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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의 탑-116화 (116/190)

<-- 116 회: 4-15(제 36장 54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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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하기보다, 단출한 여관.

무리한 확장공사를 한 탓인지 여관의 담벼락은 금이 잔뜩 가 있었다.

템플러 아르토의 아내였으며, 마을에서 제일가는 여관주인 이리나도 이 정도로 큰 여관은 운영하지 않았다.

무조건 가게가 크다고 좋은 건 아니라는 걸 보여주듯. 리오의 앞에 있는 여관주변은 을씬스러울 정도로 고요했다.

주변 상가가 없고, 인접한 거주시설도 없다.

거대한 여관의 울타리 안에는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들이 구비되어있었다. 마치 이 마을의 축소판을 보는 것 같았다.

“이런 곳에서 생활하면 여왕이라고 불리는 것도 어쩔 수 없지.”

이 여관은 오로지 쿠란만을 위한, 쿠란의 파티를 위해 만들어진 곳이었다.

평소에는 언제나 활기가 넘치고, 먼지가 가라앉을 새도 없이 누군가 앉고 일어섰을 테지만, 지금은 뿌연 먼지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유령의 집처럼, 공허했다.

“쿠란.”리오는 그곳에서 자신을 끌어안은 한 마족을 불렀다. 언제나처럼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쳤던, 쾌활했던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유령의 집의 유령처럼, 덧없고 존재감이 희미했다.

정신적 공황에 빠진 것처럼 리오의 부름에도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쿠란?”

누군가의 발걸음을 듣고 놀란 건가, 한순간 밝은 얼굴로 리오를 보았다가 금방 시무룩해졌다.

“왜? 날 찾아왔어?”

“그, 그건….”

“내가 대화를 엿들어서? 그건 내가 들으면 안 되는 이야기였던거야?”

쿠란은 대화를 모두 들었다고 판단해야 했다. 리오는 무슨 말을 해야할지 고민했다.

“날 도와주지 않는다고 했잖아? 구차하게 도움을 바라지 말라며? 근데 이제와서 나의 위기가 닥치니까 도와준다는 건. 날 동정해서 그런거야?”

“동정이라니, 그런 게 아니야. 애초에 내가 널 돕지 않을 리가 없잖아?”

진실을 담아말했다. 쿠란은 화들짝 놀란 투로 대답했다.

“그, 그랬어? 그럼 왜 날 도와주는 거야? 마치 네가 날 도와주는 게 당연하다는 듯이 말을 하네?”

얼버무릴 수 없는 질문이었다. 이대로 그 이유에 대해서 속마음을 밝히고 싶었지만, 앤서러 리오의 입은 또 다시 거짓말을 내뱉었다.

“그건… 이번 일로 인해서 너희가 무너지면, 또 다시 템플러들이 의기양양 해질테니까. 예전 우리가 20층을 오를 때처럼 될 순 없지. 그리고 또…. 한때 나는 ‘군세’의 일부였어. 그들이 위험에 닥치는 걸 가만히 두고 볼 순 없지.”

무언가 저질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오는 템플러들의 기세가 커지는 걸 오히려 현재 이롭게 생각했다. 또한 군세를 걱정하지 않았다.

그저 모든 것은 쿠란을 위해서, 쿠란을 위해서 짜낸 자신의 계획대로 일이 흘러가고 있을 뿐이다.

쿠란의 파티는 55층에서 템플러의 습격을 받는다.

템플러를 이끄는 건 리오다.

리오는 템플러를 이용해서 쿠란의 파티에 불필요한 모험가들을 제거하고.

결과적으로 쿠란이 다음 층으로 넘어갈 수 있게 만든다.

그 과정에서 쿠란의 파티원을 제거한 템플러들의 만족이 채워지고, 자신은 신생 오라클의 리더로 걸맞는 능력을 증명한다.

쿠란은 다음 층으로, 리오는 템플러들을 마음대로 주무를 권한.

‘사실대로 말할 순 없어….’

진실성 하나 없는 말이었지만, 쿠란은 믿어버린 모양이었다.

눈앞에 닥친 일을 따져보지 않고 부딪쳐보는 게 쿠란이다.

사악할 정도로 순진하다. 타인의 말을 곧이곧이 받아들인다.

그래도 리오는 이 말만큼은 하기로 했다.

“저번에 네가 나의 도움을 바랜다길래 화를 낸건… 솔직히 너한테 실망했어. 마족 쿠란은 나의 도움이 필요 없을 정도로,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 그래. 넌 내 우상이었어. 마음 껏 이 세계의 주민들과 친해지고, 아무나 동료로 삼는 것. 그리고 함께 탑을 오르는 것. 난 할 수 없거든.”

자조적인 미소를 띠며 리오는 말을 이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쿠란의 검은 눈동자를 바라볼 수가 없었다.

너무나도 인간과 빼닮은 마족은, 성인이 되기 전의 자신을 보는 것 같았다.

가족들을 원망하기 전의 자신. 어린 시절, 부모님들의 노고를 깨닫기 전의 자신.

순수했던 자신은 성인이 되어 가족들에게 이용당한다는 생각을 했고….

그때부터였다. 남을 의심하기 시작하고 자신만의 이익을 갈구한건.

아마 자신은 지구에서부터 템플러나 다름없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리오는 템플러가 되기 전부터 이미 템플러였기 때문에 파티를 짜는 것을 망설였고 거부했다.

타인을 믿지 못했다. 법적인 처벌조차 없는 세계에서 누군가를 믿는 건 리오에게 불가능했다.

하지만 쿠란은 이런 세상에서도 누군가를 믿고 등을 맡겼다.

그래서 동경하고 우상했다. 반한 이유도 외모적인 부분이 크지만, 가장 큰건 역시 그 성격이다.

이런 이기적인 자신도 믿어주고, 동료로 넣어주어서. 일방적인 신뢰를 보내주어서.

리오는 그러한 쿠란이 어디까지도 탑을 올라갈 거라고 생각했다. 이 탑의 정상적인 공략법은 쿠란처럼 남을 믿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탑을 정복해나가는 쿠란은 별이고, 자신은 그녀가 내려다보는 하나의 점이었다.

그런 그녀가 땅에 내려와, 자신에게 도움을 갈구하는 건 화가 날 수가 밖에 없었다.

우상하던 대상이 자신에게 도움을 청하다니, 기쁘기보다 화가 났다.

그럼 동경하고 우러러 보던 자신은 무엇이 되는 가. 동경의 대상은 결국 자기자신보다 못한 존재였는가.

그래서는 안된다. 용납할 수 없다. 별이 좀 더 빛나도록, 리오가 할 수 있는 건 그녀를 돕는 것이다.

"넌 나에게 별이야.“

리오가 처음 탑의 세계로 와서, 주민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부담감을 느꼈던 것처럼. 쿠란은 리오의 그 한 마디에 숨이 턱턱 막혔다.

“나,난… 그렇게 대단하지 않아. 오히려 내게는 리오가 더….”

“누가 옳고 그름을 떠나서, 네가 지금처럼 나와 동등한 위치에 있는 걸 원하지 않아. 너는 나보다 위에 있고, 빛이 나야 해.”

오로지 자신이 품었던 연정을 숨긴 채 리오는 말을 이었다.

“내가 널 다시 하늘로 띄울 거야.”

쿠란은 그 어느 때 보다 어깨가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평소와 달리 가슴은 두근거렸고, 숨이 턱 막힌 듯이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이것이 탑의 모험가가 짊어지는 것이라면 평생 짊어지기로 했다.

누군가의 기대를 받고, 선망을 받으며 탑을 오르는 것. 그녀로써는 나쁘지 않았다.

“응. 알았어. 어디까지 날 도와주는 건 템플러들 때문에… 그리고 날 위해서지?”

“그래.”

쿠란의 곁에서 리오는 미리 계획한 일의 일부를 말했다.

리오의 말에 무엇 하나 의심하지 않고, 상대방이 자신을 돕는다는 의지를 확인했기 때문에 그녀는 토를 달지 않았다.

오히려 리오의 계획에 감탄하며, 입을 다물 줄 모르고, 이 남자를 놓친 게 한이라는 말만 내뱉었다.

그 계획이, 자신에게 이로울지 모르나, 자신의 기분은 무엇 하나 살피지 않았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채.

제 36장 54층

54층

정적

리오의 망막에 새겨지듯이 홀로그램이 천천히 동공에 다가와 사라졌다.

‘정적?’

54층의 이름에 대해 호기심을 가질 틈도 없었다. 정신을 차리는 순간 몹시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푹푹 찌는 온도,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곳.

금빛 파도처럼, 사금으로 이루어진 모래.

구름 한점 없는 푸른 하늘이 펼쳐져 있었고, 거대한 치즈 덩어리 같은 노란 언덕들이 보였다.

‘사막.’

54층의 배경을 인식하자 고생할 것이 뻔히 보였다.

얕은 지식을 이용해서 리오는 두르고 있던 병장기들을 벗었다. 최대한 가벼운 경장이 된 후, 자주 입던 로브를 꺼내었다.

후드까지 눌러 쓰고 나니 몹시 답답했지만,  냉기마법을 이용해서 어떻게든 해결을 보았다.

그러고 나서야 리오는 자신의 파티를 둘러볼 여유가 생겨났다.

“… 시작하자마자 빈사상태구만.”

리자드 맨은 보통 늪지대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이런 사막이 익숙할 리가 없었다.

“일단 갑옷부터 벗죠.”

“어머, 숙녀에게 그런 말을. 저 애 딸린 여자라고요.”

“농담할 여유가 있으신 모양입니다?”

그들답지 않은 리자드 맨 부부의 얼굴을 보고 리오는 혀를 찼다.

'54층. 내 생각 이상으로 힘들지 모르겠어.’

리오는 칼과 리사가 입고 있던 철제 갑옷들을 벗는 걸 도와주었다. 그 잠깐 사이에 달아오른 철갑들은 리오의 손에 물집을 잡히게끔 했다.

“… 도와줘서 고마워요 리오씨. 제 남편보다 멋져보이네요.”

“으으음.”

칼의 불편한 목소리를 들으며 리오는 미소를 지었다.

“로브 한 벌씩은 있으시죠? 간단한 온도유지 마법을 걸어드릴 테니 어서 입으세요. 뭐, 그렇다고 쾌적하진 않겠지만.”

그들이 로브를 입는 사이 리오는 빈을 바라보았다.

숲속의 엘프와, 마계의 마족. 그 두 가지의 피가 섞인 빈은 리오처럼 견딜만한 모양이었다.

“괜찮으세요?”

리오가 말을 건네는 순간, 빈은 무언가를 보고 눈을 가렸다. 마치 밝은 빛이 갑작스럽게 동공에 쏘인 것처럼 행동했다.

하지만 수초 만에 표정을 바꾸고, 괜찮다는 듯 대답했다.

“예전에 이런 기후의 환경에서 생활한 적이 있습니다.”

방금 전의 행동이 의심스러웠지만, 아무래도 기후 때문이라고 리오는 넘겨짚었다.

“그렇다면 다행이시네요.”

빈은 몹시 걱정스런 얼굴로 리오를 바라보았다.

“이 사막의 모래는 금이 너무 많이 함유되어 있어서 골렘의 질이 만족스럽지 못할 것 같습니다. 제가 마력을 사용하다보니… 평소보다 골렘이 약할 거라고 생각 됩니다만.”

“금과 마력의 반발작용인가요….”

리오는 작게 신음을 흘렸다.

기후상 제대로 힘을 쓰기 힘든 리자드 맨.

환경 탓에 골렘을 제대로 형성할 수 없는 술사.

‘내가 열심히 해야겠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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