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의 탑-126화 (126/190)

<-- 126 회: 4-25(제 39장 충돌) -->

제 39장 충돌

신생 오라클의 조직편성이 끝났다. 빈은 생각보다 일찍 끝난 작업에 혀를 내둘렀다.

일반적인 군대와 다르게 간부가 되는데에 있어서 템플러들은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상황을 보다가 하는 수없이 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누가 우위에 있고 아래에 있는지 다소 충돌이 있긴 했었지만 서로 이해관계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크게 번지진 않았다.

‘템플러는 기본적으로 마음을 열지 않으니까. 모두 입을 열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만 묵묵히 수행하고 있어.’

이렇게 된 다면 그들을 이끄는 입장으로써 진행를 질질 끌 수는 없었다. 요 며칠간 이어진 군세의 크고 작은 싸움에 의해 템플러들의 스트레스도 극에 달아있었고, 슬슬 이를 드러내야 할 때였다.

‘내 자리는 기대를 받는 자리가 아냐, 템플러들에게 시험 당하고, 판단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고 움직여야 해. 고로… 쿠란씨. 막상 전투가 벌어지면 당신의 상황을 봐줄 순 없어. 까마귀는 역할에 충실해야 하니까.’

전투가 벌어질 때만큼은 모든 사정을 잊고 템플러로써 행동한다. 그래야 이 자리를 지킬 수가 있었다.

‘리오씨도 아마 이렇게 행동했을 거야.’

그렇게 빈은 까마귀 역할에 충실히 집중했다.

통신마법을 사용하고, 전 채널을 향해 입을 열었다.

“모든 템플러는 자신이 속한 분대에 돌아간다. 사전에 계획한대로 0분대는 적 캠프의 뒤로 향한다. 1,2,3분대는 시선을 끌기 위해 불을 지르고 중앙으로 돌입. 4,5분대는 좌측 우측으로 나누어 캠프로 향한다.”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오라클은 군대나 파티가 아니었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일치한 악인들의 모임에 가까웠다.

그 때문에 협동심이나 일치단결한 목소리 대신, 행동으로 대답을 보여주었다.

검은 안개가 퍼지듯 숲속을 잠식했다.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는 숲속은 마치 검은 파도에 물들어버린 것 같았다.

하지만 상대쪽도 만만치 않다. 가지각색의 종족이 모인만큼, 마치 무지개처럼 곡선으로 퍼져나와 검은 파도에 대항하기 시작했다. 형형색색의 마법들이 하늘로 치솟기 시작했고 이내 비명이 풀려퍼지기 시작했다.

숲속에 불을 지른 일부 템플러들은 쾌락에 찬 비명을 내질렀다. 등 뒤에서 불이 붙고 캠프를 향해 번지고 있었다. 본인도 피해를 받을 가능성이 있었지만, 등 뒤에 갈 길이 없다는 건 오로지 앞만 가야한다는 말이었다.

죽음의 사신들이 위협을 받고 있다니, 마수처럼 번지는 방화에 앞으로 도망갈 수밖에 없었다.

군세의 베이스캠프 좌측 우측에는 비교적 전투의 화려함이 낮은 편이었다. 그러나 살벌함은 중앙과 마찬가지였다. 이종족들이 몸을 부딪치며 나무들을 쓰러뜨리며 숲을 폐허로 만들기 시작했다.

그 어느 곳도 물러설 수 없는 팽팽함. 빈은 이 전투의 승기를 0분대에 걸었다.

빈의 베이스캠프는 폭포를 등지고 있는데, 0분대의 역할은 폭포 위로 돌아가서 물을 범람시키는 것이었다.

‘가능할까? 0분대에는 발이 빠른 자들을 넣긴 했지만…….’

질적으로는 템플러가 우세하다. 하지만 이러한 대규모 병력전은 군세가 유리했다. 템플러들은 남을 돕지 않고 혼자 싸우고, 군세는 반대였기 때문이다.

‘0분대만 해낸다면….’

이길 수 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리오가 연정을 품었던 쿠란이 죽을 수도 있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해졌다.

자포자기하고 탑을 그만 오를까, 아니면 템플러따위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듯 힘을 기를까.

어찌되었든 쿠란이 죽는다면 하프엘프 빈과의 관계에 영향이 끼칠 것은 분명했다.

‘… 쿠란씨. 무언가 보여주세요. 리오씨를 매료시킨 당신만의 재주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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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란은 이 전투가 길게 가면 좋을 게 없다는 걸 인식하고 있었다.

감은 잡을 수 없지만, 모험가를 사냥하는데 도를 튼 템플러들이 단순히 싸우기만 할 리가 없었다. 무언가 함정과 더불어 유리한 점을 만들어 두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물며 상대는 나와 같은 전략가야. 그동안의 전투를 보면 알 수 있어. 무언가 방법을 써두었을 거야.’

템플러가 침입하고 나서 쿠란은 55층을 진행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군세가 습격 받을만한 일은 최초의 전투 말고는 없었다.

이미 그 시점에서 템플러들은 유리한 점 하나를 잃었다. 그러함에도 꿋꿋이 55층에 남아있고, 이렇게 전투를 벌이는 것은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전세는 팽팽해. 이대로 간다면 저들은 스스로 한 방화 때문에 전멸 할지도 몰라.”

스스로 한 방화, 템플러들이 숨겨둔 한 가지 수.

방화를 한 이유는 단순히 고양시키기 위함인가, 아니면 그들이 숨겨둔 수와 연관이 있기 때문인가 둘 중에 무엇일지 쿠란은 고민이 되었다.

“쿠란! 좌측이 뚫리기 직전이야!”

생각을 깨우는 전보에 쿠란은 화들짝 놀랐다. 이렇게 된 이상 어느 한쪽에 도박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폭포 위쪽에 있는 병력을 좌측으로 돌려! 어차피 이대로 시간만 끈다면 저 놈들은 스스로 지른 불에 타죽을 거야!”

폭포 위쪽에는 혹시 몰라 병력을 대기시켜 두었다. 군세가 등지고 있는 폭포가 만약 무너지고 물이 범람된다면 곤란하기 때문이었다.

‘슬슬 나도 움직여 볼까.’

쿠란은 동료들을 돕기 위해 팔을 걷어 올렸다. 자잘한 지휘는 적당한 동료에게 맡겼다.

‘잔존병력이 좌측으로 갔으니까, 나는 동쪽으로 가볼까.’

마법에 능한 마족답게, 쿠란은 전투가 벌어지는 장소로 순간이동했다. 눈 깜빡할 사이에 자리를 바꾼 그녀는 광역피해 마법을 시전 하기로 했다.

평상시 탑을 진행 할 때는, 지형지물이나 아군의 피해 때문에 자주 사용하지 못했던 마법들이었다.

“후우….”

쿠란이 심호흡을 시작했다. 그녀의 주변에 검은 기류가 나타나며 공기가 무거워졌다. 고도의 마법에 의해 대기 중 마나의 밀도가 높아진 것이었다.

순식간에 이변을 느끼고 일부 템플러들이 쿠란을 향해 눈을 돌렸다. 곧 자신들에게 닥칠 위기를 감지하고 무기의 방향을 바꾸었다.

광역피해 마법. 단순히 허공에 불과 바람을 일으키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고도의 마법이었다. 인간 리오는 결코 사용할 수 없으며 어떻게 사용하더라도 장시간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된다. 오로지 엘프나 마족과 같은, 마법에 대해 선천적인 재능을 가진 자들만이 사용할 수 있었다.

당연, 그 피해는 막강했다.

템플러들에게서 쿠란을 보호하기 위해 군세의 일부가 그녀를 둘러쌓다. 전쟁의 승기는 쿠란과 같은 마법사가 얼마나 광역피해 마법을 성공하느냐에 달려있었다.

“… 막아라!”

칼날이 목젖까지 온 기분으로 템플러들은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결코 쿠란의 마법이 성공해서는 안되었다. 움직일 수 없는 그녀를 공격하여 마법을 취소 시켜야만 했다.

그러나 철벽처럼 굳건히 버티고 있는 군세를 뚫을 순 없었다. 그들이 지키고 있는 건 자신들의 여왕이었다. 그 누구도 그녀를 방해하게 할 순 없었다.

기어코 쿠란의 마법이 완성되었다. 그녀의 몸을 휘감던 검은 기류가 사라지며 기적을 일으켰다.

“하늘이…. 큭! 웨더 컨트롤인가!”

맑았던 하늘이 어두워졌다. 구름이 바다마냥 소용돌이 치고 회색빛을 머금었다. 군데군데 스파크가 일어나며 벼락을 일으켰다.

파앗!

소리보다 빠른 뇌격. 눈앞이 전격에 의해 밝은 빛에 휩쌓이더니 뒤늦게 벼락이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비와 바람을 일으키며 하늘은 템플러들을 향해 뇌격을 떨어뜨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 뇌격이 떨어진 장소에는 검은 재만 남아 휘날렸다. 그제야 템플러들은 상대가 누구인지 깨달았다.

군세는 단순히 덩치가 커다란 파티가 아니었다. 55층까지 올라올 정도로 힘을 가진 파티다.

숨겨진 힘을 드러내듯, 빗발치는 뇌격 속에서 템플러 한 명이 푸른 기류를 일으켰다. 쿠란과 같은 광역피해 마법을 사용하려는 듯 싶었다.

그러나 반격의 기회를 주지 않겠다는 듯. 쿠란은 뇌격을 그 템플러에게 집중시켰다.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빛의 속도의 공격.

다만 그 공격은 누구나가 예상 할 수 있던 공격이었다. 푸른 기류를 일으킨 템플러는 뇌격을 기다렸다는 듯 땅바닥에 무언가를 던졌다.

여러 자루의 숏 소드. 그 효과는 즉시 나타났다.

내려쳐지던 벼락이 숏 소드로 유도되었다. 전기유도 현상이었다. 땅으로 스며든 전격은 큰힘을 내지 못했다.

비바람에 의해 땅이 젖어있었으나, 템플러는 노련하게도 신발의 형질변환까지 일으킨 상태였다. 슈즈의 밑창이 고무로 변해있었다.

“칫.”

웨더 컨트롤을 통해 벼락을 지배한 쿠란은 혀를 찼다. 저런 식이면 더 이상 쿠란은 공격할 방법이 없었다. 살아남은 다른 템플러들도 방법을 강구하여 벼락에 대한 대비를 했다.

“… 하지만 수는 꽤나 줄었어.”

쿠란의 마법을 무용지물로 만든 마법사는 여전히 광역피해 마법을 준비 중이었다. 고스란히 피해를 받을 순 없었기 때문에 쿠란은 자신의 마법을 캔슬 시키며 마력파동을 일으켰다.

광역피해 마법이 캔슬 된 반동을 또 다른 마법현상으로 변환시킨다. 이런 재주로 리오는 할 수 없는, 마족만이 가능한 일이었다.

쿠란에게서 내뿜어진 마력파동이 주변 일대에 퍼졌다. 마나를 비롯한 마력 같은 에너지는 이제 이 일대에서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일종의 청정구역이 된 것이었다.

당연히 템플러가 사용하려던 마법도 취소되었다. 이제 남은 건 육체의 힘을 이용한 백병전 뿐이었다.

“… 수는 우리가 더 많아. 이길 수 있지?”

쿠란의 물음에 군세는 말없이 무기를 쥐었다.

템플러들은 자신들의 열세를 인식하고 있음에도 전혀 주춤하지 않았다. 욕망에 미쳤다고 해도 좋았다. 오랜 만에 사냥에 나선 그들에게 후퇴란 없었다. 그런 각오를 다지기 위해 퇴로에 불을 질렀다.

앤서러 리오가 오라클을 없애고 3년. 그 시간동안 탑의 세계의 모든 템플러들은 고통받아왔다.

그가 만든 흐름은 거스를 수 없었고, 예전과 같은 자유로운 사냥은 할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오랜 만에 찾아온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그동안 굶주린 만큼, 최대한 군세를 사냥하여 TP를 습득해야 했다.

쿠란은 템플러의 반응에 질려버렸다. 이런 독종들 하고는 또 다시 엮이고 싶지 않았다.

“어서 끝내……!”

콰아아앙!

이곳의 정리를 끝내려던 때. 쿠란의 뒤에서 무척이나 큰 소리가 들려왔다. 곧장 돌아서자… 무너지고 있는 폭포를 볼 수 있었다.

“… 말도 안 돼. 뒤로 돌아서 폭포 위로 올라갔단 말이야?”

막상막하로 보였지만, 그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숨은 병력이 있다는 말은 제대로 부딪쳤으면 이것보다 힘들었다는 말이었다.

폭포에서 흐르던 물의 세기가 강해졌다. 폭포 밑의 호수는 떨어진 돌들에 의하여 범람했다.

“캠프가…!”

군세의 베이스캠프는 폭포의 바로 아래. 호수의 근처에 있었다. 이렇게 범람하고 폭포가 무너진다면 캠프는 풍비박살나고 만다.

‘이렇게 될 가능성을 염두하고 애초에 폭포에 병력을 주둔시켜 두었던 건데…!’

당했다. 넋이 나갈 정도의 충격이었다.

앞에서 이렇게 조이는 탓에 뒤의 경계를 늦춘 탓이었다. 쿠란은 이를 갈며 전 파티멤버에게 알렸다.

“전원 후퇴 하고 중앙에서 집결해!”

폭포에서 내려올 템플러를 생각하면 뭉쳐야했다. 흩어져 전투를 치루기보다, 군세의 힘을 살릴 수 있게 뭉쳐야했다.

‘캠프를 잃었으니 더 이상 수성에 고집할 필요는 없어. 뭉친 다음 하나씩 일망타진 하는 편이 최선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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