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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의 탑-124화 (124/190)

<-- 124 회: 4-23 -->

아쉬움은 접어두고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조직편성으로 시간은 어느 정도 끌 수 있을 것이다. 현재의 과정과 그 이후의 일을 생각해 둬야했다.

‘분대장이 정해지면… 그들끼리 또 싸우게 만들까? 아냐. 끝나는 즉시 쿠란의 파티를 공격해야 해. 조금씩 먹잇감을 던지는 편이 좋겠지.’

빈이 대대적으로 템플러들을 이끌고 군세를 공격한다면, 쿠란은 어떤 식으로 행동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아마 그녀는 자신보다 전술에 능했다. 수년간 군세를 다뤄온 그녀에게 잔재주는 통하지 않을 것이다.

막무가내로 템플러들을 공격시키는 편이 좋다.

질적으로 뛰어난 템플러들은 각자 알아서 이점을 취할 것이고, 쿠란은 전술을 이용해서 적은 피해로 템플러의 수를 줄여 나갈 것이다.

‘병기는 전술에 이길 수가 없어. 쿠란씨 정도라면 아무리 뛰어난 템플러라도 군세로 압살 시키겠지. 방금 전의 잘라먹기처럼.’

마음은 그렇게 먹어도, 빈은 불편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자신이 쿠란에게 지는 것 같았다.

“후우….”

잡념을 털어버리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템플러 한 명이 빈에게 다가왔다.

“왜 그러십니까아? 모든 게 당신의 뜻대로 되고 있는데에…. 한숨을 내쉬다니 고민이라도 있으시나면 이 페이스에게 털어놔보시지요오. 광대인 만큼 기쁘게 해드릴 자신은 있습니다!”

순식간에 까마귀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냉철한 악인을 연기했다.

“그저 언제쯤 상황이 정리 될까.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나온 한숨이었다. 네놈이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아아. 너무하시네요. 기쁘게 해드리려고 했는데…. 그나저나. 분대를 나누는 건 어떻게 되었나요오? 한 자리 남아있다면 제 자리도 부탁드리고 싶은데에….”

“자리가 필요하다면 네가 만들어라. 아니면 빼앗아라. 그래야 템플러 다운 것 아닌가? 나에게 말하지 말고 너도 실력을 드러내면 될 일이다.”

검은 안개에 휩쌓여 있지만, 광대 가면을 쓴 페이스는 안타까운 어조로 말했다.

“아쉽게도 제가 만들었던 자리는 눈앞에 계신 분에게 빼앗겨서요. 의욕이 나질 않네요. 저 같은 게으름뱅이에겐 한 자리 주는 것이 어떻나 싶습니다만?”

“신생 오라클은 능력주의다. 네 능력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줄 건 없다.”

빈은 템플러 중에서 페이스를 가장 경계했다. 그는 모든 템플러들의 신원을 알고 있으며, 리오와 매번 부딪쳤다.

‘일단 어떻게 해서 템플러들의 정보를 알 수 있는 캐내어야 해. 신생 오라클을 만든 진정한 목적이 무엇인지도 알아야겠고.’

페이스에 대해서 알지 않는 한, 그에게 한 자리를 주는 건 내키지 않았다. 배신의 위협은 모든 템플러에게 있었지만, 페이스는 기회만 오면 할 인물로 보였다.

“… 제 능력은 이미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전 당신이 누구인지도 알고 있는데요오.”

“그렇군.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이 일이 끝나면 적당히 자리를 주도록 하지.”

“끄응….”

페이스는 앓는 소리를 하며 몸을 돌렸다.

그 모습을 보고 빈은 한 가지 확신했다.

‘… 템플러에 대한 정보를 무기로 삼지 않아. 어째서지? 그 정보로 위협을 한다면 그 어떤 템플러라도 가진 걸 내놓았을 텐데. 단순히 나와 적대하고 싶지 않다는 건가? 아니야. 다른 템플러에게도 페이스에 대한 건 듣지 못했어. 그렇다면…….’

페이스는 템플러의 정체를 알수 있으나, 공개를 할 수 없는 조건을 가지고 있다.

무기가 결코 될 수 없다는 말이었다.

‘리오씨는 한참 전에 깨달았을 거야. 아니… 페이스와 첫대면을 하는 순간 알았겠지. 정보를 무기로 하지 않고, 템플러 전원에게 제안을, 권유를 했으니까.’

템플러의 신원이라는 건 막강한 카드였다.

정보를 공개하기만 한다면, 전 오라클 멤버들이 갇혀 있는 수용소로 보내버릴 수 있는 비장의 카드였다.

‘정보를 무기로 사용했다면 지금쯤 내 자리엔 페이스가 있었겠지. 하지만 그렇지 않았어. 방금 전에도 나에게 부탁을 했고.’

페이스의 능력에 대해서는 확신을 가졌다.

하지만 빈은 그에 대해 여전히 경계를 가지기로 했다. 다소 정신나가 보이긴 하지만, 페이스는 머리가 좋은 편이었다.

신생 오라클을 만들었지만, 스스로 리더가 되지 않았을 경우를 엄두해 두었을 것이다.

‘아니… 본인의 성격과 능력을 파악하고 있다면, 무리해서 총수가 되려고 하진 않았을 거야. 어쩌면… 그저 신생 오라클을 만드는 것이 목적일 수도….’

그로 인해서 페이스가 얻는 것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만 알 도리는 없었다.

‘일단 내가 할 일을 하자. 현재 페이스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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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과 동 떨어진 저택.

하얀 대리석이 저택을 둘러싸고 있고, 집 주인의 취향을 드러내듯 담벼락엔 사자머리의 조각이 새겨져 있었다.

저택의 입구에는 그 어떤 종족이라도 들어올 수 있게끔 대문이 있었고, 그 문에도 마찬가지로 사자머리가 있었다.

문 안쪽에는 넓은 공터가 있었다. 본래 조각상이라도 있었던 듯. 곳곳에 장식대가 보였다.

한 때 템플러였으며, 대장장이이기는 하나, 철보다 검사를 두드리기를 좋아하는 대장장이.

케일의 저택이었다.

그는 취미인 마냥 조각칼을 들고 석상 하나를 조각하고 있었다. 리오 다음에 올 인간을 위해 앤서러의 진수를 동상으로 남기는 것이었다.

‘…….’

리오가 오기 전 보다 조각솜씨가 확실히 늘었다고 자부하며 케일은 성취감을 느꼈다. 이대로라면 다음 대의 인간은 좀 더 쉽게 앤서러를 익힐 지도 몰랐다.

만족스럽게 생각하고 다음 석상을 위해 마무리를 하려고 할 때였다. 케일의 눈앞에 익숙한 모험가의 이름이 나타났다.

“업적….”

다른 모험가하고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두각을 드러내는 자.

그 누구도 깨지 못할 기록을 남기고 있으며, 모두의 관심을 사고 있는 자. 앤서러 리오의 업적갱신 알림이었다.

여태 많은 인간들을 만나온 케일은 그의 행보에 무척 호기심이 생겼다.

인간들 중에 분명 리오보다 우수했던 자들은 많았다. 싸우는데에 있어서 도가 틀고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 산과 바다를 가르는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올랐던 이들도 있었다.

지옥으로 간 자를 끄집어내며 최악의 마법사라고 불린 알터라는 자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도 쉽게 해내지 못했던 업적갱신을, 리오는 시도 때도 없이 해내었다. 마치 조상의 이름을 지워내듯, 역사를 고치듯 모든 것들 바꾸었다.

“55층 입니까? 실력만 된다면 충분히 쉽게 통과 가능한 층이군요. 그래도 업적갱신이라는 건 대단한 겁니다. 인간의 몸으로는 불가능한 것들을 하고 있다니….”

감탄을 내뱉고 케일은 다시 다른 조각상에게 시선을 돌렸다. 앤서러 리오는 그에게 있어서 완성품이었다.

더 이상 손을 댈 필요가 없는 그의 기술이 집약된 하나의 검.

다음 작품을 위해 온 신경을 써야 했다.

그러나 조각칼을 다시 잡고 손을 데려 했을 때, 가슴 한 켠에 있는 주머니에서 빛이 났다.

언젠가 받은 적이 있던 리오의 소환인장이었다.

이 인장이 있다면 리오와 케일은 언제든지 서로 물건을 주고 받을 수 있었다.

‘저에게 부언가 보내려고 하시는 겁니까?’

소환인장을 꺼내어 마나를 불어넣었다. 그의 심장에 있는 소형 발전기가 소음을 내었다.

“… 편지?”

하얀 양피지가 소환인장을 타고 나타났다. 리오답지 않게 급하게 접힌 자국이 보였다.

‘무슨 일이라도 벌이고 계신 겁니까?’

조각칼을 내려놓고 양피지를 펼쳤다. 대충 휘갈긴 글씨는 성의가 보이지 않았지만, 심정을 드러내는 듯 했다.

[어르신 두분께서 케일님의 저택에 찾아가실 겁니다. 정중한 접대를 부탁드립니다.]

무턱대고 통보를 날렸지만 케일의 기분은 나빠지지 않았다. 인간의 부탁은 그에게 있어서 명령에 가까웠다.

케일을 만든 제작자도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대를 이어가듯 나타나는 인간은 마치 자신의 아버지를 보는 듯 해서 부탁을 거부할 수가 없었다.

급히 조각칼을 내려두고 케일은 마당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저택 안쪽에 접객실은 있었지만 먼지가 수북이 쌓여있었다. 리오가 말하는 어른이 누군지는 몰라도 접대 할만한 장소가 되지 못했다.

급히 조각상을 구석으로 치우려는 찰나, 누군가가 말을 했다.

“아아. 그건 냅둬도 되네. 나쁘지 않은 조각상이군. 훌륭해. 그러고 보니 자네는 명장이라 불리기도 했지. 비록 인공적인 존재이기는 하나 훌륭한 미적감각을 지녔군.”

끼릭. 케일의 놀란 감정을 드러내듯, 몸의 나사 일부가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었다.

뒤를 돌아보자 용과 인간을 합친 듯한 외형의 이종족이 있었다.

탑의 세계에 이런 존재는 몇 없었다. 금방 자신의 데이터베이스에서 상대를 추측한 케일은 가볍게 머리를 숙였다.

“반갑습니다. 명장 케일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까지 고개를 숙일 필요가 있나? 나이로 따지면 자네가 나보다 위 아닌가?”

드라칸의 말에 케일은 어느 인간에게 들었던 말을 인용했다.

“그렇긴 합니다만, 드라칸께서는 약자의 머리를 숙이게 하는 위엄을 갖추고 계십니다. 저에겐 이것이 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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