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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가루를 내뿜는 듯한 분수대 앞에서 리오는 동료들 바라보았다.
매끈한 푸른 비늘을 가진 리자드 맨 둘.
창백한 피부와 뾰족한 귀를 가진 하프엘프.
“석달 안에 55층까지 오를 예정입니다. 다들 오늘부터는 서둘러주셨으면 합니다.”
“석달?”
칼과 리사와 빈은 석달이라는 말에 얼굴을 굳혔다. 평소에 탑을 오르는데 있어서 시간제약을 두지 않았던 리오였다.
“무슨 일이라도 있나? 석달이라니, 못할 건 없지만 조금 빠듯한 것 같은데.”
“서두른다고 좋을 거 없어요 리오씨. 지금도 충분히 빠른 편인걸요.”
두 부부의 말에 리오는는 하프엘프 빈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속마음을 알 수 없는 진지한 얼굴이 되어 있었다.
“빈씨도 반대하시나요?”
“반대까지는 아닙니다만, 어째서 석달인지 알 수 있을까요?”
리오의 가슴이 크게 두근거렸다. 역시. 빈은 신생 오라클에 가입되어 있다.
자신이 그곳에서 무엇을 했고, 어떤 제안을 했는지 그녀는 모두 보았다.
그렇지 않다면 이런 질문을 할 수가 없다. 보통이라면 기간에 대해서가 아니라, 이유에 대해서 물을 테니까.
‘템플러들에게도 석달 뒤에 행동하겠다고 미리 말했던 게 다행이군.’
리오는 미리 준비해온 변명을 내뱉었다.
“여러분도 요즘 마을에 떠도는 소문에 대해서 알고 계실 겁니다. 신생 오라클에 관해서 말이죠.”
빈은 찔리는 구석이 있었던지 말을 더듬었다.
“그, 그게 무슨 상관이죠?”
“저도 예전에 한일이 있어서 나름 신경쓰고 있었습니다. 이것저것 그들에 대해서 조사를 하고 있었는데. 지인을 통해서 그들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칼과 빈은 리오에게 눈치를 주었다. 어느새 그들의 주변에 주민 몇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리오. 여기서 할 만한 이야기는 아닌 것 같은데.”
안심하라는 듯. 리오는 음파차단 마법을 사용했다. 돔 형태의 투명한 막이 리오들에게 씌워졌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서… 그 지인의 말에 따르면 신생 오라클은 범행예고 같은 걸 한 모양입니다. 석달 뒤에 55층을 침입하겠다고 했습니다.”
“그 지인이라는 놈은 믿을 수 있는 건가? 그놈도 오라클일 가능성은?”
리오는 지어낸 이야기지만 적당한 인물을 거론하기로 했다.
“정보상 칸나입니다. 그녀라면 믿을 수 있으시겠죠.”
정보상 칸나. 도서관의 도감보다, 탑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호빗이었다.
탑을 오르는 모험가라면 너도나도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했고, 실제로 리오를 비롯해 칼과 리사는 그녀의 도움을 크게 받은 적이 있었다.
“흐음. 그 호빗이라면….”
“정보상에게 신용은 중요하니까요. 그럼 믿을 수밖에 없네요.”
그때였다. 빈은 비수를 던지는 암살자처럼, 예리한 지적을 했다.
“석달 뒤의 55층 침입. 리오는 어쩔 생각이죠? 그들이 55층을 침입을 한다고 해서 리오에게 아무런 상관도 없을 텐데요? 단순히 정의감으로 움직이시는 건가요? 하물며 55층을 오르는 누가 목적인지도 모르는데.”
빈의 말에 리오는 가슴이 따끔거렸다. 얄팍한 정의감으로 무장하여 템플러를 막느냐, 아니면 단순히 개인의 욕망을 위해서 그들을 막느냐.
자신은 아마 후자다. 그 때문에 55층에 쿠란이 있는 걸 알면서도, 자신은 55층으로 템플러들을 이끌어 갈 것이다.
모든 것은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
선지자들이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템플러가 되었던 것처럼, 앤서러 리오도 마찬가지다.
단지, 그들과는 다른 형태일 뿐이다.
이러한 사실을 아직 타인이 알아서는 안된다. 리오는 거짓말을 했다.
“제가 알고 있는 소문은 조만간 누구나가 알게 될 겁니다. 정보상 칸나가 이 소문을 가만히 둘 리가 없죠. 그렇게 된다면 석달 즈음엔 55층을 아무도 도전을 하지 않으려 할겁니다. 템플러들의 행동이 멈추고 소문이 잠잠해졌을 때 다시 오르겠죠. 제가 막고자 하는 건 그런 상황이 아닙니다. 정의감도 아니고요.”
리사는 리오가 하고자하는 말을 알아챈 모양이었다.
석달 뒤, 아무도 도전하지 않는 55층.
템플러들의 동굴에는 아무도 오지 않고 접근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이 소문이 퍼지기 전부터 그곳에 있었고, 나올 수 없는 상태의 주민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그들은 이 소문을 알 수도 없고, 마냥 석달 뒤에 템플러들의 침입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전에 55층을 돌파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리사는 탄식하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쿠란씨가 자신을 도와줄 지원병을 모으고 계시죠. 분명 그 층이 55층 인걸로…….”
빈은 화들짝 놀라며 입을 벌렸다.
“그, 그럼 노리는 건. 군세?”
리오는 템플러들이 쿠란을 노릴 거라는 근거를 확충했다.
아니, 확충이라기보다는, 범행설명에 가까웠다. 어차피 템플러들을 이끌고 55층을 침입하며 군세를 무력화 시킬 것은 자신이었다.
“군세는 거대한 파티입니다. 그들 모두를 없앴다고 하면 막대한 량의 TP를 얻을 수 있겠지요.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지금까지 템플러들이 가만히 둔 것도 우스울 정도로 형편없는 멤버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50층이나 60층이 아니라, 55층에서 진행이 멈춘 것도 당연하지요.”
축복을 통해서 55층을 미리 엿보았던 리오는 군세의 공략법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만약 자신이 템플러라면, 이렇게 할 거라는 듯이 동료들에게 말했다.
“만약 군세를 공격한다면 템플러들은 정면전을 치루지 않을 겁니다. 군세가 어떻게 할지 모르는 55층의 적들을 이용해서 괴롭히겠죠. 앞에서는 쓰러뜨릴 수 없는 55층의 적. 뒤에서는 주민과의 싸움에 특화된 템플러. 진퇴양난의 상황이죠.”
모두의 머릿속에 전투의 상황이 그려졌다. 군세는 이대로 템플러의 침입을 받는다면 절대로 이길 수 없다.
“가뜩이나 신생 오라클은 오랜 기간, 저로 인해 핍박받은 템플러들이 만든 조직입니다. 유일한 욕망의 배출구. 그들이 서로 협심하여 싸우진 않겠지만, 인원은 군세에 맞먹겠죠.”
칼은 종결을 내리듯 말했다.
“오라클로써는 먹음직스러운 군세를 노릴 수밖에 없겠군. 3개월이라는 시간을 준건…….”
생각에 빠졌던 칼은 눈을 크게 떴다.
“… 개벽 그 즈음이군. 개벽이 일어난 뒤는 아무리 쿠란의 파티라고해도 55층을 돌파 할 수 있겠지. 템플러들은 개벽이 일어나기 전에 자신들의 힘을 키우고, 침입을 하려는 건가? 석달 뒤에 침입을 하는 건 분명하겠군.”
“예. 쿠란의 파티는 3개월 후에 몰락할 겁니다.”
리오의 말에 셋은 조용해졌다.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자신은 아마 이 동료들을 이용하게 될 것이다. 나중에 그걸 알게 되고 이 파티는 어떻게 될지 잠시 고민해보았다.
그러나 그런 고민도 결국 리오가 가진 쿠란에 대한 연정에 사라졌다.
“… 그래서. 리오씨는 그러한 이유로 쿠란씨를 돕겠다는 건가요? 석달 전에 55층까지 도달해서, 불나방처럼 뛰어드실 건가요?”
“불나방이라니, 말이 심한데요.”
쿠란의 말에 리오는 변명밖에 할수 없었다. 불나방처럼 불속으로 뛰어든다.
맞는 말이다. 위험성은 굳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높고, 설사 오라클을 막고 쿠란을 다음 층으로 진행시키더라도.
자신에게 무엇 하나 득이 되는 건 없다.
쿠란은 리오에게 고맙다는 말을 한다. 리오는 그냥 해야 할 일이었다고 한다.
별 내색하지 않고, 그런 식으로 끝날 거다. 둘의 관계는 진행되지 않고 멈춰있다.
리오가 속마음을 드러내더라도 쿠란은 공감해주지 않을 것이며, 육체적인 관계로 대할 것이다.
리오는 그런 게 싫었다. 속마음을 말한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진솔한 관계가 되고 싶다.
쿠란과 리오와의 관계를 알고 있던 리자드 맨들은 솔직하게 말했다.
“단순히 템플러들이 군세를 노려서가 아니군.”
“쿠란을 위해서 인거죠?”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어려운 이유나 복잡하지 않아서 좋군.”
“전 또 리오님이 템플러들로 인해 모험가들이 위축될까봐 하는 일인 줄 알았죠. 이 마을을 위해서 행동한다! 정말 큰 뜻이 있는 줄로만 알았는데…….”
“이유야 얼마든지 만들 수 있습니다.”
부부는 리오의 계획에 동참할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고 빈을 보았다.
하프엘프는 복잡한 얼굴로 있다 리오와 눈을 마주쳤다.
한숨을 길게 내쉬고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 이것도 탑을 오르는데 있어서, 귀환을 하는데 있어서 필요한 것이겠죠?”
이유야 얼마든지 만들 수 있고 갖다 붙일 수 있는 행동이었다. 리오는 거리낌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모두 제 의견에 따라주시는 걸로……!”
주민들이 오고가는 길목에서 음파차단 마법을 사용했던 탓일까. 누군가 호기심을 가지고 리오의 마법을 무력화 한 채 엿듣고 있었다.
필시 수준 높은 마법사. 이런 대화를 계속해서 들었으니 탑의 모험가일 수밖에 없었다.
다급한 얼굴로 변한 리오는 자신의 마법을 무력화한 마나를 추적했다.
순식간에 수식을 짜내어 마법을 상상한다. 상상으로 마법을 만들고, 마나를 움직이는 수식으로 허구를 진짜로 만든다. 오직 21세기를 살다온 리오만이 할 수 있는 기행이었다.
‘탑 쪽에서…!’
추적마법과 리오가 가진 축복. 탐색이 서로 조화를 이루었다. 순식간에 탐색은 염탐한 마법사를 찾아내었다.
‘쿠…란?’
혀를 찼다. 주변에 감도는 마나를 느끼고 동료들은 리오에게 물었다.
“추적마법? 무슨 일이 있으신가요?”
“누군가 염탐을 한 모양이군.”
식은땀을 흘리며 리오는 동료들에게 말했다.
“잠시 다녀올 곳이 있습니다. 오늘은 이만 해산하도록 하죠.”
대답을 듣기도 전에 리오의 발이 움직였다. 뒤에서 뭐라고 떠드는 동료들의 말이 들렸지만, 이해할 수 없었다.
다급하게 리오는 지금까지의 대화를 엿들은 쿠란을 쫓았다.
주민들을 밀치고, 사죄를 하며 리오는 탐색이 이끄는 쿠란의 흔적을 쫓았다.
자신의 집에서 보았던 흑색 기류.
쿠란은 자신의 행동이 들켰다는 걸 안 모양인 듯. 디코이 같은 환영 마법으로 모습을 숨겼다.
‘어디로 갔지?’
탐색과 추적마법은 순식간에 쿠란을 놓쳤다.
쿠란과의 연락수단은 메신저를 통한 편지교환 뿐이었다. 하지만 메신저는 기본적으로 한 시간이라는 시간이 소모된다.
자신의 대화를 엿들었다면 그녀가 무슨 짓을 할지 몰랐다. 마족 쿠란은 55층으로 돌아간다면 안 된다.
‘어디로 갔지?’
이대로 놓쳐서는 안된다. 그런 생각으로 그녀가 어디로 갔을지 예상해보았다.
자연스럽게 품에서 담뱃대를 꺼내었다. 불을 붙이고 한 번 숨을 들이키자 몽롱한 정신이 되었다.
주변에 있던 주민들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쿠란이 방해마법을 하기 전 흑색기류를 떠올렸다.
“… 북쪽.”
머릿속에 마을의 지도가 그려졌다.
중앙에 탑. 주변에는 광장.
서쪽에 무기총판 및 관련된 대장간.
동쪽에는 온갖 제조업자들임 모인 시장.
남쪽과 북쪽에 보통 여관을 비롯한 주거시설이 존재한다.
남쪽으로는 엘프를 비롯한 요정들, 켄타우로스, 골렘, 나가, 기타 아인종들을 비롯해 인간이 생활한다. 태양을 받아야만 살 수 있는 종족들이 대부분이었다.
‘북쪽. 북쪽은 달의 기운에 영향을 받는 종족들이 생활하지. 쿠란은 마족이니까 거주시설이 북쪽에 있을 거야.’
담뱃대를 껐다. 그 정도 정보로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