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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의 탑-129화 (129/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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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0장 종결

리오는 전장을 내려다보며 펼쳤던 책을 닫았다.

‘사령술을 사용할 필요는… 없겠군. 다행이야.’

선지자를 부활시키고 난 뒤, 리오는 그 뒷일 까지는 생각해두지 않았다.

만약 정말 인간을 되살렸다면, 55층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아르토처럼 괴기하고 인간답지 않은 능력을 가지고 폭주한다면… 그때처럼 막을 자신이 없었다.

상대는 탑을 정복한 인간. 거기다 자신의 성장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린 템플러.

마법과 앤서러를 다룬다고 해서 제어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리오는 다행히 사용하지 않고 끝날 수 있게 도와준 세 명의 스승들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 도와주지 않으신다더니.”

덕분에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지 않고 해결할 수 있었다. 비록 군세는 쿠란 홀로 남았지만. 그것은 리오가 가장 바란 결과였다.

자신의 손바닥위에 군세와 수백의 템플러를 올려두고, 서로 싸우게 했다.

리오로 인해. 수백 명이 서로 무기를 겨누고 죽어버린 것이다.

‘난 정말 최악이야….’

한 여자를 위해서 누군가를 죽이는 것보다 악질적인 일을 저질렀다. 리오의 손으로 누군가를 죽이지 않았을 뿐, 죽인 것이나 다름없었다.

오로지 목적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템플러.

진정한 템플러가 되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

언덕 위에서 흩트러진 시체들을 바라보았다. 죽은 자들은 각자 자신이 싸워야하는 이유를 가지고 전투를 벌였겠지만, 그런 감정까지 모두 리오가 조작한 것이다.

주민을 업신여기고, 주민을 이용했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마주잡았다. 첫 살인을 했을 때 보다 더한 후회감이 몰려왔다.

“…….”

바스락.

갑작스런 인기척이 들려왔다. 리오는 일그러진 얼굴을 펴고 뒤를 돌아보았다.

“무슨 용무지?”

광대분장을 한 템플러가 보였다. 축복 때문에 확인을 할 순 없었지만, 가면도 쓰지 않은 자신에게 찾아올 템플러는 페이스밖에 없었다.

“네놈. 무슨 짓을 한 거냐?”

평소의 말투와는 달랐다. 리오로써는 화를 내는 페이스를 이해할 수 없었다.

“무슨 짓이라니… 보면 알지 않나. 템플러를 이용해서 군세를 없앴다.”

“어째서? 이해할 수 없군. 군세가 네놈에게 무슨 짓이라도 했나? 너에게 있어서 쿠란은 소중한 여자다. 그런데 쿠란의 파티를 없애다니….”

사정을 모두 알고 있는 듯한 말이었다. 리오는 자신의 진짜 의도와 내면을 파고드는 질문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역시. 자신은 구제할 수 없는 욕심쟁이다.

가족을 버리고 탑의 세계로 왔을 정도로 이기적이니 어쩔 수 없다.

가족 때문에 자신의 인생을 원망했다. 이번에는 그 원망의 대상이 바뀐 것에 불과했다.

자신을 방해하는 ‘군세’를 원망했다고 봐도 되었다.

리오는… 쿠란과 파티를 맺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군세’라는 혹이 있었다.

그 때문에 파티를 맺을 수 없었다. 군세에게 불만을 품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마침 나타난 55층이라는 벽과, TP를 욕심내는 템플러들을 이용해서 군세를 파멸시켰다.

인륜을 저버리지 않고, 인간성을 유지하여 지구로 돌아가겠다던 각오도 그로 인해 저버렸다.

단 하나를 얻기 위해서, 수백 명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TP도 아닌, 금은보화도 아닌, 단 한 명의 여자를 위해서.

‘나보다 더한 인간은 없을 거야. 완전히 악당이구나 나.’

따끔거리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리오는 속을 토해내듯 말했다.

“이해 할 수 없겠지. 모든 건 나의 욕심 때문에 벌어진 거니까.”

“욕심?”

“템플러도 아니고, 탑의 모험가로써 가진 욕심도 아니다. 그저 한 명의 인간으로써, 남자로써 욕망에 충실했다. 그걸 이종족인 너희가 이해할 순 없어.”

페이스는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그 말로 모든 것을 이해한 듯 괴기하게 웃었다.

“템플러를 이용해서 군세를 없앤 것도 너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라는 말인가? 너 본인에게는 무엇 하나 돌아가지 않는데 욕심을 품었다고? 이로 인해서 네가 얻는 것은 무엇이지?”

“내가 실질적으로 얻는 것은 없다.”

“아무 것도 얻을 게 없는데… 네가 이런 짓을 저질렀다고? 웃기지 마라! 좀 더 속내를 드러내봐라!”

그 말에 리오는 여태 페이스의 목적이 무엇이었던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무엇을 위해서 신생 오라클을 만들었는지 듣지 못했다.

“타인에게 속내를 묻기 전에 자신부터 밝히는 게 어때? 넌 무엇을 위해서 오라클 부활시켰지?”

“오라클의 부활? 나에게 무슨 이득이 오냐고?”

페이스의 말이 끝나는 순간.

리오는 어깨가 짓눌리는 무형의 기운을 느꼈다. 마치 아르토의 중력조작 능력처럼, 주위의 공기가 무거워진 것 같았다.

그러나 실제로 중력이 변화하진 않았다. 리오만 그렇게 느끼고 있을 뿐. 변한 것은 없었다.

‘… 이건 살기?’

이종족들이 상대방을 죽이고자 하는 의지가 나타날 때의 현상. 상대의 오감을 뒤흔드는 살기였다.

‘큭!’

살기라고 해서 모든 이종족이 사용할 수 있는 건 아니였다. 생과사를 오가며 죽음을 간접체험한 이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비기였다. 그 때문에 리오는 수많은 이종족들을 상대해보았지만, 막상 살기를 접한 경우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이건…….’

단. 그동안 겪은 살기에 비해, 페이스의 살기는 무언가 달랐다.

결코 익숙해질 수 없는 살기였건만, 페이스의 것은 어디선가 많이 경험해본 느낌이 들었다.

‘당신… 누구야?‘

살기로 인해 체력이 소모되었다. 컨디션은 순식간에 나빠지며 리오는 감기는 눈에 힘을 주어 물었다. 숨은 가쁘고 전신의 피가 마르는 느낌이 들었다.

페이스는 자신이 살기를 내뿜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듯. 격한 감정을 토해내었다.

“나는 네가 어떤 인간인지 알고 싶었다. 어째서 다른 인간과 다른 방법으로 탑을 오르는지, 무엇을 위해서 공적인 일을 하고 있는지, 앤서러 리오에 대해서 알고자 오라클을 부활 시켰다!”

‘어떤 인간…? 나에 대해서?’

마른 피부를 타고 전율이 올라왔다. 리오 말고 다른 인간을 알고 있다면….

선지자들이 탑의 난이도를 낮추기 위해 했던 ‘리셋’의 함정에 벗어났다는 말이었다.

탑의 마지막 층으로 모든 주민들을 이끌고, 템플러가 되어 살해한다.

주민들의 전투력으로 정해지는 탑의 난이도를 낮추기 위해.

그 잔혹한 행위에서 벗어난 이들은 리오의 곁에 여럿 있었다. 무기총판의 조렌, 탑의 눈동자 모만, 명장 케일… 드라칸들.

그 중에서 리오에 대해서 궁금할 인물이 몇일까. 조렌은 그런 것에 관심이 없는 듯 하고, 모만은 관찰자의 시선으로 리오를 보고 있다. 앞으로 무엇을 할지 지켜보고 있었다.

케일은 리오에게 완전한 ‘앤서러’를 전수하고, 다음에 찾아올 인간을 기다리고 있다.

남은 건. 탑의 세계 최강의 종족 중 열손가락에 드는 드라칸들 뿐이었다.

‘아냐. 드라칸은 하나의 데이터베이스에 지식을 공유한다고 했어. 스승님은 나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시지, 그렇다면 다른 드라칸도 나에 대해서 알게 되.’

자신의 지인들 외에도 인간의 역사에 대해서 알고 있는 주민들은 충분히 있을 수 있었다. 인간과 크게 접점은 없지만, ‘리셋’을 알고 있다면 리오가 어떤 인간인지 충분히 궁금해 할 법했다.

또 다시 리셋을 하려는 건가. 아니면 다른 방법으로 탑을 오르는 건가.

‘드라칸은 아닐…?’

드라칸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려고 할 때, 리오의 머릿속에 어떤 장소가 떠올랐다.

드라칸 하면 떠오를 정도로, 리오에게 그 장소는 깊게 각인되어 있었다.

탑의 세계 그 어떤 주민이든 그곳에는 쉽게 다가가지 못한다. 그곳에서 내뿜어지는 무형의 기운 탓에 그 일대에는 주민 한 명 살지 않는다.

용의 성지.

그 장소에서 내뿜어지는 기운과 페이스의 살기는 닮은 구석이 있었다.

“설마, 당신…….”

작은 목소리로 리오가 흐느끼듯 말했다. 그제야 자신이 내뿜고 있던 살기를 깨달은 듯. 페이스는 살기를 거두어들었다.

“말해봐라 리오. 어째서 그동안의 행보와는 상반되는 행동을 했지? 너 또한 다른 인간들과 같은 길을 가려는 건가! 또 다시 이 세계를 백지화 시키려는 건가?”

다른 말은 참을 수 있어도, 자신의 선조들과 똑같은 길을 걷냐는 말은 참을 수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이유로 악인이 되었다지만, 그 행위가 용인되는 것은 아니었다.

“웃기지 마! 나는 그놈들과 똑같은 일을 벌이지 않아! 난 단지…! 쿠란을 위해서!”

노호를 하듯 내뱉다 리오는 말을 끊었다. 페이스에게 모든 것을 말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그 말로도 충분했다. 보기드문 리오의 감정 어린 말에 페이스는 리오가 정말 쿠란을 위해서 했다는 말을 인정했다.

한순간에 감정이 정리 되며 페이스는 잔잔한 어조로 말했다.

“… 너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 라고 했던가. 그리고 방금 그 말….”

페이스는 실없는 웃음을 흘렸다. 오직 여자를 위해서 수백 명이 서로에게 칼날을 겨누게 만든 인간.

자신은 물론이고 탑의 세계가 리오에게 농락당했다.

“… 넌 다른 인간과 조금 다른 건가 했었다. 하지만 본질은 같군.”

리오에 대한 호기심은 충족 된 듯. 페이스는 이탈을 시도 했다. 그의 뒤에 차원의 균열이 일어나며 틈이 생겨났다.

“잠깐. 당신…”

그가 떠나기 전에 리오는 방금 전 깨달은 것을 확인하기로 했다. 만약 그가 정말 자신이 추측한 주민이라면…….

익숙한 살기.

용의 성지.

인간의 역사.

“… 드래곤인가?”

페이스는 광대분장을 지우며 차원의 틈 속으로 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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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란은 자신이 소환한 주민들을 이용해서 55층을 무사히 통과했다.

리오는 그녀를 마지막까지 지켜보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템플러를 보고 손을 내밀었다.

“돌려주실래요?”

까마귀 가면을 쓰고 있던 템플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가면을 벗어서 건네주었다.

“수고하셨어요. 덕분에… 일이 잘 풀렸네요.”

환한 웃음소리를 내는 리오. 빈은 수백 명이 죽었음에도 일이 잘 풀렸다는 그를 보고 소름을 느꼈다.

누구보다도 템플러답다. 단순히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탑의 사도가 되어 주민에게 시련과 역경을 부여하는 진정한 템플러였다.

“왜 그러세요? 빈씨.”

뒷걸음칠 치는 빈을 보고 리오는 고개를 갸웃했다. 축복 덕분에 자신의 표정이 드러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 빈이었다.

그가 만약 감정이 드러난 자신의 얼굴 보았다면, 나을 수 없는 상처를 받았을 것이었다.

그 누구보다 템플러가 되지 않으려 했지만, 이미 템플러가 되어있던 인간.

빈은 리오에게 복종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이제 템플러는 단순히 사리사욕을 채우지 않고, 세계를 베어버리는 신의 칼날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탑의 모험가에게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빈은 변혁의 주도자에게 무릎을 꿇었다.

“오라클의 영수가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리오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이탈을 시도했다. 차원의 균열이 일어나더니 리오의 주변 공간이 유리처럼 깨져나갔다.

“돌아가죠. 오라클을 접수하러.”

빈 또한 차원의 틈을 열고 55층에서 이탈했다. 리오는 탑에서 나와 곧장 길드 아지트로 향했다.

검은 로브를 뒤집어쓰고, 후드를 깊게 눌러쓴 채 까마귀 가면을 덮어썼다.

안을 볼 수 없는 각종 정보차단의 마법을 걸었다. 리오에게는 자기자신에게 최면을 거는 일종의 의식이었다.

이제부터 앤서러 리오는 없다. 템플러 리오가 되어 악인들을 속여야 한다.

“후우….”

길드 아지트의 포탈이 열렸다. 리오가 발을 들이밀자 넘쳐흐르는 배수구처럼 포탈은 빨아들였다.

단 번에 템플러 아지트로 이동되었다. 까마귀 가면을 쓴 템플러가 들어서자 아지트 내부는 시끄러워졌다.

퇴폐적인 주점은 그 분위기와는 다르게 꽉 차 있었다. 군세를 습격하고 살아남은 수십 명의 템플러들의 활약은 이미 퍼진 뒤였다.

비록, 많은 템플러들이 죽었다고 하나 끝까지 살아남은 이들이 있다. 그들이 얻은 TP는 모든 템플러들이 욕심을 낼 수밖에 없었다.

자신도 저들 처럼 얻고 싶다는 욕망을 구현화 하기 위해. 이들은 모였다.

신생 오라클의 일부가 되기 위해서.

까마귀가 들어서자 주점의 중앙에 있는 단상까지의 길이 활짝 열렸다. 이미 까마귀를 인정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가 계획한 군세의 침입, 전장에서의 지휘력과 조직편성.

흠잡을 때가 없다곤 못하지만, 오라클을 이끌어갈 리더로는 충분했다.

그러한 일은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인정할 수밖에 없는 수완이었다.

리오는 주점의 중앙에 있는 단상으로 올라갔다.

‘페이스는… 없군.’

분명 드라칸들에 의해 강제 수면기에 접어들었을 드래곤.

그러나 이 탑의 세계의 일부분이 되어 활동하고 있었다. 본체는 용의 성지에 남아있고 의식만이 빠져나온 걸지도 몰랐다.

그는 템플러를 이용해서 리오가 어떤 인간인지 파악하려 했다. 그걸 역이용하여 리오는 이 자리에 올 수 있었다.

서로 오라클의 영수에 어울리는 자격을 증명하기로 했었다. 하지만 이 자리에 페이스가 나타나지 않는 걸 보면… 흥미를 잃은 모양이었다.

리오에 대해 알게 되었으니, 템플러 따위는 어떻게 되든 상관이 없다.

그의 의도를 짐작하고, 리오는 자신의 자리를 굳건히 다지도록 했다.

그 누구도 영수의 자리를 탐내지 못하도록.

“나. 까마귀는 너희들의 욕망을 충족 시켜주었다. 다소 피를 흘렸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실력을 가진 자의 욕망을 채워줄 자리를 나는 마련해 줄 수 있다. 그 기회를 줄 수 있다. 이는 이번의 침입으로 증명 되었다.”

까마귀의 말이 시작되고 아지트는 조용해졌다. 단상 위의 웅변가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그리고 그의 말이 끝났을 때, 침묵은 깨지지 않았다.

“나는 내 능력을 증명했다. 너희들을 이끌 리더로써, 지도자로써, 신생 오라클의 영수로써 나는 역할의 소임을 다했다.”

무언의 긍정이 아지트를 뒤덮었다. 아무도 까마귀의 말에 반박을 하지 않았다.

이제, 확정을 지을 차례였다.

“… 이제 나는 너희에게 요구하겠다 내 역할에 대한 책임과 권한을.”

모든 욕망의 정점에 선자.

탑의 세계의 모든 악.

악의 지도자.

“…지금부터 내가 오라클의 영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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