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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2장 재결합
베로드의 주점에서 나온 리오는 도서관으로 향했다.
인공 신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도서관에는 마법사들의 논문들도 보관되어 있었고, 리오가 그것을 관람하는 것은 큰 문제가 없었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신이라… 민간신앙과 똑같아. 지구 말고도 다른 세계에서도 비슷한 것이 있었겠지.’
인공 신에 대한 자료는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지금의 메데이아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예전 마법사들도 떠올린 모양이었다.
‘신으로 추앙받는 자는 그저 추앙만 받을 뿐, 실제적으로 신에 버금가는 힘을 가지진 않는다. 신도들은 자신의 신을 믿음으로써 스스로를 고취시켜 잠재능력을 일깨운다…. 일반적인 신에 대한 이미지하고는 많이 다른 걸.’
인공 신 시스템은 단순히 신도에게만 혜택을 줄뿐, 신 본인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리오는 양피지를 꺼내었다.
가운데에 자신의 이름을 쓰고, 양 옆에 메데이아와 알터를 써보았다.
만약 메데이아가 인공적으로 신을 만들 예정이라면, 어째서 자신을 습격했을까, 그리고 굳이 알터의 마법을 확인하려고 한 이유는 무엇일까.
수백 년을 살아온 리치가 자신에게 신앙심을 가질 수 있을까? 당연히 아니었다.
리오는 고작 해야 55층을 오르는 모험가에 불과했고, 정복자의 후손일 뿐이었다. 아무리 소문에 살을 붙여 허구성이 짙은 이야기를 만들어낸다고 해도 신앙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메데이아, 리오, 알터.
리오는 양피지에서 자신의 이름을 지워보았다.
만약.
메데이아 같은 흑마법에 심취한 이들이 신으로 모신다면, 자신이 아니라 알터가 적합했다.
그는 드라칸조차 두려워하며, 죽고 나서도 영향을 떨치는 최악의 마법사.
자신의 선조조차 이용하고 망자를 생전으로 되돌려 수하로 부린다.
최악, 최고의 흑마법사이면서. 그는 이 세상을 정복하기도 했다.
탑의 정복자.
이치를 비틀어 신의 권능과 같은 마법을 다루는 마법사.
알터의 이야기에 조금의 허구성만 부여된다면… 자신과 달리 신앙심이 생길 수도 있었다.
“여전히 왜 날 습격했는지 모르겠군. 단순히 알터의 제자임을 확인해보기 위했던 걸까?”
혼잣말로 해보았지만 답을 내릴 순 없었다.
‘인공 신에 대해 흥미가 생기긴 하지만… 역시 이 이야기는 단순히 다른 마법사의 망상일 것 같군. 마법사의 노닥거림을 베로드씨가 착각한 거야.’
알터를 인공 신으로 만들려고 한다면, 앤서러 리오가 뭘 어떻게 할 필요는 없었다.
리오는 알터와 같은 종족일 뿐이지 신앙심을 깊게 만들 대상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역효과가 날 것이다.
‘나에게 다른 목적이 있어서 접근했을 거야. 인공 신이라니 다시 생각해보니 허무맹랑한 이야기군.’
리오는 책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하루를 보냈더니 어느새 어두워져있었다.
지금쯤이라면 탑에 올랐던 동료들도 각자 집에 도착했을 것이었다.
‘여유 있게 하루를 보내려고 했더니만… 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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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이른 아침부터 집주변이 시끄러웠다. 꽥꽥 울어대는 메신저의 소리였다.
기분 나쁜 아침을 맞이했다며 리오는 비몽사몽한 상태로 집밖으로 나갔다.
하늘을 두리번 거리던 메신저는 날개를 펄럭이며 리오의 어깨에 앉았고, 왜 이렇게 늦게 나왔냐는 듯 짜증어린 표정으로 부리를 부딪쳤다.
“으윽.”
머리가 파인 게 아닐까 하는 고통에 신음을 흘리며 리오는 메신저의 발목에 묻힌 편지지를 꺼내었다.
“단순한 보고인가?”
55층을 얼마만큼 올랐고, 큰 피해는 없었다는 빈의 보고였다. 어젯밤 리오가 도서관을 다녀온 탓에 이렇게 메신저를 이용한 듯 했다.
‘빠른 속도로 올라가고 있는 모양이군, 천천히 올라와줬음 하는데… 아직 쿠란과는 이야기도 못했으니까.’
리오는 가능하다면 오늘 내일 중으로 쿠란을 만나기로 했다.
‘군세를 잃은 지 고작 며칠인데… 너무 이른 감이 있지만 어쩔 수 없나, 마냥 쿠란을 기다릴 순 없으니까.’
빈에게 간단한 답장을 보내었다. 별다른 말없이 조심해서 천천히 올라오는 문장을 적었다.
그 사이에 픽시가 차린 아침을 먹고, 리오는 집밖으로 나갈 채비를 했다. 쇠뿔도 당긴 김에 빼라고 바로 쿠란을 만나러 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집밖으로 나가는 순간. 예상치 못한 인물이 리오를 기다리고 있었다.
“야호 리오. 너무 늦은 아침 아니야? 메신저가 짜증을 내고 가던 걸. 부지런한 줄 알았는데 실망이야.”
장난스런 웃음을 지으며 쿠란이 인사를 해왔다.
“쿠, 쿠란? 네가 왜 여기에?”
“왜라니? 내가 리오의 집 앞에 있으면 안 되는 거야? 마음 같아선 저번처럼 불법침입이 하고 싶었지만… 뭐, 그래도 눈도 제대로 못 뜨고 잠에 취한 리오를 보았으니 안한 게 다행이네.”
잠에 취한 채로 메신저에게 편지를 받는 장면을 본 모양이었다. 리오는 쿠란과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 다음부터는 집 앞에서 기다리지 말고 문이라도 두들겨.“
“싫은데?”
“후우. 농담이라도 하러 온 거야? 마침 널 만나러갈 참이었으니 시간은 있지만…. 일단 안으로 들어와.”
리오의 집으로 들어온 쿠란은 처음 들어오는 사람마냥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빈방은 있나?”
“있긴 한데, 왜?”
“나 갈데가 없거든. 여기서 살아도 되지?”
“… 뭐?”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리오는 쿠란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원래 사용하던 여관은 처분 한건가?”
“응. 그 넓은 곳을 나 혼자 쓸 순 없잖아. 처분했어. 그 때문에 지금 갈곳이 없는 신세야.”
“적당한 여관이라면 추천해줄 수 있는데…….”
“리오는 낯선 곳에 나를 버려둘 셈이야? 이 마을에서 내가 편히 쉴 수 있는 곳은 이 집뿐인 걸?”
고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쿠란이 리오에게 몸을 부딪쳐왔다. 손을 가슴 언저리에 언지며 리오의 두근대는 심장을 느꼈다.
“날 저번처럼 내쫓을 거야?”
리오는 쿠란의 미소섞인 말에 거부감을 표할 수 없었다.
그녀가 쉴 곳을 잃게 된 건 전반적으로 자신의 책임이기 때문이었다.
‘책임… 아니, 죄책감이기도 한가. 어쩔 수 없군.’
그렇다고 마냥 받아들이는 것도 남자로써 자존심이 상했다. 적당한 요구까지는 아니었지만, 리오는 자신의 용건을 떠올리고 이용하기로 했다.
“남자 집에 들어와 살겠다니, 겁이 없는 건지 아니면 노리는 게 있는 건지…….”
“글쎄에. 그런 건 상상에 맡길 게.”
“기브앤 테이크 어때? 네가 내 집에서 살겠다면 한 가지 부탁을 들어줬음 좋겠는데.”
연기라도 배웠는지, 쿠란은 끈적하게 달라붙어있던 리오의 몸에서 떨어지곤 자신의 가슴을 가리며 울먹거렸다.
“서, 설마… 리오. 이제 몸밖에 남지 않은 나를….”
이제 쿠란의 장난에는 도가튼 리오였다. 당황하지도 않고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아 맞어. 네 몸을 원해.”
“저, 정말?”
쿠란은 리오의 진심과 장난을 구별하지 못하고 있었다.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를 골탕먹일 생각만 하는 쿠란에게 리오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내 파티에 들어와.”
“힉…!”
화들짝 놀란 동물처럼, 눈을 둥그렇게 뜨고 쿠란은 얼굴을 붉혔다.
“쿠란. 설마 이제 더 이상 탑을 오르지 않겠다던가 하는 말을 내뱉는 건 아니겠지. 널 위해 죽어간 동료들이 있다. 그들의 기대에 부응 해줘야하지 않을까.”
“아, 알고 있어. 그럴 생각은 아니야. 단지 탑에 오를 의욕이 없었는데 리오의 제안을 듣고 생각이 바뀐 게 부끄럽달까… 후우. 리오의 그 말을 기다렸던 걸지도 모르겠네.”
망설이는 모습을 지우고 쿠란은 리오에게 손을 건네었다. 당당한 어투로 그녀는 말했다.
“나, 마족 쿠란은 리오의 파티에 참여하는 걸로 할게. 앞으로 잘 부탁해 리오.”
내밀어진 쿠란의 손을 보고 리오는 문득 몇 년전을 떠올렸다.
고작 20층을 오를 적의 이야기. 그때는 쿠란의 손을 잡고 스스로 파티에 참여했다.
그러나 지금은 정반대였다. 파티를 거부하고 타인을 두려워하던 자신이 스스로 파티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때의 자신처럼, 그녀에게 제안을 하고 있었다.
살짝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쿠란의 파티에서 빠져나오고, 템플러들과 싸우며 탑을 오를 때, 몇 번이고 생각했다.
이미 자신은 귀환을 하겠다는 의지로 탑을 오르는 것이 아니다.
단순히. 쿠란과 파티를 하기 위해 탑을 오르는 것이라고.
앤서러 리오라는 인간은 다른 누구보다도 쿠란과 파티가 하고 싶었다.
“어라라, 리오… 우, 우는 거야? 자, 잠깐 왜 갑자기?”
쿠란을 파티원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잊혀졌다. 리오의 볼을 타고 구슬픈 눈물이 흘러내렸다.
손을 허우적거리며 당황하던 쿠란은 기어코 리오의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마족답지 않고, 어설픈 쓰다듬이었다.
“군세에 있을 때 나름 어머니역할을 해야겠다 싶어서 몇 번 해본 적이 있는데 영 익숙해지지가 않네. 하지만 매번 할 때 마다 효과가 발군이더라고, 이렇게 쓰다듬 해준 애들은 모두 진정하더라. 리오도 그렇지?”
감정을 잃어버린 마냥 울먹거림도 없이 리오의 눈에서 눈물이 흘려 내렸다.
“역시 난 마족답지 않은 가봐, 뭐 그래서 이 세계에 온 것이겠지만…. 자 이리로 와.”
리오의 머리가 쿠란의 가슴에 닿았다. 조심스럽게 머리를 빗듯 리오가 떨어질 때까지 쓰다듬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부드러운 손과는 다르게 쿠란의 눈을 몹시도 차가워졌다. 방금 전의 미소와 말투는 거짓인 마냥, 이가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복수에 눈이 먼 마족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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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란과 함께 살게된 리오는 그녀의 편의를 봐주려고 했다.
"필요한 건 없나? 이것 저것 필요한 게 있을 텐데."
"으음. 짐을 다 놔두고와서 옷이나 잡다한 게 필요하긴 해."
"옷같은 개인 짐 같은 건 아공간에 넣어두었으면 될텐데, 몽땅 다시 사야하는 건가."
여관을 처분하면서 그곳에 있던 자신의 짐까지 버리고 온 모양이었다. 리오는 한숨을 내쉬었다.
"생필품을 사러 가야겠군. 마침 시장에 볼일도 있고…"
쿠란은 함박 웃음을 터트리며 기쁜 표정을 보였다.
"나에게 너무 친절하게 굴지마. 이 집에 눌러앉고 싶어지잖아."
"내 파티에 있겠다면 상관 없긴한데…"
"왠지 응큼한 말투야."
속마음이 들킨 것 같아 리오의 가슴이 벌컥 뛰었다.
"잡담은 그만하고 시장으로 나가자."
쿠란을 이끌고 시장으로 향했다. 패망한 군세의 리더와 이름난 드라칸의 제자가 함께 걷고 있자 자연스럽게 시선이 모였다.
"근데 정말 여관에서 아무것도 들고나오지 않았나?"
"속옷조차 없는 걸, 다시 가지러가긴 싫어. 애초에 버릴 마음가짐이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