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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7화 태풍
마을로 돌아온 리오는 동료들에게 말했다.
“드디어 55층이네요. 예상보다 빠르게 도착했네요.”
54층이 생각보다 쉬웠던 탓이었다. 다른 층들처럼 시간을 들여 진행해야 하는 것과는 달랐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오늘 하루는 푹 쉬고 내일 만나기로 해요.”
“아. 수고 했다.
“덕분에 어렵지 않게 통과했네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칼과 리사, 빈이 차례대로 인사했다.
각자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배웅하고, 리오는 걸음을 북쪽 주거구역으로 옮겼다.
보통 마력을 사용하며, 종족 성향이 마魔인 주민들이 생활하는 곳이었다..
‘언데드와 마족들이 대부분인가….’
누군가 죽고 난 뒤의 모습, 타락한 뒤의 모습이 이 북쪽 주거구역에 있었다.
힘을 갈구 하다, 마력에 몸을 맡겨버린 종족, 썩어문드러진 시체.
지나가는 백골의 존재를 보며 리오는 자신도 언젠가 저렇게 되겠지란 생각을 했다.
“인간. 여기는 무슨 볼일이지?”
어느 마족이 리오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의 자랑스런 뿔은 머리카락을 타고 뒤로 넘어가있었다.
“쿠란이라는 마족을 만나려고 왔습니다만…. 저에게 무슨 볼일이라도 있으십니까?”
마족은 뿔을 매만지며 곤란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산자는 망자의 원한을 받기가 쉽지. 아무리 마을이라고 해도 네가 살아있는 한 이 북쪽에서는 습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망자는 산자를 원망하니까. 이 말입니까.”
“알고 있으면 다행이군. 가능한 볼일을 빨리 끝내고 나가라. 여기서 사고가 일어나면 피해를 입는 건 우리들이다.”
“충고 감사합니다.”
그의 말대로 리오는 볼일을 빨리 끝마치기 위해 걸음을 재촉했다.
아무리 리오라고 해도, 마기가 흘러넘치는 북쪽주거구역에는 오래 있고 싶지 않았다.
‘해가 지기 전에 여기서 나가야겠어.’
금방 넓은 땅을 가진 쿠란의 여관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여전히 유령저택처럼 누군가의 생활력은 보이지 않았다.
“쿠란.”
쿠란이라면 리오의 목소리쯤, 여관 어디에 있어도 들을 수 있을 터였다.
가뜩이나 주위에는 아무도 없고, 리오가 사는 곳처럼 시끌벅적한 이웃도 없었다.
당연히 리오의 목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쿠…란?”
불길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54층에 도전하는 동안, 쿠란이 가만있지 않았다면?
“쿠란! 숨지 말고 나와!”
리오의 의사를 읽고 탑의 축복 : 탐색이 발동 되었다. 그러나 여관에서는 그 무엇도 발견되지 않았다.
“… 없어?”
여관 말고도 쿠란이 갈만한 곳을 떠올려보았다. 그런 곳은 이 마을엔 없다.
‘탑. 탑에 간 거야! 위험하니까 55층은 함께 올라가자고 말 했는데!’
바로 몸을 돌려 다시 탑을 오르려 했다.
“큭!”
뒤를 돌아서자, 익숙한 광대가 여관 앞을 지키고 있었다.
“오랜 만입니다아. 리오씨”
능글맞은 웃음과 함께 인사를 건네었다. 리오는 불쾌해지는 감정을 참고 그를 지나쳤다.
“오늘은 바쁘다. 할 이야기가 있다면 다음에 하도록 하지.”
“어라. 저는 오늘 리오씨에게 도움이 될만한 정보를 가지고 왔는데에… 그렇게 차갑게 대하셔도 되는 건가요오?”
리오는 걸음을 멈추었다. 어지간해서 말을 허투루 하지 않고, 자신을 찾아오는 일이 드문 그가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해졌다.
‘… 아냐. 지금은 쿠란에게 가볼 때야.’
다시 발을 들어 옮기려 했다. 그 순간 뒤에서 철이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팟!
스로잉 나이프 한 자루가 리오를 향해 섬뜩한 소리를 날아왔다.
미처 피하지 못하고 팔뚝에 박혀버린 리오는 이를 악물고 나이프를 뽑아내었다. 곧 탑의 규칙에 의해 재생되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짓이지? 여기서 한 판 해보겠다는 건가?”
“리오가 나쁜거라고요오… 광대를 무시하면 상처 받으니깐 다음부터 그러지 마세요오.”
붉은 석양을 등진 광대의 분장이 소름끼쳐 보였다. 엉겁결에 움직일 수 없게 된 리오는 심호흡을 했다.
이대로 이종족의 전유물인 '살기‘에 당한다면,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게 된다.
“…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냐.”
“쿠란이라는 마족이 54층에 들어간 건 꽤 오래 되었습니다아. 그리고 그녀의 파티가 55층에 고립되어 있다는 건 이제 소문이 파다하게 나버렸죠.”
“템플러들이 침입을 했다는 이야기냐?”
“참을성 없는 저희 가족들도 몇 침입한 것 같던데요오?”
가족이란 신생 오라클을 말하는 것이었다.
‘지금 쯤 군세와 템플러들은 만났겠군.’
“할 이야기는 끝인가? 이만 가봐야겠군.”
리오는 페이스의 대답도 듣지 않은 채 탑을 향해 달렸다.
또 다시 그의 발을 묶을 까 했지만, 페이스는 그만 두기로 했다.
“이번 인간은 상당히 독특하군. 자신의 안위보다 남이 중요하다니…. 이례적인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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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이 달렸다.
마을을 가로 지르며, 주민들을 밀치고 리오는 탑을 향했다.
누군가 자신을 부르기도 했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54층에서 머무는 동안, 쿠란이 들어갔다.
그 이후에 템플러가 들어갔다면….
‘지금쯤 습격이 시작 됬을 거야!’
리오는 입에서 단내가 흘러나올 정도로 뛰었다.
주민들이 탑에 들어가려고 줄을 서 있었지만, 그것들을 무시하며 리오는 탑의 문으로 몸을 내던졌다.
곧. 백색의 공간에 도착한 리오는 소리쳤다.
“55층! 침입 대상 ‘쿠란’!”
대기실의 한켠에 있던 문 중 하나가 보랏빛으로 변했다.
가까이 다가가 문을 열자, 55층의 세계가 보였다. 거림 낌 없이 그곳으로 이동했다.
‘상황은 어떻지?’
리오의 앞에 홀로그램이 나타났다. 현재 55층의 상황을 알려주고 있었다.
예상대로 쿠란의 파티가 습격당하고 있었고, 벌써 사상자가 난 상황이었다.
‘벌써 오십명이 죽었어?’
공황상태로 빠지다 리오는 자신의 목표를 상기했다.
애초에 이번 일에서 누군가 죽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리오가 하려고 한 일은, 쿠란이 다음 층으로 넘어갈 수 있게 하는 것.
그와 동시에 쿠란의 파티에 도움이 되지 않는 동료들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난 애초에 템플러를 이용해서 살인을 하려고 했어. 이제와서 쫄지 마!’
자신의 볼을 손바닥으로 치며 리오는 정신을 차렸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근방에서 싸우고 있어!’
탑의 축복 : 탐색이 발동되었다. 주변의 소음과 대지의 진동, 누군가 남긴 흔적들을 통해 리오에게 길을 보여주었다.
재빠르게 탐색이 보여준 길을 쫓자, 리오는 드디어 수백 명이 싸우고 있는 전쟁터를 마주 했다.
언젠가 탑이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전쟁터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탑이 만들어낸 전쟁터는, 고작해야 장난감이 목적을 부여받은 느낌이라 아무런 긴장감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전쟁터는 싸우고 있는 모두가 리오와 친숙한 존재고, 싸우고 있는 이유가 양측 다 공감된다.
그들이 내뿜는 살기와 열기가 자신에게 향하는 것 같아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아직 멀리 떨어진 장소임에도 바로 한 가운데에서 싸우는 것 같은 착각을 느꼈다.
“… 큭!”
수십 번도 예상했고, 쿠란을 위해서 무엇이든지 하기로 했다. 아니, 하는 것이 리오라는 인간이었다.
템플러가 되었을지언정, 템플러로써 행동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저버렸고,
인간성, 인륜을 저버리지 않겠다고 각오했지만, 두 조직과 지인들을 이용했다.
주변의 기대에 어긋나는 일을 저질렀다.
‘이미 시작했어. 끝을 내야하고 내가 원하는 바를 이뤄야해.’
그동안 지키고 있던 마음가짐이 사르르 녹아 사라졌다. 가슴에 비수가 꽂힌 것처럼 아파왔지만, 곧 리오가 가지고 있던 욕망들에 의해 잊혀졌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자신에게 이로울 수 있는가.
이런 상황에서도 이득을 취해야한다. 그 생각만이 리오의 머릿속에 자리 잡았다.
‘우선… 지금의 난 템플러야. 쿠란에게 접촉할 수는 없어.’
삼개월을 기다리지 못하고, 침입을 하게 된 템플러들을 이끄는 존재를 만나야 했다.
상황을 보아하니 페이스는 아닌 모양이었다.
‘누구냐.’
품에서 담뱃대를 꺼내었다. 템플러들이 사용하는 통신채널에 끼어들 생각이었다.
통신마법 정도는 어렵지 않은 기본마법이었다. 리오가 아무리 마법의 재능이 없어도, 재능이 없는 건 3서클 이후의 것들이었다.
3서클 이하의 마법들은 모두 손바닥 뒤집는 것보다 쉬웠다.
‘… 간단하군.’
통신채널을 엿들을 수 있게 되었다. 그 말은 발신하는 위치를 알 수 있다는 말과 일맥상통했다.
‘지휘를 하는 놈이 누구냐.’
다수의 파티를 지휘하고, 적절한 명령을 내리기엔 높은 위치가 효율적이었다. 전장 전체를 살필 수 있는 곳.
55층을 이미 와봤던 관계로 그런 장소 몇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찾았다!’
예상했던 장소로 고개를 돌리자, 통신마법을 사용하는 마나의 파동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순간 탐색이 발동되어 마나의 파동을 쫓았다. 정확한 위치를 추적해내고 리오의 머릿속에 지도를 그려 넣었다.
‘한시가 바쁜 상황이야. 조금 무리를 하도록 할까. 어차피 템플러들에게 사냥당할 일도 없고.’
“게놈 크래프트 와이번.”
리오의 외형이 변하기 시작했다. 하늘의 사냥꾼. 익룡으로 유명한 와이번으로 변했다.
날개를 펄럭이며 하늘을 난 리오는 55층 전체를 내려다 보며 신음을 삼켰다.
저번에 봐두었던 군세의 베이스캠프 주위로 전투가 이루어지고 있다. 점점 뒤로 물러나기 시작하는 군세는 조만간 수성에 돌입할 듯 했다.
‘캠프를 튼튼하게 만들어두긴 했지만, 기껏해야 방책이야. 개벽 이후까지 시간을 벌 순 없어. 다행히 지금 투입된 템플러들의 수는 적은 편이지만…….’
그래도 시간을 벌 수 있다는 건 다행이었다. 리오는 그 시간을 이용하기 위해 템플러의 지휘관에게 다가갔다.
지휘관은 갑작스럽게 다가온 와이번을 보고 경계했지만, 곧 자신과 같은 ‘안개’를 두르고 있는 걸 보고 동료라 판단했다.
“폴리모프급 변신을 자유롭게 사용하다니, 그런 걸 사용할 줄 아는 놈은 몇 없는데…….”
“나다. 몰라보는 건 아니겠지? 애초에 55층을 침입하겠다는 발단을 만든 건 난데.”
리오는 품에서 검은 까마귀 가면을 꺼내었다. 템플러 중에서 이러한 가면을 쓰는 건 자신이 유일했다.
“오, 까마귀인가. 요즘 통 아지트에 모습을 안 보이더니… 여기서 만나게 되는군.”
“이게 무슨 짓이지? 내가 계획한 일에 찬물을 끼얹다니.”
호통한 성격인 듯. 그는 이 상황에서도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네 계획을 알게 되니까 잠자코 있을 수가 없더라고, 지난 3년간 얼마나 참아야 했는데… 도저히 잠이 안와서 안 되겠더군. 하는 수 없이 마음이 많는 놈들을 모아서… 내가 먼저 선수를 쳤지.”
“내가 왜 삼개월이라는 시간을 뒀는지, 이해를 못하는 건가? 이렇게 다들 개인적으로 움직이면 조직을 만들 필요가 없다.”
“워워, 화내는 거야? 걱정하지마. 나는 리더의 자리에 욕심이 없으니까. 내가 욕심내는 건 그저… TP뿐이라고.”
“그 TP는 아직도 부족한 건가? 내가 직접 여기까지 왔다. 슬슬 그만 두는 게 좋을 것 같은데?”
통신채널에는 아직도 여럿 파티들의 보고가 들어오고 있었다. 오랜만에 습득한 TP에 대해서 모두가 환희를 느끼고 있었다.
마약에 취한 것처럼, 그만 둘 낌새는 보이지 않았다.
“이봐. 나는 아직 맛도 못 봤다고. 다른 녀석들은 만족할 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아니야. 그래. 이건 어때? 넌 어차피 리더로써 자격을 증명해야 하잖아? 네가 지휘를 맡아. 내가 병사가 되도록 하지. 그럼 적당히 TP를 챙기고 물러나겠어. 다른 녀석들에게도 내가 직접 말하도록 하지.”
TP를 챙긴다니, 누군가를 죽인다는 말과 같았다. 리오는 자신이 3년만에 깨운 괴물에 대해 실감했다.
같은 주민이라도, 이놈들의 눈에는 자신을 성장시키는 데 쓰일 포인트로 밖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 그들은 경험치가 아니야!’
마음속에서 불같은 화가 치솟았다. 주체 할 수 없는 분노였다.
3년 전, 오라클들에게 고통을 받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템플러는 자신의 목표 외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다. 옆집 이웃이라도, 탑에서 만났다면 먹잇감일 뿐이다.
리오는 그런 템플러들을 혐오했다. 자신도 그렇게 될까봐, 병균이 세포를 감염시키듯 똑같이 될까봐, 결국 탑을 오른다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자신을 상상했다.
그래서 오라클을 없앴다.
자신이 타락하지 않도록 그들을 없애기로 결정하며, 선지자들과는 정반대의 길을 가겠다고 행동이유를 부여했다.
어디까지나 자신이 모습뿐만이 아니라, 정신까지 인간으로써 지구로 돌아가기 위해.
‘이놈들이 있는 한 안 돼!’
이렇게 어울리다간 아르토와의 약속도 잊고 진짜 템플러가 되고 만다. 그것을 인식하고 리오는 움직였다.
“나는 너 같은 놈이 제일 싫어.”
“… 뭐?”
자신이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인식할 수 없었다. 충동에 몸을 맡겼다.
몸이 의사를 가진 듯 움직였다. 리오의 감정이 회오리치며 뇌가 억제했던 행동을 하려 했다.
단숨에 템플러를 향해 뛴다.
비수와 같은 손가락이 목을 향했고, 리오의 암습을 인식한 템플러는 그 뛰어난 종족성을 드러내듯 피해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