠란! 한때 어떻게 되나 싶었어! 정말 다행이야. 이제 못보는 줄 알았다고!”

자신을 이렇게 걱정하는 주민이 있다는 걸 예상치 못한 듯, 쿠란은 보기드물게도 떨떠름한 하게 대답했다.

“으, 응. 나도 한 때는 어떻게 되나 싶었다니까! 여기 리오가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쿠란은 애써 미소를 지으며 리오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품에 안겨있던 칸나는 싸늘한 표정으로 리오를 노려보았다.

정보상인 칸나.

부업으로 잡화점을 운영하고 있는 그녀라면 리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예상이 가능 할 터였다.

쿠란이 누구 때문에 위험에 빠졌고, 누구 때문에 군세를 잃게 되었는지, 가지각색의 정보를 얻는 그녀라면 추측이 가능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오라클의 영수인 것 까지는 모를 테지만.’

칸나는 애써 표정을 지우곤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헌데 무슨 일이야? 잡화점을 보러 왔어? 아니면 정보?”

“쿠란이 여관을 처분하면서 짐을 모두 버리고 왔거든. 여성용 옷이나 생필품 같은 게 필요한데.”

“응. 리오를 푹 빠져버리게 만들 만한 옷이 필요해!”

“그런 거라면 나의 비장의 컬렉션을 보여줘야겠는 걸! 마족을 위한 물건은 많지 않지만 위의 3층에 가면 있을 거야. 한 번 둘러보자.”

쿠란에게 3층을 보여주려는 칸나를 리오가 붙잡았다.

“잠깐 칸나. 개인적인 주문이 있는데…….”

“꼭 지금 해야 하는 거야?”

“주문이 좀 많아.”

리오는 모만에게 받았던 주문서를 꺼내어보였다. 불편한 표정이었던 칸나는 얼굴을 활짝폈다.

“오옷. 대량주문인가… 쿠란. 미안한데 사용인 한 명 붙여 줄 테니까 혼자 가줬으면 해.”

“응. 위에 가서 골라보고 있을 게.”

쿠란이 사용인과 함께 윗층으로 올라갔다. 리오는 적당한 의자에 앉으며 칸나에게 주문서를 내밀었다.

“이런 수량이라면… 역시 마을 밖인가? 모만씨의 부탁인가봐?”

“… 뭐 그렇지. 모만씨랑 거래를 했어.”

“아하하. 뭔지 알겠어. 그분한테 무언가 물어본 거지? 모만씨는 참. 나에게 말했으면 얼마든지 이런 것쯤 드릴 텐데.”

“너에게 정보를 주면 마을 전역에 퍼지질 않나. 그러니 거래를 하지 않는 거겠지.”

“그건 그렇네.”

리오는 잡담은 이쯤 하기로 하고 흥정을 하기 시작했다.

“최상급 마나석 열 개. 내가 직접 가공한 거다. 품질증명서를 만들어 주지.”

“열 개? 미안. 분명 시세대로라면 그 가격이 대강 맞지만, 마을 밖까지 운반해야하는 걸. 애초에 그게 가능한 게 나뿐이니까 전문적인 잡화점이 아니라 여길 온 거 잖아. 좀 더 줘야겠는 걸.”

“내 부탁을 들어줄 잡화점은 충분히 있는데……. 다른 곳을 가기도 귀찮으니 더 주도록 하지.”

리오는 54층을 오르며 만났던 전갈들을 떠올렸다. 그들의 껍질이라면 큰돈이 될 터였다.

“54층 사금전갈의 껍질이면 어떻나? 이거 상당히 비싼 건데.”

적당한 크기로 잘라낸 사금전갈의 껍질을 보여주었다. 칸나는 상태를 확인하곤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하긴 한데… 마나석에 이거까지면 상당히 내가 남는 장사인걸. 뭐야 리오. 이거 빚으로 만들려는 속셈이야? 그런 거야?”

“빚이라니 투자지. 마을의 제일가는 정보상인에게 성의를 보이는 것뿐이다. 그래도 본심을 살짝 드러내자면… 정보차단을 기대하고 있다.”

“역시 군세에 관련 된 것? 설마하고 있었는데 리오짓이었구나?”

칸나는 깔깔대며 웃음을 터트렸다.

“나쁜 짓을 저질러놓고 은폐할 셈? 언젠가 심판을 받을 거야 리오. 하물며 피해자를 그 옆에 두고 다닌다니… 리오에게 쿠란은 그렇게라도 옆에 두고 싶은 여자인 걸까? 그런 걸까?”

칸나의 웃음이 싹 사라졌다. 스스로 말하면서 화가 치솟은 듯. 리오에게 악의를 드러내어 보였다.

“쿠란이 장난감이야? 타 차원을 살다온 리오에겐 이 마을의 주민이 우습게 보여? 내가 숨기더라도 누군가 알게 될 거야. 그때를 기대할 게 리오. 네가 그렇게 좋아하는 쿠란이 이를 드러낼 테니까.”

저주와도 같은 말을 들어도 리오는 할 말이 없었다. 악독한 말을 들었음에도 감정의 기복은 없었다.

칸나의 말대로, 완전범죄는 있을 수 없다.

언젠가 쿠란도 알게 될 것이었다. 그때 그 상황을 만들어낸 것이 리오였다는 걸.

알게 된다면 자신에게 최악의 상황일테지만, 리오는 내심 그때가 기대되었다.

그런 일을 할 정도로 앤서러 리오는 마족 쿠란을 좋아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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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란과 함께 잡화점에서 나왔다.

만족스러운 쇼핑이었던지, 쿠란은 밝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만 가볼게 칸나! 다음에 좋은 물건 있으면 잘 봐둬!”

“응! 쿠란. 늘 그렇지만 조심해! 옆에 늑대가 한 마리 있으니까 집에서도 긴장을 늦추지 말고.”

“괜찮아. 리오라면 대환영인걸.”

아무렇지 않게 리오의 심장을 뛰게 만들법한 말을 뱉으며 쿠란은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었다.

칸나는 그녀에게 숨기고 있던 사실을 말하고 싶었지만, 애써 불편한 심정을 숨길 수밖에 없었다.

“그럼. 부탁한 건 빠른 시일 내로. 모만씨가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리오는 마지막으로 한 마디 내뱉곤 쿠란과 함께 몸을 돌렸다.

그들을 지켜보던 칸나는 저 둘의 미래가 어떤 파국으로 치닫게 될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저, 지금같은 상황이 오래갔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둘의 모습이 인파에 가려져 보이지 않게 되자 칸나는 잡화점 안으로 들어갔다. 정보상인으로써의 그녀는 해가 진 이후부터였다. 슬슬 영업을 시작할 준비를 해야했다.

그 전에 리오에게서 받은 주문서를 다시 읽어볼 때였다. 누군가 잡화점의 문을 두들겼다.

“예. 나갑니다.”

온갖 보호마법이 걸린 나무문을 열었을 때. 호빗 칸나는 등꼴이 오싹해지며 온몸이 갈기갈기 찢기는 듯한 살기를 느꼈다.

“아… 으…흐….”

다리가 후들거리고 이가 다다닥 부딪쳤다. 아직까지 이성을 붙잡을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정보상인으로써 수많은 모험가들과 싸웠기 때문이었다.

손가락이 겨우 들어갈 정도로 열린 문을 칸나는 다시 닫았다. 그 순간 살기가 멎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칸나는 가게의 보안마법을 즉시 작동시켰다. 문을 강화 시키는 마법, 마을의 경비대를 호출하는 마법, 공격을 반사하는 마법.

수초 뒤에서야 진정할 수 있었던 칸나는 한숨을 내쉬며 기대고 있던 문에서 일어섰다.

그 순간.

잡화점의 모든 강화마법이 파괴되며 문에 수십개의 구멍이 뚫렸다.

손가락이 들어갈 법한 구멍이었다. 칸나는 구멍을 통해서 문 건너편의 상대를 볼수 있었다.

“하….”

천진난만한 미소는 오간데 없고, 눈에 귀기가 서린 마족이 있었다.

“칸나. 칸나. 칸나. 문 좀 열어봐아.”

쿵. 쿵. 쿵.

잡화점이 흔들리는 충격이 느껴졌다. 머리 위에서 부스스거리며 모래가 떨어졌다. 어딘가에서 물건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덜덜 떨리는 몸을 가누기도 전에 잡화점의 문은 부숴졌다. 나무파편이 이리저리 튀었다.

“칸나도 날 속일 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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