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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시. 템플러의 권한으로 다른 파티의 정보를 알 수 있을 까? 지금 55층을 도전 중이고 파티의 리더는 마족 쿠란. 현재 탑에 들어와 있지는 않지만….”
말을 하다 리오는 20층에서 함께했던 이들을 떠올렸다.
템플러의 축복으로, 그들의 정보를 알 수 있을지도 몰랐다.
픽시는 홀로그램을 자신의 앞에 나타내어 무언가 둘러보았다. 리오는 볼 수가 없는 내용들이었다.
“으음. 탑의 축복이 있으니 불가능한 건 아니에요. 상세한 정보는 알 수 없지만, 어떤 주민들이 몇 층에 있고, 몇 명이 파티를 이루고 있으며 같은 간략한 정보들만 알 수 있어요.”
픽시의 말에 리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충분했다.
쿠란이 탑에서 빠져나오고 자신에게 도움을 구한지 두 달.
그 동안 파티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었다.
“처음 쿠란의 파티에서 처음 도전했던 인원과, 현재의 인원 차이를 알고 싶어.”
“그 정도는 템플러의 권한으로 가능해요. 하지만… TP가 소모되요.”
"TP야 넘쳐나니까 상관없어 보여줘.“
3년 전. 아르토와 함께 싸우면서 리오는 수많은 템플러들을 격퇴했다.
그 결과 많은 TP들을 얻을 수 있었고, 마지막엔 템플러인 아르토조차 스스로의 손으로 살해했다.
지금 리오는 TP가 넘쳐나는 편이었다. 마땅히 살만한 축복이 없고 불필요한 축복들로 낭비를 하지 않은 결과이기도 했다.
“알겠어요. 그럼…….”
리오의 눈앞에 작은 메시지가 나타났다. 일정 TP를 소모하여 정보를 보겠냐는 말이었다.
거리 낌 없이 수락을 눌렀다.
‘어디보자…. 어, 어라?’
두 달이 지나도 지원병 모집을 서두르지 않는 쿠란을 보고 리오는 설마 했지만, 막상 눈앞에 그 이유를 알게 되자 당황했다.
‘그 동안… 아무도 죽지 않았어?’
분명 쿠란은 리오에게 돌파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나 두 달 동안, 리더 없이도 단 한 명도 죽지 않은 걸보면… 그 반대가 아닌가 싶었다.
‘도대체?’
픽시가 말했다.
“놀랍죠? 그 파티는 두달동안 아무런 피해 없이 55층에서 생존하고 있어요. 리더가 없이도요. 어째서일까요? 혹시 쿠란님이 리오님과 함께 파티를 하고 싶어서 버린 건 아닐까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리오는 혀를 찼다.
“그럴 일은 없어. 쿠란은 파티멤버를 소중히 여기는 게 아니라, 파티라는 자신만의 조직을 소중히 여기는 거니까.”
“그건 그렇죠.”
“그나저나, 정말 이건 어떻게 된 거지? 이해할 수 없군.”
리오는 정보 메시지 밑에 있는 침입 버튼을 바라보았다.
탑의 힘을 빌어, 침입을 한다. 그렇게 한다면 쿠란의 파티가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있을 것이었다.
머릿속을 읽은 마냥 픽시가 입을 열었다.
“쿠란님의 파티는 리오님이 올라가 보신 적이 없는 상위의 층이에요. 침입을 하는 건 가능하지만, 권한 이상의 일이기 때문에 많은 TP가 소모되요. 덧붙여 템플러가 아무도 살해하지 않고 돌아간다면 마찬가지로 TP를 잃어요.”
“침입을 통해서 가본적이 없는 상위의 층을 간다는 건… 그 층의 정보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는 거니까 TP가 소모되는 건가.”
리오의 앞에 소모될 예정 TP가 나타났다. 템플러 상태로 돌아갈 때 소모되는 TP도 합산된 것이었다.
“생각보다 큰데.”
가지고 있는 TP의 사분의 일이 소모되는 량이었다. 과연, 상위 층의 정보를 보는 건 대가가 컸다.
“개인적으로 묻고 싶은 게 있는데….”
픽시는 우물주물거리며 물어왔다.
“뭔데 그래?”
“분명 그때 쿠란님에게 도와주지 않을 것처럼 말씀하셨잖아요. 근데 이렇게 그동안 아끼고 힘들게 얻은 TP를 쓰는 건…. 역시 그분을 위해서인가요?”
리오는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은 지금 그때와 상반되는 행동을 하고 있다.
그때 화가 났던 건 쿠란이 자신에게 기대고, 리오의 우상과도 같은 그녀가 약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마족 쿠란은 거침없이 탑을 오르고, 유일하게 인간 리오의 힘에 기대지 않고, 리오에게 기대를 걸지 않고 다른 주민들과 다르게 스스로의 힘으로 탑을 정복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녀도 평범한 탑의 세계의 주민이었고, 리오가 스스로의 한계를 느껴 파티를 구한 것처럼.
쿠란은 리오의 도움을 원했다.
그 당시에는 그렇게 말했지만, 그녀를 도와주지 않을 생각이었던 아니다.
단순히, 그렇게 믿었던 쿠란이 자신이 멋대로 생각한 기대를 저버렸기 때문이다.
“인정해야겠지. 나는 인간을 닮은 쿠란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좋아했어. 접어 두고 싶었지만 그게 마음대로 안되더라고. 기억이라도 없앨까 했지만 그럴 순 없었지.”
픽시는 리오의 속마음을 듣고 얼굴을 붉혔다. 가슴에 손을 모았다.
“나는 결국 감정에 흔들리는 인간인거지, 사리사욕으로 움직이고 여자 하나 때문에 지금까지 해온 맹세, 행위, 내 몸조차 버릴 수 있어.”
그 말에 소름이 돋은 픽시는 리오의 눈앞에 다가갔다. 앤서러 리오가 내뱉은 쿠란을 위해서 지금의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다는 말은 결코 흘려들어선 안 되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앤서러 리오가 각오하고 스스로를 제한을 걸며 다른 인간들과 다른 방법으로 오른 53층.
최후의 순간이 오더라도, 결코 인간성을 잃지 않았던 그 노력들을 저버릴 정도로 리오는 마족 쿠란을 좋아한다.
픽시는 리오의 행동을 저지하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픽시는 리오를 올바른 길로 이끌어주는 가이드.
설사 리오가 옳지 않은 길로 갔더라고 해도, 그 길에 펼쳐진 무수한 선택지를 추천해주는 것뿐이다.
리오의 의지를 픽시가 어떻게 할 권리는 없으며, 역할이 아니다.
애서 웃으며 픽시는 말했다.
“도와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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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의 축복 : 템플러
사용자가 어느 주민을 지목하여, 그 주민이 있는 층으로 강제 이동을 할수 있다.
축복을 사용한 상태에서는 상대는 ‘템플러’에 대해서 일체 어떠한 정보도 알 수 없게끔 조작되며,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이른 바. 완전범죄의 축복이었다.
리오는 템플러를 사용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온 몸이 검은 안개로 뒤덮이고, 묘한 쾌감을 느꼈다.
탑의 규칙에서 일부 벗어났기 때문에 느끼는 것일지도 몰랐다.
‘55층에서 내가 무얼 하든 아무도 모르기 때문인가…. 이 상태에서는 스승님도 날 보지 못하겠군.’
리오는 예전, 안드레이와 약속을 했었다.
안드레이는 리오가 탑을 오르는 모습을 보고, 리오는 안드레이에게 탑을 오르는데 도움이 되는 정보나 마법들을 받는다.
한때 기묘한 관계의 스승과 제자였으나, 지금으로써는 서로의 관계 유지를 위한 것이 되어있었다.
‘이거… 스승님이 노발대발하실지도 모르겠는데,’
쿠란을 위해서 자신은 많은 것을 버리고 있다. 주변의 신뢰, 자신조차도.
‘그만한 가치를 가진 여자는 아닌데, 역시 신경 쓰이지. 가만히 둘 수 없어. 도와주고 싶고.’
한숨을 내쉬며 리오는 상황을 파악하기로 했다.
템플러가 되자 많은 정보가 리오에게 주어졌다.
탑의 축복 : 탐색이 템플러의 권한과 반응하여 리오에게 쿠란의 파티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고 있었다.
‘다양한 종족들의 발걸음. 쿠란의 파티밖에 없지.’
발걸음을 쫓자 전투의 흔적이 드러났다. 거대한 몸집을 가진 종족들도 파티에 있는 만큼, 주변의 나무들이 부러지거나 땅이 파여있었다.
‘여기서 꽤 큰 전투가 있었어. 쿠란의 파티는 397명. 그 일원들이 모두 전투를 치르고, 아무도 죽지 않았다.’
397명으로 구성된 파티가 탑에 올라간다면, 탑은 그에 맞는 난이도를 제공한다.
397대 397이 싸웠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대규모 전투다.
‘전쟁을 치룬 거나 다름없어.’
전투 흔적을 둘러보다 리오는 파티의 이동방향과 반대방향에서 온 발자국을 발견했다.
‘여기도 종족이 다양하군. 55층은 도플갱어라도 되는 건가?’
도플갱어. 타인의 모습과 능력을 그대로 복사하는 이종족이었다.
리오는 여태 만난 적은 없지만, 도서관의 도감을 통해서 정보를 접했다.
‘도플갱어라면 성가신데.’
하지만 도플갱어라고 해도, 쿠란의 파티가 두 달이라는 기간 동안 아무도 죽지 않은 것은 설명이 되지 않았다.
‘일단 그들을 찾아야겠군.’
워낙 거대한 파티이기 때문에 이동경로를 쫓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단숨에 그들의 휴식처를 발견했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것 같은 거대한 폭포, 그 밑은 거대한 호수와도 같았고 첨벙첨벙 뛰노는 물고기들이 엿보였다.
그 주변에서 야영 중인 쿠란의 파티를 리오는 바라보았다.
‘말끔하군. 전투를 해보긴 한 걸까 싶을 정도로 깨끗해. 갑옷이나 무기에 전투를 치룬 흔적도 없고.’
폭포 주변에서 식량을 보급 중인 모험가들을 보며 리오는 생각했다. 아무리 봐도 이상했다.
오기 전에 만난 전투의 흔적은 틀림없이 전쟁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격렬했을 것이다.
그러나 눈앞에 있는 이들을 보면 그렇지 않다. 전투는 없었다.
“… 이상하군.”
그들을 지켜보고 있을 때, 바닥을 울리는 진동이 느껴졌다.
쿵! 쿵! 쿵!
지진 같았지만, 리오는 이것이 트롤이나 오우거 같은, 거인의 피를 가진 이종족들의 걸음걸이라는 걸 알아챘다.
몸집이 큰 만큼 발소리도 클 수밖에 없다. 거기다 상당수가 동시에 걷다보니 지진처럼 느껴진 것이다.
야영지의 밖에서 오는 거인들.
그들의 모습은 야영지 안의 이종족들과 다르게 무척이나 초췌하고 전투의 흔적이 엿보였다.
부러질 듯한 대검, 망치로 두들긴 듯이 망가진 투구, 흠집이 잔뜩 난 방패.
두 달간 전투를 치룬 흔적이었다.
야영지에 남아있던 이들이 거인들을 향해 다가갔다. 이제 왔냐고, 수고 했다. 다친 곳은 없냐. 이런 저런 말을 나누었다.
거인들의 얼굴에는 방금 전까지 있었던 힘든 기색이 사라지고 어느새 미소가 자리 잡았다.
힘든 일을 치르고 난 뒤에, 파티원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왔다는 충족감. 파티원을 지켰다는 만족감.
리오는 거인들의 얼굴을 보고 어떻게 된 것인지 알아차렸다.
이 두 달간.
전투에 이골이 난 멤버는 앞서서 야영지를 방어하고, 주변을 수색한다.
그렇지 않은 이들은 야영지에 남아 그들의 편의를 봐준다.
전투를 맡은 이들은 본인 몫을 넘은 전투를 하지만, 결코 죽지 않는다.
야영지에 그들이 지켜야할 것들이 있기 때문에, 쓰러지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두 달 전에, 베로드가 나에게 무슨 말을 했는데…….’
그때, 베로드는 잠자코 잊기에는 탑의 모험가로써 상당히 신경이 쓰이는 말을 내뱉었다.